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에게 얘기를 나눠보자고 제안했는데, 머릿속이 정리가 안된다며 나중에 하고 싶어 하셨다. 아빠와 길게 얘기해 본 적이 없어서 나도 큰 용기를 내었던 거였는데, 안된다고 하시니 약간 실망이 되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연락을 했다. 나누고 싶은 질문도 미리 보내드렸다. 그랬더니 문자로 긴 답을 적어서 보내주셨다. 문자를 몇 번 보내 시더니, 생각이 정리가 되셨는지 통화를 할 수 있다고 얘기하셨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아빠와 이렇게 길게 행복한 대화를 나눈 것 같다. 이곳에는 문자로 받는 내용과 통화 내용을 함께 정리하였다.
#1. 산속 오두막 집에서 사는 게 꿈이었던 아빠
나: 아빠가 젊었을 때는 어떤 삶을 살고 싶었어요?
아빠: 젊었을 때 꿈은 산속에 오두막 집을 짓고 사는 거였어. 주변에는 아름드리나무들이 꽉 차 있고, 오솔길이 있어서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도 할 수 있고, 방 안에는 벽난로를 놓고, 겨울에는 눈이 수북수북 쌓여있는 모습도 볼 수 있는 숲에서 살고 싶었어. 그런데 살면서 느낀 것은 세상에 나가서 사업적으로 성공을 해야만 저런 삶도 살 수 있는 거였어.
나: 왜 옛날부터 산에 가서 살고 싶었어요?
아빠: 나에게는 미구라는 산이 어려서부터 큰 영감을 준 것 같아. 산속에 들어가면 아름드리나무가 있는데, 겨울에 눈이 오면 땅이랑 나무 위에 눈들이 쌓이잖아. 그 경치가 너무 멋있는 거야.
나: 맞아요. 나도 아빠 따라 자작나무 물 뜨러 따라가고 그랬던 곳 있잖아요. 거기 크고 울창한 나무들이 많으니까, 그 사이를 걸어가면 진짜 너무 멋있었어요.
아빠: 나무와 풀도 엉켜 있고, 바위에는 이끼가 나있고, 그런 것을 보면 원시림 같거든. 어려서부터 그런 산에 있었어서 그런지, 그런 게 아주 좋아. 거기다가 만약에 오두막 집이라도 짓고, 굴뚝에서 연기가 나고, 겨울에 눈이 내리면 마당에 눈이 가득 쌓여 있다고 생각을 해봐. 얼마나 멋있는지!
나: 그래서 겨울에 우리 데리고 산에 가고 그랬던 거예요?
아빠: 그러게. 아마 설경이 얼마나 멋진지 너희들한테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아.
나: 한겨울에 뒷산 넘어서 미구까지 갔던 경험은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거든요. 아무도 다니지 않는 눈 쌓인 산을 올라가서, 그 산 위에서 라면 끓여 먹고, 눈썰매 타고 그랬던 경험이 생생해요. 나도 자연에서 그런 걸 느낀 게 참 좋았어요.
아빠: 길도 미끄럽고 힘들었을 수도 있는데, 힘들지 않고 좋다고 기억을 하니까 참 좋네.
나: 그러면 아빠는 만약에 엄마가 산에서 계속 살아도 괜찮다고 그랬으면 계속 산에서 살았을 것 같아요?
아빠: 아니야. 산에는 우선 먹을 게 안 나오잖아. 먹을 게 없는 거야.
나: 농사짓고 그럴 수 있던 거 아니에요?
아빠: 농사는 당시에 어머니가 하고 있었지. 내가 가서 한다고 했으면 아마 그냥 다 물려주셨겠지만, 그때는 어머니 일이었어. 내 거라는 생각이 안 들었어. 그래서 나는 뭔가를 따로 해야겠다고 생각했지.
나: 그래서 가게를 한 거구나.
아빠: 취직도 하려고 노력도 해봤었지. 그 당시에 장인어른도 계시고 그랬으니까. 취직을 하려고 그랬으면 했을 거야. 그런데 그게 광산에 들어가고 그런 일이었어. 가게를 하기로 결심한 게 잘 한 것 같아.
나: 그러게요. 그때 평생직장을 만든 거네요.
아빠: 돌이켜 보면 가게 하고 이렇게 살아왔던 삶이 전혀 나쁘지 않았어. 원래 산에서 살고 싶었는데 아주 산속에는 못 들어가더라도, 산 금방에서 살면서 가볼 수는 있었잖아.
나: 내가 무슨 생각이 들었냐면, 엄마한테는 약간 아쉬울 수도 있겠지만 석항이 그나마 아빠랑 엄마의 욕구를 어느 정도 충족시킬 수 있는 균형 잡힌 장소인 것 같아요. 시내도 가깝고, 산도 가깝잖아요.
아빠: 그래. 나는 여기 사는 게 되게 좋아. 전혀 불만이 없어.
#2. 아빠를 행복하게 했던 산초 농사
나: 아빠는 석항에서 사는 게 되게 좋구나. 어떤 점이 제일 좋아요?
아빠: 살면서 좋았던 게, 일단 밥을 먹고살 수 있는 조그마한 가게가 있잖아. 그리고 산에 가서 일을 할 수 있고, 밭에 가서 일하는 게 또 그렇게 좋거든.
나: 아빠, 요즘에도 매일 산에 가요?
아빠: 응. 산초나무 때문에 가는 거지. 새로 심어야 하는 것도 있고, 풀도 베어주어야 하고. 산에 가면 할 일이 많거든.
나: 산초 기름도 계속하는 거예요?
아빠: 응. 하는데, 사실 돈은 안 돼. 그리고 무농약으로 30년을 했잖아.
나: 농약을 한 번도 안 썼어요? 대박이다.
아빠: 그렇지. 한 30년 동안 약을 안 쳤지. 밭이 다 살아 있어. 가보면 땅 속에 굼벵이나 지렁이 같은 것들이 많아. 가을에 꽃이 필 때 되면, 주변에 나비부터 온갖 종류의 곤충들이 전부 다 와서 꽃에 매달리거든. 그게 아주 보기가 좋아. 너무 자연스럽고, 너무 예쁘고 아름답지.
나: 나는 산초 농사 약 안 치는 줄 몰랐어요. 왜냐하면 대부분 과일 농사든 뭐든 기본적으로 약을 치지 않으면 병들고 그러잖아요.
아빠: 그래. 산초도 나무에 병이 있어. 나무를 갉아먹는 벌레가 있거든. 그게 나무를 고사시키는데 그런 걸 다 감수하고 하는 거지. 그런데 이제 약을 치고 싶어도 못 쳐. 30년 동안 안 친 데다 약을 친다 생각하면 너무 억울하거든.
나: 와 아빠 진짜 대단하다. 대단해요.
아빠: 이걸 사 먹는 사람들이 좋은 걸 먹는다고 보면 돼. 오랫동안 해서 노하우도 있고, 약도 안 치고, 관리도 잘하고. 제품을 최고 좋게 만들려고 노력을 했으니까. 값도 이제 비싸게 안 받아. 그냥 부업으로 하고 있는 거지.
나: 몇 병 안 나오잖아요. 얼마 안 돼 단골만 있겠어요.
아빠: 젊을 때는 열정이라는 게 있었어. 뭔가 남이 안 하는 특이한 산초라는 걸 가지고 한 5년 동안 연구를 했잖아. 5년 만에 접목을 해서 나무에 열매가 달린 걸 보는데 너무 아름다운 거야. 그때 느꼈던 희열은 다른 사람은 몰라. 혼자 앉아서 그걸 느끼는 거야. 아무도 없었지.
나: 아빠 혼자 기뻤구나. 아빠가 그렇게 기뻐했는 줄도 몰랐어요.
아빠: 자기가 자기 일을 하면서 그렇게 멋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별로 없을 거야. 그런데 나는 그게 너무 아름다웠어.
나: 근데 진짜 대단했던 것 같아요. 나도 아빠가 뒷밭 전체에 종이컵을 다 씌우고 앉아서 계속 일하고 그랬던 거 기억나요. 그리고 그 일을 몇 년을 했는지는 모르지만, 어느 날 산초 접목시키는 거 성공을 했다고 얘기했잖아요. 그때가 기억나요. 사실 뭔가를 그렇게 개발하는 게 쉽지 않잖아요. 실험을 굉장히 많이 해야 되고, 다양하게 해 봐야 되고.
아빠: 처음에는 농사를 안 하다가 하니까 이것저것 다 해봤지. 차도 없으니 자전거 타고 이 산 저 산 돌아다니고. 근데 산초가 눈에 확 들어왔어. 화원리, 미구, 선도우골 이런데 다 자전거 타고 다니면서 나무를 캐서 밭에다 심었어. 그런데 그냥 심으니까 안 되는 거야. 그래서 접목을 생각했지. 그런데 내가 농사에 대해서 잘 모르잖아. 언제 심어야 하는지 시기도 모르고. 그래서 3월, 4월, 5월 이렇게 맞춰서 3월 달에 한 10개 접을 해놓고, 4월에도 접을 해놓고, 5월에도 접을 해놓고 그랬지. 컵라면을 씌워놓기도 하고, 종이컵도 씌워 보고, 검은 봉지도 씌워봤어. 그런데 이게 1년이 걸리잖아. 가을에 가서 보니까, 한 200개 해놨는데 8개가 산거야.
나: 살아있는 게 있으면 희망이 있는 거 아니에요?
아빠: 그래. 다 죽었으면 내가 안 했을 거지. 살았으니까 그 시기에 맞춰서 그대로 하면 되는 거잖아. 그래서 그다음에 또 그 시기에 맞춰서 또 했지. 그렇게 하다 보니 5년이 걸렸어.
나: 와. 5년 동안이나 연구를 했었구나. 농사는 결과가 바로 나오는 것도 아니고, 1년을 기다리고 또 1년을 기다리면서 시간이 진짜 오래 걸리는 거잖아요. 진짜 장난 아니다. 그럼 아빠는 농사하는 그 과정 자체가 되게 즐거워요?
아빠: 나는 그걸 하고 싶어 지금도. 농사가 체질에 맞나 봐. 그냥 가게만 보면 내 인생이 너무 허무한 것 같아.
나: 아빠는 농사에서 오히려 더 삶의 의미를 느끼는구나.
아빠: 가게는 그냥 돈벌이 수단이지.
나: 아빠가 진짜 좋아하는 거는 농사짓는 거였구나.
#3. 삶에 주어진 모든 것들이 감사했던 날들
나: 그런데 엄마는 아빠가 밭일하고 오면 너무 싫어했잖아요.
아빠: 그때 엄마가 체력적으로 좀 힘들었던 것 같아. 지금 생각하면 내가 너무 미안하지. 예전에 나는 밤에 가게 문을 닫으니까 좀 늦잠을 자고, 엄마는 아침 일찍 일어나서 가게를 보고 그랬었거든. 그런데 애들도 키워야 되고 그러니까, 체력적으로 많이 힘들었나봐. 몸이 힘드니까 말도 제대로 안 되고, 대화도 안되고 그랬던 것 같아.
나: 맞아요. 엄마도 힘들었을 것 같아요.
아빠: 돌이켜보면 너희 엄마를 만난 건 나에게는 행운이었어. 실력도 없고, 돈도 없고, 직장도 없고 그런 나와 결혼을 해주었지. 처음에 형수님 소개로 엄마를 만났거든. 청량리역 근처 다방에서 만났어. 특별한 첫인상은 기억에 없어. 형수님 성화에 나간 거야. 결혼할 처지가 아니었으니까. 다음에 연락하자고 얘기하고 서로 헤어졌는데, 그걸로 끝이 었어. 그리고 사우디에 가려고 수속을 다 밟아 놓고 3개월 공백 기간에 어머니한테 내려와 있었거든. 그런데 영월에서 미구로 오는 시내버스에서 같이 앉게 된 거야. 목욕탕에 갔다 온다고 했어. 상큼하면서도 시원해 보였지. 그리고 그다음 날 집을 찾아갔어. 결혼을 하고 싶다고 말했는데, 무슨 용기로 그런 얘기를 했는지 모르겠어. 아무것도 없었는데. 사람을 귀하게 여기고 좋게 보는 장모님이 손을 덥석 잡으셨어. 처갓집 방에서 약혼을 했어. 좁은 데서 해서 그런지 훈훈한 정이 감돌았어.
나: 아빠 시각에서 듣는 얘기도 재밌어요. 아빠 만약 옛날로 돌아갈 수 있다면 돌아가고 싶은 순간이 있어요?
아빠: 나는 다시 돌아간다고 그래도 똑같은 삶을 살고 싶어. 내가 살아온 과정이 너무 좋은 점이 많았어. 일단 처음에 아무것도 없는데 결혼이라는 걸 했을 때 느끼는 행복감이 엄청 컸어. ‘나도 결혼을 했다.’ 뿌듯했지. 진짜 아무것도 없는 사람이 산속에 들어가서 빈 집을 수리해가지고 거기서 시작을 했지만, 그래도 결혼을 했다는 것 자체가 참 좋았어.
나: 아빠는 작은 것에도 크게 행복한 사람이었구나.
아빠: 내가 아주 어렸을 때도 그렇게 불행하지만은 않았던 것 같아. 제일 기뻤던 게, 초등학교 1학년쯤 됐을 때야. 그 옛날에는 고무신을 싣고 다녔거든. 어머니랑 영춘 장이라는 시장에 걸어 갔었어. 고무신을 신고 비탈길을 걸어서 가는데, 물이 들어가면 너무 미끄러웠어. 신이 벗어지면 다시 신고, 벗어지면 다시 신고, 그렇게 한 30리를 걸어서 장에 갔던 것 같아. 그때 우리만 간 게 아니고 마을 사람들이 다 같이 가는 거였거든. 어머니도 보니까 고무신이 계속 벗어지면 다시 신고, 벗어지면 다시 신고 그러더라고. 그런데 장에 도착한 그날, 어머니가 운동화를 사주는 거야. 그날 너무 기분이 좋았어. 너무 좋으니까 신지도 못하고, 아껴두고 그랬던 기억이 나.
나: 할머니도 고무신이 진짜 짜증 났었나 봐요.ㅎㅎㅎ
아빠: 그리고 아마 초등학교 2학년 때쯤 일거야. 어렸을 때는 어머니랑 둘이 살았지. 그리고 어머니가 머리에다가 물건을 잔뜩이고 시골로 다니면서 보부상을 했거든. 어느 날 기다리는데 장에 간 어머니가 안 오는 거야. 나는 어리니까 모르잖아. 기다리다가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일주일이 지나고 해도 안 오시는 거야. 그래서 이제 나는 어떡하지, 나는 어떡하지, 그러면서 혼자서 뭘 끓여 먹고 그랬어. 수제비도 해 먹고. 그러면서 있는데, 한 보름 되니까 어느 날 어머니가 저쪽에서 걸어오는 거야. 머리에다 뭘 이고 이렇게 걸어오시는데 너무 좋아가지고 막 뛰어갔지. 머리에 뭘 이고 있으니까 안지는 못하고, 손을 가서 확 잡았지.
나: 보름이면 너무 긴 거 아니에요? 진짜 어떻게 보름 동안 못 오신 거예요?
아빠: 왜 이제 오셨냐고 물으니까, 비가 많이 와서 길이 다 끊어졌었데. 강을 건너야 하는데 강을 건널 수가 없었던 거지. 그러다가 길이 뚫리니까 버스를 타고 다시 오신 거야.
나: 그때는 전화도 없었던 거죠?
아빠: 전화는 아예 없지. 부엌에서 불을 떼 가지고 내가 밥을 해 먹고, 남의 집에 방을 하나 얻어가지고 이렇게 살았는데. 부엌에 불을 떼 가지고 불씨가 나오면 그걸 화로에다 담아가지고 거기다 수제비를 끓여서 먹고 그랬거든.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그런 짓을 했어.
나: 지금 생각하면 위험하다고 하나도 못하게 했을 텐데요.
아빠: 그때 어머니를 만났던 그 환희는 하루 이틀도 아니고 오랫동안 계속 생각이 났어.
나: 보름이면 진짜 오랜 시간이었을 텐데. 걱정 정말 많이 됐었겠어요. 그러니까 할머니가 다시 왔을 때 얼마나 기뻤을까.
아빠: 그리고 한 스무 살쯤 됐을 때, 취직을 해서 부산으로 가야 할 때였어. 그때 어머니가 미구에 계셨는데, 가면서 뭐라 그랬냐 하면, ‘어머니, 이제 어머니는 다음에 내가 모실게요.’ 이러고 간 거야. 그게 지금도 내가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 그 얘기를 했더니 어머니가 그 말 한마디에 힘이 안 드신 거야.
장모님한테도 한 번 얘기한 적이 있어. 장모님이 저쪽 옛날 집에 사실 적에, 우리가 이 2층을 올리면서 ‘장모님 나중에는 우리랑 같이 살아요.’ 이랬거든.
나: 아빠가 그런 얘기를 했어요?
아빠: 그런데 어머니도 그렇고 장모님도 그렇고 말만 그렇게 하고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 같아.
나: 진짜로 같이 살게 됐잖아요. 외할머니 지금 옆에서 바로 살고 계시고요. 그냥 마음만이라도 할머니들한테는 그 말이 큰 힘이 됐을 거예요.
아빠: 그리고 가게 2층에 집 지었을 때도 되게 행복했었지. 내 집이 있다는 게 얼마나 기뻤는지 몰라. 우리 다섯 식구가 아래층 방 한 칸에서 8년을 살았잖아.
나: 네. 저도 기억나요.
아빠: 2층을 지었는데, 이게 너무 좋은 거야. 집도 넓게 느껴지고, 애들 방도 있고 말이야.
나: 나도 그때 좋았어요. 방도 생기고, 책상도 생기고.
아빠: 그 다음에 또 평생 갖고 싶었던 차를 샀을 때도 너무 기뻤지. 네가 대학에 들어갈 즘에 샀지. 4륜 구동 차를 샀는데, 그 차가 포장도 안 된 산길을 막 가잖아. 그게 되게 멋있다고 생각을 했어. 진흙탕을 사륜 구동을 넣고 올라가면 올라가거든. 그 쾌감이 참 컸지. 너희들 키우면서는 공부도 잘해서 이렇게 잘 크고. 그거는 말로 표현할 수가 없어. 그래서 만약에 내가 다시 옛날로 돌아간다 해도, 나한테는 그 이상의 삶은 없을 것 같아. 예쁜 딸들을 낳았고, 또 애들이 공부를 잘하고, 네가 과학고나 카이스트를 합격했을 때 느꼈던 그 환희는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지. 밤에 잠을 설칠 정도로 기분이 좋고 그랬었어.
#4. 후회되고, 미안한 일들...
나: 아빠가 다 좋았다고 하니까 뭘 더 물어봐야 할지 모르겠어요. 후회되는 일은 없었어요?
아빠: 내가 잘못하거나 안 좋은 것도 있지. 이제는 애들이 다 크고, 결혼도 하고 그래서 걱정이 없지만, 젊었을 때 목표는 돈을 버는 거였어. 일을 하고 돈을 벌어야 되겠다는 그 일념으로 평생을 살았던 것 같아.
나: 맞아요. 아빠가 가장이니까 책임감을 더 크게 느꼈을 것 같아요.
아빠: 워낙 어려서부터 돈이 없고, 고생을 하고 살아가지고 ‘애들을 꼭 돈 벌어가지고 대학교를 가르쳐야 되겠다!’ 그 생각을 했지. 그 목표 외에 다른 거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어. 예를 들어, 동창 모임이 있어서 그런 데 가도 ‘이건 내가 올 때가 아니다.’ 이런 생각을 한 거지.
나: 아빠는 그것만 목표였구나.
아빠: 돈을 벌어서, 일을 해서, 애들을 대학교를 가르치자. 결혼시키고 그런 것도 생각을 못했어. 대학교까지만 가르치자고 한 거지. 나는 일하고, 돈 벌고, 애들 교육시키는 것만 중요하다 생각하다 보니까 엄마하고 트러블이 생겼던 거지. 엄마는 또 석항에서만 나고 자랐으니까 여기서 사는 게 답답했었을 거야.
나: 맞아요. 엄마는 석항에서 산다고 생각하니 얼마나 답답했겠어요.
아빠: 그렇지. 그러니까 좀 다니고 싶고 이런 거를 못 다니게 한 건 아닌데. 만약에 사진을 찍고 싶다고 엄마가 말하면, 속으로는 싫은데 겉으로는 가라고 그랬어. 나는 그 마음이 이상해.
나: 아빠가 속으로 싫어하면 엄마도 다 알죠.
아빠: 속으로는 싫어. 그런데 겉으로는 가라 그랬지. 그러다가 엄마가 거기만 너무 쫓아다니면 내가 힘든 거야. 그리고 엄마가 그림을 하러 간다고 할 때도, 속으로는 싫어. 그런데 또 가라고 그랬지. 엄마가 스트레스가 한계에 온 게 보였어. 그러니까 안 하라고 하면 안 되는 상황이니까 가라고 그랬지. 그러면 가고 난 뒤에 나는 속으로 싫은 거야. ‘저걸 왜 다녀, 돈도 안 되는 그림을.’ 그런 식으로 생각했던 거지.
나: 엄마는 그런 경험이 더 중요한 사람이니까 그랬죠. 그걸 해야 행복하다고 느꼈고.
아빠: 가게 일 할 때는 엄마가 준비도 잘 안되고, 일도 잘 못하고 그런 사람인 줄 알았는데, 그림을 그릴 때 보니까 다르더라고.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니까 준비도 철저하게 하고, 시간도 정확하게 맞추고, 아주 다 잘하더라고. 그러니까 자기 성격에 맞으면 다 잘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나도 그때 알았던 거야.
나: 엄마도 재능이 참 많은데, 그걸 다 못 펼쳐서 개인적으로 아쉬워요.
아빠: 하고 싶은 일을 다 하고 살라고 할 걸, 지금에 와서는 후회가 돼. 그런데 나도 내 마음이 참 이상해. 엄마는 악의가 없고, 심성이 착하고, 세 딸을 아주 이뻐하고 사랑하지. 젊어서부터 나가서 살고 싶었고, 가게 일도 적성에 안 맞았을 텐데 지금까지 잘 지내줘서 고마워.
나: 이제라도 아빠랑 엄마가 서로 이해하고 지내는 모습 보니까 좋아요.
아빠: 그리고 또 유진이한테도 미안한 게, 시골에서 영월로 중학교 때 나가서 처음에 시험을 쳐가지고 1등을 해가지고 와서 기분 좋아했는데, 그때 내가 이상한 얘기를 했었어. 영월 같은 좁은 데서 1등 한 걸로 좋아하지 말라고 그랬는데, 그게 지금도 마음에 걸려.
나: 내가 그래서 끝까지 맨날 1등을 해도 만족을 못 했어요. 이게 끝이 없잖아요. 계속 공부를 했는데도 어떻게 1등을 계속해요. 세계 1등은 또 어떻게 해요. 공부 잘하는 애들이 그렇게 많은데. 해도 해도 끝이 없지. 해도 해도 만족이 안 되고. 더 큰 걸 바라게 되고, 더 높은 데 가고 싶고. 그게 욕심이 되어서 오히려 행복하지 못하게 지냈던 것 같아요.
아빠: 그래, 그게 계속 마음에 걸렸어. 지금부터라도 소박하게 마음을 가져보자.
나: 결혼하고 나서도 남편한테 계속 뭘 바라게 되고, 더 뭘 하라 그러고 자꾸 그랬었어요. 현재에 만족할 줄 모르는 삶을 산거예요. 그런데 마음을 딱 바꾸고 나니까, 지금 상태로도 다 너무 행복한 거예요. 걱정할 거 없는데 자꾸만 나는 더 큰 걸 바랬던 거예요. 그냥 마음만 바꿨더니 이 상태로도 너무 감사하고, 이제 그냥 내가 뭘 하고 싶은지를 찾는 게 더 중요하고, 그냥 내가 할 일 하면 되고 그렇더라고요.
#5. 다시 살더라도, 지금처럼 살고 싶어.
아빠: 나는 아빠라는 위치는 어느 정도 키워서 다 출가를 시키고 이러면, 내가 이러쿵저러쿵 얘기를 안 하는 게 낫다는 생각을 했어. 그럴 능력도 안 되고. 그래서 자식들이 그냥 알아서 살아가겠지 하고 간섭을 안 하는 거거든. 그래도 너희가 엄마하고 카톡이나 이런 걸 하면서 대화하고 그러는 거 보면, ‘그래 이렇게 하면 되는구나. 이게 곧 사람 사는 모습이고, 이게 곧 행복이지. 뭐 특별한 게 있나.’ 이런 생각이 들어. 나는 어릴 때 아빠에 대한 이미지가 너무 강해서, 뒤에 빠져 있는 게 더 행복하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
나: 엄마랑 아빠는 성향이 정말 다른 것 같아요. 엄마는 말하는 걸 워낙 좋아하는 사람이고, 아빠는 조용히 있는 시간으로도 그냥 좋은 사람이고 그런 거지.
아빠: 다시 돌아간다고 하더라도 지금의 살아온 삶을 절대 놓치고 싶지 않아. 그 이상의 삶은 나는 의미가 별로 없다고 생각을 해. 결혼하고 처음서부터 아내를 산속에다 혼자 놔두고 일하러 가고 그런건 미안하지.
나: 엄마 산속에서 엄청 스트레스받았대요.
아빠: 그런 게 있었지만, 그래도 내가 이렇게 살아온 과정은 전부 참 괜찮게 살았다는 생각이 들어. 다시 돌아간다 해도 이 삶을 놓치고 싶지는 않아 나는.
나: 그럼 아빠가 돈도 많고, 자유롭게 뭐든지 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지금과 같은 삶을 살고 싶어요?
아빠: 그럴 거야. 나는 서울이나 이런 데가 별로 가고 싶거나, 살고 싶지가 않아. 돈이 많으면 아마 산속에 더 들어가서 나무집을 조금 더 좋게 짓고, 주변도 더 깨끗하게 더 편하게 해 놓고 살고 싶어. 돈을 조금 더 들여서 벽난로도 멋있게 해 놓고.
나: 아빠는 자연 속에서 살고 싶은게 진심이네요. 아빠가 자연을 이 정도로 좋아하는 줄 몰랐어요. 혹시 또 다른 거 해보고 싶은 거 없어요?
아빠: 그거 있었어. 농사지으면서 내가 굉장히 뭘 모른다는 생각을 했었거든. 농사를 지으면 무슨 약의 종류에 대해서도 모르고. 모르는 게 너무 많은 거야. 그래서 다시 기회가 된다면 농업 관련 공부를 해보고 싶어.
나: 아빠 그런 거 하면 진짜 잘하겠다.
아빠: 그랬으면 아마 이렇게 산초 재배에 멈추지 않고, 더 일어서서 사업을 키우고 그러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이 들어. 식품이라는 게 허가도 내야 하고, 처음 개발하는 사람은 함부로 잘못하면 큰일 나거든. 그런데 내 생각에 너무 모르는 거야. 그래서 더 일어서지 못하고 멈춰버린 거지.
나: 그러면 아빠는 딸들이랑 손주들이랑 어떻게 살면 좋겠어요? 바라는 게 있어요?
아빠: 아까도 얘기했지만, 나는 생각에 한계가 있어. 딸들은 일단 나보다 많이 배웠잖아. 내가 무슨 이렇게 했으면 좋겠다 이런 건 아예 생각도 안 해봤어. 그냥 건강하게, 행복하게, 아무 탈 없이 잘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지.
그리고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게, 여기서 남한테 미움 먹지 말고 살아야겠다고 생각해. 혹시라도 안 좋은 기운이 자식들한테 갈까 봐, 남한테 나쁜 짓 하지 말고 미운 짓 하지 말자고 생각하며 살지.
나: 아빠는 평생 그렇게 사신 것 같아요. 정직하고 올바르게.
아빠: 그래. 내가 나쁜 짓을 안 하면, 자식들이 잘 살지 않을까 그런 믿음만 가지고 살지. 그리고 예전에 엄마랑 트러블 있고, 의견 충돌이 있고 그런 것도 다 극복을 하고 나니까 이제는 마음이 편한 것 같아.
나: 네. 저는 아빠도 엄마랑, 외할머니랑 다 건강하게 잘 계셔서 감사해요.
아빠: 장모님은 이제 내가 청소도 해주고, 이불도 털어주고 그런 거 외에는 특별하게 할 게 없더라고. 사위로서 내가 뭘 할 수 있나 생각해보니, 할 수 있는 게 장모님 볼 때마다 웃는 거야. 그래서 장모님을 볼 때마다 웃거든. 그러면 장모님도 같이 웃어. 같이 웃어줘. 내가 웃으면 장모님도 같이 웃어. 그것도 참 좋아.
나: 웃으면서 지내면 좋죠. 우리는 내년쯤에는 한국 들어가면 좋겠는데.
아빠: 그래. 그때 오면 얼굴도 보고, 하루든 이틀이든 가게 문도 닫고. 그냥 방에 있더라도 그러자. 저번에 왔을 때는 할 일이 있어서 많이 못 본 것 같아. 그게 좀 미련으로 남아있어. 그냥 하루 종일 같이 만나서 얘기 나누고, 돼지고기라도 구워 먹고 그러자.
나: 네. 같이 여행이라도 가고 그러면 좋겠어요. 아니면 집에서 그렇게 봐도 좋고요. 건강하게 잘 계세요.
전화를 끊고, 아이처럼 순수하게 미소짓던 아빠의 얼굴이 계속 마음에 남았다. 함께 오랜 시간을 보냈었지만, 아빠에 대해 잘 모르고 있던 것이 많았다. 자연을 사랑하는 맑은 영혼을 지닌 아빠. 힘들고 고된 어린 시절을 보냈는데, 다시 돌아가도 똑같은 삶을 살고 싶다는 말에서, 아빠가 자신이 가진 것들을 얼마나 소중하고 감사하게 생각하며 살았는지 알 수 있었다. 나는 아빠가 무섭고, 미울 때도 많았지만, 대화를 나누며 아빠의 진심을 알게 되었다. 어릴 때 아빠와 엄마가 싸울 때 마다 스트레스 받았는데, 두 분이 이제는 좀 더 서로를 이해하고, 인정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보니 안심이 되기도 했다. 서로를 수용하고, 포용할 수 있게 되어 감사하다. 아빠는 딸과 이렇게 통화하니 너무 좋다고 말씀하셨다. 나도 좀 더 자주 연락드려야 겠다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