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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 경 Jul 05. 2023

3장 양이의 자존감 수업

양이는 유기묘 출신이다. 정확히 말하면 뉴욕 유기묘 센터의 안락사 리스트 맨 위에 있던 고양이였다. 양이가 데이지라는 이름으로 지내던 작은 방에 달려있던 분류표에 따르면, 사람과의 친화력 매우 낮음, 적응력 매우 낮음, 조용하고 소극적임 등으로 표시되어 있었다고 한다. 이러한 이유에서 오랜 시간 입양이 되지 않다 보니 안락사 명단에 들어간 것 같다. 사실 딸도 유기묘 센터에서 인기가 많은 노란 털을 가진 치즈 고양이를 입양하려고 했다. 그런데 막상 옆방에 웅크리고 있는 시커먼 고양이와 눈이 마주치면서 마음을 바꾸었는데, 양이의 매력 포인트, 검은 색 털과 확연히 대조되는 올리브 칼라의 동그랗고 슬픈 눈동자 때문이었다고 한다. 


대부분의 유기묘처럼 양이도 나이를 비롯해서 많은 것을 추정해 본 결과, 센터 입소 시기의 나이는 2살이었고, 길거리에 있던 새끼 고양이를 첫번째 주인이 기르다가 유기된 것 같다고 하였다. 쉼터에서도 인기가 없었던 이유는, 밥도 잘 안 먹고 다른 고양이들과 어울리지도 않고 혼자 웅크리고 있으면서 사람을 반기거나 반응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거기에 외모도 한 몫 했으리라고 추측해본다. 양이는 아메리칸 숏헤어 종인데, 장모의 검은색, 회색, 브라운색이 섞여 매끄러운 털을 가진 검은 고양이 특유의 매력보다는, 칙칙하고 우중충한 느낌이 강하다. 뻣뻣하고 들쑥날쑥한 검은 털 사이로 비듬도 많이 보이는 스타일이니, 좋게 표현하자면 소탈하고 우수에 깃든 스타일이고 안 좋게 말하자면 우울하고 침침한 스타일이다.  


반려 생활이 시작되면서, 서로 모른 척하고 무덤덤하게 지내던 양이와 나에게도 관계 개선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태어나서 제대로 된 보호와 관심을 받지 못하고 심지어 안락사 직전까지 갔다 온 양이의 풀이 죽고 위축된 낮은 자존감을 올려주어야 겠다고 생각했다. 청각이 발달한 양이에게 안전감을 줄 있는 방법을 몇가지로 고안해 보았다. 우선, 크지 않은 목소리와 톤으로 ‘아고 우리 양이 이쁘네’라고 말해주는 것이었다. 양이가 듣던 말던, 눈에 뜨일 때마다 ‘아고 우리 양이는 이쁘네’라고 말해 준다. 4년이 지난 요즘, 양이는 싫어하는 목욕을 할 때마다 ‘아고 우리 양이는 이쁘네’를 반복하면 발버둥치는 것을 그만두고, 선잠을 깨어 어리둥절할 때 ‘아고 우리 양이는 이쁘네’라고 말하면 다시 잠이 든다. ‘아고 이쁘네’가 무슨 뜻인지는 몰라도 집사의 목소리와 톤이 일종의 안정제 역할을 하는 것 같다. 


두번 째는, 양이를 적당히 무시하는 것이다. 양이의 행동 하나, 표정 하나, 먹는 것 하나에 신경을 쓰면서 왜 더 안 먹을까, 기분이 좋지 않을까, 아픈 건 아닌가 걱정하지 않는 것이다. 잘 안 먹었으면 안 먹은 대로, 하루 종일 나오지 않으면 나오지 않는 대로, 와서 아는 척을 하면 양이 안녕 정도로 지내는 것이다. 다가가기 보다 기다려주고, 만지는 걸 싫어하니 만지지 않고, 싫어하는 것은 하지 않는 것이다. 양이만의 존재 방식과 적응 방법에 의문을 갖거나 속상해하기 보다, 양이는 원래 그래 하며 적당히 무시하는 것이 양이를 위한 길이고 나도 속 편한 길이라고 생각하였다. 


세번째는 양이가 싫어하는 것은 피하고 좋아하는 것을 해주는 것이다. 먹는 것이 까다로운 양이에게 건강에 좋다는 이유로 다양한 사료와 간식을 억지로 권하지 않는 것이다. 내가 아무리 용을 써도 양이가 좋아하는 한 두가지의 사료와 깨작거리는 습관은 고칠 수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놀이도 마찬가지였다. 인터넷에서 파는 고양이 놀이기구에 투자를 많이 했지만, 양이는 두가지에만 반응을 보였다. 활기차게 뭐든 가리지 않고 노는 스타일이 아니라, 한가지 장난감을 질리도록 노는 취향을 안타까워하지 않는다. 그냥 양이가 좋은대로 해주면 되는데, 더 잘해주어야 잘하고 있다는 생각은 나의 오류이기 때문이다. 


자존감이 별것인가? 자신에 대해 편안한 마음이 들고, 그런 편안한 마음으로 주변과 세상을 대하며 살아가는 것 아닌가. 여러가지 이유로 자존감이 낮은 사람은 자존감 높이기를 위한 노력이 필요하지만, 동시에 가까운 사람들의 인내와 수고가 중요하다. 자존감이 낮은 사람을 대하는 주변 사람들은, 때로 이해하기 어렵거나 힘들 때가 있기 때문이다. 별 일도 아닌데, 그런 뜻이 아니었는데, 왜 그렇게 예민할까 등 고개를 갸우뚱하게 되는 것이다. 나의 눈에는 불안하고 못마땅하지만 상대방도 내가 미처 알 수 없는 이유로 힘들 것이라는 생각, 때로 무례하고 이기적이지만 나름의 사정이 있을 거라는 생각, 철없고 생각없어 보이지만 언젠간 나아질 것이라는 믿음으로 봐주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자존감이 낮은 사람에게는 그 어떤 것보다 영양제요 보약이 된다. 가까운 누군가가 자신을 믿고 잘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발견은, 자신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데 크나큰 원동력이 된다. 나조차 내가 싫고 못마땅한데 누군가가 괜찮다고, 괜찮아질 거라고 하니, 희망과 자신감이 생기는 것이다.


양이의 자존감 수업에 사용한 방법들은 사람에게도 통하는 면이 있는 것 같다. 예쁘거나 잘 생겼다고 자주 말해주는 것, 의심과 판단 대신 적당히 모른 척해주는 것, 싫어하는 것은 하지 않는 것, 건드리지 않는 것은, 상대방에게 시간과 자유를 주는 좋은 방법이다. 자존감 상승은 시간이 필요하고 스스로에 대한 편안함과 확신이 필요하다. 가까운 사람들의 과하지 않고 적당히 모른 척해주는 응원과 잘 될 것이라는 믿음은, 자존감과 싸우는 긴 여정에 필요한 힘이 되어준다. 그런 가까운 이들이 있으면 행운이고, 그렇지 않다면 그런 사람들을 곁에 만드는 것도 자존감 수업의 하나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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