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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소영 Jun 18. 2020

나의 인터뷰 코멘터리


낯가림이 심하고 타인과 오래 대화하는 것을 힘들어하는 내가 인터뷰어로 일한 지 햇수로 9년이 됐다. 모든 세월이 그렇겠지만, 언제 이렇게 시간이 흘렀는지 생각해 보면 경이롭다. 아직도 내 마음은 처음 일을 시작하던 20대 초반과 별반 다르지 않은데 말이다. 스물네 살, 잡지사 기자로 사회에 발을 디딘 나는 인터뷰 일정이 잡히면 일주일 전부터 불면증에 시달리던 쫄보였다. 날짜가 바투 다가올수록 심장 뛰는 소리가 귀까지 들렸고, 속이 울렁거려 한 끼도 먹지 못하는 날이 태반이었다. 내성적인 성격은 늘 내가 가진 능력보다 무리하게 일을 하도록 만들었기에, 인터뷰를 마치고 항상 구역질을 했던 기억이 있다. 당시의 내게 인터뷰는 아이러니한 일이었다. 긴장을 극복하기가 너무 힘든데, 또 너무 맡고 싶은 일이었기 때문이다. 두려워서 피하고 싶지만 그만큼 잘하고 싶었다.


'이런 성격으로 인터뷰는 무슨'이라는 원론적 질문에 맞닥뜨릴 때면 씨네 21 김혜리 기자와 지승호 전문 인터뷰어의 글을 경전처럼 붙들었다. 좋은 인터뷰를 하는 사람들도 긴장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조금은 버틸 힘이 생겼다. 그렇게 두려워하고 결국 해내는 일을 꾸역꾸역 반복하다 보니 어느새 마음에도 굳은살이 생겼고, 이제는 인터뷰 전날에도 푹 잘 수 있는 경지에 올랐다. 누군가에겐 당연한 일일 테지만, 나에게는 기적과 같은 발전이다. 하지만 하면 할수록 더 잘하고 싶은 일이라는 것만은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내가 크게 다르지 않다. 적성에 맞지 않는 일을 십 년 가까이 지속할 수 있었던 것은 아마 인터뷰가 그만큼 매력적인 일이기 때문일 것이다.


인터뷰를 하다 보면 '누군가의 말 한마디가 나를 점점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든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인터뷰를 좋아하는 이유다. 요즘도 한 달에 서너 명의 사람을 만나 대화를 나눈다. 프리랜서 기자의 특성상 상대는 유명인일 때도 있고, 평상에 앉아 마늘을 까는 할머니일 때도 있다. 어떤 인터뷰든 마음에 남는 문장은 있지만 특히 오래 울림을 주는 것은 후자일 경우가 많다. 꾸밈없는 날것, 생활의 최전선에 있는 자의 말은 어떤 권력자의 명언보다 힘이 세다는 것도 인터뷰를 통해 배웠다.


몇 달 전, 한 콘텐츠 에디터와 인터뷰를 했다. 그녀는 "회고까지가 일의 진짜 마무리인 것 같다"라고 말했다. 그래서 하나의 일을 끝내고 나면 반드시 회고하는 시간을 갖는데, 이는 일에서 얻는 의미들을 그냥 흘려보내지 않기 위한 자신의 업무 스킬이라고 했다. 그 말을 듣고 지금껏 만나 인터뷰 한 수많은 사람들이 떠올랐다. 나도 그녀처럼 나를 앞으로 나아가게 한 사람들과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싶었다. 한 데 모아두면 내가 일을 할 때도, 삶을 살 때도 더 용감해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이번만큼은 꼭 '내 일'에 대해 기록해보겠다고 단단히 마음먹은 채로 또다시 몇 달이 흘렀다. 기억에 남는 대화는 많은데 막상 컴퓨터 앞에 앉으면 무슨 이야기를 어떻게 써야 할지 막막했다. 매일 글 쓰는 일을 하면서, 나에 대해 쓰는 것은 왜 이토록 어려운 것인지. 머리를 쥐어뜯다 그대로 컴퓨터를 꺼버리길 며칠 째, 답답했던 고민에 대한 답을 나는 또 인터뷰에서 찾았다. 창비 청소년 문학상 제12회 수상작 <페인트>를 쓴 이희영 작가와의 대화를 통해서다.


인터뷰가 절반쯤 진행되었을 때 이희영 작가가 말했다. "사실 이건 아무에게도 얘기하지 않은 건데요." 인터뷰어로 일하며 가장 짜릿한 순간. 생면부지의 나를 믿고, 상대가 개인적인 이야기를 털어놓을 때 나는 잘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열심히 준비한 나의 진심을 알아주는 것 같아서다. 그녀는 뒤이어 자신이 작가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을 열 손가락 안에 꼽을 수 있다며 웃었다. 심지어 부모님조차 모르는 사실이라고, 이렇게 소설가로 앉아 인터뷰하고 있다는 걸 누구도 상상하지 못할 거라고 했다. 책 판매 부수 10만 부를 돌파한 이의 비밀이 이것이라니, 내 책이 10만 부가 나갔다면 나는 이마에 문신이라도 하고 싶을 텐데? 이해되지 않는 의아함을 품고 물었다. "왜 말씀 안 하셨어요?" 그러자 그녀가 말했다.


저는 사실 아직도 제가 작가라는 게 믿기지가 않아요. 나와 어울리지 않는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고급스러운 파티에 참석한 느낌이거든요. 만약 작가가 어떤 자격증이라면, 그 자격증을 땄다고 말하면 되겠지만 글을 쓴다는 건 그런 게 아니잖아요. 지금의 나는 소설을 쓰고 있고 감사하게도 내 책을 읽어주는 독자들이 있지만, 이게 언제까지나 지속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저는 그냥 글쟁이라는 말이 편해요.


“작가님 왜 그런 생각을 하세요”라고 말하면서도, 문득 그게 무슨 의미인 지 알 것 같았다. 지금껏 수백 명의 사람들을 만나 인터뷰하고, 기사를 쓰고, 칼럼을 기고하면서도 나 또한 내 일에 대해 말하는 것이 불편했기 때문이다. 누군가 "기자님"이라거나 "작가님"이라는 호칭으로 부를 때마다 나는 자꾸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어디 기자야? 무슨 글을 썼는데?”라고 물을 것 같아 두려웠다. 내로라하는 언론사 출신이 아니라서? 내 이름을 내건 꼭지가 없어서? 책을 출간하지 않아서? 명확한 소속 없이 일해서? 이유는 다양했지만 하나로 뭉뚱그리면 내가 나를 인정한 적이 없었던 것 같다. 대단한 사람만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것은 아닌데. 생활의 최전선에서 더 좋은 이야기가 나온다는 걸 잘 알고 있으면서도, 나는 왜 내 이야기를 하는 게 여전히 부끄러울까.


그날의 인터뷰는 묘한 힘이 됐다. 같은 마음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과의 대화는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응원이다. 삶을 깨우치고, 변하게 하는 말들. 인터뷰를 통해 나는 늘 새로운 스승을 만난다. 그래서 더 나은 사람이 될 여지가 있다는 건, 예민하고 편협한 내게 더없는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어쩌면 더 괜찮은 사람이 되고 싶은 나를 위해서 계속 인터뷰를 하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 이제 이 사랑스러운 일을 당당히 기록하는 일에 용기를 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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