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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향연속나비 Oct 21. 2018

외로움[loneliness]

feel all alone


2018, 가을


시간이 빨리 지나가는 줄은 알았지만, 서른둘의 계절이 이 정도의 속도인 걸 일찌감치 알았다면 더 많은 계획과 신중함으로 살아갔을 거다.


서른 이후의 삶을 꿈꿔본 적이 없었다.

내 삶의 길잡이였던 선생님의 사고로 치부되어버린 아프리카의 선교 이후로, 내 삶의 색채가 형성된 단짝 친구의 쓸쓸했던 자살 이후로. 난 당연히 스물아홉을 기점으로 하루아침에 삶을 정리해야 할 일이 올 거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그래서 매일을 열심히 살았다. 흘러넘칠 물질이 없어도 고상하게 굴었다. 아쉬울 것 없이 굴었다. 아쉬운 인연에 매달려보기도 했지만, 삶의 정리점이 다가올수록 그런 인연들조차 보내줬다. 집은 언제나 깨끗하게 정리하였고, 혹여라도 부끄러운 일이 될 만한 것들은 절대 남기지 않았다. 색색의 여러 노트에 적은 글들조차도 깔끔하게 정리하였다. 어느 누군가는 이 글들에 위로를 받을 것이라, 혹은 나를 위로할 것이라 여기며 기록하는 것 혹은 버리는 것에 인색하지 않았다.


큰 물리적 아픔에 고통스럽겠지만 각오하던 일이라 두렵지 않았다. 문제는 그런 내 모습을 비웃듯 나는 너무나도 확연하게 살아있게 되었다.



가장 두렵고 불안했던 시간은 한국 나이로 서른, 그리고 서른 하나. 만으로 스물아홉 때까지였다.

날짜가 명확히 정해지지 않은 시간 속에 산다는 것은 많은 것들을 무색하게 만들곤 하였다.

만으로 서른을 맞이하기 하루 전인 12월 25일. 도망치듯 갔던 라오스에서 오토바이 사고가 났고, 난 그로 인해 우연이 연인이 되어 평생의 인연을 약속한 배우자까지 얻게 되었다. 


결론적으로 사고가 일어날 거라 믿었던 내 마음의 준비와 많은 계획들이 나를  배신했다.


이것이 신이 죽음 대신 주신 고통일까?

기대하지 못한 삶에 난 어떻게 적응해야 할지 모르겠다.

이전과 똑같은 삶이 연결되었다면 좋았으련만, 지금의 내 시간은 상상조차 못 한 공간을 형성하고 쫓기듯 마무리하며 살았던 시간을 여유롭게 늘려버렸다. 항상 바라던 따뜻함과 아늑함은 나를 옭아매듯 의심으로 가득 채웠다.

그렇게 외로움이 밀려온다. 

여전히 누군가 가르쳐 주지 않은 앞날에 대한 계획에 내 부족함이 확인되는 것만 같아 너무나도 창피하다.

어느 곳에 속한 것 없이 자유롭게 흐르고 보내줬던 인연들의 부재에 불안함이 숨통을 조여오기도 한다.

신념이 무너지는 느낌이란 인간의 무력함을 매일 밤 확인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손끝에 달라붙는 더러움을 아무리 흔든다 한들 털어버릴 수 없다. 바람에 부탁하여 얼굴을 들이밀며 달려본들 나의 모습을 눈동자에 담는 사람들의 시선은 결국 상처다.

 

이제 내가 해야할 일은 가장 가깝고 사랑하는 사람이 갑자기 나를 멀리하더라도 당황하지 말아야 하는 마음의 준비일 것이다. 아마 삶을 완벽하게 이해하는 것은 어쩌면 삶을 덜 매력적인 것으로 만들어 버리는 걸지도 모르겠다. 매력을 해치지 않는 것이 이곳에 살기 위한 도리일 것이다.



 '완벽하지 않아도 충분히 아름답다는 것'



그 흔한 문장이 언젠가는 나에게도 적용될 거라 믿는 것. 때로는 표독하고, 때로는 한없이 고독한 기분, 그것을 이겨내는 것. 그것이 내가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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