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태평한 미아 Aug 21. 2021

07. 그동안 나는 너를 잘 몰랐구나

이제야 알아챈 그의 마음과 신호


슬픈 건 슬픈 거고, 일단은 우리가 왜 이렇게 된 것인지 복기하는 과정이 필요했다. 납득하고 이해하지 못하면 헤어짐을 인정하기가 어려울 것 같았다. (MBTI 극 T형... 그래도 로봇 중에는 가장 따뜻하다고 합니다)


일단 나는 어떤 사람인지, 내 무엇 때문에 그가 그렇게 힘들었는지 깊이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100% 나로 인해 힘든 건 아니었겠지만. 그런데, 나에 대해 더 알기 위해 공부하는 과정에서 오히려 그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됐다.


//


"내가 눈치가 없었던 걸까? 어떻게 그렇게 전혀 몰랐을까?"


이별 후 가장 먼저 든 생각이었다. (진짜로 궁금...)

눈치의 유무를 떠나서 '헤어질 거라는 생각', 더 정확하게는 그가 먼저 헤어지자고 말할 거라는 생각을 해 본 적 없었다. 그렇기에 그가 보내는 시그널을 알아채지 못했다. 


생각해보면 그는 이별 징후를 보여왔다. 연락 오는 텀이 길어지거나, 만나는 횟수가 줄거나 하는 식으로. 그런데 문제(?)는 나는 그런 그에게서 전혀 서운함을 못 느꼈다는 점이다. 그의 연락이 없거나 그와 만나지 않는 시간에 혼자서도 잘 지냈고, 나도 개인적으로 많이 바쁜 시기였다. 그래서 그가 바쁘다고 하면 그런가 보다 하고 넘기곤 했다. 

그의 사랑이 변할 거라는 것을 전혀 의심하지 않은, 우리는 늘 연결되어 있다는 일종의 절대믿음 같은 것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알 수 있듯 나는 감정적으로 무디고(민감하고 섬세하지 않은) 무신경한 사람이다. 그래서 남들이 상처 받을 만한 상황에서 상처를 많이 안 받는 편이다. (그만큼 나도 모르게 상처를 주는 일도 많았겠지만...) 많은 사람들은 내가 감정 컨트롤을 잘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렇게 감정적으로 크게 느끼는 일이 없어 그렇게 보일 뿐이다. 


나는 그가 오히려 나보다도 더 안정적이고 차분, 침착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반대였다. 나와 함께 있을 때 실제로 안정적이 되고 행복했기도 했지만, 스트레스받거나 아프고 힘들 때도 내 앞에서 괜찮기 위해 부단히 애쓰는 사람이었다. 그제야 그가 헤어질 때 얘기했던 "나 혼자 애쓰는 것 같았어"라는 말이 이해가 됐다. 



그는 이런 주전자 같은 사람이지 않았을까. 겉으로는 평화로워 보이지만 속은 펄펄 끓는...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그는 말로 표현하지 않았을 뿐, 온몸으로 섬세함과 예민함, 상처를 표현하던 사람이었다. 두통에 자주 시달려 진통제를 늘 가지고 다녔고, 장이 과민해 밥을 먹으면 바로 화장실에 가고, 고소공포증도 있고, 새로운 것(이직, 여행, 이사 등)에 대한 불안이 많고, 갈등을 싫어하고,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많이 봤다. 


그리고 물건이 망가지는 것에 굉장히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반면 나는 휴대폰이나 노트북이나 뭐든 함부로 쓰는 사람이어서 잘 망가뜨린다. 노트북에 맥주 쏟고, 휴대폰 액정이나 후면은 늘 와장창 깨지는데 그냥 그대로 들고 다니는 스타일... 그래서 늘 내가 새 휴대폰을 사면 자기(남자친구) 자신의 마음의 평화를 위해서 액정보호필름을 붙이고 휴대폰 케이스를 씌우고 다녀달라고 말하면서 사람이었다 ㅎㅎ



내가 이 구역의 파괴왕이다. 휴대폰 액정도 케이스도 와장창. 휴대폰이 나를 위해 있는 거지, 내가 휴대폰을 모시고 다닐 이유는 없는 거잖아!

이러니 나와의 관계뿐 아니라 모든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늘 희생하고, 배려하고, 그만큼 많은 스트레스를 받아 왔다. 그런데 표현까지 잘하지 못하니 힘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자기 스스로도 힘들다는 걸 잘 몰랐을 것이고, 힘들어도 괜찮아야 한다고 생각하며 버텼을 것 같다. 


그런데 나는 내 가까운 사람들(가족, 친구들) 중에는 이런 특성을 가진 사람들이 없어서 이런 모습들이 섬세하고 상처 잘 받는 성격이라고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그냥 '그 상황에서 스트레스를 받는구나' '오늘은 몸이 좀 아픈가보네' '겁이 많네' 정도로만 생각했다. (편견 없는 편...ㅎ.. 이쯤 되니 눈치없는 게 맞는 것 같기도...)


//


그를 7년, 이전까지 알던 기간까지 포함하면 10년을 만나면서도 나는 그에 대해서 잘 몰랐다. 우리가 많이 다르다고만 생각했지, 그의 속깊은 마음이나 아픔, 힘듦을 헤아리지 못했다. 이제야 그에 대해서 조금이나마 이해하고 나니 그가 많이 힘들고 외로웠을 것 같다. 



그가 나에게 자신의 감정이나 힘든 마음, 서운함을 얘기했다면 내가 달라졌을까?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그때의 나는 그런 걸 이해하거나 포용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을 것이고, 그의 감정을 늘 그랬듯 대수롭지 않게 넘겼을 것이다. 


이별이 힘들고 아팠지만 어쨌든 그 이별을 통해 많이 성장했음을 느낀다. 더 많은 것을 인정하고, 포용하게 됐고, 많은 사람들의 감정에 충분히 공감하지는 못하더라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 됐다. 특히, 주변 사람들이 연애나 이별로 아파하고 힘들어할 때 공감하지 못하고 편을 들어주지 못했는데, 이제는 함께 슬퍼하고 아파할 수 있게 됐다. 농담으로 7년 이하로 연애하다 헤어진 사람들의 아픔까지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하기도 한다.  



2년 전 쯤 갔던 전시회에서 본 인상 깊었던 그림들. 새로운 나를 만나게 됐고, 많이 배우고 있는 지금의 모습이 이렇지 않을까?


그리고 쉽게 충고나 평가, 판단을 하지 않게 됐다.  앞으로 긴 세월 동안 많은 사람들과 어울려서 살아가게 될 텐데 이 배움이 없었다면 나는 고집스러운, 내가 싫어하는 모습의 어른으로 나이만 먹게 됐을 것이다. 


어쨌든 예민하고 섬세하고 상처 잘 받는 그가 나와 있을 때 안정감을 느끼고 행복감을 느꼈던 건 그가 그만큼 나를 많이 의지했고, 사랑했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에게 그동안 이해해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다. 하지만 돌아보면 나도 서운하고 힘들다고 표현했을 만한 상황이 많았다. 내가 그렇게 크게 느끼지 않았을 뿐. 그러니까 조금만 미안해 해야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06. 이별 극복에 뭐가 좋을지 몰라서 일단 다 해 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