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자의 서바이벌, 노은정에서〉

– 벼를 베는 먼지 속에서 기록을 되새기다

by 매체인간

2005.11

차와 사람

김효은의 다정기행

노은정

기록은 인류가 자신의 기억과 정보를 전달하는 변함없는 수단이다. 그 자체가 기억을 전수시킬만한 가치를 갖는 콘텐츠로 볼 수도 있다. 인간에게 입은 표현을 하는 기관 중 하나이고, 표현을 기억하기 위해 문자를 이용하고 기록을 한다. 기록문화는 인간에게 시간을 초월해 과거를 보여주고, 또 그것을 통해 기록이 존재하는 이유를 스스로 증명한다. 건축 역시 기록물이지만, 문자와 달리 입체적인 인간의 삶을 상상하도록 도와주고, 체험하게 해준다. 정자는 선조의 놀이문화를 엿볼 수 있는 여지를 마련해주고, 차문화공간으로의 활용을 가늠하게끔 한다. 전통문화에 대한 차별성이 더해가고, 그에 따라 문화원형 기록을 찾아 복원, 재현하는 사업이 성황을 이루고 있다.

이번호의 다정은 천안시에 위치한 노은정으로 선조들에 의해 세워지고 기록되어진 한국인의 문화재중 하나로 볼 수 있다. 노은정은 천안군 병천면 도원리 동성산 아래의 광기천변에 있으며 조선 조 효종 때 학자 김상기가 그의 나이 50세 되던 해 주변 경치가 수려한 이곳에 와 만년을 보내니 그의 호를 따서 노은정이라 하였다. 정자의 이름과 김상기의 호는 이곳의 옛 지명인 노은동에서 비롯되었다. 이곳은 도원팔경중의 하나에 속하는 곳으로 풍광이 빼어난 곳에 정자가 자리하였다. 정면 2칸, 측면 2칸의 홑처마에 우진각 지붕을 이루고 있으나 여러 차례 고쳐지어 본래의 모습과 많이 달라졌다. 그러나 사모지붕을 올릴 때 지붕틀을 구성하는 기법을 볼 수 있는 정자이다. 노은정은 병풍바위 미륵약수터 옥경대 자라 바위 등과 함께 도원 8경의 하나로 일컬어지고 있으며, 인근바위에는 우암 송시열 선생이 썼다고 하는 백석탄과 도영암이라는 글씨가 음각되어 있고 도원산성이 노은정을 포근히 감싸주고 있다.

노은정은 옛 선비에 의해 지어졌고, 또 그 후손들에 의해 보전과 중수를 거듭해 지금까지 전해진 건축물이라 할 수 있다. 인류의 오래된 기록물중의 하나라 할 수 있는 족보는 특히 유교사상이 한 시대를 풍미했던 우리나라에서 더 많이 발견된다. 노은정에서는 노은거사의 후손들이 세워 놓은 기념비를 통해 족보의 유래만큼이나 정자의 역사와 정자 주인의 내력까지 소소히 알 수 있어 역사의 재발견과 선조에 대한 후손들의 극진한 정성을 엿볼 수 있다. 어느 사학자가 한 말처럼, 각자의 고조할아버지가 무슨 직업을 갖고 있었는지 알고 있는 사람은 흔치 않다. 이런 사실로 미루어 보아, 우리는 족보를 통해 과거의 사실을 충분히 알고 있다고 여기지만, 실제로는 기록들이 많이 파괴되어 전해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실로 300년 전의 기록을 갖고 있고, 그것을 가슴에 지니고 사는 사람들의 자부심은 크지 않을 수 없겠다.

300년이 넘은 정자 옆의 나무는 그 시간을 짐작하게 해준다. 나무의 뿌리가 벗겨져 땅 밖으로 나온 모습을 보자니, 그 간의 풍파를 이겨낸 오랜 나무에게 ‘永久’라는 별명을 붙여 주고 싶다. 뿌리는 층층이 계단처럼 길을 내어준 셈이 되어버렸는데, 그 뿌리를 밟고 아래로 내려가니, 논농사의 마무리가 한창이다. 벼를 베는 동안 나락이 먼지가 되어 눈앞을 가린다. 머리를 툴툴 털며 정자를 되돌아오면서 광기川이 눈에 들어온다. 노은정에는 창이 두 개 달려 있는데, 창을 열면 광기천이 내려다보인다. 물고기의 헤엄치는 모습이 보일만큼 깨끗하다. 우리나라의 환경 정책이 효과가 있나보다. 가파른 세월처럼 정자를 업은 땅덩어리 역시 꽤 가파르다. 조금 더 고개를 숙였다면, 정자는 광기천에 빠질 수도 있겠다. 나의 염려는 현실인지 정자는 천에 빠질 수 없도록 철근에 묶여 있었다. 단단하게 묶여진 정자의 서바이벌은 디지털세계를 맞은 인문학의 모습과도 닮았다. 기록은 언제나 유용하게 사용하려는 의도가 그 전제인만큼, 정자의 서바이벌도 오랫동안 보존되어질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것이 사학적인 관점에서건, 가족차원의 국수주의적 차원에서건 정자는 살아 있다. 정자 옆 뿌리를 드러낸 나무가 몇 백 년 더 살길 기원하면서 정자 주변을 맴돌다 자리를 떴다.

노은정은 북쪽으로 우뚝 솟은 작성산의 푸른 정기와 동성산맥의 줄기찬 기상을 이어받고 앞으로 유유히 흐르는 광기천의 맑은 물이 어우러져 그 아름다움이 E?nldjsk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으며 철마다 학생들의 자연학습도장이 되고 있다. 공과 노은정에 대한 이야기는 300년 전에 발행된 대록지와 근세에 발행한 팔도유람기, 지명총람, 이것이 한국이다, 천원군지 등에 소개되고 있다.



2025년 리라이팅


기록은 인간이 시간을 견디는 방식 중 하나다. 말은 사라지지만 문자는 남는다. 그 문자를 담는 종이, 종이를 담는 건축, 그리고 건축에 담긴 삶의 층위는 결국 기억을 담는 용기이자 형식이다. 정자란 그런 기억의 건축이다.


노은정은 충청남도 천안, 병천면 도원리. 광기천을 따라 내려가는 길목에 있다. ‘노은’은 이 땅의 옛 지명이며, 정자를 지은 김상기의 호이기도 하다. 조선 효종 대의 학자였던 그는 오십의 나이에 이 자리에 눌러앉아 여생을 보냈다. 정자의 이름처럼, 그의 삶도 땅의 이름과 겹쳐진 것이다.


정자는 단순한 쉼터를 넘어, 인간의 시간을 붙들려는 시도다. 노은정은 후손들에 의해 계속해서 보수되었고, 정자 주변에는 조상을 기리는 기념비와 족보적 설명이 나란히 놓여 있다. 백 년, 이백 년이 아니라 삼백 년이 지난 지금도 이 정자는, 후손들의 발길 속에서 다시 태어난다. 그 어떤 텍스트보다 생생한 기록이다.


나는 오래된 정자 옆의 나무를 오래 바라보았다. 뿌리가 땅 밖으로 드러나 층층이 계단처럼 내려앉아 있었다. 시간에 부식된 것이 아니라, 스스로 뿌리를 길 삼아 선 것이다. 나무는 바닥에서부터 버틴 기록이다. 나는 그 나무에 ‘영구(永久)’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그 뿌리를 디디고 내려가면, 논에서는 벼를 베는 중이다. 먼지가 되어 날리는 나락들이 눈앞을 가린다. 툭툭 머리를 털며 다시 정자 쪽으로 올라오는 길, 노은정의 두 창문이 눈에 들어온다. 창을 열면 광기천이 바로 내려다보인다. 그 물길은 너무도 맑아서 물고기 등줄기까지 눈에 보인다. 이곳은 천안 팔경 중 하나로, 정자 앞 물길과 주변 풍경이 맞물려 있다. 미륵약수터와 자라바위, 병풍바위까지 어우러지며 이 고장 선비의 정취를 품는다.


하지만 내가 가장 인상 깊게 본 건, 정자의 기초를 붙들고 있는 철근이었다. 가파른 지형 탓에 정자가 자칫 천으로 빠질 수도 있어서, 지금은 땅과 철근으로 단단히 묶여 있다. 사라지지 않기 위해, 흔들리지 않기 위해. 디지털 시대의 인문학도 이와 비슷하다. 빠르게 흐르는 세상 속에서, 기록은 생존을 위해 구조를 붙든다. 정자는 사라진 정신이 아니라, 아직 살아 있는 몸이다.


그렇기에 나는 이 정자가 ‘살아 있다’고 쓴다. 혈통의 기록이건, 지방의 문화유산이건, 혹은 그냥 스쳐간 기억이건. 이곳에서 나는 시간보다 오래 버틴 풍경을 마주했고, 조선과 현대를 함께 걷는 나무의 뿌리를 밟았다. 그 뿌리가 몇 백 년을 더 살아내길 바라며, 정자 주변을 천천히 돌고는 떠났다.




벼를 베는 먼지 속에서 나는 오래된 뿌리 하나를 보았다. 땅을 딛지 않고는 어떤 시간도 서 있지 못한다는 걸. 노은정은 누군가의 기록이자, 아직 끝나지 않은 문장이다. 정자를 지은 이의 이름도, 그것을 지키는 이들의 마음도 그 안에 있다.

그리고 나는 지금, 그 마음 곁에 앉아 차를 마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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