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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외출 준비를 기다리며

받아들이고 유용하게 전환하기

아내와 함께 외출을 하려면

아무래도 기다리는 시간이 생긴다.

남자의 외출 준비가 상대적으로 간단하기 때문이다.

남자는 준비가 다 되었는데

여자의 외출 준비를 기다리다 보면

슬몃 짜증이 나기 마련이다.


20여 년 전

ESL(English as Second Language) class

즉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지 않는 사람들을 위한 영어 강좌에 출석했었다.

거기에 40대 중반에서 후반까지의 한인 여성이 몇 있었다.

어느 날 그들의 대화를 본의 아니게 엿듣게 되었는데

그중 한 분이 말했다.


"남자들은 이해할 수 없어요.

여자들의 외출 준비라는 게 당연히 시간이 걸리는 것인데

그걸 기다리지 못해서 짜증을 낸다니까요?

아니, 기다리는 동안에

전기는 잘 껐는지, 레인지에 뭐 얹어 놓은 것은 있는지

뭐 그런 것들 좀 해주면 좀 좋아요?

하여간 남자들이란...."


충격이었다.

'그러네.....

마냥 기다리며 짜증 내는 것보다는 낫네....'


그날 이후로는

아내의 외출 준비가 나보다 더 오래 걸리는 것을 편하게 받아들이고

그 기다리는 동안에

레인지도 점검하고,

방마다 전기불도 확인한다.

전기장판도 살펴보고

또 문들도 제대로 닫혔는지

수도꼭지는 잘 잠겼는지

둘러본다.


어찌 되었거나 아내가 외출 준비에 공을 들이는 것은

아내 자신을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어느 정도는 같이 외출하는 나를 위한 것이기도 하다.

그러니

아내의 외출 준비를 기다리는 시간을

이왕이면 조금이라도 더 보람 있게 보내는 것도

삶의 작은 지혜가 아닌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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