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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런예지 Jan 06. 2022

22화_앙숙에서 함께 달리는 사이로

네가 있어 가능했던 17Km 달리기  


'달리면서 권형이랑 무슨 이야기를 하지?'


동생과 함께 한강에서 15Km를 달리기로 한 날. 버스를 타고 동생집으로 가면서 나는 이 질문에 사로잡혀 있었다. 내 실력으로 15Km를 달리려면 한 시간 반 이상 걸릴 텐데, 그 긴 시간 동안 동생과 무슨 이야기를 나눠야 할지 심각하게 고민이 됐다.




남매가 함께 달리기까지 하는데 각별한 사이 아니냐고? 고백하자면 우리 남매는 정말 많이 싸우면서 컸다. 서로 양보와 배려 따위는 없었고, 으르렁거리며 다투는 게 일상이었다. 나는 날카롭고 예민한 성격이라 동생이 내게 짓궂은 장난을 치면 귀찮고 짜증이 났다. 할머니의 '손주' 사랑도 갈등에 한몫을 했다. 할머니는 동생을 끔찍이 예뻐해서 무한 애정을 표현하셨고, 둘이 다퉈도 언제나 동생 편이었다. 잘못을 하고도 할머니에게 품에 숨어버리는 동생이 얄밉고 싫었다. 엄마는 "동생이 어려서 그러는 거니까 네가 참아." 라며 나를 다독였지만 동생에 대한 미움과 질투심은 켜켜이 쌓여갔다. 나는 차별로 인한 상처와 울분을 동생에게 풀었고, 동생도 지지 않고 내게 대항했다. 동생과 오랜 시간 부정적인 감정을 서로 주고받다 보니, 관계도 감정도 나쁘게 굳어져 버렸다.       




지금 생각해보면 동생은 발랄하고 귀여웠고, 심지어 똑똑하기까지 했다.(그래서 내가 더 질투를 한건 지도.) 동생이 잘못한 건 없었다. 둘째를 낳아보니 할머니도 조금은 이해가 된다. 존재 자체가 진짜 귀엽다. 사랑받고 싶은 마음이 강했던, 속상하고 힘든 감정을 건강하게 풀지 못한 내가 문제였다.  "누나, 공부 어떻게 하면 돼?" 고2가 된 동생이 처음으로 내게 진지하게 물었다. 나는 내가 동생에게 뭔가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게 기뻤고, 동생이 내게 손을 내밀어 준 것이 고마웠다. 그 대화를 시작으로 얼었던 마음이 조금씩 녹기 시작했다. 성인이 되어서는 진로와 이성 친구에 대한 고민도 종종 나눴다. 하지만 여전히 둘만의 시간은 다소 조용하고, 꽤 어색하다.(나만 그렇게 생각하는 건지도 모르지만) 버스를 타고 동생 집으로 가면서 '15Km 달리는 것도 힘든데 뻘쭘하게 침묵까지 견디며 달려야 하는 거 아냐?' 하며 속으로 웃었다.







'아후, 그냥 달리지 말고 이태원 맛집 가서 밥이나 먹자고 할까?' 현관 벨을 누르면서도 고민했다. "어서 와." 동생이 달리기를 위한 풀착장(싱글렛에 숏 타이즈)을 한 채 현관문을 열어줬다. 동생은 스무 살 때 달리기를 시작해 벌써 17년 차 러너다. 대학생 때 부산 집에 오면 종종 달리러 나가는 건 봤지만, 풀 마라톤에 도전할 정도로 달리기에 열정을 쏟고 있고 있다는 건 몇 년 전 카톡 사진을 보고서야 알았다. 처음엔 술로 찐 살을 빼려고 달렸는데, 달리다 보니 달리기가 그 어떤 운동보다 즐거운 '인생 운동'이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젠 서브 3(풀 마라톤을 3시간 내로 완주하는 것)을 넘볼 정도로 실력자가 되었다. "나 다음 주에는 북한산 등산하려고." "누구랑?" , "혼자." 요즘엔 주말에 혼자 트레일 러닝을 즐긴다니 신기할 따름이었다. 거실 벽에 빼곡히 매달려 빛나고 있는 마라톤 완주 메달들을 보니 긴 세월 동생의 달리기 인생이 실감 났다.




"한강까지 몸 풀 겸 가볍게 달리자. 잘 뛰는 러너들은 2-3Km씩 워밍업으로 달려." 

집에서 같이 스트레칭을 하고, 집을 나와서는 바로 달리기 시작했다. "어, 그래."라고 대답했지만 '나한텐 한 걸음 한 걸음이 얼마나 소중한데. 이것도 기록으로 쳐야 하는데.'라고 속으로 소심하게 외쳤다. 동생을 따라 구불구불한 주택 골목을 달리고, 도로를 지나, 한강으로 나가는 입구인 보광 나들목 지하 터널로 내려갔다. 터널 끝에 다다르니 넓고 푸르게 펴진 한강이 눈앞에 펼쳐졌다. '와'하고 탄성이 절로 나왔다. 처음으로 한강을 달릴 생각에 떨림과 기대감으로 몸이 떨렸다.




본격적으로 달리기 전에 잠시 멈춰 서서 동생이 핸드폰을 보며 오늘 달릴 코스를 설명해줬다.

 "누나, 성수대교 건너서 잠실이랑 반포 한강공원 달리고, 동작대교 건너서 다시 우리 동네로 오자. 거리 모자라면 잠수교 왕복하고."

"좋아." 

한강뿐만 아니라 잠수교 달리기에 대한 로망도 있어서 코스가 마음에 들었다. 날이 더워서 오후 5시쯤 해가 지기 시작할 무렵 달리기를 시작했는데도, 뜨겁게 내리쬐는 햇살 때문에 몸이 금방 달아올랐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동생이 체험해 보라며 손목에 채워준 가민 시계가 GPS를 못 잡아서 거리 기록이 안되니 조바심도 났다. 달리기 시작하고 5분쯤 지났을까? '띠링'하고 시계에서 기록 시작을 알리는 소리가 들렸다. 진짜 15Km 달리기가 시작되었다.





오른편에 한강을 두고 동생과 나란히 달렸다. 동생은 달리는 자세와 시선 처리에 대해 설명해주곤, 속도를 늦춰 내 뒤로 갔다. 

"누나, 오른쪽 발목이 바깥으로 돌아가."

"진짜? 전혀 몰랐는데."

"다리에 추진력이 없이 제자리 달리기 하는 것 같은데."

"나 열심히 달리고 있는 건데"

"팔은 앞으로 흔들지 말고 뒤로 보내야지."

"다른 건 몰라도 나 팔 치기는 잘하지 않나?"

나는 초보 러너치곤 잘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동생의 지적에 정신이 혼미해졌다. 동생은 내 자세를 영상으로 찍어서 보여줬다. 동생 말대로 고칠 점이 많다는 걸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사람마다 체형이랑 걸음걸이가 다르기 때문에 꼭 잘못된 자세라고는 볼 수 없는데, 자세가 불균형하면 몸에 무리가 돼서 부상을 입을 수 있으니 신경 써 봐. 오래오래 달려야지."




자세를 더 바르게 하려고 노력하며 열심히 달리는데, 이럴 수가! 겨우 4Km를 달리고는 몸이 축축 쳐지기 시작했다. 너무 더워서 숨이 턱턱 막혔고, 다리가 천근만근 무거웠다.

"누나, 왜 이렇게 조용해?"

"권형아, 어쩌지? 누나 벌써 힘들다. 아직 10Km도 못 달렸는데 큰일이네."

걱정하는 내게 동생이 말했다.

"누나, 필요 없는 살들이 너무 많아."

'헉' 요즘 살이 살짝 찌긴 했지만, 이만하면 날씬한 아기 엄마라는 자부심이 있었는데 동생 말은 충격이었다.

"누나는 지금 생수 2통을 들고 달리는 거나 마찬가지야. 살 빼면 훨씬 가볍게 뛸 수 있지."

"그 정도야?"

판도라의 상자를 연 느낌이었다. 생각해서 말해주는 건 알겠는데 무게가 의식되자 몸이 더 무겁게 느껴졌고, 나는 진심으로 울고 싶었다.





게다가 마음을 괴롭히는 게 한 가지 더 있었다. 나는 소망을 절대적 의무로 만드는 걸 좋아한다. 그래서 전날 블로그 닉네임을 '러닝 전도사 조예지'라고 바꾸고 15Km 달리기에 도전하겠다고 공언하는 글을 썼다. 많은 사람들에게 달리기를 전도하고 싶은 마음에 용기 내서 이름 앞에 '러닝 전도사'라는 수식어를 붙였는데, 그 무게감이 나를 짓눌렀다. 10Km도 못 채우면 나 자신이 너무 한심하고 이웃들에게 부끄러울 것 같았다. 

'5Km도 허덕이면서 내가 무슨 달리기 전도를 하겠다고.'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나왔다. 달리기를 사랑하는 마음은 누구보다 크지만, 실력도 뒷받침돼야 더 자신 있게 달리기 이야기를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6Km쯤 달려 드디어 성수대교에 도착했다. 다리를 건너려고 계단을 올라가는데 힘이 쪽 빠지면서 위기가 절정으로 치달았다. '아직 반도 못 달렸는데.'라고 머릿속으론 생각했지만 마음은 계단에 앉아 5분 만이라도 쉬고 싶었다.

"권형아, 다리가 너무 아파. 계단 못 올라가겠어."

 "누나, 힘내 힘내." 

동생이 등을 밀어줘서 간신히 계단 끝까지 올라왔다. 뻐근한 허리를 펴고 고개를 드니 회색 빛으로 일렁이는 한강이 눈에 들어왔다. 자동차들과 함께 다리 위를 달리는 건 색다른 경험이라 다행히 힘이 났다. 그 와중에 동생이 앞, 뒤로 자리를 옮겨가며 내가 달리는 모습을 사진으로 찍고, 동영상 촬영도 해줬다. 누가 내 달리는 모습을 찍는 건 처음이라 많이 쑥스러웠다. 그래도 기념이니까 구겨진 얼굴을 펴고 등을 바로 세우며 러너답게 당당하게 달리려고 애썼다.   






"누나, 이거 마시면 진짜 힘 번쩍 난다."

성수대교를 건너 7Km 지점에서  가뿐 숨을 몰아쉬고 있는데, 동생이 편의점에서 산 파워에이드를 내게 내밀었다. "고마워."라고 답하곤 얼른 뚜껑을 열고 벌컥벌컥 마셨다.

"와, 살 것 같다."

"음료수 마시니까 훨씬 낫지, 조금 있으면 더 컨디션 좋아질 거야."

정말 동생 말이 맞았다. 5분 정도 지나니 기적처럼 지쳤던 몸에 생기가 돌았다. 영화 <엣지 오브 투모로우>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톰 크루즈처럼 처음으로 리셋된 느낌이었다. ‘이제부터 시작이다. 1Km식 집중해서 달려보는 거다.’라고 마음속으로 외치며 달리기에 몰입했다. 몸을 살짝 앞으로 숙이고, 있는 힘껏 발을 구르며 추진력을 높였다. 더할 나위 없이 자유롭고 상쾌했다.  




잠원 한강공원을 지나 반포 한강공원을 달렸다. 잔디밭에 평화롭게 앉아있는 다정한 커플들과 가족들이을 보였다. 7시쯤 되자, 시시각각 해가 지며 하늘이 붉게 물들어 가서 달리는 내내 황홀했다.

"나는 늘 한강 가까이 살았잖아. 여기가 한강 중에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소야."

동생이 가장 좋아한다는,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꼭 데려온다는 반포 한강공원 둔치에 도착했다. 잠깐 멈춰 서서 함께 노을 지는 한강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나눴다. 

"이제 나도 결혼하고 싶네. 한 사람이랑 정서적으로 안정된 삶을 살면 좋겠어. 장기적으로 미래를 함께 계획하고 준비하고 싶어."

동생이 연애 경험은 많지만, 결혼하고 싶다는 말을 한 건 처음이라 놀랬다. 머지않아 동생도 가족을 이루겠구나 생각하니 뭉클했다.(엄마, 아빠 기쁘시죠?)





동작대교에 거의 다오니 드디어 누적 13Km가 되었다. 다리 위로 올라가려고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면서 동생에게 하프 마라톤 도전에 대해 조언을 구했다.

"나, 내년 봄에 하프 마라톤 도전해보려고."

"그래?"

"그래서 말인데, 지금까지 13Km 완주했으니까 오늘 17Km 달려볼까 봐. 그럼 하프 도전에 자신감이 생길 것 같아."

"원하면 지금 풀 마라톤도 뛸 수는 있지."

"진짜? 내 실력으로 가능해?"

"가능한데 문제는 체력이지. 누나 실력으로 풀 마라톤을 뛰면 5-6시간은 걸릴 거고 달리면서 엄청 지치고 고통스러울 텐데 완주한다고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어?"

"네 말이 맞네."

"그래서 조금씩 더 먼 거리를 달리는 경험을 쌓고, 체력을 기르는 게 중요해."

"무슨 말인지 알겠다. 근력 운동도 해야겠네. 고마워. 그래도 일단 오늘은 17Km 달려볼게."

"그래. 이참에 거리 늘려봐."



그래서 목표했던 15Km에서 2Km를 더해 17Km로 목표를 높였다. 동작 대교에 올라서자 해가 완전히 져서 내가 좋아하는 저녁 뜀박질이 시작되었다. 동작대교를 건너며 바라본 한강과 서울 풍경이 예술이었다. 몸 여기저기에 감각이 없었고, 다리가 꽤 묵직했지만 그래도 아직은 달릴만했다. 함께 묵묵히 달려주는 동생이 있어 힘이 되었다. 동작대교를 건너 다시 한번 동생과 포카리스웨트를 나눠마시고 마지막 힘을 끌어올렸다. 그리고 시계에 누적 거리 '15Km' 숫자가 뜬 순간, 나는 더 이상 거리에 연연하지 않게 되었다. 목표한 바는 이미 이뤘고, 이제부터는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한계치를 높이는 일만 남은 것이었다. 내 걸음걸음이 모두 '용기'고 '도전'이고, '한계 뛰어넘기'였다.  






그리고 오늘의 하이라이트! 기대하고 고대했던 잠수교 달리기가 시작되었다. 잠수교는 한강 러닝 코스 중에 '가장 독특한 곳’으로 러너들의 성지라 불려서 꼭 달려보고 싶었다. 다리가 낮아서 손을 뻗으면 닿을 듯 한강이 가깝게 느껴졌고, 자동차와 자전거, 산책하는 사람들과 러너들이 뒤섞여 오가니 신비로웠다. 중간에 오르막이 있었는데 체력이 소진된 상태라 아주 많이 힘들었다. 다리 뒤쪽 햄스트링이 뻐근하게 뭉쳐서 '더 이상 뛸 수 없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속도가 느려져서 걷기 직전까지 갔.

"안돼. 힘내, 누나. 얼마 안 남았어. 평소엔 2Km 금방 이자나."

"맞아. 힘 내볼게."

격려해주는 동생 덕분에 정신을 집중하고 다시 힘을 냈다. 잠수교를 왕복한 후 17Km의 순간! 나는 환희에 가득 차서 기뻐했고, 동생은 "수고했어, 누나. 17Km 해냈네."라고 말하며 내 어깨를 토닥여줬다.







누군가와 같은 시간과 공간을 공유하며 달리는 것은 '특별한 경험'이었다. 그 누군가가 동생이라서 나에겐 더 '각별한 의미'가 있었다. 어렸을 적부터 티격태격 다투고 앙숙처럼 지냈던 우리가 함께 2시간 넘게 땀 흘리며 17Km를 달리다니. 생과 한 걸음 더 가까워진 느낌이었다.




함께 달리는 동안 동생은 1인 다역을 했다. 어떤 순간은 경험을 바탕으로 달리기에 대해 코치를 해주는'러닝 선배'였고, 어떤 순간은 한강 코스를 줄줄 깨고 있는 '러닝 가이드'였다. 또 어떤 순간은 러너의 "누나, 여기 봐봐"를 외치며 순간을 포착하는 '포토 그래퍼'였고, 또 어떤 순간은 "힘내. 지금까지 잘해왔잖아. 이 정도는 할 수 있지."라고 아낌없는 응원을 보내주는 '응원객'이기도 했다. 참가자가 목마를까 봐 음료수를 건네주는 '대회 스텝' 역할까지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좋았던 역할은 그냥 '내 동생'이었을 때다. 그냥 같이 달리는 것만으로, 그것만으로 충분했고, 고마웠고, 행복했다.   




"나 달리기 시작하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돼?" 동생에게 건넨 이 질문에서 나의 달리기는 시작되었다. 나는 한 사람의 삶을 변화시키는 것은 작은 기적이라고 생각한다. 꼭 하고 싶었지만 쑥스러워서 하지 못한 말을 글을 통해 전해 본다. 


"달리는 삶을 살게 된 건 니 덕분이야. 내 인생에 작은 기적을 선물해줘서 고마워. 동생아."



자주 싸웠지만, 함께 웃었던 시간도 있었던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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