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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님 얼굴 유성기판처럼 맴도네

맴도는 얼굴

결혼 후 퍽 많은 세월이

훌쩍 지나갔다.


아내는 아내대로 '성질 많이 죽었다'고 말하고

나는 나대로 '참는 법에 참 많이 익숙해졌다'고 생각한다.


여느 부부처럼

우리도 적지 않게 다투었다.

심각하게 이혼을 생각해본 적도 있고

심지어 그 구체적인 절차를 알아본 적도 있었다.


그러다가

그러다가

어느 날

길을 걷다가 생각했다.


'아, 그때 내가 그렇게나 사랑했던 사람이 아니던가!

이 사람이라면 내 생명과 맞바꾸어도 좋다고

그렇게 생각했던

바로 그 사람이 아닌가!'


그러면서

그때 사랑에 빠진 시절에

그 사람을 보고 싶어 하고 또 그리면서 부르던 노래들을 생각했다.

그 노래들은 

내가 그 사람을 얼마나 사랑했던가를 확인시켜주었다.


그 노래들 중의 하나가

'맴도는 얼굴'이다.

<따로 또 같이>라는 프로젝트 그룹의 음반에 있던 곡인데

내가 사랑에 빠졌을 때 들었고

또 나도 따라서 흥얼거렸던 노래이다.


그중

'한여름 밤 자다 말고 문득 깨어 별들을 보면

 내 님 얼굴 유성기판처럼 맴도네'

라는 부분을 특히 좋아한다.


시퍼렇게 젊었던 그때의 어느 여름밤,

문득 잠을 깨어 눈을 떴는데

천장 가득 그 사람의 얼굴이 펼쳐져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오랫동안 잠들지 못했다.

보고 싶은 사람의 얼굴이 천장 가득 펼쳐져 있는데

잠이 올 리가 없다.

귓가에는 이 노래가 맴돌고......


젊은 시절 그 어느 여름밤

문득 잠에서 깨어 경험했던 그런 사연으로 해서

이 노래를 더욱 좋아하게 되었는데

아내는 내가 이 노래를 들으면

'노인네 같이 무슨 그런 노래를 듣느냐'며 핀잔을 준다.


자기를 무척이나 그리던 시절에

많이 듣고

수없이 불렀던 노래인데.....


아무리 오래 같이 살아도 일치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는 것도

그다지 나쁘지 않다.

부부가 조금쯤 서로 다른 면이 있다는 것이

다행스럽다고 느낄 때가 있다.


지금도 아내와 다투고 나서 냉전이 진행될 때는

젊은 시절 아내를 그리면서 불렀던 노래들을 불러본다.


그러면

조금 낫다.

지내기가 조금 낫다.

적어도 내 마음은 지내기가 조금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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