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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나비 Jan 01. 2022

실전 출산 경험기 #2 - 노산은 회복이다

끔찍했던 출산 후 회음부 혈종과 재봉합의 기록


그래서 아이가 나올 때 시원했나?


음, 시원하기도 한데 어딘가 좀 불편한 것이 (당연히도)화장실 다녀온듯한 깔끔한 시원함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고통과 공포와 긴장이 뒤섞인 호흡이 엄청나게 들이쳤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하아악 하아악하는 가쁜 숨이 아이가 다 나온 뒤에도 쉬이 가라앉지 않았다. 그 사이 개미씨가 간호사 선생님의 축하를 받으며 탯줄을 끊었고, 피와 태지에 범벅인 채 응애응애 우는 아기는 조심스레 나의 품으로 옮겨졌다. 따끈하고 보드라운 것이 과호흡으로 격하게 오르락내리락하던 내 상체를 묵직하게 누르는 것이 느껴졌다. 생전 처음 느껴보는 묘한 무게감이었다. 내가 아기를 낳았다니. 이 아이가 나의 아이라니!



간호사 선생님이  아기를 데려가 몸을 닦고 간단히 육안으로 신체 부위 모두 정상임을 확인해 주셨다. 개미씨는 핸드폰으로 세상 첫울음을 우는 아기를 촬영하느라 정신이 없었고  또한 남은 태반을 꺼낸다고 배가 눌리고, 찢어진  입구를 봉합하는 등의 후처치 와중에도 아기 침대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눈물이 나올  알았는데 어찌   웃음이 났다. 하하하하. 개미씨와 마주쳤다. 그도 그저 싱글벙글, 기뻐서 어쩔  몰라했다.


드디어 끝났다!

내 머릿속을 가득 메운 문장은 이 한마디였다.

아기를 무사히 만난 것도 물론 기뻤지만 이 지난한 과정이 모두 끝났다는 것에서 오는 큰 안도감이 있었다. 자연분만이라니 너무 무서웠는데, 정말 자신 없었는데, 비교적 짧은 시간 안에 해냈다는 것에 모종의 성취감마저 느껴졌다.




이렇게 하하 웃으며 끝났다면 좋았겠지만, 출산의 진짜 고통은 이제부터가 시작이었다. 두둥.





혹시 모를 사고에 대비해 한 시간 정도 수술방 옆에서 대기하다 새벽 3시쯤 병실에 들어왔다. 소변보는 게 중요하다고 해서 정성껏 소변을 보고 침대에 누웠는데 어째 출산 직후보다 뭔가 점점 더 불편한 느낌이 들었다. 잔뇨감인가 싶어 화장실에 다시 갔지만 소변은 나오지 않았고 변기에 앉아 있기 힘든 통증이 회음부와 항문 쪽으로 밀려왔다. 출산 후 치질이 생긴다는 이야기는 여러 번 들었기 때문에 나도 치질인가 하며 겨우 침대로 돌아와 누웠다. 그러나 잦아들겠지 싶던 통증은 점점 더 심해졌다. 어린이날 출근해 격무에 시달리다 와서 이제 겨우 눈을 붙인 개미씨를 웬만하면 깨우고 싶지 않았는데, 통증이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지경이 되자 그의 어깨를 흔들어댈 수밖에 없었다.


"자기야, 나 어떡해.. 너무 아픈 것 같아...."


호출벨에 달려오신 간호사 선생님이 나의 회음부를 확인한 뒤 휠체어를 가져오셨다. 통증이 더 극심해지면서 의자에 앉는 것부터 너무 아파 괴성을 질렀다. 단언컨대 진통보다 더 아팠다. 아기 낳을 때도 나지 않던 눈물이 날 정도의 고통이었다. 수술방 분위기의 병실로 옮겨졌는데, 산부인과 진료대에 앉아 다리를 벌려 올리는 것만으로도 견딜 수 없는 고통이 밀려왔다. 천년 같던 기다림 끝에 오신 의사 선생님은 봉합부위가 지혈이 안돼 혈종이 찼다고 하셨다. 국소마취를 하면서 봉합을 풀고 다시 꼬매기 시작했다. 피가 고여있었는지 뜨듯한 것이 주르륵 흐르는 게 몇 번 느껴졌다. 빠져나가는 느낌의 시원함과 함께 잠깐 통증이 나아지는 듯했지만, 얼마지 않아 고통은 원래의 크기만큼 그대로 다시 채워지기를 반복했다.


더구나 국소마취가 되고 있는 것이 맞나 싶게 생살을 바늘로 꼬매는 느낌이 그대로 전해졌다. 처음엔 조금만 참으면 되겠지 하고 이를 악물었지만 도대체 몇 군데를 째고 다시 봉합하는 건지, 시간이 꽤 걸렸고 점점 더 아픔을 참기가 힘들어졌다. 나도 모르게 비명소리가 터져 나왔다. 나중에 개미씨에게 들으니 의사 선생님이 자리를 잡고 앉아 재봉합하는 시간만 한 시간 정도가 걸렸다고 한다.


나의 커지는 비명소리에 의사 선생님이 잠깐 재워주겠다며 수면마취를 시켜주셨다. 그러나 약물의 힘을 빌려 잠깐 잠이 들었다 다시 깰 때까지도 바느질은 끝나 있지 않았다. 두 번째 수면마취를 하기엔 수술이 거의 마무리되고 있는 시점이라, 바늘로 살을 뚫는 아픔을 그냥 견디는 수밖에 없었다. 지금 떠올려도 고통스럽고 말 그대로 너무나 아팠던 기억이다.


봉합 후 (또 터질까 봐) 대기 병실에서 한 시간쯤 더 머무르다 병실로 돌아가는데 어느새 복도 창문으로 날이 환했다. 시계를 보니 아침 6시, 아이를 낳고 5시간이 지났다. 푹 쉬고 있어야 할 시간에 나는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 걸까.




오전 회진시간에 임신기간 내내 봐주셨던 담당 선생님이 걱정 어린 얼굴로 올라오셨다. 상처부위를 열어 보더니 깜짝 놀란 기색을 숨기지 않은 채,


"두 번 봉합하는 거 엄청 아픈 거예요. 아우, 아파서 어떡해요."


하고 안타까워하셨다. 다시 봉합한 부위는 지혈 잘되도록 엄청 짱짱하게 묶어두셨다고, 그러니 걱정하지 말라는 말씀과 함께.


그런데 이게 너무 짱짱하게 묶여 있어 그게 또 엄청난 통증을 유발했다. 몸을 움직일 때마다 세게 꼬매 져 있는 회음부 상처가 당겨 말할 수없이 아팠다. 진통제를 하루에 세 번씩 맞고 알약까지 추가로 먹어도 통증으로 자다가 깰 정도였다. 덕분에 퇴원은 하루 미뤄지고, 이틀 동안은 소변줄까지 차고 있었다.


한 번씩 외래에 내려가면 의사 선생님이 안 되겠다, 하시며 너무 짱짱해 보이는 스티치를 몇 개씩 끊어주셨는데 통증 감소에 큰 도움은 되지 않았다. 스티치 끊는다고 상처를 마취도 없이 건드리는 것도 진짜 견디기 힘든 고통이었다. 입틀막 귀틀막 하면서 이게 생지옥이구나, 싶었다.


도대체 왜 이렇게 된 건지 여쭤보니,

"아기가 빨리 내려오면 이렇게 심하게 다칠 수가 있어요. 급속 분만까지는 아니지만, 다섯 시간 정도면 첫 분만 치고 빠른 편이라 그런 것 같아요"

라고 하셨다. 나이가 어리면 피부가 잘 늘어나서 이 정도로 다치는 일이 잘 없는데, 나이 영향도 조금 있다는 말씀과 함께...






이후로도 회음부 상처는 쉽게 낫지 않았다.

당시에 의사 선생님께선 다 나으려면 한 달은 걸리겠다고 말씀하셨지만 한 달이 뭐야, 완전히 회복되는 데에는 1년은 걸린 것 같다. 통증은 아주 높은 계단에서 한 걸음씩 내려오듯 천천히, 조금씩 줄어들어갔다. 처음에는 지금 나아지고 있는 것이 맞나 싶은 의심이 들 정도로, 한참 시간이 지나서는 문득 괜찮아진 것을 깨닫고 언제 다 나았는지 어리둥절했을 정도로 느리고 완만한 속도였다.


어쨌든 꽤 오랫동안 앉은 자세를 고치거나 허리를 굽힐 때마다 앗, 하며 눈앞이 번쩍하는 불편감이 있었다. 상처가 아물 새도 없이 3시간마다 일어나 아기 분유를 타느라 회복이 더욱 더뎠던 것 같다. 매사 서툰 육아와 맞물려 당시엔 몸은 아프고 마음은 지쳤던 기억이다. 이제 좀 나았나? 했던 게 최소 10개월 무렵이었으니 말 다했다. 그때를 떠올리고 있자니 아기를 낳은 지 20개월이 다 되어가는 지금도 갑자기 저 깊은 바닥에서 통증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이 글을 쓴지는 사실 오래되었다. 그러나 오랫동안 발행하지 않은 채 서랍 속에 넣어두었던 건, 마무리를 짓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출산이 힘들었기에 여자인 것이 억울하다는 것도 아니고, 그러니 모든 산모들이 칭송받아야 한다는 것도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아니다.(둘 다 어느 정도 동의하는 바이기는 하나). 그저 내가 아이를 낳았는데 과정이 다소 순탄치 않았다, 그런데 아이가 건강하게 잘 크고 있으니 현재는 순탄해졌다, 정도이려나.


다만 하나 느꼈던 것은 과연 세상에 쉬운 출산이란 없구나, 하는 것이다(있다 해도 굉장히 드물거나). 자연분만은 자연분만대로, 제왕절개는 제왕절개대로 쉽지 않고, 또 거기에 더해지는 각종 고난의 옵션들-노산, 임신중독, 유도분만, 다태아, 좁은 골반, 산도 기형, 켈로이드성 피부 등등-을 합하면 산모 개개인의 고유한 고통의 스토리가 될 것이다. 될 수 있으면 하지 말라는 뜻은 아니지만, 어쨌든 분명한 사실은 출산엔 엄청난 고통이 뒤따른다는 것이다. 그것만은 명백한 사실이며, 여기에는 어떤 뻔한 미사여구도, ‘그럼에도 불구하고’로 시작하는 변명도 필요치 않다. 여러 가지 이유에서 모두가 이 사실을 좀 더 확실하게 알 필요가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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