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만총총 Aug 18. 2020

김치가 싫은 서른네 살

사촌 언니의 결혼식을 앞두고 동네 지인의 차를 얻어 타고 엄마는 인천에 도착했다. 나는 안산에서 지하철을 타고 엄마를 모시러 갔다. 결혼식은 서울 마장동 일요일 12시. 엄마는 하루 전날 미리 도착했다. 나는 엄마를 모시고 온 지인에게 짧은 인사치레를 하고 엄마의 손에 든 보자기를 든다. 보자기 안을 들춰보니 김치다. 나는 보자기를 받고 무거울 겨를도 없다. 서둘러 집으로 가야 했다. 장장 2시간 거리다. 자취방에 먹을 것이 쌀밖에 없어도 김치는 싫다. 한국사람이 어떻게 김치를 안 먹느냐고 갖은 구박과 바난에도 꿋꿋다. 그런 나에게 김치통은 반가울 리 없다. 아마도 초등학교 때 학교 끝나고 집에 가면 냉장고에 김치밖에 없어서 김치만 먹던 나는 30살 온전한 의사 결정권을 갖춘 후 바로 김치를 끊었다. 그동안 김치를 먹지 않는다는 이유로 많은 비아냥과 탄식을 들었다. 그래도 후회는 없었다. 가난이 내게 준 신념이었다.


나는 별로인 김치통을 들고 다른 손으로 엄마 손을 잡고 곧바로 지하철 역을 향했다. 시골에 살던 엄마는 난생처음 지하철을 탔다. 카드를 찍고 지하철을  엄마는 낯설면서도 어린 소녀처럼 수줍어했다. 오늘따라 지하철은 만석이다. 다행히 사람은 많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딱히 앉을자리도 없다. 시골에서 올라온 엄마의 굽은 허리와 드라진 주름 그리고 검게 그을린 피부는 도시의 사람들과 상반된 모습으로 낙동강 오리알처럼 섞이지 못한다. 낯선 환경에 마주친 엄마는 할머니처럼 늙음 +1이 추가됐다. 지하철 손잡이를 어렵사리 잡고 있는 엄마가 안쓰러웠지만 나도 서있는 지라 어떻게 도와줄 방법이 없다. 엄마의 거친 손을 꼭 잡을 뿐이다. 그 모습이 평범했던 지하철 심을 깨운 건지 젊은 남자가 조심스레 내 어깨를 툭치며 자신의 자리를 가리켰다. 나는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하며 엄마의 손을 잡고 엄마를 앉혔다. 내 마음에 그늘진 조각과 엄마의 주름 한 줄이 삭제됐다. 엄마는 어느새 지쳤고 새롭고 좋았던 지하철이 싫어지기 시작한 눈치다.


 우리는 겨우 안산 옥탑방에 도착했다. 도착한 시간은 늦은 밤 10시다. 엄마는 지하철을 서너 번 갈아타는 체험이 고됐는지 배고픈 기색도 없이 이불을 찾는다. 낡은 이불을 보시더니 엄마의 눈가에 눈물이 맺힌다. 그런 저런 내색이 어려웠던 엄마는 보자기를 찾아 서둘러 풀어헤쳤다. 그리고 오래된 빨간색 김치통을 열어 김치를 쭉 찢어 내 입어 넣어준다. 그리고 "맛있어 맛있어 어제 했어 어제 했어"라는 말을 하셨다. 나는 손사래를 치며 입을 막았지만 엄마의 거친 손에 지고 말았다. 그동안 확고했던 김치 거부를 지키지 못했다.



나는 내가 옥탑방에 살고 있는 이유와 서른이 넘도록 시집을 못 가고 있는 이유를 엄마 때문이라 생각했었다. 엄마를 미워하기 시작했었고 내 지독한 가난이 나를 자유롭지 못하게 한다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더욱 냉장고에 김치만 덩그러니 있는 것도 싫었다. 사회생활 단절을 가져온 이유도 가난 때문이라고 확신했었다. 돈이 없어서 친구를 만나 밥 한 끼 사 먹는 것조차 나에겐 사치였다. 고단한 사회생활을 함에도 불구하고 한 달에 한 번씩 들어오는 월급은 학자금 대출을 갚고 월세를 내고 적금을 하고 생활비를 충당하면 서른넷 통장에 남는 돈은 겨우 20~30만 원이었다. 나는 이 돈으로 점심을 사 먹고 교통비를 하며 근근이 삶을 이어가고 있었다.


가난이 뒤섞인 초라한 서울 생활을 하고 있는 막내딸을 보고자 결혼식을 핑계로 서울에 올라오셨다. 전날 김치를 열심히 담가 이른 새벽에 차를 타고 오셨다. 손톱이 갈라치고 손톱 끝에는 지워지지 않는 문신처럼 박힌 흙이 묻은 손톱으로 김치를 쭉 찢어 꾸역꾸역 입속에 넣어준다. 눈물이 핑 돌았다. 부족하고 여유가 없다는 건 가난이 아니라 내 마음의 욕심 때문이 아닐까 싶다. 엄마의 손 맛이 담긴 김치가 나를 깨친다.

작가의 이전글 "I Don't care"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