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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aseinate Jul 15. 2017

열정과 희망에 배신당하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는 것은 대중매체에서 긍정적으로 여겨진다. 광고나 드라마에서는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오랜 고통을 겪어도 즐거워하는 이들이 나온다. 그들은 열정을 가진 사람으로 찬양받거나, 어려움을 겪고도 마침내 꿈에 도달하는 영웅으로 그려지기도 한다. 

강연에서 열악한 근로조건, 불안정한 근로계약, 앞이 보이지 않는 불안전한 전망 속에서도 자신이 사랑하는 일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긍정적으로 그리는 멘토들도 있다. 오늘도 많은 청년들이 자신의 꿈을 위해 열악한 환경으로 나아간다. 그리고 언젠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꿈과 부, 직업을 모두 거머쥘 수 있기를 바란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산다면 다른 조건은 조금 나빠도 된다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미야 토쿠미츠의 <열정 절벽>은 이런 현실을 비판하는 책이다. 책의 서문에 나오는 미켈란젤로의 이야기는 흥미롭다. 르네상스의 예술가로 유명한 미켈란젤로 역시 시스티나 예배당의 천장화를 그리면서 엄청난 고통을 느꼈다고 한다. 미켈란젤로는 오랫동안 같은 자세로 그림을 그리는 동안 덫에 갇혀있는 느낌을 받았으며, 갑상선종이 악화되었고, 몸은 활처럼 휘어져가며 고통을 겪었다. 심지어 그는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여기는 내가 있을 곳이 아니라고 말하기까지 했다. 

미켈란젤로같은 위대한 인물도 자신의 일을 고통스럽게 여겼다는 사실은 놀랍다. 낭만적으로 묘사된 아름다운 동기와 이야기가 일을 아름답게 만들지는 않는 것이다. 이는 예술계뿐 아니라 열악한 근로조건을 갖춘 대부분의 일이 그렇다. 현대 사회에서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근로자에 대해 말한다. 자신의 꿈과 일을 사랑하며 미래를 이야기하는 모습을 그리는 모습이 긍정적으로 그려지는 동안, 부와 즐거움, 일을 하나로 보고 노력한 사람들은 막대한 희생을 치러야 했다.

물론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은 모두에게 좋은 일이다. 하지만 모두가 이러기는 쉽지 않고, 일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는 것은 더욱 쉽지 않다. 저자는 일과 사랑을 동일시 하는 관념인 DWYL(Do What you love)이 만연한 현실을 비판한다. 저자는 DWYL 정신이 근로자에게 자기만족을 강요하고, 객관적인 근로조건을 직시하지 못하게 만들며, 제 값을 받지 못하는 노동 역시 정당화한다고 본다. 그리고 근로자가 DWYL 정신에 따라 일하기 위해 어떤 희생을 치르는지 고발한다.

저자는 우선 인정받는 일과 그렇지 못한 일이 나뉘어있는 현실과, 인정받지 못하는 일이 외면당하는 모습을 그린다. 현실적으로, 모든 사람이 인정받는 일을 할 수는 없다. 누군가는 재미가 없거나 상대적으로 덜 가치있다고 여겨지는 일을 하게 된다. 계층화된 정체성을 부여하고,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일은 점점 더 좋은 모습으로 포장되지만 생산직과 업무 지원직의 현실은 생략되곤 한다. 유명인들이 강조하는 직업과 꿈에 관한 이야기는 이런 현실을 의도적으로 감춘 경우가 많다.

이렇게 일에 대한 평가가 나뉜 상황에서, 꿈과 관련된 인정받는 일을 하기 위해 사회에 뛰어든 이들은 절벽을 마주하게 된다. 열정을 강조하고 열정의 중요성에 대해 설파하는 멘토들이 강연에서 자주 발견된다. 대학원 광고에는 열정이 있는 곳에 성공이 따른다는 문구가 붙기도 한다. 하지만 열정만으로 되는 일은 없다. 잘 준비된 학위와 조력자가 되어줄 수 있는 연줄, 전문 경험이 있어야 가능한 것이다.

열정을 착취하는 이들에게 이런 청춘들은 좋은 먹잇감이다. 존재하지 않는 일자리를 위해서 싼 값에 일하는 고통을 잘 참아주기 때문이다. 대학의 겸임 교수나 회사의 인턴이 특히 그렇다. 겸임 교수는 자신이 교수가 될 것이라고 굳게 믿는다. 결국 다른 이들이 대학의 지원을 받아서 할 업무를 겸임 교수는 스스로 해결한다. 그들은 고도로 숙련된 일을 하지만 대부분 시간제 일자리에서 일한다. 겸임 교수의 소득만으로는 가정을 꾸리기 쉽지 않다.

과학 분야의 박사후 연구원들은 언젠가 자신들이 연구실을 감독하는 교수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고작 15%의 박사후 연구원들만이 자신의 목표를 이룬다. 나머지 사람들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자리를 위해서 단기 계약에 매달릴 뿐이다. 인턴은 자신이 정규직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부당한 대우도 감사한다. 고용주는 이런 짧은 기간 저렴하게 쓸 수 있는 노동력에 만족한다. 이들은 상위 계층으로 올라가기 위한 '희망 노동'을 하기 때문에 무보수마저 감수하기도 한다. 

병원 레지던트, 마이너리그 선수, 겸임 교수, 그리고 인턴 등은 훨신 많은 돈을 받는 동료와 거의 비슷하거나 심지어 똑같은 일을 한다. 시간제나 비정규직을 선호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상위 계층으로 올라가기 위해 노력한다. 하위 계층에서 일하기는 하지만 자신이 경력 사다리의 시작점에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115P

책에는 이런 일이 이코노미석 맨 앞줄에 앉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언급이 있다. 다른 좌석의 모습이 매혹적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곳에 다다르지 못한다는 점에서 말이다. 저자는 책의 결론 부분에서 일이 우리 삶의 중심이 아닌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금의 직업윤리는 몹시 위태로워진 상황이며, 일이 중요하다고 해도 다른 인간적인 욕구를 포기하고 살아갈 수는 없다. 구체적으로는 근로시간 단축 등을 통해 잉여시간을 되찾고 일중독에서 탈피한 문화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이 책은 열정과 꿈이 강조되는 이면에서 점점 더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게 되는 이들의 모습을 다루고 있다. 그래서 이전에 한국에서 출판된 바 있는 <열정은 어떻게 노동이 되는가>라는 책과 유사한 비판의식을 느낄 수 있다. 대학의 겸임 교수와 인턴의 예로 미국의 사례를 풀은 점, '인정받는 일'에 관한 사회의 시선을 다룬 점에서 가치가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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