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래정 - 2005. 08

강원도 강릉시

by 매체인간


시각에 대하여 사람들은 ‘보다’, ‘읽다’라는 동사를 쓰고, 후각에 대해서는 ‘맡다’라는 동사를 쓴다. 감각으로서의 공간에 대한 동사는 무엇일까? 왜 ‘공간하다’라는 동사는 없는 것일까? 공간을 보다, 공간을 읽다, 공간을 맡다? 아무래도 공간에 어울리는 동사는 ‘경험하다’가 아닐까? 이보다 더 설득력을 가진 공간 동사에 대해서는 시간을 두고 생각해 볼 일이다. 공간을 경험하는 것은 그 공간에 존재한다고도 할 수 있고, 그곳에서 무언가를 행한다거나, 느낌을 갖는 등 여러 가지 의미를 내포할 수 있겠다. 차를 마실 때도 우리는 공간의 지배를 받는다. 일상적 공간에서 차를 마실 때와 다실에서 차를 마실 때의 차 맛이 다른 것도 공간의 영향일 것이다.

같은 차일지라도, 거실에서 손님에게 차를 대접하면 차 보다는 대화 내용이나 거실의 풍경에 관심을 갖게 된다. 하지만 다실에 초대했을 때 손님들의 반응은 대화보다는 차에 대해서만 집중하게 된다. 공간은 이렇듯 사람들에게 무의식속에서 대상에 대한 미묘한 관심을 갖게 하고, 그것에 대한 높은 집중도를 이끌어 낸다. 우리 선인들이 자연 속에 차 마시는 공간을 따로 마련해놓았다는 것은 차에 대한 극진한 관심과 자연을 즐기는 도가적 태도 때문일 것으로 추측된다. 2005년의 무더운 여름, 강릉시의 오랜 문화재를 통해 네 번째 차 마시는 정자를 경험했다.


이번 강릉행은 두 반인족의 합석 덕분에 즐겁기 그지 없었다. 재연과 이내 자매는 초등학교 2학년, 1학년에 재학중인 꼬마 숙녀들로 그들의 작은 몸집과 유쾌하고 낙천적인 웃음소리는 나로 하여금 영화 ‘반지의 제왕’에 등장하는 호빗족, 반인족을 떠올리기 충분하였다. 고대 이집트 시절에도 어름들이 ‘요즘 아이들이란 옜날과 달라...’했다는 기록이 있다지만, 2000년대를 사는 반인족 역시 고언의 진리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어른 뺨치는 재치를 가진 두 반인족은 강릉행을 빛내는 귀한 벗임에 틀림이 없었다. 강릉에 도착하자 무더운 여름 날씨가 우리를 공격했다. 이글거리는 태양 아래 기가 푹 죽어 선교장에 도착했다. 결국 정자 그늘 아래서 태양에 항복하고 말았다. 내 곁을 졸졸 따라다니던 귀여운 이내와 함께 정자 옆 벤치에 앉아 무언가 생각에 잠기기도 하고, 끄적이기도 했다.


선교장은 중요민속자료 제5호로, 오죽헌으로부터 동쪽으로 1.5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다. 조선시대 사대부의 살림집이다. 전주사람인 이내번이 이곳으로 이주하면서 지은 집으로, ‘선교장’이라는 이름으로 집터가 뱃머리를 연상케 한다고 하여 붙였다고 한다. 안채, 사랑채, 행랑채, 별당, 정자 등 민가로서는 거의 모자람이 없는 구조를 지니고 있다. 주위가 시루봉에서 뻗어 내린 부드러운 산줄기로 둘러싸여 있고, 가옥 앞으로는 얕은 내가 흐르며, 멀리 안산과 조산이 보이는 명당에 자리잡고 있다. 효령대군의 11대손인 이내번이 집터를 잡은 후 사랑채인 열화당을 비롯하여 활래정, 동서별당 등이 후손들에 의해 지어졌다. 선교장은 ‘이강륭’이라는 개인이 소유, 관리하는 곳이었다. 그 때문인지 철저한 관리로 선교장은 반듯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이 전까지 다녀왔던 정자들과 다르게 입장료를 내야 하기도 했다. 또한 취재 목적의 사전 허가를 제외하고는 활래정에 함부로 들어갈 수도 없었다. 하지만, 선교장에는 활래정 외에도 안채, 사랑채, 동별당, 서별당, 가묘, 행랑채를 볼 수 있어 정자를 밟지 못하는 아쉬움을 달랠 수 있었다.


선교장의 행랑채 바깥 마당에는 넓은 방지를 파고, 못가에 정자인 활래정을 세웠다. 방지 가운데에는 삼신선산을 모방한 가산을 만들어 노송을 심었다. 활래정은 연못 속에 돌기둥을 세우고, 건물의 일부를 누마루로 만듦으로써 마치 물 위에 떠 있는 형상으로, 주변의 풍경과 함께 선조들의 뛰어난 조형미와 조원 기법을 엿볼 수 있다. 선교장 내 문화재 가이드 분은 활래정의 기둥마다 쓰여진 문구들을 토대로 설명을 해주셨다. 그 내용을 보면, 활래정은 사슴을 키우는 곳이기도 했으며, 객인들이 묵던 곳으로 도가적 영향을 받았음을 알 수 있었다.


문헌에서와 같이 활래정 앞에는 연잎들이 우렁차게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흡사 그 모습이 합창을 하듯 조화롭고, 너울져 보였다. 우산 크기만한 연잎들이 들어찬 가운데 나지막한 소나무 섬이 있엇다. 활래정에서 바라보는 인공 연못은 방화수류정의 인공 못과는 또 다른 모습이었다. 방화수류정의 인공 못에서 볼 수 있는 버드나무가 미묘한 감정을 묘사하는 작가주의 영화라면, 활래정의 연잎들은 스펙터클한 액션 영화답다. 가이드분의 설명에 의하면, 열두마리의 물오리들이 연못 어딘가에 숨어 있다고 했다. 물오리들을 가리운 채 씩씩하게 태양에 맞서는 가녀린 연잎에서 새삼 ‘여자는 약하지만, 어머니는 강하다’라는 문구가 떠올랐다.


활래정은 순조16년(1816) 열화당을 세운 다음 해에 세워졌다. 정자명은 주자의 시(관서유감)중에서 땄다고 한다. 이 건물은 마루가 연못 안으로 들어가 돌기둥으로 받친 누각형식의 ㄱ자형 건물이다. 활래정은 벽면 전부가 분합문의 띠살문으로 되어 있으며 방과 마루를 연결하는 복도 옆에 접객용 다실이 있다. 활래정의 둘레에는 어린아이 보폭 넓이의 베란다가 둘러져 있는데, 그 곳에서 연향을 맡으며 연차를 마신다면, 그만한 행복을 어디다 견주랴 싶다.


하지만 활래정에서 그 모습을 재현하지 못한 채, 입맛을 다시며 물러나야 했다. 아쉬움을 안고 찻자리를 물색하다, 정자가 한눈에 보이는 오두막에 차살림을 풀었다. 무더위에 따스한 차를 마시려니 솔직히 구미가 당기지 않는다. 가만 있어도 땀이 송글송글 맺는 한여름 대낮의 냉수 한모금은 상상만 해도 기가 막히지 않은가. 일행을 설득할 요량으로 둘러보니, 이미 얼음보숭이를 사러 갔단다. 오도독 오도독 빙과 하나를 해치우고 나시 입이 얼얼해졌다. 그제서야 활래정 한 번 쳐다보고, 앞에 놓인 차 한잔 넘겼다. 잠시 더위를 상실하겠다고 얼음에 만족했던 나는 기대치도 않았던 차에서 꿀맛을 느꼈다. 얼얼해진 혀 끝에 닿은 온차에서 묘한 역설이 일었다. 음식의 단맛을 강조하려 소금을 첨가하듯 더위를 식히기에 차는 그만의 짜릿함을 갖고 있었다. 더위에 지친 재연과 이내도 그 맛을 알겠는지 거푸 찻잔을 들이킨다. 활래정에서의 공간 동사는 ‘마시다’라고 일컬어야 할 듯하다. 활래정을 마시니 한여름 무더위에도 기운생동이다. 차 살림 꾸리기 신나는 여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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