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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갈피 Dec 30. 2020

잠자리를 쫓아다니며 배운 것들

잠자리에 관한 사색 1

 어린 시절을 회상하면, 여러 장면들이 떠오른다. 아무렇게나 찍어낸 점묘화처럼 색색의 물감 터치들이 덕지덕지 붙어있다. 멀리서 보면 나비 모양 같기도 고양이 모양 같기도 하다. 그렇지만 마침내 나는 그림에서 잠자리의 아우트라인을 따 내었다.  

 

 곤충은 참 신비로운 존재였다. 만만해 보여 접근하기도 좋았지만-개구리나 뱀이나 그런 것들은 접근성이 떨어졌다. 나는 그 정도로 대담한 탐험가는 못 되었다. 물론 개구리알이나 올챙이는 예외지만- 그 특유의 생명력이 나를 늘 매혹했다. 그들은 심심한 내게 자꾸 같이 놀자고 졸랐다. 그리고 그들은 질리지 않는 즐거움을 보장했다.


 나는 잎사귀에 앉아 있는 잠자리에게 살금살금 다가갔다. 이럴 땐 언제나 발끝으로 걸어야 한다. 노련한 사냥꾼은 방법을 아는 법이다. 한 번의 기회에 모든 심혈을 기울여야 했다. 꼬리가 빨간 녀석들은 눈치가 빨랐다. 그 녀석들에게 다가갈 땐 거의 문워크를 해야 했다. 리드미컬한 댄스가 아니라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다섯 배는 늘인 버전으로 말이다. 어느 정도 다가갔다 싶으면 집게손가락을 조심스레 뻗는다. 천천히 원을 그린다. 잠자리는 두 개의 그물 같은 커다란 눈동자를 내 손가락에 집중시킨다. 나는 잠자리의 날개가 서서히 내려가는 것을 감지한다. 그건 잠자리가 점점 더 안심하고 있다는 뜻이다. 한 손은 계속 원을 그리고, 다른 손의 손가락을 구부려 다가간다. 파다 파닥! 드디어... 잠자리를 획득했습니다. 그것도 고추잠자리로요! 빰빠밤- 귓속에 트럼펫이 울린다.


 내가 가장 즐겼던 놀이는 잠자리 꼬리에 명주실을 묶어 공중에 날리는 것이었다. 힘 조절을 잘해야 했다. 꼬리를 너무 약하게 묶으면 어렵게 얻은 잠자리를 너무 일찍 잃어버리게 된다. 너무 세게 묶어도 안 되었다. 꼬리가 토막 난 잠자리를 보고 싶지 않다면 말이다. 그건 정말이지 유쾌하지 않은 경험이다. 이것도 여러 번 하다 보니 요령이 생겨서 어렵지 않게 실을 단 작은 비행사를 가질 수 있었다. 언제나 연습이 가장 중요한 것이다. 그 비행사들은 실이 팽팽해질 정도의 고도로 급히 올라갔으나 완전한 자유를 누리지 못했으므로 금세 지쳤고, 종으로 횡으로 쫓아다니던 나도 곧 지쳤다. 지친 잠자리는 나뭇가지 끝에 내려앉았다. 나는 실을 꼭 붙들고 있다가 어떤 확신으로 슬며시 놓았다. 그래도 잠자리들은 도망가지 않았다. 몰랐던 것이다. 자유가 돌아왔건만 더 이상 그들은 자유의 몸이 아니었다.  


 방학 때면 도시에 사는 사촌 동생들이 할머니 댁으로 놀러 왔다. -우리 집은 외할머니댁 근처였다. 그들은 나의 고종 사촌들이었다. - 나의 곤충 사냥꾼으로서의 전성기는 여름 방학이었다. 바야흐로 모든 곤충들의 생명력이 폭발하는 뜨거운 시기. 뜻이 잘 맞는 둘째와는 이러저러한 도구를 갖추고 들로 밭으로 물가로 한나절을 잠자리의 꽁무니를 쫓아다녔다.


 나는 늘 따가운 햇빛 아래를 누볐고, 수풀을 헤쳤고, 잠자리를 포착했다. 발견하고 다가가 잡아들이는 그 순간, 그 긴장을 나는 즐겼다. 그 시간만큼은 온전히 내 것이 되었다. 나는 시간을 잊고 집중했고, 그럴 때면 어김없이 정적이 찾아왔다. 그런 느낌을 나는, 어린 시절의 보물 같은 경험으로 간직하고 있다. 그건 얼마나 큰 행운인가. 그런 경험들로 인해 크고 작은 힘든 일들에서 오는 고통을 상쇄했으며, 그렇게 조금씩 여물어 갔다고 생각한다.


 나와 만난 한 개체로서의 운명에는 조의를 표한다. 어린아이의 호기심 앞에 그들은 늘 생명을 담보 잡혔던 것이다. 나는 어쩐 일인지 그들을 저장하는 것에는 큰 관심이 없었다. 나의 목적은 채집이 아니었고, 그러므로 포르말린이나 핀셋이나 채집판은 필요 없었다. 더듬어 생각해보건대, 아마 나의 주목적은 '관계'였던 것 같다. 어디까지나 내 입장에서 그들은 내 '친구'였다. 그것도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친구였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있으랴.

 

 그 시절에도 어렴풋이 느꼈지만, 어른이 된 지금, 나는 인정할 수밖에 없다. 나는 조금 못된 친구였다고. 그렇지만 진심으로 말하건대 그들의 죽음은 늘 내겐 예견치 못한 사건이었고, 일시적일지언정 슬픔을 안겨주었다. 그들은 말 그대로 생명을 다해(?) 나를 가르쳤다. 작은 것은 생각보다 아주 약하다는 것을. 모든 생명은 귀하다는 것을.


 또한 애정은 너무 쉽게 슬픔으로 바뀌며, 관계는 언제가 끝이 난다는 것. 그러므로 마음을 다해야 한다는 것을. 그렇기에 나는 지금도 그들에게 미안해하지 않는다. 도리어 고마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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