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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만총총 Nov 09. 2017

우리 집 빨래 사정

잡풀이 무성한 공터, 이 집 뒷마당이다. 공포영화에 흔히 나오는 한 장면, 버려진 폐가의 마당을 연상하면 된다. 단지 다른 점은 사람이 살고 있다는 표시로 긴 빨랫줄이 성의 없이 걸려 있다. 하숙생과 주인이 공동으로 사용하는 빨래 줄이다. 할머니가 계실 때에는 빨래 널 수 있는 공간이 항상 있었다. 수시로 빨래를 부지런히 하시는 할머니 덕분이다.

오늘은 쓰레기통에 처박혀 있는 빨래가 내 눈에 거슬린다. 특별한 날은 아니지만 주말 수업이 일찍 끝나 방에 있는 시간이 평소보다 늘었다. 작은방에 누워서 천장과 바닥을 오가는 시선 속에서 비워지지 않는 빨래통에 눈길이 멈췄다. 일주일 출퇴근, 주말에는 학교, 변명처럼 나는 늘 바쁘다. 하필 이럴 때 주인집 여자는 빨래를 했다. 할머니는 미국에 있는 딸 곁으로 떠나셨다. 안타깝게도 그녀와 작별 인사를 못했다. 할머니는 떠나기 전날 이별 선물로 과일이 가득 담긴 접시를 건네주셨다. 접시를 받고 할머니와 내일은 사진을 꼭 찍어야겠다고 생각한 찰나에 그녀는 이별 인사도 없이 떠났다. 

할머니가 떠나고 나서 새로운 안 주인이 들어왔다. 젊은 여자다. 나이는 나보다 5살 정도 많아 보이는 여자였다. 주인집 아저씨의 새 부인이다. 그녀는 나와 생활 태도가 비슷하다. 빨래는 몰아서 휴일에 한꺼번에 돌리고 청소는 별로 하지 않는다. 음식은 주인집 아저씨가 주로 했다. 중국인이라서 그런지 남녀 구분 없이 집안일을 한다. 그들에게는 보편적인 모습이다

'페미니즘'이란 여성과 남성의 관계를 살펴보고, 여성이 사회 제도 및 관념에 의해 억압되고 있다는 것을 밝혀내는 여러 가지 사회적·정치적 운동과 이론들을 포괄하는 용어이다. 인터넷에 올라와 있는 사전적인 의미다. 

한남,  김치녀 인터넷에 떠도는 끔찍한 남녀 구분 단어다. 중국인들의 생활은 남녀 구분이 없는 것 같다. 모든 일이 평등하게 나눠지고 주어진다. 주인집 아줌마가 세탁기에 세제를 넣고 빨래를 하면 아저씨는 빨랫줄에 옷가지를 가득 채운다 아줌마는 대부분 퇴근이 늦다 그럴 때이면 부엌에서 아저씨의 콧노래 소리가 들린다 남녀 구분 없이 모든 것들이 평범하고 마땅히 진행된다 나에게는 낯선 모습이다. 아버지는 빨래를 안 하셨으니까 이제는 조금씩 바뀌고 있다. 나도 예전에 사무실에 남자 사원이 없어 정수기 물통 들다가 허리가 삐끗한 경험이 있다 이제는 연약한 여자라고 자리에 앉아만 있지 않는다. 그냥 남녀평등 그 자체다. 남자는 남자다울 필요 없고 여자는 여자 다울 필요가 없다. 슬픈 영화를 보면서 펑펑 우는 남자에게 화장지를 건네주며 위로해 줄 그런 여자의 여유도 필요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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