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당연히 다를 수 밖에 없는 두 도시지만, 이렇게 이사한 지 한 달도 지나지 않아 나는 결정적으로 과연 이 곳과 서울이 다른 점을 '너무도 많이' 발견하게 되었다.
나의 탈서울을 걱정하는 주변 사람들에게, "다 사람사는 곳인데 뭐, 그리고 여기도 '광역시' 잖아." 라는 말이 무색하게도, 이 도시는 ‘다른’ 도시였다.
일단,사투리.
사실 나는 겉으로 완벽한 내츄럴 본 서울러(?)처럼 보이지만 사실 부산에서 태어나 10년 넘게 살았고 부모님 고향이 모두 경상도여서, 경상도 사투리 리스닝 및 스피킹이 잘 되는, 이른바 바이링구얼(?)이지만, 대구의 사투리는 예상을 훌쩍 뛰어넘었다.
대구에 처음 와 동대구역에서 옆 커플이 중국어로 말하길래 대구에 관광온 중국인 커플인 줄 알았는데 다시 보니 한국인이어서 놀랬던 기억도 있고,아이들을 데리고 버스를 탔는데, 내리는 정류장을 물어보려고 버스 기사 아저씨와 몇 마디를 했더니 6살 둘째가 내리고 나서 그런다, "엄마, 영어도 알아들을 수 있어요?" 둘째 귀에는 잘 알아들을 수 없었던 빠르고 억양강한 그 말, 한국말은 절대 아닌 진정 외국어인줄 알았던 것.
그리고 또 놀랐던 것은, 공공의 영역에서도 사투리를 마치 표준어처럼 쓴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교통 통제까지 하는 컬러풀 대구페스티벌의 현수막에 쓰인 표어는 "모디라 컬러풀! 마카다 퍼레이드!"인데, 이 말은 '마카다'는 막다, 모두다를 뜻하는 사투리이고 '모디라'는 '모여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모여라 컬러풀! 모두다 퍼레이드!" 란 것이다. 말했듯이 사투리 리스닝 및 스피킹, 독해가 가능한 나는 한 눈에 알아보았지만, 남편이나 아이들은 이게 무슨 뜻인지, 그냥 무슨 러시아어려니 했을 것이다.
또 몰랐는데, 이름이 그 지방만의 사투리를 이용한 커피집이 많았다. 특히 처음엔 무슨 고상한 영어인줄 알았으나 영 해석이 안되던 ‘MASIGRAY’(마시그레이)’ 라는 커피샵의 이름이 ‘마셔라'의 사투리 '마시그래이’ 란 뜻임을 알았을 때의 서울배기의 충격이란.
이렇게 놀랄수록 정말로 내가 좁은 대한민국에서도 더 좁은, ‘서울’이라는 우물에서 살고 있었구나, 나는 이른바 서울 사투리를 쓰고 있었던 거구나, 정말로 서울또한 하나의 지방일 뿐인구나를 알게 되었달까. 이 작다면 작은, 사랑하는 나의 나라가.
인사
대구에 오니 엘리베이터에서도, 버스에서도, 거리에서도 처음 보는 누구나 인사를 했다. 엘리베이터를 타도 앞집사람인지 아랫집 사람인지도 모른채 "......" 하고 있었던지라, 전학 첫날 첫째를 학교에 데려다주고 정문으로 나오는데, 교통 봉사를 하던 엄마들이 나를 보고 "안녕하세요" 한다. 길가에서 처음 본 책가방을 멘 아이가 나에게, "안녕하세요" 해서 서울 깍쟁이가 깜짝 놀란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리면서도 분명 모르는 사람인데 "안녕하세요" 한다.
이것이 바로 좋은 말로 하면 '정(情)'의 발로이고, 좀 과장되게 말하면 오지랖일까? 좀 부담스럽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은근히 사는 힘이 되는 오지랖. '혼자 있는 게 좋지만 외로운 것은 싫'은 사람들을 외롭지 않게 하는 멀고도 가까운 그 단어.
은행에 가거나 동사무소에 가거나 미용실에 가면, 잘 알던 사람처럼 심상하게 말을 건네는 정서.
우리는 원래는 만나면 눈을 피하는 것이, 얼굴을 돌리는 것이 아니라, 늘 인사를 건네고 아는 척을 해주던 사람들이었는데, 고향에서 나와 이방인들이 되어 모이면서 서울은 조금씩 각박해진 것이 아닐까, 서울 촌놈 부부는 이런 저런 추측을 해보는 것이었다.
햇살 맛집
이제는 그냥 대명사가 된 말 '대프리카'(대구+아프리카). 대구에 와서야 왠지 자랑인듯 아닌듯 제일 많이 들은 이 단어는 어쩌면 더위조차도 최고이고 싶은 대구 특유의 정서를 대변하는 것 같기도 하다. 사실 주변의 의성이나, 경주의 기온이 더 높은 경우도 많다. 어쨌든 요즘엔 대바이(대구+두바이), 대집트(대구+이집트) 등으로 진화하고 있기도 한 이 대구의 더위는,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이기 때문인데, 지형 특성상 덥고 비가 적다고. 그래서 사회과부도에선 늘 대구의 특산품으로 사과를 표시하고 있듯(옛날 사람) 과일이 잘 자란단다.
기분탓인지 정말로 햇살이 따가운 느낌이 들었다. 햇살 자체가, 야생적인 느낌이다. 어쩌면 이 도시를 닮은 햇살일줄, 아직 완전히 실감하지 못할 때에도 나는 그렇게 느꼈다.
하물며 겨울볕인데도, 서울의 그 아파트들 사이 먼지낀 베란다를 통해 들어오던 예의 그 햇살이 아니었다.
새로 그려보는 한국지도
어느 날엔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놓고, 학교 플랜카드에 찍혀있던 로고를 보고 깜짝 놀랬다. 거기엔 이렇게 써 있었다. ‘대한민국 교육수도 대구’. 아이쿠.우리나라의 교육수도가 대구인줄은, 여기 와서 처음 알았다.
한 번은 한 교수님의 강연을 신청해서 교육청에 가봤는데, 강연이 시작되기 전 무대위에 큰 태극기가 보이고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자 아마도 대구에 자주 오지는 않으시는 듯한 교수님이 말씀하셨다. “십여년간 강의를 하러 돌아다녔지만 강의 전에 국민의례를 하는 곳은 대구가 처음이네요. 이렇게 큰 태극기를 본 것도 처음입니다.” 웃음소리가 터져나왔지만, 아마도 그 중 절반은 그 사실은 내심 뿌듯해하며 웃는 웃음소리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햇살만큼이나 뜨거운 뭔가가 있는 도시가 이곳이었다. 서울을 떠나보니 우리나라 지도를 다시 그려볼 수 있을 것 같았다. 모든 도시들이 살아있는 인격체로 느껴졌다.
거리
서울에서 살 때는 당연하게만 느껴지던 것들이 당연하지 않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게 된 것이 택배다. 택배는 하루만에 오지 않는다. 책을 자주 주문하던 나는 오전에 주문하면 오후에 받아보는 택배에서,오전에 주문해도 다음 날 오후에 받을까말까한 택배에 안절부절했다. 우리나라 당일 생활권 아니었나? 우리나라는 그만큼 작은 나라가 아니었나? 어찌나 예의 메가시티의 속도에 익숙해져있었는지, 안그래도 성격급한 나는 입안이 바짝바짝 타들어가고 발을 동동 구르기 일쑤였다.그리고 서울, 수도권 지역만 배송되는 품목도 많았다. 이런 것이구나. 서울 아닌 도시의 소외감이라는 것이. 진정 ‘상대적 위치’를 깨닫게 된 것이었다.
대한민국은 너무나 넓다!
어쩌다보니 전국에 흩어져 사는 나의 친구들과,거의 매일 아침인사를 주고받는데. 그때 또한번 실감한다. 비가 오는 베란다 통창을 내다보며 커피 한잔하며 비가 온다고,하니 위쪽 지방은 해가 쨍쨍이란다. 눈 구경한지 오래된 겨울하늘은 어색할만큼 투명한데, 눈이 펑펑 온단다. 같은 날이라도 어떤 도시는 미세먼지가 지독히 높고, 어떤 도시는 깨끗하고, 같은 날이라도 내가 있는 곳은 더운데 다른 곳엔 비가 온다. 같은 하늘 아래, 라지만, 대체 얼마나 넓은 걸까? 이 나라는. 지금까지 내가 알고 있던 우리나라라는 것은, 사실은 그저 서울일뿐이었나보다.
그러나,그리해서 한입 베어문 순간 그 향에, 내가 그동안 먹은 복숭아는 무엇인가 했던 청도 도로변에서 산 복숭아나, 길가에 펼쳐져있던 포항 산딸기밭, 복숭아꽃과 다투는 봄의 매화, 배꽃, 사과꽃의 파도들, 영덕 바다 오징어를 말리던 풍경등이 모두 다른 것이리라.
내가 몰랐던, 우리나라가 넓다는 것을 앞으로 알게 해 줄 것들이 널려있었다. 그렇게 언제 그 사투리의 장벽과 뜨거운 여름과 늦는 택배와 잦은 인사에 지긋지긋해할 지 모르지만, 나는 이제 어쩌면 내 생애 처음인, 진정한 대한민국 탐험을 하려고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