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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 경 Jul 12. 2023

8장 인내심 끝판왕 양이

양이의 인내심은 사람, 동물의 세계 통틀어 최고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양이처럼 기다림에 익숙하고, 기다림을 당연시 여기고, 오랜 시간 기다릴 줄 아는 유기체는 없지 아닐까 싶다. 오히려 양이의 인내심으로 인해 미안함과 고마움을 느낄 때가 있다. 밥 앞에서 좀 소란스러운 강아지들과 달리, 양이의 경우 밥이 늦어지면 밥 그릇 앞에서 부동의 자세로 하염없이 기다린다. 고양이 동영상을 보면, 자기에게 밥을 주는 식당이나 사람 주변에서 하루 종일 기다리는 고양이를 볼 때가 있다. 어떻게 밥 한끼를 위해 한 자리에서 그토록 오랜 시간을 기다릴 수 있을까 신기할 뿐이다. 먹이와 생존, 안전을 향한 본능이겠지만,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기다림과 인내심은 다른 동물에게서 찾아볼 수 없을 것 같다.  


양이가 불편한 방문자로 인해 숨어 있는 시간은 6-7시간 정도를 넘을 때도 있다. 집 공사가 한 나절을 걸리거나 방문한 지인이 오래 머무를 동안 양이는 나타나지 않는다. 숨어 있는 양이를 확인해보면 꾸벅 조는 것 같지만, 귀를 쫑긋하고 언제라도 나올 준비를 하는 것 같다. 보호소에 있던 양이가 처음 딸의 집으로 오던 때에 찍어 놓은 사진을 보면, 수납장 속에 들어가 있는 모습이 대부분이다. 일주일 이상 수납장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새로운 거처로 나갈 담력이 생길 때까지, 집사에 대한 무서움이 없어질 때까지, 수납장 속에서 마음을 다지고 적응 준비를 하면서 인내의 시간을 보냈으리라 추측해본다. 


양이의 인내심이 가장 잘 보이는 곳은 케이지 안이다. 강아지와 달리 외출이나 산책이 추천되지 않는 반려묘들이 바깥 세계로 나가는 때는 대부분 병원행이다. 병원 진료를 위해 이동하는 동안 케이지 안에 있는 양이는 야옹 소리 한번 내지 않는다. 공간의 변화로 인해 어리둥절하고 불안해 보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케이지 안에 자리를 잡고 다음에 벌어질 일을 기다리는 눈치이다. 양이가 케이지 안에서 세운 신기록은 20시간 정도이다. 뉴욕 서울간 비행시간 14시간에 자동차 이동시간 6시간을 포함하면 거의 하루를 케이지 안에서 보낸 셈이다. 사람도 하루가 꼬박 걸리는 여행으로 인해 몸이 쑤시고 피로가 몰려오는데, 케이지 속의 양이는 야옹 소리 한번 내지 않고 미동도 없었다고 하니, 그 인내심이 대단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 삶에도 기다려야 되는 상황이 많다. 버스나 전철 도착 시간, 주문한 물건, 시험 결과, 문자나 전화, 약속한 사람의 등장, 늦게 귀가하는 자녀 등 크고 작은 기다림의 연속이다. 너무나 빨라진 배달, 인터넷 속도, 인공지능 등으로 인해 이전처럼 오래 기다리는 일들이 없어졌지만, 잠시일 뿐인데도 오래 기다린 것처럼 느껴지는 때가 종종 있다. 인내심이 짧아진 탓이다. 찐 시골로 버스 여행을 하면, 전광판에 뜨는 도착 시간이 없는 버스 정류장에서 삼십 분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다. 옆 사람에게 물어보면 기다리면 온다고, 조금 있으면 오게 되 있다는 도사님 같은 답을 들으며 막연함과 초조함을 내려놓게 된다. 우리 인생에도 굳이 나의 게으름이나 착오로 놓치거나 잃어버리는 것보다, 상황이나 일 자체가 기다려야만 되는 것들이 더 많은 것 같다. 때로 다른 사람의 실수로, 때로 상황 자체가 꼬여서, 때로 이유없이 계획한 바에서 어긋난다. 인내심에 앞서는 것은, 이유야 어쨋든 현재의 상황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받아들이면 기다림이 쉬워진다. 


시간이 필요하고 기다려야 할 일들이 많다. 자격증도 뚝딱 따지지 않고, 직장도 쓱 들어가는 것이 아니고 상대방의 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일정 시간에 걸친 노력과 정성이 필요하다. 가장 힘들고 시간이 많이 걸리는 기다림은 사람이 달라지고 관계가 변화되는 것 같다. 절박하고 빨리 가고 싶을 때가 있는가 하면, 지루하고 기다리기 싫을 때도 있다. 정신과 전문의 주디스 올로프는 인내심은 ‘단순히 끝나거나 지나가길 기다리며 자신의 욕구나 권리를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지켜보면서 언제 어떻게 행동할 지 생각하고 결정하는 자유’라고 한다. 기다림은 막연한 무기력의 상태가 아니라 생각하고 준비하는 시간을 차곡히 쌓아가는 과정이기에, 답답하고 수동적인 시간으로만 생각하지 말라는 뜻이다. 원하는 것을 얻기까지 무한히 기다리며 자기 자리를 지키는 양이를 보며, 자리를 지키는 것이 중요하구나 깨닫게 된다. 불확실하고 절실한 상황이 되면 마음과 생각이 흔들릴 때가 많다. 흔들림 가운데 꿋꿋이 나를 지켜내고, 나의 자리에서 벗어나지 않는 것이야말로 기다리는 시간에 해야 할 제일 중요한 일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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