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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esignBackstage Jul 03. 2024

살아남기 위한 멍때림

<과학> 이기적 유전자

멍하게 앉아서 노을을 바라보고 있다. 명상하는 내 모습이 아니다. 수학숙제를 하는 초5 아들의 모습이다. 부모의 역할은 아이를 기다려 주는 것이다는 말을 새기며 난 그를 바라보고 있다. 노을이 지는 것을 보는 게 이제 충분했다고 여겼는지 고개를 숙인다. 문제를 풀 줄 알았던 그의 시선은 지우개에 꽂히더니 지우개를 박박 문질러 가루를 내고  조물딱 거린다. 어이없게도 그 형태가 또 섬세하다. 지우개를 뺏을까 고민하다 다시 기다려 보기로 했다. 나지막하게 부르니 놀랐는지 다시 문제를 푼다. 한 문제 풀고는 이제 책 모서리에 달리는 사람의 모습 켜켜이 쌓아 그리더니 스톱 모션을 제작하고 있다. 책장을 아무리 빠르게 넘겨도 고동치는 내 심장박동보단 빠르게 달리진 못할 거라 생각했다. 심호흡을 크게하고 화내지 말자 다짐하며 서재로 고개를 돌렸다. 서재에 ’유전자’라는 글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문제의 근원을 찾아보자 다짐하며 ‘이기적 유전자’를 꺼냈다. ‘도대체 너는 어떤 이기적인 유전자를 가지고 태어난 거니?’ 내 호기심 기둥이 강렬하게 흔들리다 못해 뿌리 채 뽑혀 나갈 것 같았다. 감정의 소용돌이가 나를 집어삼켜 버릴 것 같았던 그 순간 검은색 북커버가 날 차분하게 다독였다. ‘일단 숨 돌리고 앉아 읽어봐’ 라며 속삭였다. 

 

이 책이 오랫동안 사랑받은 과학교양서라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두꺼운 검은 과학책이라 겁에 질려 읽기를 미루고 있던 터였다. 하지만 오늘 만난 블랙커버는 위압감보다 차분함을 더 크게 주었다. 서재에 검은색 두껍고 무서운 포스를 자랑하는 <코스모스>가 있었다면 그 또한 정독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일단은 몸 안의 우주를 향해 내달려보고, 그래도 답을 찾지 못한다면 코스모스의 광활함에 뛰어들어야겠다 생각했다. 표지에 산세리프체의 폰트가 가운데 정렬로 되어있고, 폰트 아래로 무지개색 물결이 보인다. 각기 다른 유전자의 결합으로 각양각색의 개체가 존재한다는 것을 말하는 걸까? 모두가 다름을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걸 알고 있지만 지금은 근원적 질문에 대한 답이 알고 싶었다 ‘대체 왜 저러는 거야?’ 

 

이거 다 유전인 거 아냐?’라는 말로 무책임하게 말을 할 때가 많다. 주로 아이를 키우는 집 대화 속에 자주 등장하는데, 유전에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유전자는 대체 뭘 까?  유전자는 복제 정확도가 뛰어난 자기 복제자라 정의하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복제 정확도는 사본 형태로 서의 수명을 나타낸다고 한다. 정리해 보면 유전자는 살아남기 위해 이기적인 유전자로 프로그래밍 되어 있다는 뜻이다. 인간도 동물도 자연선택을 거쳐 진화한 것은 무엇이든 이기적일 수밖에 없다. 남극 황제펭귄도 바다표범에게 잡아 먹힐 위험이 있어 물가에서 바로 뛰어들기를 주저한다. 누군가 뛰어들면 바다표범이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있어 무리 중 하나를 떠밀어 버리려고 한다는 것이다. 본인의 이익을 위해 다른 사람의 희생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 이들을 특히 회사생활 하며 자주 접하곤 하는데 이 또한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학습된 것이라는 뜻이다.

 

이 책에서 인간은 유전자의 보존이라는 목적을 가진 생존기계로 통칭된다. 이런 기계들 간에도 싸움과 갈등이 고조되는데 바로 부모 자식 간의 갈등을 흥미롭게 논하고 있다. 자식은 끊임없이 부모를 속이려 하고, 부모는 끊임없이 자식에게 도움을 주려한다 이렇게만 보면 자식은 이기적이고 어미는 이타적이라고 볼 수 있지만 사실은 모두가 이기적인 활동을 하는 것이다. 자식들은 본인들이 살기 위해 더 배고픈척하거나, 어리광을 부리거나 더 큰 위험에 처한 것처럼 부모를 속이는 것이다. 다른 형제들과 나누어야 할 식량과 사랑을 독차지로 하기 위한 고도의 심리전인 것이다. 부모들은 그들을 한없이 보살피고 돕는다. 그 또한 자신들의 좋은 유전자를 널리 퍼트리려는 이기적인 행동들이라고 한다. 아이들에게 외치는 ‘너를 위해 그런 거야!’라는 말의 뒤에는 아마도 이런 말이 생략된 건 아닐까? “너를 위해 그런 거야! 네가 사회에서 네 몫을 해내고, 매력적으로 자라서 좋은 배우자를 만나 우리의 유전자들을 이어 나가 줘”라고 말이다. 

 

강한 사람이 살아남는 게 아니라, 살아남는 사람이 강한 자라는 말처럼
살아남기 위해 하는 행동들은 지극히 본능적이다.


 아이가 수학문제를 풀 때 바라보던 노을은 어느새 지고 깜깜한 밤이다. 여전히 숙제를 못 끝내고 놀이와 숙제 그사이 언저리에서 혼자 즐기고 있는 그를 보며 생각했다. ‘저 모습은 수많은 자연선택으로 그에게 유리한 건가?’ ‘수학문제를 아무리 많이 풀어도 최고가 될 수 없다 판단해서 빠르게 태세 전환을 한 걸까?’ ‘노을을 보며 잠시 이 시간이 그냥 흘러가길 바랐던 걸까?’ 아이의 생각을 유추하다가 깜짝 놀랐다.  내가 했던 학창시절에 했던 생각들이었다. 

 

결국 자식에게 나와 배우자의 성격, 체질, 형상을 따위를 반반씩 물려주고,
그들은 사회변화에 맞춰 커간다.
문뜩 내가 잊고 지냈던 나의 무수한 어린 시절이 그들을 통해 투영될 때
유전자의 힘은 놀랍고도 강력하다 느껴진다. 나보다는 좀 더 나은 아이로 키우고 싶다는 이기심과 그가 살아남기 위해 벌이는 강한 이기심이 충돌하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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