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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만총총 Mar 07. 2024

남자는 있어야지

이혼을 앞둔 내게 어느 날 회사 사장은 아침부터 잔소리 했다.

"여자가 남자는 있어야지 빨리 좋은 남자 만나야지"

자주 듣는 얘기다. 사장은 내가 이혼이 마무리된 줄 알고 있다. 사실 지금도 이혼 소송은 진행 중이다. 아직 최종 판결은 나지 않았다. 지금은 별거 10개월 곧 1년을 앞두고 있다. 친절한 상담사들은 부부의 문제는 누구 하나의 문제가 아니라 서로 각자 모두 잘못이 있다고 말한다. 그런 말을 어떻게 나 같은 사람에게 할 수 있나? 그런 생각도 해봤다. 전 남자의 명확한 잘못들이 머릿속에 맴돈다. 폭언, 폭행, 외도 등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부 각자 잘못이 있다면 과연 나의 잘못은 무엇일까? 생각해 봤다. 이미 떠난 사람인데 그런 이유와 생각들이 무슨 소용이 있겠나 싶지만, 어느 상담사는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이혼 후의 정신 치료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온갖 세상 억울한 짐을 혼자 다 짊어지기보다는 조금 덜 수 있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즉, 너의 잘못도 있으니 세상 모든 일들을 원망하며 하루하루를 견디지 말라. 그 남자를 욕하다 암 걸려 죽을 수 있다는 뭐 그런 말 일 것이다. 내가 잘 이해한 건지 모르겠지만, 뭐 그렇게 받아들인다.


자, 그래서 나의 잘못을 나열해 봤다.


1.   "이혼하자, 헤어지자" 이런 말을 자주 꺼낸 것.

2. 캠핑을 많이 좋아하는 남자에게 몸이 힘들어 "캠핑 지겹다"라고 말하고 캠핑 가기를 싫어한 것.

3. 술 좋아하고 유흥 좋아하는 남자를 12시 전까지는 들어오도록 하고 새벽 2시가 넘으면 어디 있는지 전화를 계속한 것.

4. 밤에 나가서 노는 남자를 온전히 믿지 않는 것.

5. 집안일을 하나도 시키지 않은 것. 너무 왕처럼 모시고 살았다.

6. 금요일에 가족과 있기 보다는 주변 지인들과 밤새도록 술 먹고 들어와서 주말에 종일 잠을 자도 "일어나라"라고 잔소리 한 번 안 하고 편하게 쉬라고 아들 데리고 밖에 나가서 놀아 준 것.

7. 귀에 피나도록 잔소리도 안 하고 불평불만도 안 하고 돈을 못 벌면 내가 벌지 이런 생각으로 맞벌이하면서 내조만 한 것.

8. 남자의 어머니 사랑이 극진한데 나랑 결혼한 가장 첫 번째 이유도 어머니와 같이 살 수 있다고 해서 결혼한, 그런 남자의 어머니를 받아들이지 못한 것. (남자의 어머니와 2년을 같이 살았지만 고부갈등으로 분가를 하고 매주 만나기를 원하시는 남자의 어머니를 원망한 것)


그렇다. 머리를 쥐어짜 보니 나에게도 잘. 못. 이 있다.


나도 뭐 잘한 건 없다고 생각한다. 뭐든 있겠지 나는 완벽한 사람은 아니니깐. 그런 의미에서 긍정 회로를 돌려 0.1%의 희망을 걸고 이상형을 생각해 봤다.


1. 싸울때 욕하지 않는 남자, 화난다고 폭력을 휘두르지 않고 조근조근 화내는 남자. 단, 가르치려 하지 않았으면 한다.


2. 다른 여자 손잡고 껴안고 뽀뽀하지 않는 남자. 나 말고 다른 여자 깻잎 떼어주고 요리 맛있다며 먹여주지 않는 남자.


3. 거짓말 하지 않고 사랑에 진심인 남자.


4. 돈은 많았으면 좋겠다. 뭐 명품 100 상자, 차는 고급 외제차,  집은 강남 주택 빚 없음. ㅋㅋㅋ 생각만 해도 꿀이다. 하. 지. 만 그런 남자는 애 딸린 나를 좋아하진 않겠지. 물론 다시 태어나도 만나기 어려운 남자지만 0.1% 이상형이니까. 글로만 만족하며 써 본다. (참고로 명품을 좋아하진 않지만 싫어하지도 않는다. 다만 무거워서 불편할 뿐. ㅋ 차도 무조건 외제차!! 이런 건 아니지만 있으면 좋지 뭐 그런 너저분한 변명 해본다)


5. 지구가 무너진다고 해도 나를 지켜 주겠다는 믿음을 주는 남자.


6. 돈을 허투루 쓰지 않는 남자(다만, 소고기는 아깝지 않게 사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7. 자신의 선택에 책임감이 있었으면 좋겠다. 가정이나 자신이 하는 일에 열정과 책임감을 가지고 끝까지 고집스럽게 해 나가고 지킬줄 아는  남자.


8. 음악적 취향이 비슷한 남자면 좋겠다. 같은 음악을 듣고 좋아하고 공감하고 얘기 하면 상당히 매력 적이다. (이건 어렸을 때 작은 오빠의 영향이 크다. 워낙 입바른 소리로 자신이 좋아하는 노래를 강요하고 같이 듣고 이야기하기를 좋아했다 그렇다고 노래를 잘해야 하는 건 아님 ㅋ)


9. 운전은 잘했으면 좋겠다. (내가 운전을 못해서 운전 잘하는 남자는 그저 빛)


내가 이런 꿈에서도 만나지 못할 이상형을 적는 건 다시 또 후회하고 싶지 않아서다. 나는 이성에게 끌리는 점이 명확하다. 다시 말하면 소고집 같은 집념으로 나쁜 남자를 기가 막히게 잘 찾고 좋아한다. 그래서 매번 힘든 연애를 했었다. 내 마지막 사랑은 그런 어리석은 선택을 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으로 적어봤다. 이제는 넘어지면 뼈가 부서지는 나이다. 무턱대고 환상에 사로잡혀 재혼을 선택할 수 없다. 사랑하는 아들에게도 아픔을 주고 싶지 않다. 사실, 여자 옆에 남자가 있어야 하는 건 맞다. 구시대적 생각이지만 난 그게 맞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내가 남자가 없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아빠는 돌아가셨지만, 작은오빠도 있고, 사촌 남동생도 있고, 남자 조카도 있고, 아들도 있다. 내 주변에 남자는 많기 때문에 단지 남자가 필요해서 기둥서방을 만들고 싶지 않다. 남자가 있어야 한다는 걱정은 안 해도 되겠다. 또 나쁜남자를 만나서 지난 남자와 이혼한 선택을 후회 하고 싶지 않다. 퇴근하고 자격증 공부하면서 멘탈이 무너지고 피곤이 텍사스 소떼처럼 몰려오지만, 이런 지랄 맞은 글 쓰면서 잠깐 웃을 수 있어 좋다. 참, 꿈같은 즐거운 상상 해봤다. 0.1% 남.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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