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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글월 Feb 21. 2021

나는 그래서 몽골에 왔다

들꽃도 예뻤지만, 들꽃으로 꽃반지를 만들고 있던 아이들이 더 예뻤다


아침에 일어나서 보는 일출, 태양이 저렇게 동그란 건 처음이었다 태양이 뜨기 전에 주변이 분홍빛으로 물드는 것이 너무 예뻤다 아이폰에서 알려주는 일출 시간은 4시 30분. 그러나 실제로는 5시 10분에 떴다

맨발 슬리퍼 차림으로 게르를 나섰는데 발이 너무 시려웠다 들어가려고 했던 찰나에 갑자기 따뜻해지더니 동그란 해가 쑤욱 올라왔다 순식간에 세상의 절반이 환해졌다 일출은 어디에서나 봐도 예쁜 것 같다



하늘의 색깔은 다양하지만 그 중에서도 분홍의 하늘은 가장 예쁘다


4시 30분 나의 알람소리에 톰은 잠에서 깼다고 했다. 미안했다. 일출보고 와서 좀 자다가 아침준비가 다 되어서 밥을 먹었다 아침은 토스트와 커피, 차 였는데 빵들이 딱딱한 맛이였다 쿠키는 로버트에게 양보, 여기는 절대 음식을 남기면 안되는 것 같다 톰이랑 로버트가 다 먹으니까 나도 덩달아 다 먹어야 하는 느낌이랄까 그래서 밥 먹을 때마다 좀 힘들었던 기억이 있다



게르 앞 벤치에서 아주 여유롭게 앉아서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초록색을 보면서 차를 마시고 다이어리를 쓰면서 멍때리기, 너무 행복했다 톰이랑 로버트는 앉아서 핸드폰 보고 나는 생각하면서 다이어리쓰면서 생각을 정리하고. 톰이랑 로버트는 독일어로 말하는 게 편하겠지만, 톰은 아직까지도 내가 있으면 로버트에게 잉글리쉬!를 쓰라며 강조해준다. 참참 좋은 사람들이다.


몽골에 오면서 내가 기대했던 것은 내 머릿속에 여기저기에 풀어져 있는 생각을 한 곳에 좀 모으고, 글을 좀 쓰면서 정리하고자 하는 마음에 온 것이였는데, 이대로라면 과연 가능할까 싶다.


앉아서 쉬고 있는데 나를 태워갈 말이 도착했다 내 말은 하얀말, 소녀가 검은 말을 타고 날 데려가기로 했다. 말타는 건 생각보다 무섭지 않았다 말을 뛰게 하려면 '추'라는 소리를 내야 한다고 했다. 내 말은 절대 듣지 않는 나의 하양이... 내가 백번을 '추'라고 해도 꿈쩍않던 아이가 소녀의 '추'에는 한 번에 움직였다. '추'에도 몽골 발음이 있는 건가.


좋은 풍경 보면서 넓은 들판에서 말 타니까 행복 자체였다. 하지만 말에서 내리고 나서가 문제였다. 엉덩이가 아프다는 이야기는 많이 들어서 긴장하고 있었는데, 내리자마자 나는 무릎이 너무 아팠다 내가 너무 힘주고 탔는지 땅에 다리를 딛자마자 다리가 스르르 풀렸다.


땅에는 들꽃들이 한가득 피어있다. 지나가기가 미안할 정도로 수북하게 피어있는 들꽃들. 이제는 몽골을 떠올리면 지나가는 여러 그림들 중 하나가 들판에 피어있는 작은 꽃들이 되었다.


들꽃들도 예뻤지만, 더욱 기억에 남는 것은 들꽃으로 꽃반지를 만들고 있던 아이들의 모습.



야크 우유로 만든 요거트라고 했다 설탕 뿌려먹었는데 생각보다 맛있었다 물론 요거트 반 설탕 반으로. 새로운 음식에 도전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였음에도 끝까지 클리어



하이킹 끝에 정상에 올라서, 하이킹은 내 체질에 정말 맞지 않는 구나 하는 생각이 저절로 드렀다. 생각보다 너무 힘들었던 하이킹. 내 체력은 정말 거지였구나 처음에는 같이 올라가다가 다른 사람들 먼저 올려보냈다 목에서 피나올 거 같아서. 혼자 올라가는데 외롭긴했지만 그 시간 동안 주변에 이름 모를 들꽃들이 보였고 경치가 보였고 생각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맞아 이런 게 여행이지, 여행은 내 페이스에 맞춰서 하는거지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히시케가 돌멩이로 무언가를 열심히 만들고 있었다. 혼자 뒤늦게 따라가고 있는 내가 안쓰러웠던지,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히시케. 돌멩이로 집을 만들고 있었다 내가 딱 보고 맞췄다



경치가 너무 예뻤다 배경으로 되어있는 산은 정말 그림으로 그려놓은 것처럼 예뻤다 호수쪽 경치보다도 산을 바라본 경치가 최고. 정상에 올라서 잠깐 숨돌리고 있는 사이에, 갑자기 비가 후두둑 떨어졌다 아직 경치도 제대로 즐기지도 못했는데,  비가 오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다시 내려갈 준비를 해야했다. 그래도 아쉬운 마음에 다같이 삼각대 놓고 찰칵,


산에서 내려오면서 톰이랑 이런 저런 얘기를 했다. 톰은 말했다 인생을 왜 계획을 세워놓고 사는지 모르겠다고, 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때가 되면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다른 사람들과 같이 평범한 삶을 살텐데, 그전까지 본인은 지금처럼 여행을 다니면서 즐기고 싶다고 했다 어디에 얽매이지 않고.

생각이 많아졌다 나는 왜 내 인생 중에서 30살에 결혼을 하려고 하고, 왜 한국으로 돌아가서 바로 다음 직업을 결정하려 하는 건지, 이런 인생의 계획들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그렇지 않음에 불안해 하는 분위기에서 조금은 벗어나 의문을 가질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나에게 가끔 이렇게 무언가를 일깨워 주는 여행이 나는 너무 좋다


저녁 먹고 나서 히시케가 재밌는 구경가자고 해서 울타리 안으로 들어갔다 대망의 야크 젖짜기. 내가 다가가기만 해도 도망가던 야크들이랑 실랑이 했던 시간들이 허망했다. 야크가 내 코앞에 이렇게나 가까이 있다니


나한테 젖을 짜보라고 해서 짰는데, 난 도저히 못하겠음을 직감했다 느낌이 너무 이상했다 아주머니는 계속해서 꽉 누르라고 하는데 그러면 야크가 너무 아플거 같았다. 나뿐만 아니라 톰이랑 로버트도 실패, 여기에서는 이렇게 매일 우유를 짠다고 했다


우유짜는 거 구경하고 홉스골과 함께 있는 푸르공 예뻐서 한장



옆 게르로 넘어가서 샤워를 했다 하 살 것 같았다 지금도 그 기분을 잊을 수 없다

몽골에서는 샤워를 하는 것이 큰 일이다. 몽골에서의 생활을 마무리하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 가장 크게 느꼈던 점. 물의 소중함이었다. 따뜻한 물에 샤워하고, 머리를 맘대로 감을 수 있다는 것이 이렇게 행복한 일이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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