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에 머물다 현재의 감정을 완성시키는 냄새들이 있다. 나에게 후각은 시각이나 청각보다 경험했던 사건과 사람들을 가장 생생히 떠올리게 하는 감각이다. 공들여야 기억이 떠올르는 것이 아닌 단 한 번의 들숨에 나를 그곳으로 데려간다. 그것이 나의 최초의 기억이라도 말이다.
엄마 등에 업혀있다. 내 머리 위로 얇은 가제수건[Gaze手巾, 가볍고 부드러운 무명베로 만든 수건. 독일어 Gaze는 영어의 Gauge(거즈)]이 덮여 있다. 잠자는 나의 얼굴에 햇볕을 가리기 위해 덮어 준 것이다. 그 수건 안쪽으로는 엄마의 살갗 냄새와 뽀송한 빨랫비누 냄새가 은은하다. 엄마가 불러주는 자장가는 그의 등 울림통을 타고 진동이 되어 내 몸으로 전달된다. 높은음에 등에 닿은 왼쪽 볼이 따뜻하고, 낮은음에 가슴 전체가 간지럽다. 앞으로 뒤로 한 발씩 반복하는 걸음은 물속에서 춤을 추는 듯하다. 눈을 떴을 때 가제수건 안쪽은, 햇볕의 그늘과 엄마의 살 색깔이 적당히 섞여 따뜻한 복숭아색이 가득했다. 등과 맞닿은 곳을 통해 온몸으로 느껴지는 나지막한 진동, 멀리서 들리는 콧노래 소리 그리고 작은 세상을 가득 채운 색. 햇볕을 머금은 수건을 접어 개키다가 잠시 그 시점에 다녀온다.
빛이 물체에 의해 차단되거나 공간에 빛이 충분히 닿지 않을 때, 그늘과 그림자가 생긴다. 그늘과 그림자, 이 두 가지를 구분 지어 생각해 보면 그림자와 다르게 그늘에는 가늘고 나직하게 빛이 숨어있다. 그래서인지 그늘에서의 빛은 더 부드럽고 아름다운 색을 낸다. 다르면서 어우러지는 그 사이의 적당한 온점같이. 하지만 특정 시간이 지나고 한 톨의 빛 없이 그림자가 채워지면 내 기억 속 등장인물은 다른 상황을 경험하게 된다. 그늘에서 그림자로의 순간은 찰나에 교차되기 때문이다.
몇 해 전 일이다. 반지하 골목길을 지나고 있었다. 순간 코끝에 걸린 습기를 닮은 그림자 냄새에 수년간 웅성거렸던 기억들이 또렷해지면서 시각과 청각이 잠시 고요해졌다. 창 밖으로 사람들의 정강이가 보이는 우리 집은 천장에서 줄을 당겨 불을 켜야 했다. 형광등의 몸통과 연결된 줄 끝에는 손톱만 한 작은 플라스틱이 달려 있었고 손이 자주 닿았던 한 뼘 정도는 몹시 꾀죄죄했다. 7살 가을, 그날은 이른 저녁부터 혼자 있는 시간이 길었다. 달력 뒷면에 그림 그리기로 시간을 보내다 방이 어두워져 줄을 잡아당겨 불을 켜고 싶었다. 한데 그날따라 이상하게 줄이 짧아 손에 닿지 않았다. 아무래도 아빠가 지나가다가 줄이 머리에 자꾸 닿는다고 말했었는데 두 뼘 정도 묶어 놓은 모양이다. 엄마의 화장대 의자를 가져와 성큼 올라가 발뒤꿈치를 한껏 들어 간신히 작은 플라스틱이 손에 닿는 순간바닥으로 고꾸라져 머리를 찧었다. 뒤통수에 혹이나 얼얼했다. 한참을 뒤통수를 부여잡고 울면서 잠이 들었다 깨다를 반복했다. 결국 형광등을 못 킨 채 그림자 가득한 방에서 엄마와 아빠가 빨리 오기만을 기다렸다. 작은 불을 켜주길 기다렸다.
이처럼 그늘에게 한정된 시간이 지나게 되면 빛이 섞인 색은 자연스레 빠지게 되어 어둠(그림자)으로 넘어가는 순간이 있다. 빛과 사물의 상호작용처럼 기억과 감정이 가지는 균형적인 [균형의, 균형 잡힌] 순간인 것이다. 어둠과 빛의 경계에 위치한 두 세계가 서로 교차하는 그 자체만으로 심상적인 경험과 연결될 수 있다.
기억의 깊은 곳으로부터 특정시점으로의 방문은 섬세한 감각이 될 수도, 타인이 될 수도, 나 일 수도 있다.
오늘 잠시 다녀갔던 그늘 속 기억처럼 부지런히 궤도를 살아가는 등장인물들의 표정을 한번 더 다정하게 관찰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