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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움직이는섬 Sep 25. 2016

#05. 자유 없는 자유형과 자기 없는 자기소개서

“너 수영할 줄 알아?”라고 누군가 우리에게 묻는다. 그때 우리는 어떤 수영을 머릿속에 떠올릴까? 이게 무슨 소리지?,라고 의아해하지 말고 한번 생각해보자. ‘수영’이라고 단어를 들었을 때 떠오르는 머릿속 장면이 무엇인지. 혹시 발동작은 열심히 위아래로 물장구치고 있지는 않은지, 양팔은 한 번씩 번갈아 휘젓고 있지는 않은지, 고개는 측면으로 들어서 옆으로 누운 듯이 호흡하고 있지는 않은지. 그 단편들을 다 종합해보면 그건 흔히 말하는 자유형은 아닌지.


우리는 어떤 단어를 들었을 때 그것의 대표적인 이미지를 떠올린다. 문화적·사회적·역사적·정치적 조건이 유사한 집단은 많은 부분에서 무의식적으로 공유하고 있는 것들이 있으니까. 더구나 같은 언어권에 속한다면 공유하고 있는 것들이 더 많을 것이다. 말은 사회적 약속이기에 그것이 지시하는 의미 역시 유사하기 때문이다. 물론 비슷해 보여도 자세히 뜯어보면 각 개인마다 세심한 부분에서 많은 차이가 나지만.


수영에는 다양한 영법(泳法)이 있다. 배영, 평영, 접영, 자유형, 그리고 개헤엄 등. 그런데 ‘수영’이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떠올리는 이미지는 대부분 자유형일 것이다. 모든 영법 중에 가장 빠르기에 멋지기도 하고, 발로 물장구를 치며 손을 허우적대는 모습이 가장 본능에 가까운 영법인 것 같기도 하고. 그렇기에 대표적인 수영법은 역시 자유형일 것이다. 물론 다른 영법을 떠올리는 사람도 있으니 단정은 어렵다. 만약 다른 영법을 떠올렸고, 자유형이 대표적인 영법이라는 말에 동의할 수 없다면, 조용히 뒤로 가기를 누르면...




수영의 대표적 영법인 자유형. 하지만 나는 모르고 있었다. 자유형은 자유영이 아니란 사실을.


둘째 날이었나, 아니면 셋째 날? 나를 포함한 초보 회원들에게 수영을 가르쳐주던 강사님은 자유형은 수영법이 아니라고 말해주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자유형의 정확한 명칭은 ‘크롤 영법(Crawl stroke)’이라는 설명을 첨부하면서 말이다. 자유형이란 말 그대로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자유로운 수영법 전체를 총칭하는 용어였다.


다른 수영법을 생각해보자. 배영, 평영, 접영 등등. 모두 끝에 ‘헤엄치다’라는 뜻의 ‘영(泳)’이란 한자가 붙어있지만, 자유형은 거푸집, 본보기, 모범을 뜻하는 ‘형(型)’이라는 한자가 붙어있다. 그러니까 다시 한번 말하자면, 자유‘형’은 헤엄치는 자유‘영’과는 다르다는 말이다. 배영도, 접영도, 평영도, 심지어는 개헤엄도 자유형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수영은 다이빙과는 다르게 기술이나 우아함과 같은 미적인 측면을 심사하지 않는다. 수영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빠르기, 바로 속도에 있다. 크롤 영법이 자유형이 된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자유형 대회에서 중요한 것 역시 속도이기 때문에 많은 선수들이 크롤 영법을 사용하면서 그것이 자연스럽게 자유형이 된 것이다. 한 마디로 수영의 대표적인 이미지인 자유형은 누가 가장 빠른지를 비교하는 경쟁으로부터 태어났다는 사실.  

어느샌가 자유형은 자신의 정체성을 잊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가장 자유로워야 하는 형식인데, 그 무엇보다 기존의 틀에 얽매여있다니.


자유를 잃은 자유형을 눈앞에서 보고 있는 거다. 아무런 의문도 없이 말이다.




경쟁은 현 사회의 핵심이다. 경쟁에서 살아남는 자가 가장 강한 자이며, 경쟁에서 승리하는 자가 가장 인간답게 살며, 경쟁의 최우위에 있는 자가 가장 자유로운 자이다. 심지어 때로는 가장 올바른 자이기도 하다. 플라톤의 『국가』 1권에 나오는 트라시마코스라는 인물이 그러더군. “올바름이란 더 강한 자의 편익이고, 강자가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것을 제정해서 피지배자들에게 공표한 것이 법이다.”라고. 2,500년 전 인간이 떠들다가 당시에도 욕먹었던 이런 주장이 현실이 되는 곳도 물론 있다. 어딘지는 뭐, 굳이 말 안 해도...      


우리 사회에서 취업은 이런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진입 관문이다. 그 이전에 대학을 진학하면서 어느 정도 판가름이 났겠지만 말이다. 그렇다면 경쟁에 진입하기 위해서는 무엇부터 해야 할까? 취업을 위한 출사표, 그것은 바로 ‘자기소개서’이다. 당신의 장점과 단점은 무엇인가, 우리 회사에 지원한 동기는 무엇인가, 당신의 포부는 무엇인가, 우리 회사에 입사하기 위해 어떤 활동을 해왔는가, 당신은 창의적인 사람인가, 우리 회사에 어떤 이득을 줄 수 있는가 등등. 지금도 끊임없이 자기소개서를 쓰고 있는 내 입장에서 머리가 지끈거리는 질문들이 아닐 수 없다. 질문에 솔직하게 응한다면 답은 이렇다. “별생각 없는데요... 그냥 찾다 보니까 괜찮아 보여서...” 그렇다. 이미 글러먹었다.  


자기소개서를 채우는 일만큼 고된 정신적 노동도 없는 것 같다. 비록 훌륭하진 않지만 글쓰기가 익숙한 나에게도 자기소개서는 항상 넘어야 할 산이다. 어려운 건 자기소개서의 문항들이다. 평소에 내가 가진 생각보다는 회사가 요구하는 능력에 맞춰 나를 소개해야 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자신이 원하는 직종에 지원한 사람은 행운아다. 그런 사람이라면 평소에 그 분야를 위해 준비해온 것이 있고, 자신을 소개하는 것이 회사의 요구와 부합할 테니까. 하지만 대부분의 취준생은 그렇지 못한 경우가 허다할 것이다. 특히 대학생들의 경우 전공을 살려서 취업할 선택지조차 주어지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인 상황에서 자기소개서 문항을 채우는 건 곤욕일 것이다.


결국 자기소개서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이 그 업무에 열정과 전문성을 갖고 있으며, 미래지향적이고 창의적인 인물이라는 사실을 ‘지어내는’ 것이다. 유행하는 말로 하자면 아마도 ‘스토리텔링’이 아닐까. 자유롭게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시길, 단! 주어진 요구와 형식에 따라서. 그리고 우리 회사에 얼마만큼의 이익을 줄 수 있을지, 잘 지어내 보시게. 그렇다면 자네는 경쟁에서 한 발짝 앞서 나간 인간이 될 수 있을 걸세!


어쩌면 회사가 원하는 창의적 인간이란 자기 자신을 창의적으로 꾸며낼 수 있는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자기’를 최대한 지우고, 경쟁 사회의 요구에 맞춰 ‘자기’를 지어내는 ‘자기’ 없는 자기소개서. 빠르게 달리기 위해 모든 자유를 포기한 자유 없는 자유형처럼.        


이렇게 말하는 것이 오버하는 것일까? 맞다. 이건 하나의 과장이다. 모든 경우가 그렇다고 말할 수 없으며, 여전히 자신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며 진정한 자기를 소개하는 청년도 있을 것이다. 또한 자기소개서의 양식은 수많은 지원자들을 모두 고려할 수 없어, 경제적이고 효과적으로 선별하기 위한 현실적인 방안일 수 있다. 이곳은 신자유주의의 물결에서 자유롭지 않은 한국이니까. 그런데 앞선 얘기가 과장이 아니라고 생각되는 부분도 있다. 경쟁을 위해서는 진정한 자신도 과감히 버릴 줄 알아야 한다고 회유하는 것 같은 이 사회의 분위기가 그렇다. 차라리 트라시마코스처럼 솔직하게 강자가 올바름이라고 말한다면 덜 억울하련만.      




어릴 적 읽은 회사 얘기를 다룬 만화책이 생각난다. 매번 취업에서 낙방하던 한 여성은 주인공의 도움을 받아 자신이 떨어졌던 회사의 면접을 볼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그 자리에서 그녀가 한 일은 하나이다. 자신이 살아왔던 인생을 면접관들에게 들려주는 것. 그리고 그녀는 덧붙인다.


 나의 이야기를 듣고 저의 장점을 찾아주세요.


 꿈같은 얘기이자, 말 그대로 만화 같은 에피소드이다. 그런데 그저 웃어 넘기기에 그녀의 말은 아리고, 마음을 동요시킨다.


“너 수영할 줄 알아?”라고 누군가 묻는다면, 사실 나는 배영을 먼저 떠올린다. 가장 느리기는 하지만, 물의 부력을 느낄 수 있고, 동시에 중력의 영향에서 벗어나 둥둥 떠다니는 기분이, 썩 나쁘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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