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양정 - 2005. 07

강원도 춘천시

by 매체인간


공간사이의 이동은 바퀴의 발명과 도로의 건설이라는 기술의 발전에 따른 것이다. 길은 사람들이 반복해서 다니면서 생겨난다. 길은 자연발생적이다. 공간사이를 이동하는 데 우리는 길을 따라 가지 않을 수 없다. 길을 걷는다는 것은 인간의 대사활동을 기본으로 에너지를 소모하는 것이다. 이처럼 공간을 이동하는 데에는 에너지가 필요하다. 물론 어떤 것이든 기본적으로 시간이라는 에너지 역시 필요로 한다. 시간과 에너지를 이용해 공간 사이를 이동하는 것이다. 우리는 서울에서 춘천까지의 공간이동을 하는데 두 시간여 남짓을 소요했고, 경춘가도를 이용해 자동차를 탔다. 새삼 자동차로 시간을 단축하고, 간편하게 이동할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다. 경춘가도를 달리다 마음이 동하는 공간을 마주하면 서슴없이 네 바퀴를 멈추고, 카메라 렌즈를 들이댔다. 나는 자가용이 묵직한 강철로 만들어진 만큼 언젠가는 쓰레기가 되어 환경을 해치거나 그 편리함으로 하여금 사람을 게으르게 만드는 몹쓸 물건이라고 생각하곤 했다. 하지만 이번 춘천행은 그토록 부정적이던 자가용이 매력적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게 해 주었다. 경춘가도가 부지런히 제공하는 아름다운 풍경은 그런 가능성에 무게를 실어 주었다.


경춘가도의 구도로를 따라 가다 의암댐을 보기 위해 차에서 내렸다. 산 중턱에는 산장으로 보이는 하얀 집이 한 채 보인다. 산 속 덩그마니 자리 잡은 그 집을 보고 있자니 집주인이 참 영악하다는 생각이 든다. 산은 조용히 산장을 품은 듯 했고, 산장은 혼자서 의암댐을 독차지 한 듯 보였다. 산의 자비로움을 등에 업고 강의 여유로움을 만끽하는 의기양양함에 꽤 질투가 났다. 의암댐을 지나고 중도 유원지를 둘러 본 후에야 나는 소양정을 찾을 마음을 먹었다.

그만큼 춘천은 소양정 외에도 눈길을 끄는 곳이 여럿 있었고, 댐을 4개나 품은 호반의 도시갑게 매력적이었다.

춘천을 돌아보는 내내 까닭없이 흐뭇해하는 나를 발견했다.

강원도 특유의 청명함과 춘천만의 물내음 때문이리라.

춘천에는 낭만을 추억하게 만드는 묘한 기운이 있었다.


내려쬐는 태양 아래 소양정을 찾아 봉의산에 올랐다. 차를 세워두고 200m 정도 걸으면, 소양정이 나타난다. 봉의산은 춘천의 상징이자 진산으로 꼽히며 소양정은 봉의산의 서쪽 산록에 위치하고 있다. 그 곳에 올라보니 소양정을 그곳으로 옮겨 놓은 이유를 자연 이해할 수 있었다.

이웃한 마을과 소박하게 어울려 소양강을 내려다보는 모습이 찻자리로 그만이다.

소양정의 본래 이름은 물과 산을 함께 즐긴다는 이요루였으나 조선 순종 때 춘천 부사였던 윤왕국이 소양정으로 개칭하였다. 강원도 문화재 자료 제1호인 소양정은 처음 창건된 시기는 확실치 않으나, 고려 말 문인들의 시에 나오는 것으로 보아 이미 그 때 존재한 것으로 보인다. 본래 이 소양정은 소양1교 근처 강변 절벽에 위치했던 정자ᆞ이나 1605년 홍수로 유실된 것을 1610년(광해군2년) 부사 유희담이 다시 지었고, 1647(인조25년 춘천부사 엄황이 수리하면서 정자 동쪽에 선몽당이라는 부속 건물을 세웠다. 이러한 유실과 보수를 거듭하다 또 다시 한국 전쟁 때 전소되었다. 이 후 도로 개설 등 주변의 지형이 변형되어 1966년 지금의 자리에 다시 중층 누각으로 건립하고 소양정이란 현판을 걸었다. 소양정 현판은 당시 강원도지사인 박경원의 글씨이며 누각안에는 민형식의 글씨로 전해지는 한시 현판이 걸려있다.

유난히 소실과 재건이 많은 걸 보니 소양정이 겪어온 모진 풍파와 구구절절한 사연이 궁금해진다.


소양정은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2층 누각으로 지붕은 팔작지붕 겹 처마이다. 양측에 계단을 놓아 루 위로 오르게 하였으며, 초익공 양식의 건물로 전체적으로 소박한 형태를 보이고 있다. 루정 건물인 소양정에서는 소양강과 북한강이 만나서 의암호로 하나가 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루정 건물은 그 지역에서 산수가 가장 아름다운 곳에 세워졌으며, 연희, 학문토론, 시정을 나누던 옛 선비들의 문화공간이다. 대표적인 루정 건물인 소양정은 예전 춘천을 찾는 이름있는 묵객들이 꼭 들리는 곳이었다. 그들은 소양정의 아름다운 경관에 영감을 받아 많은 한시를 남겼다고 한다. 현대인들은 이름없는 묵객일지라도 소양정에서 시 한수 짓고, 차 한잔 마신다면 옛 선인들 부럽지 않으리라. 소양정에 버려진 과자 봉지로 시를 지을 수도 있고, 솟대같이 삐죽 솟은 반 쯤 죽은 나무를 보며 상념에 빠질 수도 있다. 연출된 드라마처럼 완벽한 영상을 일상에서 기대하기란 어렵다. 아쉽겠지만 연출되지 않은 그대로의 모습이야말로 자연스러운 것이니/까.


소양정 앞에는 아담한 뜰이 있고, 구석에는 뜰을 비추는 허름한 가로등이 보인다. 어느 밤 노르스름한 가로등 아래서 소양정을 바라본다면 그 또한 차 맛 당기는 풍경일게다. 다정 뒤의 작은 언덕에서 산보하는 사람들이 내려온다. 그 언덕을 따라 가니 나무에 가린 소양정의 뒤태가 예사롭지 않다. 동네 사람들은 무표정하게 걸어 다녔지만, 앞에서 보던 소양정과 달리 드라마틱하다. 소양적은 앞에는 뜰, 뒤에는 언덕, 멀리는 강까지 끼고 있어 뭐하나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소양정에서 자리를 잡고 앉아 녹차를 마셨다. 신기하게도 녹차에서 율무향이 나는 듯하다. 차를 좋아하는 게으른 고양이도 한 마리 초대하고 싶다. 탐스런 솔방울을 따려나, 뜰에 떨어진 솔방울을 주웠다. 낙하하면서 꽤 많은 충격을 받았는지, 솔방울의 밑동이 형편없다. 측은한 솔방울에게 자부심을 주기 위해 찻자리에 끼워 주었다. 다기들과 함께한 솔방울이 제법 늠름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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