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필과 종이를 들고서.
2006.3
차와 사람
김효은의 다정기행
남한산성 영춘정
-연필과 종이를 들고 찾아간다
작가 폴 오스터는 어린 시절 좋아하는 운동선수를 만날 때 연필과 종이가 없어 사인을 받지 못했다. 그때부터 폴 오스터는 어디서든 연필과 종이를 빼놓지 않고 다녔다고 한다. 우연한 계기는 인연이 되어 인생을 결정하는 전환점이 되기도 한다. 글을 쓴다는 것과 차를 마신다는 것은 정적인 인간 활동이라는 점에서 닮았다. 그것에 여행이라는 역동적인 콘텐츠가 부가되면, 풍부한 인간 활동이 될 것이다.
차, 글, 정자라는 정적인 이미지는 움직임, 여행이라는 동적인 활동을 통해 자연스럽게 융합된다. 그리고 글쓰기는 그 융합을 기록하는 유일한 장치가 된다. 연필과 종이라는 과거지향적인 기록 장치는 감성적인 생각을 정리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객관적인 사실을 받아 적고, 오며 가며 떠다니는 생각들을 종이에 옮기다 보면, 생각은 꼬리를 문다. 영춘정은 서울 근교 남한 산성에 위치하고 있어, 종이와 연필을 들고 찾아가기 탁월한 정자이다. 또한 가벼운 운동을 겸한 발걸음으로 적당하다.
영춘정은 서울의 남쪽 남한산성 안에 위치하고 있다. 서울에서 동남쪽으로 약 24km 떨어진 광주시 중부면 산성리에 있는 남한산성은 동경 127도 11분, 북위 37도 28분 지점에 위치한다. 행정구역으로는 광주시, 하남시, 성남시에 걸쳐 있으며 성 내부는 광주시 중부면 산성리에 속해 있다. 남한산성이 위치한 광주시는 약 80%가 산이며 나머지 20%가 평야부에 속하는 경작지이다. 높고 낮은 산이 많으며 좁고 긴 하천이 한강을 향하여 북 또는 북동쪽으로 흐른다.
한강과 더불어 남한산성은 삼국의 패권을 결정짓는 주요 거점이었다. 백제가 하남 위례성에 도읍을 정한 이후 백제인들에게 있어서 남한산성은 성스러운 대상이자 진산으로 여겼다. 남한산성 안에 백제의 시조인 온조대왕을 모신 사당인 승열전이 자리잡고 있는 연유도 이와 무관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조선왕조 시대의 남한산성은 선조 임금에서 순조 임금에 이르기까지 국방의 보루로서 그 역할을 유감없이 발휘한 장소였다. 그 중에서 특히 조선 왕조 16대 임금인 인조는 남한산성의 축성과 몽진, 항전이라는 역사의 회오리를 이곳 산성에서 맞고 보낸 바 있다.
인조 2년(1624)부터 오늘의 남한산성 축성 공사가 시작되어 인조 4년(1626)에 완공한데 이어, 산성내에는 행궁을 비롯한 인화관, 연무관 등이 차례로 들어서 수 백년의 역사를 갖고 있는 문화유산으로 자리잡았다. 이러한 문화유산은 1894년에 산성 승번제도가 폐지되고, 일본군에 의하여 화약과 무기가 많다는 이유로 1907년 8월 초하루 아침에 잿더미로 변하고 말았다.
그 이후로 주인을 잃은 민족의 문화유산들은 돌보는 사람없이 방치되다가 하나 둘 역사의 어둠 속으로 사라져 가고 말았다. 그렇지만 남한산성 주변에는 수 많은 문화유산들이 여전히 자리잡고 있다. 그 중에는 문화재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는 것에서 터만 남아있거나 문헌상으로 확인되는 것에 이르기까지 실로 다양하다. 최근 들어 남한산성이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영춘정은 1957년 경기도지사 이익흥이 건립하였으며 건립 당초에는 남문 밖 전망이 좋은 능선상에 있었는 바 1974년 현 위치인 서장대 근처 남쪽 오똑한 산봉우리에 이건하엿으며 1978년에 보수하였다.
구조는 팔각 모둠 기와지붕에 절병통을 세웠으며, 아담한 팔각정으로 건평은 6.75평(21.28㎡)이다. 정자의 마룻바닥은 지면에서 99cm이고 남북 양면에 화강석으로 된 3단의 오름계단이 설치되어 있다. 기둥은 콘크리트조 원주로 높이는 2.93m이고 기둥 양옆에 초엽 장식을 붙였다. 마루는 기둥에서 75cm를 내물려 깔았으며, 그 기둥에서 평난간을 설치하였으며 창방(昌放)위에는 화반 받침으로 장식하였다. 영춘정 편액은 농천 이병희의 글씨이다.
영춘정은 남한산성을 오르내리는 등산객 가족들의 쉼터로 사랑을 받고 있었다. 적당한 높이와 대중적인 위치는 사람들에게 부담없이 정자를 느낄 수 잇는 장치가 되고 있었다. 정돈된 도심 속에 뭍혀 지내다 왠지 모르게 녹음을 느끼고 싶을 때는 남한산성이 좋은 해결책이 될 듯하다. 정자에 도착하면, 차 한잔과 어울리는 종이와 연필을 들고 떠오르는 생각들을 적어 보는 것이 어떨지...
다정기행 〈영춘정, 연필과 종이를 들고〉
김효은 | 2025년 리라이팅
연필과 종이를 들고 산을 오른다는 것.
그것은 사인을 받기 위한 준비이기도, 생각을 잡아두기 위한 장치이기도 하다.
작가 폴 오스터는 어린 시절 좋아하던 야구선수와 마주쳤지만, 연필과 종이가 없어 사인을 받지 못했다.
그 사건 이후 그는 항상 그것들을 지녔고, 결국 글을 쓰는 사람이 되었다.
정자에 앉아 차를 마시며 글을 쓰는 일은,
조용한 시간의 복원이고,
조용하지 않은 도시에서의 도피다.
영춘정은 그런 몸의 리듬을 허락하는 장소였다.
남한산성 안, 서울에서 멀지 않은 거리에 위치한 팔각정 하나.
그 정자는 차 한 잔을 담고도 충분히 남을 넉넉함으로
나의 연필과 종이를 기다리고 있었다.
1957년 경기도지사 이익흥의 손으로 지어진 이 정자는,
언제부턴가 등산객의 쉼터가 되었다.
그리고 오늘, 나의 작은 사유가 내려앉는 자리로 쓰였다.
역사적으로 남한산성은 백제의 진산이자
조선의 항전이 기록된 장소이다.
인조는 이곳에서 울었고,
병자호란은 이곳을 관통했다.
수직의 성벽과 수평의 산세 사이에
왕조의 무게가 배어 있다.
영춘정은 그 역사와 약간 비켜난 채,
풍경을 건네주는 역할을 맡고 있다.
기단 위의 마루는 높지 않고,
기둥은 콘크리트로 단단했으며,
편액은 농천 이병희의 글씨였다.
도시를 품은 산성,
산성을 품은 정자,
정자 위에 앉은 나.
이런 구조 속에서 차를 마시는 일은,
거대한 시간의 문을 조심스럽게 여는 일이다.
녹음은 거기 있었고,
나는 그 안에서 글을 썼다.
조금 오래된 방식으로,
연필과 종이를 들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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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
도심을 떠나 멀지 않은 거리에서 만난 고요한 팔각정.
나는 그 안에서 오랜 시간과 마주했다.
한 잔의 차, 한 줄의 문장, 그리고 하나의 정자.
잊히지 않는 풍경은 그렇게 기록되었다.
누군가는 산을 오르고, 누군가는 글을 쓰고,
나는 그 둘 사이 어딘가에서 연필을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