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해서 나는 새로운 사람, 신인이 됐다
"그렇게 어머니는 당연하다는 듯이 매일 뭔가를 만들었다. 그렇다고 맛이 획기적으로 나아지거나 갑자기 나빠지거나 하지는 않았다. 단팥죽과 팥빙수와 햄버거 패티와 바닐라 아이스크림의 세계는 오랜 친구처럼 늘 어머니 곁에 머물렀다. 스무 살의 내가 역전 근방에서 매일 몇 편씩, 때로는 몇십 편씩이 시를 노트에 쓸 수 있었던 것은 어머니를 비롯한 동네 가게 주인들의 세계 속에서 성장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획기적으로 나아지지도, 그렇다고 갑자기 나빠지지도 않는 세계 속에서, 어떤 희망이나 두려움도 없이, 마치 그 일을 하려고 태어난 사람처럼 일하는 사람들의 세계 속에서.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처음으로 마음에 드는 시를 썼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됐다. 경험해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마음에 드는 글을 쓰고 나면 그건 도무지 내가 쓴 글처럼 보이지 않는다. 그렇게 해서 나는 새로운 사람, 신인新人이 됐다. 지금도 누가 신인이라고 말하면 가슴이 설렌다. 그건 마치 매일 매일 획기적으로 나아지거나 갑자기 나빠지지도 않았던 그 맛을 결국 영원토록 잊지 못하게 됐다는 말처럼 들리기도 하고, 평생을 다 보내고 뒤늦게 발견한 시가 너무 좋아서 밤낮없이 시를 쓴 끝에 일흔 살 할머니가 마침내 신인으로 등단했다는 이야기처럼 들리기도 한다."
- 김연수, "소설가의 일", 18-19쪽
문학동네 블로그 연재를 읽을 때나, 2014년 책으로 묶여 나왔을 때나, 오랜만에 펼쳐 보는 지금이나, 작가가 자란 김천 읍내 뉴욕제과점의 바닐라 아이스크림과 팥빙수와 단팥죽 만드는 얘기에서 신인의 비밀로 넘어가는 부분을 읽을 때는 언제나 고개를 끄덕이고 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