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강차를 끓이며 생각하다
진화 이경희
가을과 겨울 사이에 부는 바람과 첫추위는 옷섶 깊이 파고든다. 추위가 오면 모든 사람이 몸을 움츠리고 작아져서 겸손해진다는 말이 있다.
기온이 영하로 내려간다기에 따뜻한 겨울 코트를 꺼내 입고 모자도 찾아서 썼다. 음식도 따뜻한 국물 있는 음식을 찾게 된다. 모든 것이 체온을 유지하려는 무의식적인 선택일 것이다.
딱히 감기가 걸린 것은 아니지만 으슬으슬 춥고 몸살기가 있는데 친구가 생강의 효능에 대해 열 가지도 넘게 써 보냈다. 찬찬히 읽어보고 바로 생강을 사서 차를 끓였다.
생강차에 생강과 함께 진피(감귤 껍질), 대추, 계피를 넣고 끓이니 온 집안에 향기가 진동한다. 내 체질에 잘 맞는다는 사과도 한 개 저며 넣었다. 정성껏 끓인 차에 꿀 한 숟갈을 타서 마셨더니 칼칼하던 목이 시원하고 몸이 훈훈해졌다.
겨울이라 밤이 길게 느껴지고 간편한 식사로 헛헛한 느낌이 들 때는 황금고구마를 구워서 생강차와 곁들여 먹는다. 호박고구마와 밤고구마 맛이 어우러진 황금고구마를 구우면 꿀 같은 단물이 고인다.
별다른 간식거리가 없던 시절, 동생들과 아랫목에 모여 앉아서 군고구마를 나눠먹던 추억에 마음이 푸근해진다. 따뜻한 추억은 몸과 마음에 훈기를 주지만 우리가 보유한 저항력이 어디까지 생명을 지켜줄지 사뭇 불안하다.
세상은 첨단과학의 힘으로 발달한다고 하지만 재난이 더욱 큰 위력으로 우리의 삶을 위협하는 불확실한 시대다. 사람과 사람의 만남도 느닷없이 차단되고 외로운 사람들은 더욱 소외된다. 그 와중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와의 싸움으로 지친 사람들은 저마다의 방법으로 살아남기 위해 애를 쓰며 살아간다.
그 와중에 갖가지 재난으로 인해 외상후증후군이 아니라 현재 진행 중인 외상으로 고통을 겪는 생존자들을 만났다. COVID-19의 피해자 가족이나 의료관계자 정서지원 프로젝트에서도 피해 당사자뿐 아니라 고통에 동참하는 사람들도 마치 보이지 않는 방사능에 피폭되는 듯한 현상을 목도했다.
사람은 정신적으로 큰 상처를 받으면 말문이 막힌다. 실제로 엄습하는 재난 속에서 모든 피가 근육으로 모이고 뇌의 언어중추 쪽이 하얗게 비어버리는 사진 자료를 보면 기가 막히고 말이 안 나온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있다.
죽음 앞에서 모든 동물은 맞서서 싸우거나 도망을 가거나 얼음처럼 굳어지는데 생각하는 뇌가 발달한 사람에게는 그 두려움이 예고되고 증폭되어 더욱 치명적인 트라우마로 남는다.
기억조차 하얗게 지워지는 해리 현상과 무감각 상태에서는 언어를 통한 세러피만으로 힘을 발할 수 없기에 다각적으로 통합적인 접근을 해야 한다. 몸의 긴장을 풀어주고 시각을 통해 각인된 충격을 완화시킴으로써 정서적, 신체적 고통이 줄어들고 일상생활에 서서히 적응하는 사례들을 경험했다.
그래서 최근에는 몸과 마음을 따뜻하게 풀어주기 위해 건강차를 마시거나, 아로마 에센셜 오일을 쓰거나, 소울푸드를 만들어 먹는 등 자연건강법을 실천하려고 노력한다.
먹는 것이 우리 몸을 만들었기에, 몸에 금이 가면 약이 아닌 음식으로 보수를 한다는 생각에서다. 혼밥이 익숙한 시대에 환대를 받으며 나누는 따뜻한 밥상이 냉랭하고 메마른 세상 살아갈 작은 힘이 되기를 바라며 집밥 해 먹기를 실천하고 팬데믹 중에 태어난 두 돌 된 손녀의 밥상을 차린다.
겨울의 입구에서 집에 머물며 도토리묵을 쑤고, 동치미를 담고, 편강과 감말랭이를 만들어 먹으며 심신에 이로운 음식과 가까워지려고 노력한다.
지금은 온몸을 훈훈하게 하는 생강차를 마시며 글을 쓰는 중인데 ‘생강차’를 자꾸 ‘생각차’로 치는 까닭은 무엇일까. 생각이 깊어지는 겨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