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난생’인 이유
안녕하세요.
소소한 일상을 쓰는 ‘난생’입니다.
구독자 1150명이라는, 커다란 숫자를 마주하고보니 짐짓 자랑스러운 마음이에요. 브런치 작가로서 구독자 1150이라는 숫자는 저에게 정말 큰 결실입니다. 그래서 많은 작가분들이 한 번쯤 고민해보셨을 법한 '필명'에 대해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처음 브런치 작가 신청을 하고 가장 진지하게 고민했던 건 바로 '필명'이었어요.
브런치 작가가 되기를 바라고, 이 곳에 글을 쓰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제 모습을 돌아보니 저는 스스로를 다독이기 위해 글을 써온 것 같습니다. 어찌보면 일기였어요.
지인들에게 말하기는 너무 무겁고, 그렇다고 아무 말 않고 혼자 끙끙 짊어지기엔 힘들었던 시간이 이곳에 글로 담겼습니다. 그래서 말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저에게 계속 글을 쓰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다 알게 된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당장은 고민되고 속상했던 일을 글로 쓰면, 자기연민에 불과한 사연에 지나지 않고 의미있는 경험이 된답니다.
글의 시작은 내가 가지고 있는 문제나 슬픔에서 출발하는데, 한참 써내려가다보면 그 상황 속에서 나와서 한 발자국 떨어져서 바라보게 돼요. 그러면 결국에는 그 사건에 대해 나름의 정리를 할 수 있게되더라고요. 그러면 사연이 아니라 경험이 됩니다.
하나의 어려움을 극복해나가는 과정이 되고, 때로는 그런 글이 누군가에게는 위로가 될 수도 있어요.
지나치면 사라질 사연 하나가 경험이 되는 글을 쓰고 싶어서 더 솔직해지기로 했습니다.
글을 쓰다보면 혹시 나의 이런 생각이나 가치관에 대해 욕을 하지 않을까, 이 부분은 나를 좀 얕잡아보지 않을까, 이런 부분은 좀 못나보이지 않을까 싶을 때가 있어요. 그럴 때 솔직해지기 어렵죠.
예를들어 누군가가 유치한 이유 때문에 좀 미운데, 안 미운 척하는 그런거요. 하지만 '-척'하는 순간 그건 내 일기도, 경험도 되지 못하기에.
특히나 지인들에게는 좀 더 저를 꽁꽁 숨기고 싶었어요. 혹시 내가 누군가에 대해 이야기하더라도 그 사람이 내 이야기하는 줄 모르게요. 너무 솔직한 어떤 대목 때문에 가족, 친척, 지인 등 누구라도 상처받지 않게. 그래서 필명이 꼭 필요했습니다.
고민 끝에 ‘난생’이라는 필명을 지었습니다.
처음엔 어감이 좀 촌스럽다고 생각해서 좀 더 멋진 필명을 고민해봤습니다. 하지만 '멋지지 않음'을 무릅쓰고서라도 난생이 되기로 했습니다.
1) 알을 깨고 나온 ‘난생’
어떤 사고나 부정적인 일을 경험하는 순간, 그 순간은 지극히 감정적이고 주관적이고 개인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객관적인 상황이 그렇게 심각하지 않더라도 경험하는 그 순간에는 무척이나 불쾌하고 화가나고 당황할 수 있어요.
그럴 때 저는 마치 알 속에 있는 느낌입니다. 바깥 세상이 어떤지 제대로 보이지도 않는 상태에서 만난 자극은 그저 불쾌하고 무섭고 불안한거죠. 언제 어떤 큰 충격이 와서 나를 깨뜨릴지 불안하기도 합니다.
저는 글을 쓰면서 스스로 알을 깨고 나올 수 있었어요. 내가 쓴 글은 나를 정확히 비춰줍니다. 내가 본 상황과 감정이 글에 그대로 담겨있기 때문에 좀 떨어져서 나를 바라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겨요.
쓸 땐 열심히 쓰고, 어느 정도 다 쓰고나면 다시 처음부터 찬찬히 읽어봅니다. 그럴 때 저는 한 걸음 떨어져서 저를 바라볼 수 있었어요. 그리고 글이 끝난 뒤 만나는 하얀색 여백. 거기에 저는 다시 글을 추가합니다.
그 여백의 힘은 대단합니다.
편견을 깨주기도 하고, 나를 집어삼킨 두려움은 알고보면 내 마음먹기 달린 일이라는 시각을 열어주기도 하고, 상황을 더 선명하게 보여주고, 미웠던 사람이 인간적으로 이해되기도 하고, 때로는 혼자서 고군분투했던 나에게 더 큰 위로와 격려를 주기도 합니다. 심각하게 흔들리고 있다면 좀 더 나다운 게 뭔지 알려주기도 합니다.
더 나은 결말을 향해 여백을 채운 시간이 결국 의미있는 경험으로 남았어요. 사연많은 여자보다 경험치 쌓인 여자가 되어간다는 건 꽤나 기분좋은 일입니다.
그래서 저는 글을 쓸 때마다 알을 깨는 심정으로 쓰고 있습니다.
2) 쉽지 않은 일상 '난생'
살다보니 다음날이 오는 것이 두려울 때도 있었습니다.
특히 그럴 땐 글을 쓸 때 훨씬 소극적이 됩니다. 그 정도의 일상을 살아내야하는 경우는 글을 쓰는 게 불가능한 날이 더 많습니다.
그럴 때 저는 글을 쓰지 않습니다. 너무 힘들면 힘든대로 그냥 괴로워했습니다. 변화를 바라지만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 능력도, 에너지도 없이 그 시간이 지나가기만을 기다렸던 것 같습니다.
다행인 것은 그 시간들이 영원한 건 아니라는 것입니다. 긴 어둠의 터널을 지나오고나면 다시 글 쓸 힘이 생겼습니다. 돌아보면 참 어려운 날들이었는데, 그 시간을 잘 버텨준 제가 대견해보이는 건 언제나 변함이 없더라구요.
그러면 그 대견함에 대해 썼습니다. 쉽지 않은 삶을 버텨온 이야기. 내가 버틸 수 있었던 이유. 그런 것들을 쓰는 사람이라 저는 난생이 좋았습니다.
3) 난생 처음 알게 된, 써도써도 질리지 않는 글쓰기
저는 취미 부자랍니다. 이 정도면 대충 알만하다 싶어지면 급격히 흥미가 떨어지는 성격이라는 뜻이에요.
그런데 글쓰기는 난생 처음 발견한 질리지 않는 취미였어요. 본격적으로 좋아하게 된 건 고등학교 2학년때부터예요.
싸이월드 미니홈 일기장이 시작이었어요. 고등학생 때는 몇 줄 끄적이던 수준이었는데 대학생이 되고나서 제대로 빠졌어요. 집에서 학교까지 지하철 환승 한 번, 버스로 1시간 정도 걸리고, 언덕까지 경사도가 심해서 왔다갔다만 해도 집에 오면 녹초가 되곤 했는데.
밤 10시에 눈을 반짝이며 새벽 2시 3시까지 글을 쓸 정도로 좋아했어요. 그땐 아예 싸이월드 블로그 하나를 제대로 파서 영화 리뷰, 책 리뷰, 자기개발 에세이 등등 돌아가며 거의 매일 쓸 정도였어요.
왕성한 활동 덕분에 네이트 대문에 베스트 글로 여러번 소개되기도 했답니다. 그 당시엔 네이트에 뷰티 블로거가 강세였는데, 자기개발 에세이가 많은 관심을 받아서 정말 기뻤답니다. 마흔을 바라보는 이 나이까지 유지하고 있으니 제가 '난생 처음'이라고 말할 만 하겠죠. 얼마나 좋아했는지. 또 좋아하는지.
자, 이제 필명 고민하고 계신 분들. 이 글을 끝까지 보신 분께 드리는 말씀입니다. 한 번 고민해보면 어떨까요? 당신의 필명은 어떤 글감이 되어 나올까요. 기대됩니다.
시시콜콜한데 기나길기까지한 오늘의 일기,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여전히 글쓰기를 좋아합니다. 앞으로도 꾸준히 껍데기를 깨고, 아직도 내가 대견한 이유를 찾고, 좋아하는 방법으로 세상과 소통하고 있습니다. 덕분에 아직도 순수한 면이 남아있습니다.
‘난생’이라는 필명으로 오늘도 당신을 만났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