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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준 Mar 23. 2020

"‘최연소 국회의원’, 나에겐 영광스러운 타이틀"

[인터뷰] 이설아 민생당 비례대표 예비후보

총선이 한 달도 채 남지 않았다. 공천 작업을 여전히 진행 중인 당이 있는가 하면, 이제 유권자들의 선택만을 기다리고 있는 당이 있다. 지난 20일, 이설아씨(25)가 민생당 비례대표에 입후보했다. 이 후보는 2017년 바른정당에 가입한 뒤 바른미래당 청년정치학교를 통해 당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했고, 대학생위원회에서 활동하며 경기도당 운영위원 및 전국위원회 수석부위원장을 역임한 바 있다. 


 정당 내에서 왕성하게 활동해 왔던 청년 활동가인 그가 출마를 결심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는 자신을 두고 “학생인권과 미래의 대한민국을 위한 교육과 공존을 이야기하고 싸워나갈 사람”이라고 강조했다. 


지난 22일 이설아 후보를 만났다. 다음은 이 후보와의 일문일답.   


* 덧. 인터뷰 전문입니다. 조금 다듬은 버전은 오마이뉴스에 실었습니다. 







- 자기소개 부탁드린다.  

"21대 국회의원선거에서 민생당 비례대표 예비후보로 나선 이설아이다. 94년생 만25세로 아마 당내 최연소이지 않을까 싶다.


2017년 모교의 ‘성희롱 현수막’ 사건을 겪은 이후 바른정당에 가입하며 정치에 관심을 두게 됐다. 학생 대표의 일종인 ‘총대위원회’가 자신들의 졸업을 축하한다고 학교 건물에 성희롱성 내용이 담긴 현수막을 내건 사건인데, 많은 학생들이 불쾌와 수치감을 느끼며 피해를 입었음에도 사과하는 주체가 없었다. 심지어 해당 현수막을 직접 기획하고 건 학생은 다음 해 선거에 또다시 출마하기도 했다. 교칙에 학생이 징계를 받으면 선거에 출마할 수 없다는 조항이 있어, 이에 항의하는 학생 260여 명을 모아 징계탄원서를 학교에 제출하는 것을 주도했다. 그런데 학교는 학생들의 뜻을 반영해주기는커녕, 서명운동 등이 현수막 가해 학생에 대한 명예훼손으로 형사처벌될 수 있다며 오히려 으름장을 놓더라. 사건을 언론 등을 통해 공론화하자 해당 학생이 자진 사퇴를 하기는 했지만, 학교가 사생활보호 등을 이유로 징계여부조차 비공개해 제대로 된 징계가 이뤄졌는지는 아직도 알 수 없다.


당시 순진하게도 260명이라는 많은 수의 사람을 모으면 무언가 바뀔 줄 알았다. 그런데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 현실에 실망하고 주위를 둘러보니, 더 심한 일들이 많더라. 예컨대 ‘서울대학교 A교수 사건’이 그렇다. 성폭력과 갑질 행위가 드러나도 단지 정직 3개월의 처분에 그쳤다. 몇천 명의 학생들이 모여 3년을 투쟁한 끝에 해임이 결정됐는데 이렇게까지 무언가 ‘투쟁’해야만 당연한 일들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이 잘 납득 가지 않았고, 권력을 획득해 당연한 것들이 당연하게 이뤄지는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싶었다. 이번 비례대표 예비후보로 나선 것도 이러한 ‘선한 영향력’을 끼치기 위한 노력의 일종이다.


이후 바른미래당 청년정치학교를 통해 당 활동을 적극적으로 해나가기 시작했고, 대학생위원회에서 활동하며 경기도당 운영위원 및 전국위원회 수석부위원장의 직위를 받았다. 당 유튜브 코너를 도맡아 진행해보기도 하고, 활동 능력을 인정받아 국회 인턴을 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이러한 이력 나열보다 앞으로 해나갈 일들로 자신을 소개하고 싶다. 나는 학생인권과 미래 대한민국을 위한 교육, 공존을 이야기하고 싸워나갈 사람이다."





- 한강타임즈 기자 시절조국 법무부장관 후보자 기자간담회에서 했던 질문이 각종 커뮤니티에서 화제가 됐다당시 상황에 대해 좀 더 얘기해준다면.

"우선 기자가 된 배경 설명을 해야 할 것 같다. ‘엄마·아빠 찬스’ 없는 가난한 집안이다 보니 20살 이후로 집안의 지원 없이 힘들게 살았다. 2만원으로 라면 반 사리면 반을 사 한 달을 버틴 적도 있을 정도다.


그런데 욕심이 많아 가난을 이유로 하고 싶은 것들을 포기하긴 정말 싫었다. 정치 자체가 돈 많은 사람만 할 수 있는 구조이지 않는가. 생활에 필요한 돈도 벌어야 하는데, 정치지망생으로서 활동에 필요한 시간을 유동적으로 쓸 수 있는 직업이 필요했다. 프리랜서로 그중 하나가 기자일이었다. 기자일 외에도 국회 비서나 방송국 편집자, 대기업 영업사원, 국제기구 등 정말 많은 일들을 해왔다.


정치인으로서의 이설아와 기자로서의 이설아는 철저히 분리했다고 생각한다. 내가 작성한 기사들을 보면 특출나게 편향된 기사는 없다. 당시 조국 법무부 장관 내정자의 기자간담회 때도 국회 출입 기자로서 당연한 의문들을 제기했는데, 그분의 지지자로부터 회사로의 폭언전화와 인터넷 악플들을 겪었다. 누군가는 지인에게 연락해 “한강타임즈에 일하는 니 친구 한강 가라고 하라”며 자살을 종용하기도 했다. 심지어 그날 작성한 기사가 조국 전 장관에 대한 우호적 기사였음에도 그랬다. 인상 깊게 남은 악플은 어린 조국 전 장관 딸을 물어뜯는 파렴치한이라는 것이었는데, 정작 그런 욕을 듣는 내가 조 전 장관의 딸보다 어리다(웃음). 인생의 탄탄대로를 걷는 ‘엄마·아빠 찬스’의 수혜자들에게 의문조차 쉽게 제기하기 힘든 사회에서, 일단 버텨서 여기까지 온 것을 스스로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 작년 5월, 바른미래당의 당내 갈등이 폭발했던 당시 ‘손학규 대표의 당 운영이 잘못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는 의견을 제출한 바 있다. 골치 아픈 집안싸움에 휘말린 셈인데, 왜 그랬나.

“손학규 당대표 퇴진의 명분은 ‘보궐선거 참패’였다. 그런데 보궐선거 참패 책임이 당대표에게만 있는 것은 아니다. 지도부 전체에 그 책임이 있을 텐데도 지도부 일원들이 퇴진을 종용하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당시 요구받았던 것도 “바른정당 출신이니까 당연히 대표 퇴진을 요구해야 한다”는 것이었는데, 그런 계파 정치에 청년들이 물 들면 안 된다고 응원해주셨던 분들에게 계파 정치를 운운하는 것이 납득 할 수가 없었다.


손학규 대표 퇴진 요구 계획을 고위 당 관계자로부터 이미 1월에 들었다는 사실도 한몫했다. 4월 보궐선거 결과도 알 수 없던 3개월 전에 “이미 너는 계획이 다 있구나” 싶으니까, 대표 퇴진 이후에 다른 목적이 있다고 확신할 수 밖에 없었다. 그 대가로 이후 특정 계파의 사람들이 나를 청년 조직에서 축출하고자 시도했고 힘든 시간을 겪었다. ‘특정 계파가 자유한국당과의 통합을 위해 나를 물러나게 하려고 한다’는 손학규 대표 측의 주장을 ‘노욕으로 없는 말을 지어낸다’고 일축하던 분들, 지금 현재 어디로 가 계신가.


퇴진 요구 방식도 너무 무례했다. 나이에 따른 발언권에 제한은 없다지만, 채 성년도 되지 못한 학생이 그 학생보다 세 배는 나이가 드신 손 대표 앞에서 이새끼 저새끼 쌍욕을 하도록 방치했다. 당직에 임명해달라며 대표를 초청해놓고 당일 임명받은 당직을 사퇴한다는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되는 일을 벌이기도 했다. 이런 상황을 겪었는데 어떻게 그들이 옳다고 말하겠는가.


계파를 떠나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게 청년의 장점이고, 청년정치의 필요성이다. 같이 정치를 시작했던 친구들과는 멀어지고 힘들었지만, 나는 지금도 내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




- 청년을 필두로 한 세대교체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는 많지만정작 내용은 없는 공허한 청년팔이에 그치고 있다는 비판이 많다과연 국회의원 이설아는 그렇게 되지 않을 수 있을까.

"‘청년팔이 정치’의 문제는 나이만 청년이고 대부분 ‘누구누구 자제’라는 것이 자기가 가진 최고 타이틀인, 권력만이 목적인 사람들이 정치를 하니까 생겼던 문제다. 내가 내세운 공약만 12가지이다. 이 공약들이 내가 대변하려는 학생 계층과 교육문제들을 반영하고 있는지 평가해주신다면, 질문에 대한 답 또한 아실 수 있을 것이다."



- 본인이 생각하는 최연소 국회의원의 의미란.

"일단 이번 총선에서 ‘만25세’ 총선 도전자가 나만은 아니다. 앞서 비판한 박은수 후보도 그렇고, 더불어민주당의 김나연 예비후보나 민중당의 손솔 후보도 만25세이다. 그러나 ‘당선권’이 없고, 나 또한 현재로서는 도전자에 불과하니 21대 총선에 만25세 국회의원이 탄생할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하지 않을까.


20대 국회에는 20대 국회의원이 없었다. YS 이후 30년 동안 최연소 국회의원 탄생의 기록이 깨지기는커녕 국회 평균연령은 더욱 노후화되고 있다. 국회가 국민을 대의 한다면, 20대 전체인구가 전체의 13%인 만큼 약 40명의 20대 국회의원이 있어야 하지만 없다 보니 20대의 문제는 ‘사소한 것’ 취급당하기 일상이다. 음악을 듣지 않으니 음원 사재기 문제를 해결할 필요성도 느끼지 않고, 웹소설 문화를 향유 하지 않으니 출판 시장을 넘어서려는 웹소설 업계에 대한 제대로 된 시장규모도 체크하지 않는다. 최근에는 ‘딥페이크’ 범죄에 있어 모 국회의원이 “예술적으로 사용할 수도 있지 않느냐”고 발언한 것을 보고 몹시 분노했다. ‘최연소 국회의원’이란 당신들이 사소한 문제 취급하는 어떤 문제가 누군가의 당장에서는 가장 중요하고도 큰 문제라고 말해줄 수 있는 영광스러운 자리라고 생각한다."        



- 작년 12월 바른미래당을 포함한 다섯 개 정당과 세 개의 시민단체가 참여한 홍콩 민주항쟁 관련한 국회 토론회를 주도하여 개최한 바 있다홍콩 민주화 시위가 진행되는 동안 국내의 정치권에서는 거의 무관심으로 일관했는데각 정당의 합류를 어떻게 이끌어 낼 수 있었나

"정치 활동을 하며 다양한 당의 청년들과 친분을 쌓은 결과 의미 있는 토론회를 개최할 수 있었다. 앞서 청년들의 장점이 계파를 떠나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는 점이라고 언급했는데, 중국과의 무역 관계 등 유불리에 얽매이지 않고 당을 초월해 옳다고 믿는 가치로 결합할 수 있었던 것도 청년과 학생이기에 가능했다.


토론회 제목이 "홍콩 민주항쟁에서 5.18 정신을 만나다"였다. 5.18 항쟁도 청년·학생이 주축이지 않았는가. 국가폭력이라는 거대한 힘에 대항해, 패배를 두려워하지 않는 숭고한 이들을 언제나 존경하고 지지할 것이다. 올해가 5.18 40주년인데, 당선된다고 해도 21대 국회의원 임기 시작 이전으로 연관된 의정 활동은 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같은 당내에서 5.18 정신에 공감하시는 의원님들이 상당히 많을 테니, 홍콩 항쟁 당사자분들을 광주로 초대하는 등의 일을 해나갈 수 있을 것 같다."




- 당선된 직후 국회에 들어가서 가장 하고 싶은 게 무엇인가.

“국회 정문부터 비워 나가겠다. 현재 국회 앞에는 과거사법 제정을 촉구하는 형제복지원 피해자분들부터 데이트폭력으로 딸을 잃어 시위 중인 어머니도 계시다. 이러한 안타까움에 대해 공론화 작업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내가 마지막 ‘최연소 국회의원’이 되지 않기 위한 법 역시 발의할 것이다. 피선거권 연령은 선거권의 나이와 일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 존재가치가 ‘20대 국회의원’에 있다면, 엄연히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10대 국회의원도 필요하지 않겠나.”


 - 대학원생과 현장실습생 등의 권익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그에 그치지 않고 관련 입법활동을 해왔던 걸로 알고 있다어떤 이유로 대학원생현장실습생의 권익에 관심을 두게 됐는지그리고 당선 후에는 이와 관련하여 어떤 활동을 하려고 하는지 말해달라

"정치권 입문 계기부터가 학교로부터 학생들의 권익을 침해받는데 문제 의식을 느껴서이기도 하고. 나는 IMF로 부채를 지고 몸이 편찮으신 아버지와 요양보호사로 생계를 책임지는 어머니를 두고, 한국장학재단 판별 기준 ‘소득 2분위’로 가난한 삶을 살았는데, 욕심이 많아 대출까지 해가며 대학원에 진학하고 정치를 하고 있다. 그리고 이렇게 살아가는 과정에서 정말 가난한 사람들이 정치도 공부도 해나가기 힘든 사회라고 많이 느꼈다.


모든 교육정책은 상위 4%에 불과한 ‘1등급’들을 기준으로만 논의되고 있고, 국회도 여유 있는 사람들만 오다 보니 해결책을 논의하기는커녕 문제를 문제라고 인식시키는 것도 힘들다. 진영논리를 떠나 수월성교육이 아닌 보편교육의 질 제고에 관한 논의가 필요한데, 이는 EBSi의 수능 반영률을 대폭 높이며 강의 퀄리티를 높였던 MB 정부 때가 마지막이었다.


내 어머니는 가족들을 부양하느라 중학교만을 나온 게 평생의 한으로 남으셨는데, 60이 넘은 지금 방송통신고등학교에 진학해 그 한을 풀고 계시다. 이처럼 IT 기술의 진보가 우리에게 많은 변화를 가져다 줄 수 있는데 왜 논의는 답보 상태인가? 기술 선진국을 자처했던 대한민국이 ‘코로나19’ 사태가 터져서야 허둥지둥 온라인 강의 인프라를 구축하는 상황이 정말 웃긴 것이다. 온라인 로스쿨의 도입 전적으로 찬성하고, 온라인 강의 서비스인 K-Mooc의 학점 인정 확대와 국가 주도 학술 DB의 구축 등으로 실질 연구 비용을 감소시키는 등으 정책을 추진할 것이다. 교육은 국가의 책무이다. 헌법31조가 규정하고 있는 “모든 국민은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다”의 ‘능력’이 경제적 능력을 말하는 것은 아니지 않나."


‘국가 주도의 학술 DB’에 대한 추가 설명을 들어봤다.


“KISS, DBpia 등 학술저널은 고가의 이용료를 부과하는 것도 모자라 저작권 문제까지 일으키고 있다. 학자들이 자신이 쓴 논문마저 비용을 내고 다운로드 받아야 하는 아이러니까지 발생한다. 지난 2018년 국내 대학들이 일제히 학술저널 구독 보이콧을 선언하는 등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지만, 연구를 지속해야 했기 때문에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했다. 이렇게 학술 생태계가 왜곡된 것을 되돌릴 필요가 있다. 국가 주도의 ‘오픈 액세스(Open Access)’ 학술 DB를 구축하고 전적으로 지원하는 법안을 만들고자 한다.”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출마를 하고 나서 말해 진위를 의심받을 수도 있지만, 나는 처음부터 정치를 하기 위해 달려온 게 아니다.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이를 이뤄줄 수 있는 정치인을 찾기 위해 정치권에 왔는데, 아무도 관심을 별로 기울여주지 않더라. 많이 실망하고 분노하자 한 정치 선배분이 충고해주시기를 “자기가 원하는 건 남한테 기대할 것 없이 직접 쟁취해야 한다”고 하시더라. 직접 플레이어로써 나서자고 다짐한 계기다.


모든 사람이 그렇듯 나는 완벽한 사람이 아니다. 혹자는 너무 어리다고 할 수도 있고, 혹자는 너무 성급히 많은 것이 바뀌길 바란다고 평가하시기도 한다. 그런데 국회에 나이가 많은 사람이 많았나? 찬찬히 일을 진행해서 도대체 무엇을 바꿨나? 다른 목소리가 필요하고, 다른 목소리를 낼 자신이 있다. 이번 국회에 ‘엄마·아빠 찬스’ 없이 살아온 이설아가 국회에 가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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