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빠져있었을 뿐이예요

by 로망버드

어느 초봄이라 하기에도 이른 토요일 아침, 원래는 남편이 처음 말한 양산 통도사의 홍매화만 보려고 출발했다가 울산 간절곶에 가고, 진하바닷가에도 가서 즉흥적으로 1박을 하고, 내가 나고 자랐던 작은 바닷가마을까지 가 본 적이 있었다. 미리 숙박을 예약하지 않고 간 경우는 거의 없었기에, 나는 여차저차 집에 올 생각이었다. 그러나 실어증 아니 회사가기 싫어증에 걸린 남편의 머릿속엔 이미 일출명소라는 '진하 해돋이 사진' 이라는 키워드 검색이 들어가있었던 것이다.

진하는 작은 바다마을이었다. 일출로 유명한 간절곶에 해 다저무는 시간 와서 의아한 가족사진을 찍고 오뎅을 먹고 추위를 달래고 도착한 진하. 무작정 호텔 어플로 검색해서 찾아낸 바다앞 작은 모텔같은 호텔에 방을 잡고 나와서 회를 먹었다. 남편이 검색한 곳이어서 그런지 별 기대가 없었는데 일어나보니 바다앞에는 액자처럼 작은 섬이 떠 있었다. 그리고 아침 봄볕에 눈이 멀듯 빛났다. 그 물결을 보고 나는 그제서야 여기 잘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브런치 카페로 이동할까 했는데 여기서 놀고 싶다는 아이 말에 발걸음을 눌렀다. 아이들과 바다로 나와 강양항으로 연결된 다리를 건너가보기도 하고, 모래놀이도 하고. 둘째아이는 또 조개와 소라껍질을 줍는데 빠져있어 걸음을 재촉하는 소리도 듣지 못한다.

매번 그렇지만 나도 덩달아 조개껍질만 보면 열심히 손이 넘칠새라 줍고 있다. 이상한 조개껍질줍기의 마력이다. 그렇게 소중히 비닐봉지에 담아온 조개들은 집에 오는 순간 까맣게 잊혀지는 건 미스테리이기도 하다. 너에게 이 조개들은 무엇이냐, 무슨 의미냐. 대체 조개를 줍던 시간들은 무엇이냐 같이 줍던 나는 뭐가 되니, 따져묻고 싶어진다. 듣지 않아도 이런 답을 알 것 같지만, 아마도.

조개들은 그 순간 나의 행복이었고 나는 거기에 빠져있었을 뿐이예요.

인생에 그런 것이 한둘이랴. 우리도 알수 없는 순간에 우리를 완전히 지배했다가, 홀연히 놓아버리는 것들. 그 빛나는 바다에서 바다는 보지 못하고 고개 숙여 주웠던 조개들을 까맣게 기억도 못하는 일들이, 그러나 분명히 존재했던 조개줍는 시간들이. 어릴 땐 그렇게 넓었던 그 학교 앞 해변 백사장이 손바닥만하게 보이는, 마치 시간의 오목렌즈를 끼고 보는 것 같은 그 놀라움은 누구나 작은 비밀처럼 간직되어있겠지. 엄마는 이렇게 바닷가 마을에서 자랐고, 아빠는 산골 마을에서 살았단다, 얘기를 해주며 돌아오는 길에 잠든 아이는, 엄마,나는 이 조개들을 한 순간 잊어버린 것처럼 보이지만 아주 나중에, 아주 나중엔 기억할 거예요, 이렇게 바로 엄마처럼. 이라고 이미 말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keyword
이전 03화이 달콤한 감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