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봉의 화룡점정
2005.12
차와 사람
김효은의 다정기행
삼봉의 화룡점정
삼도정
사람들이 서 있는 곳은 하늘도 아니고, 물도 아닌 땅이다. 땅을 밟고 서서 남과의 구별을 꾀하고자 벽을 쌓는다. 땅은 수평이고, 벽은 수직이다. 수평과 수직이 만나 공간을 이룬다. 시간이 진화하면 공간도 진화한다. 공간은 시간보다 원시적인 단위이다. 우리는 시간이라는 영속성에 지배를 받고, 공간이라는 물리적인 조건에서 살아간다. 비를 피하고, 가족들이 모여 쉴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면, 이제 차 마실 공간이 필요하다. 인간의 욕구가 진화할수록 그 욕구 충족을 위한 물질도 진화한다. 내부를 살피던 시선은 이제 외부에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공간의 조형적 조건들이 시야에 들어선다. 근처의 물과 어찌 조화를 이루는지 하늘에서 보이는 공간은 어떤지 신경 쓰게 된다. 단양군의 삼도정은 뭍과 물의 조화에서 능히 한 손에 꼽힐게다. 작은 돌 봉 위에 장난감처럼 얹힌 육각정은 상상력에 시동을 걸게 한다. 상상력에 추진력을 더하여서 자연과 인공이 저리 아름답게 조화되는 것이겠지.
도담삼봉은 단양팔경 중 제1경으로 남한강의 맑고 푸른 물이 유유히 흐르는 가운데 만수시 6m의 석회암으로 이루어진 단양 토양의 오묘한 조화로 솟아오른 봉우리이다. 늠름한 장군봉(남편봉)을 중심으로 왼쪽에는 교태를 머금은 첩봉(딸봉)과 오른쪽은 얌전하게 돌아앉은 처봉(아들봉)등 세봉우리가 물위로 솟아 있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부부는 금실이 좋았지만 아이가 없어 남편봉은 첩봉을 들이게 되었고, 이내 아이를 가진 첩봉은 남편봉을 향해 자랑하듯 배를 불쑥 내밀자, 처봉이 시샘하여 돌아 앉아 있다는 것ㅇ다. 부인의 질투를 소재로 한 지극히 중세적인 이야기에 내심 껄끄럽긴 하지만 삼봉에 부여한 상상력은 기발하다.
전해지는 이야기가 하나 더 있다. 삼봉은 원래 강원도 정선군에 있었는데 홍수에 의해 단양까지 떠내려 왔다는 것이다. 그 때문에 정선군에서는 매년 단양에 와서 세금을 받아갔는데, 어린 정도전이, 세금을 받으러 온 정선의 관헌에게 달려가 말했다. “우리가 삼봉을 정선에서 떠내려 오게 한 것도 아니요, 우리에게는 아무 소용도 없고, 오히려 물길을 막아 피해를 보고 있으니 도로 가져가든지, 아니면 우리에게 세금을 내시오.” 그러자 정선에서 온 관헌은 땀만 뻘뻘 흘리다 돌아갔고, 그 뒤로는 세금을 받으러 오지 못했다 한다. 일화의 주인공인 정도전은 도담삼봉을 특히 사랑하여 호를 삼봉이라 지었는데, 뒤에 조선 개국의 일등 공신이 되었다. 시대의 어린 위인은 당차고, 용기도 가상하다.
장군봉 중턱에 자리한 육각정은 조선영조 42년 건립되었고, 1972년 대홍수로 유실되었던 것을 1976년 복원하여 ‘삼도정’이라 명명한 것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최근도 비가 많이 내리면, 삼도정 바로 아래까지 물이 찰랑거려 아슬아슬할 때가 있다. 삼봉을 찾은 날 역시 물이 차올랐다 가라앉아 수위를 가늠할 수 있는 층이 보였다. 나룻배를 타고 삼도정에 안착하여 차 한 잔 마시고픈 심정이 한사발의 차처럼 넘실댄다. 도담삼봉 나루터에서는 유료 유람선을 운행하고 있지만, 삼도정에 당도하는 경로는 없다. 육각의 정자를 멀리서 바라보아야 하는 신세가 박물관의 오랜 물건을 탐하지 못하는 처지와 닮았다. 삼봉을 바라보는 정도전상 근처에서 찻잔을 홀짝이다 보면, 유명한 관광고장답게 사람들의 발길이 줄을 잇는다. 관광버스에서 내리는 무리부터 자가용 부대에 이르기까지 도담삼봉은 인기가 높다. 이곳에는 삼도정 뿐 아니라, 도담삼봉을 내려다보는 정자가 두 개 더 있다. ‘석문’으로 향하는 등산로에 위치한 육각정과 반대방향의 절벽에 위치한 정자가 그것이다.
도담삼봉 주차장 끝에 새로 세워진 음악분수대 옆으로 200m 높이의 등산계단을 올라 육각정을 지나면 수십 척 높이의 무지개 형상 돌문에 다다른다. 단양팔경 가운데 하나인 ‘석문’사이로 물줄기가 잔잔히 흐른다. 아기자기하고 기승전결이 있는 한국의 자연이 내심 자랑스러워 마음이 우쭐댄다. 석문 위를 건너는 사람들이 아찔해 보인다. 뒤돌아서 외면해보지만, 별 수 없이 일행을 따라간다. 석문은 문(門)인 동시에 다리(橋)이다. 자연은 의도치않게 용도로 구별되어지고, 인간의 유희거리로 가치를 부여받는다. 석문 위를 건너려니 내 다리가 후들거린다. 자연이 세운 다리에 인간을 위한 안전장치 따위가 있을리 만무하다. 강물에 떨어질까 엉금엉금 기어 석문위로 올라섰다. 눈앞의 삼봉이 보이는 둥 마는 둥이다. 재빠른 걸음으로 석문을 내려와 일행을 기다리는 내 모양이 우습다. 야생에서 자란 사람은 어떨까. 문명이라는 이름 아래 사람은 야생이 없다. 온실 속에 자라는 풀포기인양 다리 하나 건너는데 땀이 솟는 나는 야생이 두려운 게다.
도담리의 삼봉, 도담삼봉의 삼도정은 오늘도 사람들의 시선을 견딜게다. 배타고 지나가며 보고, 이쪽 산에서 바라보고, 저쪽 산에서 뜯어 본다. 삼도정이 유명세 덕에 더 능청스러워지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어느 누구 삼도정에 자리 잡고 차를 드실 분 없으신지 묻고 싶다. 삼도정의 능청을 압도할 카리스마 갖고 계신 분 없으신지?
2025 리라이팅
사람은 대지를 딛고 산다.
하늘을 우러러 사유하고, 물가에 앉아 감탄하지만, 결국 땅에 벽을 세워 자신만의 안식처를 만든다.
수평의 땅 위에 수직의 벽이 세워지고, 공간이 탄생한다.
공간은 시간보다 먼저다.
시간이 흐르며 변화한다면, 공간은 남는다.
남는다는 점에서 공간은 기록이고, 지문이며, 감각의 설계도다.
어느 날엔 비를 피하는 용도였다가, 어느 날엔 침묵 속에서 차 한 잔을 올리는 성소가 된다.
단양의 삼도정은 그 두 가지 조건 모두를 만족하는, 드물게 완성된 구조물이다.
육각형 지붕이 작은 석봉에 앉은 모습은 마치 풍경 위에 찍은 도장 같다.
삼봉이라는 이름의 음각된 화룡점정.
물 위에 떠 있는 세 개의 봉우리 가운데, 정자는 인공의 중심에서 자연의 시선을 끌어안는다.
삼봉은 전설로 둘러싸여 있다.
남편봉과 처봉, 첩봉이 이루는 이 가족 드라마는 한국식 지형에 상상력을 불어넣는 서사의 장치다.
질투, 기쁨, 회피, 헌신…
그 모든 감정의 동선이 풍경 속에 굳건히 박혀 있고, 사람들은 그것을 여행한다.
또 하나의 이야기는 정치적이다.
원래 정선에 속한 바위가 떠내려왔다는 설.
그리고 어린 정도전이 “우리가 떠내려오게 한 것도, 이득을 본 것도 아니니 세금을 물릴 수 없다”고 항의했던 대담한 장면.
이 장면을 기억하듯 그는 평생을 통찰과 언어로 싸웠고, 결국 조선을 세운 개국공신이 되었다.
정도전은 이 삼봉에서 자신의 호를 따왔다.
삼봉山, 삼봉정치, 삼봉정신.
하나의 풍경이 사상으로 옮겨지는 놀라운 변환이다.
지금의 삼도정은 조선 영조 42년에 처음 세워졌다가, 1972년 대홍수로 유실되었고 1976년 복원되었다.
정자는 여전히 장군봉의 중턱에 위태롭게 앉아 있다.
수위가 차오르면 금방이라도 물에 잠길 듯한 자리.
하지만 정자는 움직이지 않고, 그 자리를 지키며 오히려 물을 길들이는 인상을 준다.
사람은 유람선을 타고 그 아래를 맴돈다.
접근은 허락되지 않고, 멀리서 바라볼 수밖에 없는 그 존재는 마치 유물처럼, 혹은 하나의 의식처럼 작동한다.
우리는 오롯이 삼도정을 ‘감상’한다.
돌아서면, 다른 두 개의 정자가 눈에 들어온다.
‘석문’으로 향하는 길목과 그 반대편 절벽 위에 하나씩 서 있다.
이중 석문은 아찔한 자연의 다리다.
지나는 사람마다 손에 땀이 난다.
나도 그랬다.
온몸에 문명의 두께가 내려앉은 채, 야생의 돌다리를 기어 건너며, 스스로를 돌아봤다.
우리가 문명이라 부르는 안락은 사실, 야생을 버리는 대가로 얻은 겁이다.
그날, 나는 석문을 건넜고, 다시 돌아와 찻잔을 들었다.
삼도정은 여전히 강물 한가운데, 아무 말 없이 그 자리에 있었다.
사람들의 카메라 세례도, 수많은 발걸음도
그 육각지붕을 흔들지 못했다.
누군가 삼도정에 올라 차를 올린다면,
그건 의례이자 선언일 것이다.
자연과 인공의 경계 위에 차 한 잔을 올리는 순간,
그 자리는 비로소 공간이 된다.
시간이 깃든 공간.
그때야말로, 화룡점정의 진짜 뜻이 드러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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