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에서 몇시간 빠져나오기, 그리고 더욱 완결된 자신으로 다시 참전하기
0. 좀처럼 몇달간 글을 쓸 모먼트가 찾아오지 않았다. 사실 제목 잡아 놓고 대략적인 내용 초고는 많은데 (청소연구소 앱리뷰, 버팀의 미학 등) 요즘 챙길 것들이 많기도 했지만 좀처럼 시간적으로도 심적으로도 여유가 안 났다.
여유가 없다는게 좀 지쳤고 쉬고싶고 단순히 그런 의미가 아니었다. 지난 20대를 앞만 보고 독하게 독하게 달려오느라, 또 지금 회사 오고나서 일적으로도 개인적으로도 뭔가 새로운 일이 계속 터지니 그와중에 최선을 다해 대응하느라, 그 반대 급부로 무너지고 못챙긴 것들이 많았다. 올해 승진도 했고 부모님 이슈도 어느정도 갈무리가 되어 시간이 지나가고 있는거 같고, 이제 다시 쌓아 올려야 하는데 뭘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하는지 혼란한 채로 급박하게 돌아가는 세상 속 뭔가가 치고들어오면 방어적으로 급급해서 쳐내는 삶을 살았다.
1. 그냥 그런 순간이 있다. 아 이제 지금 내 상황에서는 더이상 예전에 하던대로 하면 한계가 있겠다, 하는 순간. 근데 이게 딱 그 모먼트에 달성해서 본인이 깨치기 전까지는 메타인지로 알아차리기가 참 어렵다. 그 순간 이 찾아오기 전까지는 목전의 목표를 위해 애쓰고 있는 중이라 그런 말을 주위에서 해줘도 들을 여유가 없고, 일단 한 고비 넘겨 뭔가를 성취하더라도, 그 성취를 만들어준게 내 성향이거나 이제까지의 습관이면 그걸 놓기도 무섭기 때문이다.
1-1. 내영언니와 올해 봄에 호수공원을 산책하면서 말했다. 20대 때는, 내가 할수 있는게 미친듯이 달려 나가는 것밖에 없었다고, 그땐 그것밖에 방법이 없어서 다시 돌아가더라도 우리가 그 상황에서 다른 선택을 할수 있었을거 같지 않다고 말이다. 폭풍같은 삶이었고 고통스러운 시간이었다. 잠을 줄이고, 더 무리를 하고, 1년에 한번씩 몸이 나가떨어져 나가더라도 알바를 하고 사회에 나갈 준비를 하고 사람을 찾아다니고 미친듯이 포트폴리오를 만들었다. 그 와중에 사랑을 했고, 헤어졌고, 내 안의 미숙함을 어떻게 그렇게 가감없이 드러내 세상에 도전할수 있었는지 지난날의 우리를 돌아봐도 그 기백이 대단하다. 어떻게 아무것도 없고 지금보다 더 취약하고 방패가 하나도 없는데 그렇게 용기 하나로 최선을 다해 세상에 부딪힐 수 있었는지.
1-2. 그렇게 나를 빚어주었던 도전정신과 미친듯이 몰입하는 성향은 세상 만사 모든 것들과 같이 장단점이 있었다. 이런 성향의 가장 큰 한계점은 내 문제가 가장 크고, 실제로 그 문제를 잘 해결하느라 대부분의 리소스를 소모하기 때문에 타인에게 중요한 프로세스라던지, 절차라던지, 예절이라던지 하는 것들을 알아차릴 여력이 부족하다는데 있다. 그런데 내 인생 돌아보면 그런 부족함에서 나오는 실수들이 결국엔 내 발목을 잡더라.
2. 주위에서 나를 보면 어떻게 그 많은 것들을 다 처리하느냐고 물어본다. 어떻게 일도하고, 기술 공부도 하고, 운동도 하고, 북토크나 인사이트 모임도 나가고, 투자 포트폴리오 관리도 하냐고 물어보지만, 그렇게 보이기라도 할수 있는 이유는 사실 내 주위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를 정말 많이 배려해주는 까닭이다.
급한 일이 생기거나 컨디션 난조로 short notice만 남기고 못간 월간 공부모임과 격주 토스트 마스터즈는 도대체 몇번째인지 모르겠다. 타겟을 캐리하느라 예민해질 때마다 마음씨 좋은 팀원들은 나를 이해해주고, 원장님이 골프 레슨은 계속해서 조정해주고, 동생이 엄마와 같이 살면서 집안일을 케어해주고, 한번씩 눈앞에 보이는 급한 상황이 너무 커서 회사의 자잘한 행정 프로세스를 대충 쳐내느라 qualification을 못맞출 때마다 감정적 피드백 없이 구체적으로 상황 해결 지시를 주는 매니저 덕분에 브레이크 없는 급행열차같은 내 인생은 가까스로 선로이탈 없이 덜컹덜컹 나아가고 있는 중이다.
내 인생 열심히 산다고 해서 이런 배려와 이해를 당연스레 여겨도 되는건 아닌데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거의 30년 전 장남에게 집안의 모든 재력을 몰빵하고 그 장남이 치열한 직업세계에서 성공할수 있도록 주말마다 보약과 한국 농어촌의 좋은 보양식을 가장에게 보내다 부치고 며느리는 가장이 일과 사회생활만 할수 있도록 집안의 대소사와 아이들을 챙기며 경력단절하는 것에 조금 못미치는 수준으로 내 시간의 촉박함을 커버해주는 주위의 배려, 집안일 아웃소싱, 공과 사 구분과 인품까지 갖춘 팀 덕에 나사 몇개 빠진 열심히 사는 삶은 가까스로 연명을 이어 간다.
3. 지금의 나는 그런 미친듯한 몰입으로만 앞으로를 살아나갈수는 없겠다는 생각을 한다. 이제는 나를 빚어주었던 성향을 나의 일부 정도로 간직하고 변하는 상황에 적합한 성향을 다시 길러나가야 한다고. 생물 진화의 모든 역사는 강자생존이 아닌 적자생존으로 이루어져 왔으니까.
깨달음의 순간이 왔을때 겸허히 받아들이고 조금씩 하나둘 고쳐나가는 자세는 얼마나 한 사람의 인생을 미래에 맞닥뜨릴 피폐함의 가능성으로부터 구원하는가. 사실 나도 변화와 성장과 행동의 교정이 참 느린 사람이었는데 이건 진짜 빠른 시일내에 고쳐야 겠다고 생각을 했다.
3-1. 이렇게 빠른 결정을 내리고 즉각적으로 행동 교정이 필요하겠다고 느껴서 글까지 남겨놓는 이유는 최근 몇년간 시야 좁은 몰입이 한 사람을 얼마나 피해자의 이름표 안에서 눈멀게하는지를 많이 봐서다. 몇달 전인가? 앤디와 밥을 먹다가 (스스로 생각했을때) 힘든 상황 속 열심히 살아가면서 마음 속에 알게모르게 서운함이 쌓일 수 있는데 그 서운함이 세상을 향한 피해의식으로 발전하지 않도록 조심해야한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렇게 정당화한 피해의식이 요즘 사회에 만연한데, 그런 의식은 가장 먼저 나의 삶을 갉아먹어 그 어떤 성취나 삶의 여유, 아름다움으로부터 멀어지게 해서 삶을 조악하게 하는 것이라고.
3-2. 앤디의 말은 요 근래 내 마음 속 계속 고여있던 의문점에 답을 해줬다. 부모님의 이혼을 지켜보면서도 생각했지만, 분명히 열심히 살고 나름대로는 삶의 불리함을 견디며 버텨내온 사람들이 삶 속에서 행복을 추구하지는 못하는 이상함과 서늘하고 다소 잔인한 의문.
저렇게 열심히 살아온 사람이 왜 저렇게밖에 못살까? 어느 날은 나도 그런 사람인지를 돌아보며 서늘해지기도 했다.
3-3. 대학만 가면 살이 빠지지도 않고, 공부 잘하면 돈 잘벌지도 않는다.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다. 일단 내 인생을 정직하게 살되, 거기서 어떻게 수완좋게 경제적으로 성공할지는 따로 고민해야하고 내가 내 인생을 열심히 살되 타인에게 인정받고 싶으면 그들에게 중요한 게 뭔지 깨닫고 그걸 채워줘야 한다. 이게 참 당연한 진리인데 나도 그렇고 요즘 세상이 힘들다 보니까 내 앞의 당면과제를 해내는게 너무 바빠서 체득하고 실현하며 살기가 쉽지가 않은 것 같다.
일단 내가 열심히 해온 게 한계가 있는 접근이라는 걸 인정하는게 좀 어려운 것 같기도 하다. 이런 깨달음은 사실 전부터 이런 이야기 해준 사람이 없는건 아니었는데, 마음 속에 받아들이기까지, 그만한 여유 조금이라도 만들기까지 좀 오래 걸렸다. 오래 걸린 만큼 빠르게 내가 나를 바꿔야 될것 같기도 하고.
4. 눈 앞에 보이는 것에 모든 것을 몰입한 후에는 다시 빠져나와 보자. 그게 힘들겠지만 결국엔 나한테 훨씬 더 좋다. 이악물고 우선순위가 가장 높았던 목표를 이루기 위해 대부분의 시간을 썼으면 그 목표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더래도 우선은 휴전 상태로 들어와 보기.
우선순위 2,3,4에 있는 것이라 해도 그게 나의 순서지 누군가에게는 그 아이템들이 우선순위 1일 수도 있으니. 내가 또 채워야 할것들, 시간을 함께 보내야 할 사람, 내가 크게 존중해주지 못했으나 실은 존중받아 마땅한 것들을에도 내가 마땅히 시간을 쓰며 결국엔 더 완결된 나 자신으로 거듭날 수 있기를. 어느새 9월이 되었는데 당장 이번달 부터라도, 변해보려고 한다. 계속해서 심적 전쟁 상태에만 나를 밀어넣기 보다는 적절한 휴전 상태에 내가 나 자신을 배치시킬 수 있기를 바래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