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 비밀은 없다
“부장급들, 팀 회의 좀 합시다”
팀장님께 육아휴직 통보가 끝나고 나오자 마자, 팀장님은 팀 내 부장들을 회의실로 소집시켰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엄청난 아쉬움을 토했던 팀장님은 어디 가고, 다급하게 부장들을 모아 대단한 발표라도 할 모양새다. 난 그 회의실에 초대받지 못했지만, 굳이 들어가지 않아도 그 회의의 목적을 단번에 알아챌 수 있었다. “나의 육아휴직을 팀에 공유하는 것”. 그래, 비밀은 없다. 분명 팀장님 본인이 “다른 팀원들한테는 육아휴직 얘기 꺼내지 마” 라고 단도리를 쳤음에도, 정작 본인이 부장들에게 내 휴직 사실을 알림으로서 모든 비밀은 공공연한 사실로 확정되는 순간이었다.
그래, 어차피 뭐 숨길 것도 아닌데…
어차피 구성원들도 알아야 한다. 내가 휴직을 함으로서, 내가 맡은 일들을 그들 중 상당수가 나눠가지게 될 테니까. 그걸 모르는 바 아니다. 그런데 그 방식이 꽤나 기분이 좋지 않다. 뭔가 당사자인 나를 배제하고 휴직을 쓰는 나에 대한 질책을 하기 위함이라는 것도 알기 때문에… 휴직을 하는 여러 이유 중 가장 큰 원인은, 이 팀의 모든 일을 나 혼자 쳐내고 있다는 느낌 때문이었다. 경력직이었고, 당장 실무에 투입해 일을 해야 하는 숙명의 길에 내가 직접 뛰어든 것은 나의 잘못이겠으나, 그래도 이 정도로 나 혼자 원맨쇼를 하면서 회사를 다닐 줄은 몰랐다. 하루에도 회의는 3-4개, 1개당 1시간은 기본이었으니, 실제 회사에서 내가 스스로 주어진 업무를 수행할 시간이란 점심시간을 제외하고 3시간 채 남짓이었다. 그말인 즉슨, “집 가서 일하세요” 였으니까.
회사에 퍼진 소문 “부적응자”
결국 팀에 내 휴직 소문이 퍼지더니, 단숨에 여러 옆팀에서 또는 유관 부서에서 나와 함께 일했던 사람들이 연락이 온다.
“00씨, 휴직한다면서?” “네… 어떻게 아셨어요?“
“00가 얘기해줘서 알았지…” “아, 네..”
여기까지는 좋았다. 그런데 그 이후에 나오는 말들이 가관이다. ”00팀장 때문에 힘들었지?“ ”그 팀에서 용케도 버텼나 했네. 결국…“ 그렇다. 경력 이직한 지 1년 미만의 육아휴직의 사유란, 결국 한 단어로 정리해 ‘부적응’ 이었다. 뭐 아주 틀린 말은 아니겠지만, 그 이유가 전부도 아니었기에. 부정도, 긍정도 할 수 없었다. 스스로 자위했다. ‘그래, 뭐라고 생각하든, 내가 휴직하는 게 중요한 거지.’ 외부 시선과 판단에서 멀어지기로 한 지 오래 아니던가.
남은 건 인사팀 면담
결국 휴직 신청을 공식화 하는 건 인사팀에 내 육아휴직을 알리고, 정식 기안을 올릴 때일 것이다. 아직 올리진 않았지만, 분명 나에게 사유를 물어볼 것이다. 알고 지낸 회사 내 지인은 “육아 휴직이니까, 애기 보러 간다고 하세요. 괜한 말 나오지 않게…” 라고 충고이자 조언을 해 주었다. 그러나 내 마음 속에서는 반감이 스멀스멀 올라오던 찰나. ‘부적응자로 낙인 찍히고 육아휴직으로 도망가는 직원이 된다?’ 내가..? 왜? 여러 이유 중 내가 휴직하는 가장 큰 이유를 말하고 맞서고 싶었지만, 무슨 소용이람. 어차피 나갈건데…
혼란스럽다
그래 어차피 나갈 것이다. 1달 뒤면 나는 회사에 없다. 내가 무슨 말을 정직하게 한다고 해서 인사팀이 나에게 무슨 대단한 포상을 줄 거라는 기대도 안 한다. 그래, 그럼 결론은 조용히 나가는 것이다. 돌아오지 않을 각오로 휴직하는 거니까. 그래도 내 스스로에게 떳떳하게 나가고 싶다. 그게 인사팀에게 향한 내 메시지가 됐든, 동료들을 향한 그것이 됐든, 떳떳하게 나가고 싶다. 지금 현재 내 마음은 그렇다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