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양지의그녀 Jun 16. 2019

1년차는 처음이라.

회사에 들어가면 끝일 줄 알았던 나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고양이도 데려온 다음이 시작이듯

이번 달 25일이 오면, 딱 회사에 다닌 지 1년이 된다. 

여름, 가을, 겨울, 봄까지 연남동에서 사계절을 났다. 두번째 여름이 다가오고 있다.


6개월은 인턴으로 살아서 그런지, 1년이라는 시간이 자꾸만 농담같다.

12월 쯤 되면 이제야 비로소 1년차가 실감나려나. 누군가는 그래서 인턴은 이력으로 치지 않는다더라 말하지만 어쨌든 회사에서 첫 발을 내딛은 지 근 365일이 다 되어간다. 태어난 지 '1년차'에도 돌잔치를 열어 돌잡이를 하는 것처럼 괜히  돌아오는 6월 25일이 특별하게 느껴지는 건 사실이다.


1년, 

딱 짧은 두 단어로 뱉으니 그 시간 속에 담겨있는 고민들, 생각들이 속절없이 지나간 기분이다.

직장생활 1년은 어떤 의미가 되어 내게 남았을까. 차근 차근 복기해보는 세월 속에서 참 많은 것들이 달라졌다.

회사에서 뿐만 아니라, 일상에서도 소소한 차이를 느낀다. 


먼저, 낯설게만 느껴지던 홍대가 서울에서 가장 편한 곳이 되어버렸다.

그 어렵다는 홍대입구 지하철 역 출구 찾기가 이제는 손바닥 보듯 쉽다. 골목 골목까지 발걸음 닿지 않은 곳이 없다. 첫 직장생활을 숲이 있는 연남동에서 시작하게 된 점은 손에 꼽을정도로 행운이다. 홍대입구 3번 출구를 쭉 따라 걷다보면 도심 속의 숲이 나온다. 물이 흐르고, 길을 따라 나무가 가득하다. 강아지와 아이들이 함께 산책하는 경의선 숲길은 점심시간의 크나큰 행복이다. 그 반대 6번 출구에는 신촌까지 뻗어있는 경의선 책거리가 있는데, 그 근처에서 처음으로 방을 구했다. 이제는 경의선 숲길과 살짝 멀어졌지만, 첫 서울살이 때 경의선 책거리에 있는 서점들은 이방인에게 소소한 기쁨이였다. 두 곳 모두 홍대답지 않게 조용하고 또 차분하다. 내가 사랑할 수 있을만큼 아름다운 곳에 정이 들게 된 일이 얼마나 큰 감사인지


회사에서도 일하는 요령을 서서히 익혀가고 있다. 일을 대하는 태도와, 사람을 대하는 마음같은 것 

기초적이면서 나를 가장 고민하게 만드는 지점들에 대해 능숙해지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예전보다 덜 웃고, 덜 울게 되었다. 좋은 변화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래도 내 안의 감정소모는 예전보다 훨씬 덜 하게 되었다. 그렇게 생각하면 마음이든, 생각이든 조금 단단해진 것 일지도 모른다. 


업무는 보인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영 안보이기 시작했다. 업무에 대한 감을 잡지 못한게 아니라 내가 가질 직장 말고, 직업에 대한 고민이 생겼다. 에디터나 카피라이터 같이 내 호기심을 자극하는 직업들이 궁금하다. 넌지시 주변에 물어보니 돈 안되는 직업이라는 평이 돌아왔다. 타인의 입에서 나온 말로 해소될 궁금증이였으면 두근거림은 시작도 하지 않았겠지. 아무튼 지금 하는 일부터 꼼꼼히 살피고, 해낸다음 판단해보도록 하자. 사적인 궁금증 때문에 사랑하는 팀에 누를 끼칠 수는 없으니, 막내는 열심히 업무에 집중하도록 마음을 먹는다. 


사실 이런 마음의 소용돌이가 시작된 것은 짧게 말하자면 이직 제안 때문이다. 반년 전에 한번, 최근 들어 한번 둘 다 내게 참 과분한 제안이었다.  첫번째는 연봉이 좋았고 두번째는 하고 싶던 일이었다. 치열하게도 고민했지만 그래도 지금 하는 일을 1년은 매니저로 온전히 해봐야 가타부타 할 수 있는 입장이 되지 않겠냐는 생각이 들어 고사했다. 다음에도 이렇게 과분한 제안이 오면 나는 똑같이 치열하게 고민할 것 같다. 두 번 정도 비슷한 일을 겪으니 직장생활을 하는 동안 이 행복한 고민은 지속될거라는 예감이 들었고, 기쁜 예감은 항상 틀리지 않지


1년동안 참 많은 일이 있었다. 

커피를 못 먹던 24살의 나는 어느새 하루에 두 잔씩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먹게 되었다.

독립영화만 보던 대학생은 킬링타임용 영화도 극장에서 보는 직장인이 되었다.

달라진 취향과 식성만큼 내 안의 무언가도 자라고, 시들었을 것이다.


많은 변화가 있어도 초심만큼은 잊지 않는 내가 되길 바라며,

내일의 나에게 미안하지 않을, 오늘을 살아내는 내가 되길 바라며



*이 글은 글쓰기 모임 '그치만 글쓰기를 하고싶은걸'에서 

8주간 진행되는 글쓰기 프로젝트에서 발행한 글입니다. 


'그글러'에서는 멤버들이 8주간 각자 1주에 하나씩 

글을 쓰고 이후 독립 출판물로 엮습니다. 


출판 소식을 받아보고 싶은 분들은 아래 링크를 참고해주세요. 

https://forms.gle/intnGt3g6EYyhtwdA







매거진의 이전글 4번째 회사에서 보내는 3번째 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