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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 매거진 브릭스 Jul 14. 2021

서귀포 남원읍 키라네 책부엌

요리를 좋아하세요?

여행 매거진 BRICKS City

제주의 서점들 #6





시골 어느 마을에 있는 독특한 상호의 서점. 키라네 책부엌의 첫인상이었다. 서점 여행을 꽤 다녔음에도 키라네 책부엌은 그 분위기가 쉬이 그려지지 않았다. 분위기를 상상하며 한동안 지도에 가고 싶은 곳으로 남겨져 있던 그곳을 찾아 나섰다.


지난겨울, 제주는 가을 가뭄을 비웃기라도 하듯 눈이 많이 내렸다. 제주의 날씨는 변덕이 심하다. 조금 전까지 햇볕이 내리쬐다가 금세 눈보라가 쳐서 한 치 앞을 볼 수 없게 되는 것이 일상이다. 그것이 제주의 매력이지만 가끔 궂은 날씨로 내가 가고 싶은 곳을 편히 갈 수 없을 때도 있다. 키라네 책부엌에 가는 날에는 눈이 오지 않길 바라며 길을 나설 준비를 했다.


서점 가는 길의 설경


다행히 서점 가는 날 아침은 언제 눈이 왔냐는 듯 화창했다. 곳곳에 남아있는 폭설의 흔적을 담으며 서점으로 향했다. 입구부터 손님들이 오가는 길의 눈을 쓸어놓은 사장님의 섬세함이 느껴졌다. 서점은 귤밭으로 둘러싸여 있었고, 조용한 요새에 온 듯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아늑하고 포근한 느낌에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바깥과 차단된 다른 세계에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신발을 벗고 가운데 놓인 긴 탁자에 앉았다. 사장님은 편히 둘러보라고 하면서 따뜻한 차를 내어주었다.



서점엔 구옥을 고친 흔적이 남아있었다. 한쪽에는 주방 기구들이 있었고, 또 한쪽에는 제주 로컬 재료로 만든 식초, 차 등이 있었다. 처음 책방 이름을 들었을 때는 요리 레시피 책이 가득할 것 같다고 상상했었는데, 음식과 요리에 관한 다양한 에세이와 소설이 갖춰져 있었다. 평소 주방 기구에 관심이 없었는데 공간 탓인지 그것마저 흥미롭게 느껴졌다. 주방 기구의 쓰임새에 관해 묻기도 하고 천천히 책도 살폈다.



평소 읽고 싶던 『비거닝』이라는 책을 집어 읽었다. 페스코 베지테리언으로 산 지 이제 1년이 되어간다. 이전에도 비건으로 살았던 적이 있지만 사회의 따가운 시선으로 인해 그만둔 적이 있다. 그래서 이번엔 할 수 있는 것부터 천천히 해나갈 생각이었는데, 책을 보니 마음이 다시 뜨거워졌다. ‘올해 목표는 비건이다!’라고 혼자 중얼거리며 책을 읽었다.


책을 읽다가 사장님에게 매거진 브릭스의 작가임을 밝히고 마침내 궁금했던 것을 물었다. 왜 이런 시골에, 왜 하필 요리에 관한 서점을 열었을까. 작가임을 밝히는 것은 처음이었는데 그래서인지 마치 인터뷰하듯 사장님과 키라네 책부엌의 역사를 들을 수 있었다.



키라네 책부엌의 키라는 평소 사장님이 사용하던 영어 이름이다. 어릴 때 본 동화 주인공 이름이 어쩌다 영어 이름이 되어버렸다. 산티아고 순례를 다녀온 후 지금 이곳에서 살다가 우연한 계기로 사장님의 공간이 되었다. 평소에도 요리를 좋아하고 스트레스를 받을 때면 요리를 다룬 책과 영화를 찾아보는데 그런 경험을 나누고 싶어 이곳을 만들었단다. 또, 코로나 시국이라 예약제로 운영하는 줄 알았는데, 오는 손님들에게 좀 더 책방을 오롯이 느끼고 휴식을 취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진즉에 이렇게 운영해 왔다고 한다. 



사장님이 쏟아내는 이야기를 다 듣고 나서 공간을 다시 둘러보았다. 내가 지금 느끼는 고요함과 아늑함을 사장님도 처음 이곳에 왔을 때 느꼈겠지. 책을 향해 내리쬐는 햇볕, 탁자에 놓여있는 여러 다기들, 서점의 역사도 함께 떠올리니 사장님의 위로가 오롯이 전해졌다. 그리고 그녀가 서점 이곳저곳을 살뜰히 살피는 모습이 그려졌다.



공간을 마저 돌아보고, 다 읽지 못한 『비거닝』을 사서 나왔다. 서점을 나오는 게 이렇게 아쉬운 건 오랜만인 듯했다. 참 묘한 느낌이었다. 낯선 공간이 금세 친밀한 공간이 되어 헤어지기 아쉬워지는 것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서점은 어떻게 위로하는 공간이 될 수 있는 걸까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책이 주는 위로의 힘도 있겠지만, 아마도 공간에 담긴 색색의 이야기 때문이 아닐까 싶었다. 


매거진에 연재가 되면 사장님에게 보여드리기로 했는데, 벌써 봄이다. 키라네 책부엌은 겨울의 때를 벗고 완연한 봄이 찾아왔겠지.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어느 즈음, 다시 아늑한 공간이 그리울 때 가야지.

 




글/사진 chantrea

오랫동안 글을 쓰는 사람이고 싶습니다. 그리고 오래오래 집을 이고 다니며 생활하고 싶습니다. 4년 동안의 캄보디아 생활을 뒤로 하고 지금은 제주에 삽니다.

http://blog.naver.com/rashimi87

매거진의 이전글 저는 거기 있었고, 아주 약간 옮겨지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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