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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움직이는섬 Sep 29. 2016

#06. 매너가 상급자를 만든다.

새로운 취미를 시작했다면 잘 하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 꼭 타인과의 경쟁에서 이기려는 목적이 아니라도 마찬가지이다. 좋아서 시작한 일이라면 잘하고 싶은 마음은 당연할 테니까. 나에게는 수영이 그렇다. 멈추지 않고 한 번에 20m를 갈 때의 그 기쁨이란!


어느 수영장이나 비슷할 것 같은데, 내가 다니는 곳은 라인에 따라서 수준이 나뉜다. 당연히 가장 얕은 곳은 초급자들을 위한 공간이고, 그곳에서 제일 멀리 떨어진 라인이 상급자를 위한 자리이다. 초급자와 상급자는 실력으로도 가까워질 수 없을뿐더러 공간적으로도 멀리 떨어져 있다. 사실 초급자 내 입장에서는 가까이 가고 싶지도 않다. 유려하게 헤엄치는 그들에 비해 내가 하는 건 발버둥처럼 보이니까.


상급자의 실력을 갖추려면 어느 정도의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까. 개인차가 있겠지만 분명한 건 하나 있다. 내가 계속해서 백수 상태를 유지해서 지금처럼 수영에 시간을 투자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래도 변명은 하나 생긴 셈이다.


왜 취업을 안 하세요, 라는 질문이 온다면 이렇게 대답하리. 수영 상급자가 되려고요!


물론 백수에게는 돈이 없으니 시간이 남아도 강습을 받을 수는 없을 거다. 고로, 수영보다 취업에 더 많은 시간을 쏟을 수밖에.   

 



상급자가 되어 마음껏 뽐내며 수영하고 싶다는 생각을 이어갈 즈음에 있던 일이다. 강습을 마치고 호각 소리에 맞춰 마무리 체조를 하던 어느 날, 강사님이 공지사항을 전달해왔다. 내용은 상급반의 불만사항이었다. 초급반으로 보이는 인물들이 수영장에 입수하기 전에 샤워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아마도 그 말을 듣고 ‘뜨끔’한 분들이 많았으리라. 나도, 뜨끔, 했고. 정확히는 반만 뜨끔 했다. 씻긴 했지만 대강 씻었기에.


잘못에 대해 지적받으면 사람들은 어떻게 반응할까. 뉘우치고 반성할까? 애석하게도 초급반의 몇몇 회원은 그러질 못했던 것 같다. 반성보다는 적반하장으로 응수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 불만사항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자기 행동의 정당성을 피력하느라 변명거리를 찾기에 바빴다. 샤워실에 비누가 없어서 그렇다거나, 집에서 씻고 왔다거나, 사람이 너무 많아서 자리가 없다거나, 하는 등. 그렇다고 그들이 사회적 규칙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무정부주의자나 악인은 아니었다. 내 생각에 그들의 반응은 지극히 일상적이었다.


부끄러움을 감추고 잘못을 무마하기 위해서 상대방에게 날을 세우는 것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반응이니까.


마지막엔 왜 부끄러워했는지도 잊겠지... 그런 사람들 중에 나를 쏙 빼놓을 생각도 없다. 나 역시 그중에 한 명이니까.    


그 일이 있고 한동안, 나는 다른 회원들이 샤워하는 모습을 관찰하는 버릇이 생겼다. 얼마나 많은 회원들이 씻고, 또 안 씻는지. 안 씻는 사람 중에 혹시 상급자가 있는지 없는지. 소심하고 치졸해 보이지만 그런 나를 어찌할 수는 없었다. 그런 게 사람의 본능이라고 ‘데우스 엑스 마키나(deus ex machina)’를 꺼내들자.


관찰 결과는 좀 놀라웠다. 샤워실의 회원 중에 온몸을 깨끗이 씻지 않는 회원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부담을 갖고 수영을 다니면 오기 싫으니 목욕한다 생각하고 가볍게 오라던 강사님의 말에 충실하겠다는 듯, 심지어 몇몇 분들은 목욕에 가까운 샤워를 하기도 했다. 그날의 공지를 듣고 반성했기 때문인가, 라고 생각했지만 그건 아닌 것 같았다. 내가 있는 초급반 중 남자 회원은 단 셋이고, 그 당시 공지를 들은 남성은 나를 포함 단 두 명뿐이었기 때문이다. 결론은 어렵지 않았다. 그곳을 채운 사람들은 모두 초급 이상의 회원들이었고, 그들은 이전부터 수영장 매너에 따라 열심히 샤워를 했다는 걸 의미했다. 흠을 잡으려던 나의 치졸함은 여기서 뒤통수를 한 대 맞았다.   




초급이었던 건 나의 매너였다. 실력도 초급인데 매너까지 초급이라니, 이건 초급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그 규칙은 초급자도 지킬 수 있고 지켜야 하는 약속이었으니까. 자신이 속한 집단을 존중하는 가장 기본적인 매너로서.


아주 상투적인 결론이다. 매너 있는 인간이 되라는 말, 즉 자신의 위치에 상관없이 사회적 약속을 지키라는 말은. 그런데 너무 당연한 것이라 사람들은 이런 결론에 별로 신경 쓰지 않는 것 같다. 아무도 없는 도로에서 무단횡단을 하거나, 쓰레기를 길가에 버리거나, 탑승객이 먼저 하차하기 전에 지하철에 승차한다거나, 그리고 샤워를 안 하고 수영장에 입수한다거나. 중학교, 아니 초등학교 도덕책만 봐도 알 수 있는 내용인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러니까, 조금의 생각과 의식만 있다면 초급자·중급자·상급자 모두가 지킬 수 있는 약속이라는 의미이다. 애석하게도 현실은 그렇지 않지만. 초등학교 도덕이 사실상 너무도 어려운 문제를 다루고 있든지, 아니면 초등학생 수준도 지키지 않는 인간 군상들이 살고 있는 사회든지. 비극적이게도 현실 사회에서는 상급자의 위치에 있는 인간들이 더욱 매너가 없다는 사실.     


영화 <킹스맨>의 그 멋진 명대사를 떠올려보자. “매너가 사람을 만든다(manner maketh man).” 사실 매너가 만드는 건 상급자가 아니다. 매너는 단지 사람을, 다시 말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 뿐이다.


십 미터를 수영하든, 백 미터를 수영하든, 매너는 평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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