비행하면서 세계 여러 도시를 돌아다니다 보면, 해가 지며 달이 뜨는 시간을 마주할 때가 많곤했다. 여행자의 시선은 무척 관찰자 모드이니 커다랗게 뜬 달을 바라보며감탄했다.
"달이 저렇게 컸던가?"
샌프란시스코 트윈피크에서 만난 보름 직전의 달
참으로이상한일이었다.저렇게큰달을처음본다싶었던건기분탓이아니었다.돌이켜 보면 한국에서는 그 시간대에 밖에 나가 하늘을 볼 일이 거의 없던 것이 이유였다. 엄청 바삐 사느라 주변의 사소한 변화 따위는 알아챌 여력이 늘 없었거니와해와달이교대를하는시간대에밖에있던적도거의없었던게다. 물론 눈에 들어왔더라도 머릿속이비좁아달을보며멈춰설여유도 없었겠지만말이다.
꽃이 피어난 나무
마당이 있는 집에 대해 생각해 본 적도 없었는데 어쩌다 보니 뒷마당이 훤히 펼쳐진 캘리포니아어느산동네의 집에 와 지내고 있다. 아파트 살이보다 손 갈 곳이 너무나도 많아 가끔은 주택 살이 로망의 실체가 이런 거구나 싶기도 하다. 그러나 하루 단위로 온갖 자연의 변화가 일어나는 뒷마당에서 햇볕을 쬐고 바람을 쐬고 있으면 세상의 평화가 다 내게 내린 것 같은 평온함이 찾아든다.
봄이 오는 이곳이 반갑다. 아침 이슬을 따사로운 햇볕에 말리는 꽃들의 움직임을 이토록 자세히 바라본 적이 있던가. 화분에옮겨심었더니노란꽃을피워준 수선화, 형광 주황을 뽐내는카렌듈라는 아침마다 꽃잎을활짝열며해를맞이하고, 보랏빛 송송이 맺힌 작은 꽃은 포도모양을닮았다했더니그이름이그레이프히아신스라고 한다.나무에도 새순이 돋아꽃을피우자온동네벌들이몰려와윙윙대며잔치를벌인다.매해반복됐을자연의변화가삼십몇년을살아가며처음눈에들어오는중이다.
순서대로 수선화, 카렌듈라, 히아신스
고3 어느 날이었다. 수능 날짜가 자꾸만 가까워지고 가슴이 꽉 막힌 기분이 들던 토요일 오후였다. 학교를 마치고 난 뒤, 걷고 싶은 마음에 집까지 3, 40여 분을 걸었다. 나무들이 어느새 색을 바꿔가고, 바닥에 흩어진 나뭇잎의 운치가 느껴졌다. 하늘은 어찌나 드높고 파랗던지. 가을이었다. 학교 안에서 아침부터 밤까지 갇혀 있다시피 했으니 가을이 온 줄도 모를 수밖에 없었다. 분위기 있는 가을의 풍경 안에서 어쩐지 서글퍼졌다. 앞으로는 아무리 정신없고 바쁘더라도 중간중간 한숨도 돌리고, 계절의 변화 정도는 느끼는 여유를 갖자 생각했는데 그 뒤로 꽤 오랫동안 계속해서 쫓기며 살아갔다.기실 누구도 강요한 것은 아니었다. 혼자 그냥 난리를 치느라 그랬던 것일 수도 있지만 너무바쁘고숨 막히고 늘다른누군가와나를비교하느라스스로를옥죄어야만했다.
물론떠나서야여유를찾는다니 어쩌면 부끄러운이야기이다. 이상하게도 나와 사니 그런 무게를 덜게 된다. 한정된 '길'들이 제시되어 있었는데 그 트랙을 달리기 위해 무딘 애를 써야 했다면 지금은 그냥 그 트랙 밖으로 나오는 선택을 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정말이지 잠시라도 쉬고 있으면 죄책감이 들고, 노력하지 않으면 뒤쳐지는 것 같아 늘 불안했었다. 게다가 나름 애써 거둔 그 열매가 그리 달지 않다 느껴졌으니 패배자가 된 것만 같은 좌절감에 오랫동안 휩싸였었다. 아마 한국에 다시 돌아가기를 주저했고 주저하는 것은 결국 그 시절의 그런 기억 탓인지도 모른다. 다시 패배자가 되고 말 것이라는 두려움.
그저 그런 신입사원 중 하나가 되어 회사를 다니고, 에미레이트 승무원이 되어 비행을 하고. 그래도 어떻게든 의미 있는 궤적을 그려가리라 다짐하며 시간을 보내왔다.여러 길목을 오가는 동안, 시간이 내게 준 선물은 그때 그렇게 조바심 나 했지만 결국 다 도긴개긴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이고, 나름의 경험이 준 선물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를 알게 해 줬다는 것 정도겠다. 어떻게 살아야 할 지에 대한 생각을 오랫동안 해왔다. 답이 있는 문제인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지금의 평화가 주는 잔잔함은 생각한 방향에 늘 단단한 지지를 보태준다. 낯설면서도 감사하다.
다시 기지개를 크게 켤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배터리가 다 닳은 것 같으면 내 마음을 가득 충전해 줄 것만 같은 보금자리에서, 앞으로는 여유라는 것을 꼭 지키며 살아가야지 다시 한번 다짐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