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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쪽지 May 28. 2020

엄마는 엄마 생일에도 미역국을 끓인다.

생일상(生日床).

"괜찮아요. 마음 쓰지 마세요."



 번째 전화가 끊겼을  나는 엄마의 얼굴을 살폈다. 며칠 뒤면 엄마의 생신이었고 평소에는 잠잠하던 연락이 오늘따라 들끓었다. 수화기 너머로 친척들의 안부 인사가  가쁘게 넘어가고 나는 엄마가 얼마나  말을 자주 하는  헤아렸다. 일부러 작정하고 수를 헤아리려는  아니었고 침대에 누워 노래를 듣고 있어도 음악보다  목소리가  또렷하게 들렸다. 같은 흐름으로 끝말을 흐려도 결국에는 같은 말이었다. 엄마의 생신이면 근처에 사는 고모가 미역국을 끓여주시기도 했는데 우리가 끓이려고 해도  고모가 선수를 치는 바람에  년간은 엄마 생신에 고모의 미역국을 먹었다. 이번에도 고모가 끓여주시는가 보다 했는데 올해는 고모가 바빠서 넘어간 모양이었다. 엄마는 서로 챙기는 것도 일종의 일이 되어버린다고 서로서로  해주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 했다.



엄마는 엄마가 된 후로 "괜찮으니 신경 쓰지 마."라거나, "마음 쓰지 마."라는 말을 줄곧 했다. 엄마가 되면 으레 그래야만 한다는 본인만의 결의에 의한 것이었을까. 특정한 기념일에는 유독 그랬는데 엄마는 엄마가 딸에게 무언갈 받는다는 것조차 부담스러워 보였다. 동생과 내게 `생일`이라는 건 그 어떤 기념일보다 중요한 날이었는데 엄마에겐 그렇지 않은 것 같았다. 생일이 다가오기 한 달 전에는 "엄마 이번 생일선물도 신발 사주는 거야?" 하고 원하는 신발을 한 켤레찜을 해두기도 했는데 엄마는 생일 하루 전날까지도 생일에 대한 이야기를 한 번도 하지 않았다. "엄마, 갖고 싶은 거있어?"라고 하면 엄마는 항상 같은 어투로 "엄마는 편지 한 장이면 돼." 하고는 씨익웃어 보였다.



그날 밤에는 온 집안에 참기름 냄새가 고소하게 퍼졌다. 빨간 스테인리스 냄비에 지글지글 타는 소리가 귀를 찔렀다. 우리 집은 부엌과 거실이 그렇게 멀리 떨어진 편이 아니라 부엌에서 요리하면 거실 전체에 음식 냄새가 났다. 오늘 저녁은 어떤  메뉴인지 대략 유추가 가능해 후각만으로 동생과 어떤 요리인지 내기를 하기도 했다. 그날도 동생과 드라마를 보고 있다가 뭔가 보글보글 끓이는 소리가 났다. 동생과 나는 서로 눈을 맞추고 "미역국?" 하며 엄마를 쳐다봤다. 아니나다를까 전날에 잡채 거리와 미역국 거리로 엄마가 요리를 하는 모양이었다. "누가 끓이든지 그건 상관없다. 너희가 내 생일이라고 준비해놓은 것만으로도 충분히 고맙데이."라 했다. 우리는 소리를 빽빽 지르며 당장 그만두라는 말을 덧붙이며 엄마를 막았다. 



지난 2년간은 멀리 타지에 떨어져 있어서, 또 3년간은 고등학생이라 바쁘다는 핑계로 엄마의 생일상을 챙겨드리지 못했는데 재작년부터는 우리가 미역국을 끓이고 있다. 사실 더 어릴 때는 엄마가 자신의 생일을 위해 미역국을 끓인다는 걸 자각하지 못했다. 생일에는 미역국을 먹는 거고 내 생일 때 미역국이 있는 것처럼 엄마 생일에도 미역국이 있는 게 자연스러운 현상이라 생각했다. 근데 사실은 그게 아니었던 거다. 엄마는 자신의 생일에도 미역국을 끓인다. 아빠가 끓여줄 때도 몇 번 있었지만, 그보다 엄마가 엄마 자신을 위해 끓인 미역국이 더 많았던 거다.



미역국을 처음 끓일 때는 주체못할 만큼 많은 미역을 감당하지 못해 미역국을 할 만큼만 빼고 나머지는 다 냉장고에 처박아뒀다. 끓여주는 미역국만 먹느라 미역은 물에 넣으면 엄청나게 불어난다는 걸 몰랐던 거다. 20인분이라고 적힌 종이를 읽지도 않고 한 손 가득 든 미역은 끝도 없이 불었다. 다음날, 그 다음 날도 생미역으로 빨간 초장에 푹 찍어 먹어야 했고 그 다음 날은 미역 무침, 미역 볶음..끝도 없는 미역의 향연이었다. 이제는 요리도 어느 정도 하고 실패했던 전적도 있어 미역국 하나쯤은 단숨에 끓인다. 참기름 몇 방울을 달궈진 냄비에 떨어뜨리고 국거리용 소고기를 넣고 익을 때까지 저어준다. 소고기가 익으면 미역에 물기를 짜고 다진 마늘을 한 숟가락 정도 넣고 살짝 볶는다. 그다음은 물을 넣고 간장을 넣고 소금을 살짝 뿌려주면 끝. 고소하게 올라오는 향이 좋다. 보통은 소고기 미역국을 하는데 올해는 특별히 전복미역국으로 했다. 과정은 비슷한데 전복을 손질하는게 쉽지는 않다. 부들부들한 느낌이 입에 넣을때는 사르르 녹는데 손으로 만지니 영 달갑지 않았다. 전복을 손에 쥐고 문지르며 흐르는 물에 헹군다.
원래는 전용 솔같은 걸로 빡빡 문질러야하는데 집에 그런게 있을턱이 있나. 손으로 빡빡 씻어낸다. 숟가락을 넣어 살살 돌려주면 전복살이 분리가 되고 뒤집어 내장과 이빨도 칼로 도려내 빼준다. 비위가 약한 나는 손질할 때는 엄마를 불러 부탁했다.



“엄마는 언제부터 이런걸 잘 했어?”

“엄마도 처음엔 못했지. 하다보니까 하게된거야.”



엄마는 미역국도 처음부터 혼자 끓인건 아니라는 말이었다. ‘하다보니’라는 말에 괜히 마음이 씁쓸해져 머쓱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어릴 때는 삐뚤삐뚤한 편지를 눌러쓰고, 엄마를 그린 그림을 선물로 드렸는데 언젠가부터 동생과 돈을 모아 엄마 생신 때는 포장까지 예쁘게 해서 꼭 선물을 사드린다. 편지는 글씨를 쓰기 시작하고서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빠트린 적이 없다. 어른이 되면, 특히 엄마가 되면 선물을 받을 날이 적고 자신을 위한 날이 적기에 일 년에 한 번은 정말 당신을 위한 날을 만든다. 평소에는 거들떠보지도 않는 미역국을 생일에는 꼭 필수품인 것처럼 끓인다. 내 생일보다 더 거창한 날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끓이면 끓일수록, 푹 끓인 만큼 미역국은 맛있다. 마음에 허한 부분까지도 푹 끓여낸다.


우리가 이렇게 엄마의 생신을 챙기는 것 만큼 엄마는 생일날 아침에는 꼭 외할머니에게 전화를 드린다.


"엄마, 내 낳아줘서 고맙데이. 소고기 보냈으니까 맛있게 먹고."


수화기 너머로는 뭘 또 보냈느냐고 생일을 축하한다는 할머니의 목청이 가슴을 찡하게 만든다.


"역시 딸이 좋아."


이 말 한마디를 듣기 위해 나는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엄마는 보기 좋게 차려둔 밥상에 평소에는 안 찍는 사진을 찍고 한술 뜬다.


나도 엄마가 되면 어색해하지 않고 내 생일날 "엄마, 나 낳아줘서 고맙데이."라는 말을 할 수 있을까?


사실 모든 생일은 특별하다. 내가 태어났고 살아가고 살아있는 이유이기도 하니까. 더 소중하고 덜 소중한 사람이 있을까. `엄마`는 `엄마`여서가 아니라 `엄마`는 `엄마`기 때문에 생일상을 더 차려드려야 하는 게 아닐까. 감동을 하면 쉽게 눈시울이 붉어지는 엄마는 생일상을 받고 또 눈물을 글썽였다.

  

생신축하드려요.
태어나주셔서, 우리 엄마가 되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엄마라는 이유로

받지 못할 선물은 없다.

* 엄마의 오래된 휴대폰으로 찍은 사진이라 다소 화질이 떨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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