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밤의 낭만
달이 밝은 날 우린 만나기로 약속했다.
밝음의 기준을 누가 세우냐 따위는 애초에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단 한 가지도 확실한 게 없었으나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당신은 선명한 웃음을 지었고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따뜻했다. 반쪽짜리 달이 기울고 있었고 옅은 별들이 반짝였다. 우리는 서로 한참을 바라보다 지긋하게 입을 맞췄고 뜨겁게 앓았다. 여름밤 풀벌레 소리가 귀를 찔러댔지만 서로의 호흡에 집중하느라 그 소리조차 듣지 못했다. 당신에게 내가, 내가 당신에게 깊게 물든 여름밤의 낭만이었다.
사랑한다는 말조차 서툴 때가 많지만 단 한 번도 그것이 사랑이었을까 의심해본 적 없었다. 사랑은 사랑이었고 그 순간은 모두 진심이었다. 표현에 대해선 거리낌 없는 나였지만 가끔씩은 내 마음이 전부 들킨 것 같아 불안하기도 했다. 이상하게 당신 앞에서는 어떤 것도 숨길 수 없었다. 표정을 숨기고, 마음을 감추고, 어느 정도 재며 연애의 법칙이 있다고 말하는 것들은 모두 ‘완전히 그 사람을 사랑하지 않았을 때’라는 전제가 붙는다는 걸 그때 알았다. 어떤 것도 내 마음처럼 행동할 수 없었다. 나의 어떤 것도 내가 될 수 없었다. 당신을 보면 나도 모르게 배어 나오는 표정과 행동 그 모든 것이 당신의 것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얼마나 오랜 시간이 흘렀는지 가늠조차 될 수 없을 때 홀로 맞은 여름밤은 맥없이 풀어졌다. 흐른 시간에도 줄곧 아팠다. 나는 얼마나 더 밝은 밤이어야 하는지에 대해 오래도록 생각했다. 일본에 어떤 소설가가 “i love you”라는 구절이 쑥스러워서 “오늘 달이 참 밝네요.”라고 번역했다는 이야기에 대해서도.
밝음의 기준은 모호했고, 우리는 만나지 못했다.
모호했으므로 만나지 못했다고 단정 짓는다면 조금은 더 마음이 편할까.
어둠이 짙게 깔리고 달이 밝은 어느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