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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나미 Apr 11. 2017

멕시코에서 면접을 봤다

멕시코에서의 일상 에세이



4월 6일 목요일 낮 1시


"띠링"


오랜만에 메일이 왔다.

너무 오랜만이라 스팸메일이겠거니 생각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확인해봤다.



"어?!"


뭔가 이상하다.

Buenas tardes(안녕하세요)로 시작한 문장은 Saludo(안녕히 계세요)로 끝나는 데 

메일 전문이 4 문장이 채 안된다.

가운데 끼여있는 문장들은 다짜고짜 내일 6시에 면접을 보러 오라는 것.




지난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계속해서 현지, 국내 번역 구직활동을 했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거절당하기 일쑤였다.


그래서 넣어버린 현지 대학교 부설 어학원 한국어 강사 지원서.


심지어 이 동네에는 한국어 강의를 하는 곳이 없을뿐더러

어학원 내에서도 없다.

내가 가르치고 있는 학생 한 명이 한국어 강사 구한다더라 하는 말만 믿고 

작년에 한 번, 올해 초에 또 한 번 이렇게 넣어봤지만 바로 답이 없어서 강의 개설 안 하나 보다 싶었다.

강의 개설 여부도 모른 채 무작정 이력서를 들이민 것이다.




그렇게 난 당연히 면접을 가겠다고 하고 10분짜리 시험 강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준비해서 갔다. 







 


4월 7일 금요일 저녁 6시


멕시코에서 나의 대학생활을 증명할 수 있는 것이 없기 때문에

한국에서 가져왔던 대학 졸업증명서며, (만기 된) 어학증명서, 현재 가르치고 있는 한국어 커리큘럼, 

한국어 교재, 심지어 비자 진행되고 있음을 증명하는 서류 등 

가져갈 수 있는 것은 모두 가져갔다.


또,

이 동네에서 나만큼 (스페인어로) 한국어를 잘 가르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고 스스로에게 세뇌하며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켰다.




기다리던 면접.

어학원 인사 총괄 자라고 해아 하나 원장님이라 해야 하나 여하튼 그분의 사무실에서 1:1 면접이 이루어졌다.

생각보다 구체적이었지만 조심스러웠던 면접이었다.




나에게 물어보고 싶은 것이 많았는지 이것저것 하나하나 확인하는 작업이 시작되었다.


왜 여기 왔니, 어떻게 여기를 알고 지원했니, 애는 있니, 영어랑 스페인어 둘 다 할 줄 아니, 한국어를 가르치는 것은 어떤 거니, 초급자가 한국어 배우는 게 쉽니 어렵니, 스페인어로 한국어 가르치는 게 어렵지 않니, 영어 가르쳐 본 적 있니(이건 전혀 예상도 못했다) 등등




스페인어와 질문과 관련된 나의 답변은 간략히 이랬다.

내가 지금 말하는 걸 들으면 알다시피 난 스페인어를 전문적으로 하지 못한다.

하지만 지난 1년간 한국어를 가르치는데 스페인어를 사용했던 경험으로 내 수업에 있어서 만큼은 언어 사용에 문제가 없다.




사실이다.

비록 스페인어과를 나왔지만

나의 스페인어 능력은 스페인으로 교환학생 가기 전이(아이러니하게도) 제일 피크를 쳤고 지금은 하향세에서 멈췄다.

쓰는 말만 쓰고, 특별히 공부도 안 해서 늘지 않는다.

다만 수업 중에는 내가 현지인들을 이해시켜야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용어를 익히게 되고, 외우게 되었다.

그래서 한국어 초급반에서 만큼은 스페인어를 섞어 쓰는 것이 가능하다. (비록 문법이 좀 틀리긴 해도)





그리고 담당자가 말하는 여기서 한국어 수업을 열려고 하는 이유는 이렇다.

멕시코 내 한국 기업들이 들어서면서 한국 회사에 취직하려는 현지인들이 많아지고 있다.

내가 살고 있는 곳 역시 한국 기업들이 점점 늘어나는 추세라 교내 학생들이 한국어 수업을 들으면 

타 대학교 학생들보다 경쟁력이 있다고 판단되었기 때문.





면접을 진행하면서 

이번 기회가 아니면 없어!라는 생각은 접어둔 채

'너네가 어디서 이런 고급 인력을 구할 수 있을 것 같아?' 조금은 건방진 자신감으로 면접을 봤다.

하고 싶은 스페인어가 안 떠올라 머리 굴리는 걸 다 티 냈지만.



불행인지 다행인지

담당자를 비롯하여 아무도 한국어를 모른다기에 

3명의 사람을 대상으로 시험 강의 30분을 해달라고 했다.

세마나 산타 휴가 기간이 지난 24일에.


차라리 오늘 하고 끝내버리고 싶었는데 긴장되는 기간이 길어져버렸다.







남은 기간은 2주일.



'그래, 너네가 나를 안 뽑으면 손해지'

'어차피 아무도 한국어 모르니까 시험 강의가 아니라 왕초급반 강의를 한다고 생각하자'

'한글 무료 강의해준다고 생각하지 뭐'


내 강의를 평가한다는 생각을 하면 부담스럽지만 

한국어를 모르는 사람에게 강의를 한다고 생각하면 한결 낫지 않을까 싶은 마음에

자기 위안을 위해 최대한 마음을 놓으려고 하는 중이다.


그런데 이 와중에도 가장 궁금하고 걱정되는 건 

급여 수준이 턱없지는 않을까.


그래, 만약 차비하고 지금 과외비도 안 나올 정도면 확 때려치울까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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