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란정

충절의 여운과 강물 위의 사유

by 매체인간

관란정

충청북도 제천


2005.11

차와 사람



생각하는 것이 귀찮을 때가 있다.

영화를 보고 나서 감상을 나눌 때에도 귀찮을 때가 있다. 영화의 개연성과 장면간의 논리에 대해서도 영화를 보는 순간에는 무수한 생각이 스치지만, 막상 영화를 보고 나면 떠올리는 것조차 힘이 들때가 있다. 그러나 게으름을 작작 피우고 나면 무서운 힘이 솟구치는 것 같다. 불현 듯 그 장면을 토해내듯 일기를 쓰기도 하고, 누군가와 신이 나서 영화평을 나누기도 한다. 양껏 게으름을 피우다가 무언가에 기운이 솟을 때는 행복해진다. 차를 마시는 것은 나에게 행복한 일 중에 하나이다. 행복한 일을 하기 위해 사람들은 아낌없이 투자를 한다. 최선의 행복을 위해 알뜰한 선택을 하고, 그 뒤에 이어지는 행복감을 마음껏 누리기 위해 시간과 돈과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다. 이제 한달에 한 번 정자를 찾아가는 수고는 나에게 맛난 차 한 모금 이상이다. 옛 정자의 사연과 자연 속에 소박하게 어울린 정자를 하나 둘 알아가면서 차멋도 늘어간다.

이번 정자는 충청북도 제천에 위치한 관란정이다. 관란정은 송학면 장곡리에 위치한 영월 서강 가 벼랑 위에 있다. 지방기념물 92호인 관란정은 제천에서도 유명한 문화재였다. 국도위의 팻말을 본 뒤, 차에서 내려 400m 올라가면 관란정이 보인다. 관란정에서는 우리나라의 지형을 닮은 분지도 볼 수 있는데, 하늘에서 국토를 내려다보는 듯한 느낌을 가지게 한다. 덕분에 각종 매체에서는 관란정보다 그 분지가 자주 소개되었다. 분지는 동해의 가파름과 서해의 낮은 해안가까지 빼닮아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이번 다정기행에도 재연과 이내가 나를 따랐다. 나는 조용한 캡틴이 되어 두 자매의 자연학습에 동참했다. 우리는 작은 풀벌레에서 뱀이 허물을 벗어 놓은 것까지 구경하며 관란정 주변을 맴돌았다.

관란정에 대한 사연은 단종이 노산군으로 강봉되어 영월에 안치된 후, 관란 원호(생육신)가 단종을 추모하여 이곳에서 강물가에 설단하고 조석으로 눈물을 흘리며 망배하였다. 원호가 죽은 뒤, 후손들과 유림들이 원호의 충의를 길이 앙모하기 위하여 헌종 11년(1845) 그 자리에 정자를 세우고 원호의 호를 따라 관란정이라 하고 유허비를 세웠으며, 1941년 개축하였다. 건물 구조는 전면 2칸, 측면 2칸의 목조 기와집의 팔작지붕으로 아담한 사이즈와 낮은 마루로 인해 자연에 거스르지 않으려는 소박함이 잔잔한 감동을 일으킨다. 축대가 헐고 마루판이 파괴되어 1971년에 보수하여 오늘에 이르러 지방 사적으로 지정받은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발길이 드물 것 같은 외진 곳이지만, 드문드문 인적이 닿아 고을의 관광지로 최선을 다하는 듯 보였다.

원호의 충의에 찬 애절한 사연은 글로 적어 표현할 길이 없다고 하는데, 주위의 산과실과 산나물을 정성을 들여 채취하여 표주박에 글월과 함께 넣어 서강에 띄우면 빈 표주박은 거슬러 올라와 원호가 받았다고 하니 그 지극한 충절은 아무도 따를 길이 없을 것이다. 낡은 비각 안 목판에 붓으로 쓴 다음과 같은 애절한 싯귀가 있다. [간밤에 우던 여울, 슬피 울어 지나가다. 이제와 생각하니, 님이 울어 보내도다.] 그는 왕께 향한 충절을 어찌할 길 없어 서강 기슭으로 거닐며, 님 그리는 단성을 강물에 흘러 보내며 울었다고 한다.

그 후손들은 이 충절이 자랑스러워 관란정 중수약기에 “내 선조 관란선생은 단종조의 생육신 중의 한분이신데 오직 선생만, 두려울 때 있었으면서도 신하의 도리를 다한 특별한 충절은 넉넉히 혜성으로 우주를 비추었다”라는 기록을 남겼다. 유교 시대의 충절은 가히 뿌듯한 가문의 영광일 것이다. 돈이나 목숨을 떠나 오직 고매한 정신을 우선해 두었던 조선시대 유교 사상이 작금의 서양철학에서 비롯된 자본주의보다 고차원적인 인간중심의 패러다임이 아니었나 생각이 든다. 인간의 안위나 생존 문제가 아닌 인간이 가져야할 바람직한 행동양식에 무게중심을 두고, 그 법칙에 따라 살아가는 인간상에 집중을 했던 조선시대가 한편 아름답게 느껴진다. 그에 비해 오히려 원시적이고 투쟁적인 현대의 모습에서 우리가 과거 중세시대로부터 배워야 할 점이 바로 이런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붕괴될 수 밖에 없었고, 짓밟힐 수 밖에 없었던 조선시대 후기의 단점만을 부각하는 과거사보다는 역사에 대한 새로운 복원의지로 유교시대의 장점을 돋보이게 하는 작업 역시 조선시대의 유적을 체험하는 것 못지않다 여겨진다.

관란정은 지난 호에서 다녀왔던 여타 정자들의 유명세에 미치지 않겠지만, 다정으로서 극찬을 해도 마땅하다 여겨진다. 지나가다 보여서 들른 관광객들의 눈도장보다 관란정을 찾아오기 위해 수고를 한 아는 사람들의 깊은 정이 그러하고, 정이 실린 발길과 관심이 그러하고, 관란정의 수줍은 인상이 다인들에게 안성맞춤이기에 그러하다. 관란정에 왔다가 앞에 펼쳐진 국토 미니어처는 뜻밖의 선물일 것이고, 너울거리는 호랑나비는 찻자리의 여흥으로 만점이다. 작은 풀벌레를 만지작거리는 두 자매를 보면서 관란정에 오길 잘했다는 생각에 마음 뿌듯해진다. 관란정 이후 제천 의림지에 들러 산책을 해도 좋겠다. 강아지풀을 꺾어 흔드렁거리며 아무렇게나 편한 발걸음을 옮긴다. 서울에서 한 시간 반, 제천의 관란정은 잠자리 날아가듯 슬쩍 다녀오기 좋은 별 다섯 개짜리 다정이다.




2025년 버전 리라이팅



가끔은 생각하는 일이 버겁다.

영화를 보고 나서 말이 막히는 순간, 어떤 감상도 입 밖으로 꺼내기 싫은 그런 나른한 저녁.

생각이 귀찮아지는 그 무게의 순간은, 어쩌면 생각이 깊어질 예고일지 모른다.

게으름은 고요한 예열이다. 오래 눌러둔 감각은 어느 순간 튀어나와 글이 되고, 말이 되고, 차가 된다.


나에게 차는 생각 없는 상태로 들어가는 문이다.

생각하지 않기 위해, 나는 정자를 찾는다.

그리고 그곳에서, 마침내 생각한다.


관란정. 충청북도 제천, 송학면 장곡리.

영월로 흐르는 서강 벼랑 끝에 자리한 이 아담한 정자는, 강을 마주한 채 조용히 있다.

차에서 내려 400m쯤 걷는다. 숨이 조금 차오를 무렵,

하늘 아래 작은 국토 하나가 내려다보인다.

관란정 앞에 펼쳐진 그 지형은 마치 한반도의 축소판 같다.

동해의 가파른 선과 서해의 너른 숨결이 작은 분지 안에 모여 있다.

이제 나는 땅을 내려다보며 차를 마시고 있다.

이 얼마나 반전의 장면인가.


관란정에는 이야기가 있다.

노산군으로 강봉된 단종을 향한 단 하나의 충절.

생육신 관란 원호는 이곳 벼랑 위에서, 날마다 강가에 제단을 차리고 조석으로 망배를 드렸다.

왕을 향한 애달픔을 글로 적어 표주박에 담아 강물에 띄우면, 빈 표주박이 거슬러 돌아왔다고 했다.

이야기의 사실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그가 ‘그럴 수 있는 인간’이었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하다.


관란정에는 ‘흘려보냄’이 있다.

사랑도, 충절도, 말로 다 하지 못한 모든 것들을 물에 담아 흘려보내는 행위.

그렇게 울음을 남긴 공간은, 시간이 지나도 지워지지 않는다.

관란정은 말이 아닌 눈물의 정자다.


1845년, 관란 원호의 후손들이 그 자리에 정자를 세웠다.

그 이름도 그의 호를 따라 ‘관란정’이라 부르고, 유허비를 세웠다.

낮은 마루, 팔작지붕, 축대 위에 조심스레 얹힌 듯한 그 집은

자연에 반하지 않고, 다만 곁에 있으려는 듯 작고 조용했다.

나는 그런 건축이 좋다.

큰 목소리로 자신의 존재를 주장하기보다는, 묵묵히 살아 있는 건축.


재연과 이내, 두 자매와 함께한 이번 방문은 더없이 생기가 돌았다.

호랑나비가 너울거리고, 뱀이 벗은 허물이 무언가를 알려주려는 듯 남겨져 있었다.

관란정 주변의 자연은 마치 한 권의 열린 책 같았다.

나는 조용한 캡틴이 되어, 아이들의 감각과 함께 찻자리를 꾸렸다.


그곳에는 말보다 눈빛이 더 많았다.

손으로 풀벌레를 가리키고, 표정으로 느낌을 전했다.

차는 온기를 나눴고, 공간은 고요를 풀어놓았다.


관란정은 유명하지 않다.

하지만 다정으로는 다섯 손가락 안에 꼽고 싶다.

그곳을 ‘목적지’로 삼고 온 발걸음이기에,

그 정자에 도착한 감정의 밀도가 다르다.

지도에서 찾은 것이 아니라 마음에서 불러낸 곳.

그것이 진짜 기행의 방식일지도 모른다.


나는 관란정에서 ‘충절’이라는 단어의 옛 향기를 맡았다.

그 단어는 더 이상 이데올로기의 것이 아니었다.

자신이 품은 가치에 조용히 끝까지 머무는 태도.

그것이 충절이라면, 우리는 다시 그것을 살아낼 수 있을까?


제천 의림지를 향해 산책을 이어갔다.

풀벌레들이 흔들리는 강아지풀 아래서 짧은 기도를 올리는 듯했다.

나는 속으로 말했다.

“관란정에 와서, 오늘 내가 조금 더 조용해졌습니다.”


그리고 다시, 차를 마셨다.

이제 내가 흘려보낼 차례다.



에필로그


정자에 앉아 차를 마신다는 것은, 말을 줄이는 연습이자 마음을 낮추는 예식이다.

관란정은 크지 않았다. 사연은 크고 목소리는 낮았다.

지나간 충절이 여전히 강물 위를 흐르고, 그 충절은 더 이상 위대한 역사가 아닌

조용한 사람의 자세로 내게 다가왔다.


2005년 함께 한 아이들는 숙녀들이 되었겠지?

나에게 유산이란 기억되는 것이 아니라 다시 감각되는 것이라는 사실을 가르쳐주었다.


바람은 말이 없었다. 그러나 나를 납득시켰다.

오늘 내가 관란정을 기억하는 방식은, 한 잔의 차처럼 조용하고 따뜻하다.

그리고 흘려보낼 줄 아는 사람만이 비로소 머무를 수 있다는 것을,

이 작은 정자가 알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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