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위험산모의일기]여러 침대에서 난 같은 목소리

종이 한장에 모인 한 마음 한 뜻

by 난생

어제는 금요일, 작은 해프닝이 벌어졌다.

점심 시간에
내일 먹을 환자식 중
기본식과 선택식 식단을 선택할 수 있는
작은 종이가 식판과 함께 배부되는데
내가 있는 병실에 그 종이가 배부되지 않았던 것이다.

일주일넘게 병실생활을 하다보니
이 지루한 병실 생활 중에도 낙이 하나 생겼는데
바로, 내일 먹을 식사를 고르는 일이었다.

기본식이나 선택식이나 비용 차이가 없어서
가벼운 마음으로 입맛과 취향에 맞게
선택만 하면 된다는 점도 좋았다.

아침은 기본 한식, 양식(샌드위치, 토스트 등), 죽
3가지 중에 선택할 수 있고
점심과 저녁은 기본한식, 면류 또는 덮밥, 등
2가지 중에 선택이 가능한데
잘만 선택하면 병원밥치고 꽤 맛있는 편이다.

그런데 금요일 점심에 그 종이가 오지 않아서
어디 바닥에 떨어졌나,
밑에 깔렸나,
간호사에게 물어볼까
잠깐동안 많은 생각이 들었다.

천천히 점심을 먹으며
내일은 뭘 먹어야 좋을지 상상하며
볼펜으로 식단종이에 동그라미를 그리던게
꽤 중요한 일과였나보다.

'내일은 토요일이라 식사가 좀 특별할 것 같은데...
이러다가 선택도 못하고 주는대로 먹어야하면 어쩌지?'

점심먹으며 한참을
종이의 행방에 대해 궁금해하다가
저녁에도 종이가 오지 않으면
배식원에게 꼭 물어봐야겠다고 결심까지 했다.

'저녁에는 절대 잊어버리면 안돼!'

그때까지만해도,
나는 내 식판에만 그 종이가 오지 않은줄알고 있었다.

그리고 대망의 저녁 배식시간.
미리 침대에 앉아서 식탁을 위로 올려놓고
정신차리고 기다리고 있는 치밀함까지 보이고 있는데
옆 옆 침대에서 어떤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토요일은 선택식사 없나요?
선택종이가 안왔어요"

"(배식원)아, 기본식말고 선택식 하시겠다구요?"

"아니요, 선택하는 종이요. 원래 점심에 주시는거같던데 오늘은 안왔더라구요. 저녁에도 선택할 수 있나요? 그래도 내일 식단에 반영 되나요?"


그런 대화가 오가는데 내 옆 침대도
또 다른 침대도,
여기저기서 그 종이 달라고 하는 소리가 들렸다.

우리 병실 산모들이
다 그 종이를 받지 못한거였다.

나도 꽤 용기내서
"저도 종이 좀 주세요~"하고
꽤 목소리를 냈다.

하하하.

배식원이 점심 식판에 종이를 끼워넣지 않아서 벌어진
작은 해프닝이었지만
난 알 수 있었다.

다른 산모들도 나만큼이나
그 종이에 동그라미표 치는걸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혈압을 재고 아기 심장소리를 듣고 체온을 재고
같은 시간에 밥이 나오고 약을 먹는,
일주일이 하루같은 나날에
기분좋게 잔잔한 파동을 일으키는 것이 바로
그 종이였다.

씻는것도 허락이 있어야 하는 병실 생활에서
유일하게 선택할 수 있는 식단표.

아마 오랜 병실생활에
조금이나마 적응을 도와준게
이 식단표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렇게 퇴원하고 싶어서
꿈도 두 번이나 꿨는데,
막상 퇴원하면 식단표에 동그라미 못 치는게
아쉬워질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