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과 '사랑의 매', 그 경계가 어디일까
그날의 회초리는 몽글몽글했다.
나는 초등학교 6학년이 될 때까지 회초리를 맞았다. 처음엔 일원동에서만 맞았다고 생각했지만, 구의동으로 이사 온 뒤에도 회초리를 구하러 다닌 기억이 희미하게 남아있다.
그 시절 회초리는 일반적인 훈육의 도구였다. 요즘은 아동 체벌이 금기시되지만 그때는 집집마다 '쓰기 적당한' 회초리들이 있었다. 30cm 플라스틱자, 부러진 안테나, 효자손, 파리채, 종이로 접은 막대까지. 각자 나름의 기준으로 아이를 따끔하게 훈육했다.
구역예배에 모인 엄마들이 나누던 이야기가 떠오른다.
"손으로 때리면 더 감정적으로 변해서 아이를 심하게 때릴 수도 있대."
"몇 대 맞을지는 아이가 정하게 해야 해. 그래야 반성도 하고, 부모에 대한 반발심도 줄어든대."
그 말은 맞다. 지금의 엄마보다는 회초리가 더 정당하다. 어쩌면 그것이 사랑의 또 다른 표현일 수도 있다고, 어린 마음에도 쉽게 수긍했다.
"앞으로 우리 집도 회초리를 쓸 거야"
엄마는 단호했다. 더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한 결심으로 보였다. 그리고 약속을 지켰다. "다섯 대 맞을 거야."라고 하면, 정말 다섯 대만 맞았다. 어차피 맞을거라면 차라리 회초리가 낫다. 예상 가능한 벌이고, 어디가 끝인지 알 수 있으니.
우리집 회초리는 처음엔 집에 있던 길고 얇은 물건으로 시작했다. 그러다 점점 수제 회초리로 발전했다. 구의동으로 이사오고 나서도 회초리를 구하러 다닌 기억이 남아있다고 한 건, 회초리가 될 나뭇가지를 내가 직접 구하러 다녔다는 뜻이다.
혼나는 날은 엄마와 밖에 나가서 내가 맞을 나뭇가지를 구하러 다녔다. 일원동 나무는 오래된 나무가 많아서 튼튼한 가지가 많았지만, 나는 조금만 구부려도 똑 부러지는 연약한 가지들을 슬쩍 골랐다.
'이걸로 맞으면 덜 아플거야'.
하지만 엄마는 다시 튼튼한 가지를 골라오게 했다. 야속했다. 결국 굵직한 나뭇가지 몇 개를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으로 돌아온 엄마는 안방에 신문지를 깔고 앉아 평온하게 나뭇가지를 다듬었다. 커터칼로 나무껍질을 벗겨내고, 주방에서 식칼을 들고 와 튀어나온 부분을 탁탁 내리치며 반들반들하게 만들었다. 마지막으로 노란 테이프로 감싸면 끝이라 그 테이프가 등장하면 몸이 저릿저릿 아려왔다.
"몇 대 맞을래?"
"o대 맞을게요"
"그건 네 잘못에 비해서 너무 약해"
"그럼 O대 맞을게요"
"그래"
이렇게 정해진 횟수를 맞으면, 오후 몇 시간이 지난다.
열 대 이상 맞은 날이면 종아리가 빨갛게 부어올랐다. 그러면 엄마는 훌쩍이며 연고를 발라주었다. 어린 내 눈에도 엄마는 스스로를 어쩌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불쌍하기도 하고, 무섭기도 한. 그게 내가 아는 엄마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집에 놀러갔다가 사고를 쳤다.
처음엔 작은 바가지에 물을 받아서 친구와 함께 두루마리 휴지를 풀면서 놀았다. 그런데 점점 놀이가 커지더니 결국 고무다라이 안에 물 반, 휴지 반이 섞여 걸쭉한 죽처럼 변했다. 지금이라면 '촉감놀이'라며 웃어넘겼을 수도 있는 일이다.
하지만 국민학생이나 되어서 그런 장난을 친 우리를, 친구네 엄마가 용서할 리 없다.
"헤-에-에?! 아니 이게 뭐야!!! 뭔 난리를 쳐놨어!!! 너희들...!! 이건 그냥 넘어갈 수 없어.그리고 너!! 넌, 남에 집에서 이러고 싶니!!!"
"둘 다 회초리 맞을 거야."
친구부터 맞았다.
"자, 몇 대 맞을래?"
"두 대요"
"그래, 그럼 손바닥 내밀어"
'딱', '딱'
친구 표정을 살폈다. 괜찮아 보였다.
"자, 이제 네 차례"
"저...저도 2대요"
'딱', '딱'
그렇게 많이 아프진 않았다. 적당히 따끔한 정도라 어리둥절해하고 있는데, 친구 엄마가 갑자기 친구를 오라고 하더니 꼭 안아주었다.
그리고 말했다.
"미워서 때린 게 아니야."
그 모습을 영화처럼 감상하고 있는데, 나도 오라고 하더니 똑같이 해주었다.
회초리를 맞아도 울지 않았는데, 큰 눈물이 터졌다.
"아줌마는 OO이 때리면 이렇게 맨날 안아줘요? 저는 처음이에요. 맞았는데 안아준 건 아줌마가 처음이에요."
당황한 친구 엄마는 내가 눈물을 그칠 때까지 오래오래 안아주었다. 그 때 내 안에서 무언가가 꿈틀댔다.
회초리를 맞고도 마음이 편하다니. 포근하고 따뜻했다. 친구 엄마는 좋은 사람이었다. 그리고 회초리는 무섭기만 한 게 아닐 수도 있다.
집에 돌아가서 엄마에게 이 이야기를 들려줬다. 엄마도 이렇게 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용기있게 말했다. 회초리는 그대로일지라도, 그 끝에 남는 감정이 달라지길 바랐다.
그날의 회초리는 다른 세상을 보여주었다. 엄마가 아닌 다른 엄마들. 불쌍하거나 무섭기만한 엄마가 아니라, 따뜻한 엄마가 있는 세상. 좋은 어른, 좋은 엄마가 사는 세상. 그곳이 더 궁금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