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날엔 젊음을 모른다는 노래 가사가 있다. 젊음의 복판을 지나는 나는 요즘 항상 지친다는 생각 뿐이다. 생각하는 게 크게 성숙해지지는 않은거 같은데 무언가를 새롭게 시작하기엔 많이 늦은 것 같다. 안락함에 질식 당할 것 같지만, 모험을 하기엔 무섭다. 물속에 가라앉기 직전의 위태로운 나날들이다.
예전에 나는 지금의 회사에 다니기 전 작은 영화사에 다녔었다. 규모는 작았지만 내실이 있었고, 대표가 돈이 엄청 많았다. 지금도 사오는 영화마다 크게 대박 난 것도 있는 꽤 괜찮은 영화사다. 멀리서 보면. 하지만 가까이서 보면 그게 아니었다. 일단 급여가 말도 안되는 급여였다. 인턴이었는데 58만원을 받고 일했다. 당시에 그 시간만큼 아르바이트를 해도 100만원 가까이 벌 수 있었는데, 그 회사는 최저임금도 주지 않고 사람을 부려먹으면서도 예술계는 원래 이런거고 월급도 밀리는 회사가 있다고 나를 위로했다.
내가 당시에 하던 일은 보도자료 쓰고, SNS, 블로그 바이럴 게시글 올리기 이런 것들이었는데 기본적으로 글쓰는 것에는 자신있다 생각했지만 맨날 사수한테 혼이 났고 자꾸 예전 글들을 필사 하라는 말만 되돌아왔다. 예전 글이랑 아예 똑같이 써도 맘에 안든다고 고쳐댔다. 그때 느꼈다. 기자가 되겠다는 꿈은 곱게 접어야 겠다고. 이제와 생각해보면 그 사수는 아마도 내가 맘에 안 들었던 것 같다. 항상 덜렁거리고 마케터 답지 않게 너무 내향적이고, 극장도 잘 가지 않는 집순이였으니까. 그리고 젊은이 답게, 인턴답게 통통 튀는 아이디어가 항상 샘솟는 그런 사람도 아니었다.
첫 직장은 모든 게 너무 친절하지 않았다. 그때는, 내가 신입사원일 때는 그런 불친절함이 용인되는 시기였던 것 같다. 알아서 잘 딱 깔끔하게 센스있게 해야하는거고, 몰라서 질문하는 건 눈치 없는거고, 그렇다고 질문을 안하면 열정이 없는거였다. 일이 없으면 찾아서 하고, 선배들이 야근하면 눈치없이 수고하세요~ 이렇게 말하고 집에 가면 안되는 거였다. 괜히 저녁이라도 먹고 가야 하고, 회식때는 알아서 분위기도 띄워야 한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무슨 시사회를 진행할때였는데 커피를 사오라고 해서 사왔다. 그런데 법카여서 영수증을 챙겼어야 했는데 그걸 안 챙겼다고 나한테 난리를 쳐서 거기 커피숍 아르바이트 생한테 내가 난리를 쳐서 쓰레기통을 뒤져서 영수증을 가져갔던 일이었다. 나는 팀장한테 갈굼당하고, 그걸 다시 커피숍 아르바이트생에게.... 진짜 인생에서 너무 현타가 왔던 순간 이었다. 그리고 당연하지만 법인카드는 그렇게 영수증을 꼭 다 챙길 필요가 없다... 어차피 카드 내역서가 다 배달되는데 회계팀에서 그냥 영수증 달라고 말하면 된다. 근데도 그 당시 아무도 나에게 괜찮다 말해준 사람이 없었다. 그렇게 호들갑 떨지 않아도 이 세상 모든 일이 다 그렇지 않나? 안되는 게 어딨어. 방법이야 찾으면 되는건데 모든 사람들이 나에게 윽박지르기만 하고, 화만 냈다.
그런 곳에서 버티기만 하는 건 당연히 바보 같은 짓이었고, 나와서 안정적인 회사에 취직한 것도 잘된 일이다. 그 일, 사실은 좋아하는 일이었는지도 확실하지 않지만 좋아하는 영화를 관객들에게 보여주는 일에는 아직도 미련이 좀 남아있기는 하다. 그래서 가끔 이렇게 편안함이 너무 지겹고 권태로울 때면 그때 기억을 돌이켜 보곤 한다. 과연 거기에서 계속 버텼다면 지금과는 좀 달랐을까 해서. 아마도 지금보다 돈은 더 없는데, 권태로움은 똑같았을까? 돈은 없더라도 재밌었을까? 어쩌면 지금보다 더 빨리 공황장애 같은 걸 얻어서 퇴사하게 됐을지도 모른다.
왜 사람들은 젊은날을 무조건 아름답게만 추억하는 걸까? 젊다는 이유로 견뎌야 하는 것들이 너무 많은데... 그렇다고 나이가 들면 나아지냐 하면 그것도 아닌 것 같고... 언제쯤 나 한 사람의 무게가 가벼워 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