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원 후 쫀득이를 낳기까지
아기는 태어나서 이제 만 13개월이 됐다.
건강히 잘 자라주고 있다.
대학병원 고위험산모실에서 퇴원한 후에도
나는 병원생활처럼 침대에서 밥먹고 화장실 가는 것 빼고는 누워서 지냈다.
남편이 퇴근길에 반찬가게에서 반찬을 사 오거나
배달의 민족에서 서비스하는 배민찬 반찬배달을 자주 이용했다.
남편이 요리를 잘 하지 못해서 매번 음식을 사먹었지만
배달음식보다는 반찬가게에서 사먹는 것이 여러모로 훨씬 나았다.
그동안 남편은 아기를 출산하기까지 거의 내 간병인이나 마찬가지였다.
남편은 청소에, 빨래에, 내 밥상 차리기, 아이 밥상차리기에...정말 힘든 시간들을 보냈지만
나에게 단 한 번도 짜증내지 않았다.
다만, 첫째 아이에게 자꾸 짜증을 내서...
안그래도 아픈 엄마 곁에서 제대로 보살핌을 받지 못하고 있는데
아빠 짜증까지 감당해야 할 아이가 걱정이 좀 됐었다.
그래도 그 정도면 정말 훌륭한 남편이자 아빠였다.
남편을 그 때를 회상하면 저녁밥 차려줄려고 집까지 뛰어오던것만 생각난다고 한다.
그때 나는 6시만 되면 왜 그리 배가 고픈지...
병원에서 입원했을 때 처럼 시간 맞춰서 아침/점심/오후간식 먹고나면 6시부터 그렇게 배가 고파졌다.
그러면 안그래도 칼퇴하는 남편에게 전화해서
이거 먹고싶다, 저거 먹고싶다..빨리 와줄 수 있냐...냉장고에 먹을 게 없다...등등..
남편 진땀을 뺐다.
남편은 그 시간을 어떻게 버텼는지...지금 생각해보면 한없이 고마울 뿐이다.
지루함을 이겨보려고 태교로 옆으로 누워서 코바늘 뜨개질을 했는데
지금와서 다시 코바늘 뜨개질을 누워서 해보려고 하면
대체 그때는 어떻게 했나 싶을 정도로 자세가 안 나온다.
그 당시에는 하루종일 누워만 있어야 해서 뜨개질에 매달릴 수 있었던 것 같다.
덕분에 쫀득이는 태어나서도 부드러운 천을 좋아하는 아기가 됐다.
그러던 3월의 마지막 날, 나는 갑자기 한 가지 아쉬움이 밀려왔다.
첫째 아이 때, 32주만에 갑작스럽게 양수가 터져서 예약했던 만삭 사진을 못 찍어본 것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첫째때는 못 해봤지만 둘째 때 아니면 다시는 기회가 없다는 생각에...
스튜디오는 언감생심, 사진기 들고 다니며 아파트단지 딱 한 바퀴만 돌았다.
그러나 그날 밤부터 배가 조금씩 뭉치고 아프기 시작했다.
평소에도 계속 뭉치긴 했지만 왠지 그날은 걸어다닌 날이라 예사롭게 느껴지지 않았다.
계속 침대 생활을 하다가 딱 하루, 단지 한 바퀴를 돌았을 뿐이었는데...
남편은 우스갯소리로 "오늘 단지 한 바퀴 돌고 내일 만나는거 아니야?ㅎㅎ"라고 했었다.
만삭 사진 피켓 중에 '아가야 보고싶어' 라는 내용이 있었는데...
남편의 농담대로 아기를 만나게 됐다.
35주 3일째 되던 날이었다.
4월1일 새벽 4시. 괜히 욕심냈다는 자책과 불안함이 뒤섞여 그 시간까지 잠을 자지 못했다.
배가 주기적으로 단단해지고, 당겼으며, 아래가 뻐근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아팠다.
배가 당겨지다못해 뻐근한 감각. 진통까지는 아니지만 가만히 있을 수는 없는 배뭉침이었다.
배가 풀리길 기다리면서 옆으로 자세를 바꿔가며 누워있다가
뭔가 느낌이 나서 화장실에 가보니 꽤 많은 출혈이 일어나고 있었다.
지난번 입원했을 때와는 다르게 이번엔 진짜구나 싶은 생각이 들어 얼른 옷을 주워입고
패드를 하고, 혹시 모르니 최대한 다리를 오므려 양수가 덜 새길 바라며... 분만장에 갔다.
수축은 크지 않았지만 왼쪽 아랫배가 30분 간격으로 아팠다.
그렇게 새벽을 분만장에서 보내고 오전 8:30에 교수님을 만났다.
새벽내내 특이사항이 없어서 교수님은 출혈이 멎을 것으로 기대하며 좀 더 버텨보자고 했다.
내 느낌에는 새벽보다 출혈량이 점점 더 많아지는 것 같아서 다시 알리고 검사를 받았다.
맥수술이 풀리고 있었으며, 출혈양이 아주 많고, 양수가 함께 새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오늘 수술 해야할 것 같아요. 그런데 엄마 그동안 많이 버텼어요.아기는 이정도 주수면 안전할 거예요."
이 이야기와 동시에 수술준비가 이루어졌고 폐성숙주사를 한 대 맞고 수술방 안으로 들어갔다.
하반신마취만 해서 수술장에서 의사와 간호사의 대화가 다 들렸다.
의사는 간호사에게 "OO좀 줄래요~?"처럼 수술도구를 부탁하거나
또는 간호사와 일상적인 이야기를 나누며 화기애애하게 수술을 진행했다.
그런 의사의 인성에 환자인 나까지도 존중받는 것 같은 분위기에서 제왕절개로 아기를 만났다.
"엄마, 아기 보니까 어때요?"
"...너무 귀여워요"
아기는 눈을 꼭 감고 작은 얼굴을 빼꼼 내놓고 있었다.
인큐베이터에 들어가지도 않았고 13개월 동안 건강했다.
요즘은 의술이 많이 발달해서 아기가 한 달 정도 일찍 태어나더라도
대학병원에서는 거의 정상분만으로 본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병원마다 다르긴 하겠지만
대학병원 이전에 갔던 산부인과에서는 겁을 너무 많이 줬던 반면에
대학병원에서는 이 정도면 정상분만이라며 계속 안심시켜주고 산모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줬다.
그동안 무사히 아기를 낳을 수 있도록 도와준 가족과 의료진들에게 감사한다.
이 글을 보는 다른 산모들도 적극적으로 가족의 도움을 받고,
인격적인 의료진을 만나 출산하는 그날까지 아기와 산모 모두 건강하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