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하의 일요일이 더 특별한 이유
천주교 신자가 되고 나서
유럽에 갔을 때 가장 많이 달라진 건,
그전에는 예쁘긴 해도,
그 의미를 잘 모르니 구별도 안 되고,
그저 공허하게 웅장하고 쓸데없이 장식 많은
나랑 별 관련 없는
남의 나라 고전 건축이었던
비슷비슷하게 생긴 유럽의 성당들이
나의 종교생활과 밀접한 관련을 맺으면서,
중요한 생활공간으로 탈바꿈했다는 거다.
그래서 천주교 신자로서 유럽에서 가장 좋은 점은,
그런 웅장하고 장식 많은 오래된 예쁜 성당을
그저 구경만 하지 않고,
그 안에서 약 1시간 동안 미사를 보며
내 목적에 맞게 “사용할” 수 있다는 거다.
모국어가 아닌 신부님의 강론을
다 알아듣는 것도 아니고,
어떤 언어는 아예 전혀 못 알아듣기도 하지만,
어차피 천주교 미사는
중간에 몇 개가 빠지는 경우도 있지만
전반적인 전례 순서가 같은 건 물론이거니와
같은 날이면 미사 중 읽는 성경 구절들이
전 세계 어디에서 어느 언어로 하나 똑같고,
"말씀 전례" 보다는 "성찬 전례"가 중요하기 때문에,
미사 시작 전에
미리 한국어로 “매일 미사"를 읽어,
그 날의 미사가 무슨 내용일지 파악하고 앉아서,
한국에서 하던 전례 순서에 따라,
가끔은 한국말로 혼자 조용히 중얼중얼거리면서
원래 하던 대로 알던 대로 그대로 하면 된다.
Catholic이 말 그대로
“보편적인” 종교임을 느끼는 지점이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가끔은
오히려 전혀 못 알아듣는 미사를 보다가,
특히 영성체하면서,
갑자기 그냥 울컥하는 경우도 있다.
성령이
신부님 강론을 통해
내 머리를 지나 가슴에 닿는 게 아니라,
그런 인간적 매개 없이
그냥 직접 나에게 닿는 것 같은 느낌이다.
그래서 나는 유럽에 가면,
미사 시간을 미리 체크해두었다가
매주 일요일마다 현지 성당에 간다.
그런데 그런 천주교 신자로서의
보편적 의무 수행 중에도
어쩔 수 없는
관광객 또는 이방인의 본능이 발휘되어서,
새로운 것을 많이 경험하고 싶은 욕망에
가능하면 매번 다른 성당에 가본다.
그리스도교는 천년 넘게
유럽을 그야말로 지배했기 때문에,
그리스도교 중에서도
가톨릭이 국교였던 나라의 대도시엔
수십 주간 매번 다른 성당을 가도 될 정도로
많은 가톨릭 성당이 구비되어 있다.
그러다가 맘에 드는 성당을 발견하면,
나름 정착하여,
한동안 계속 또 거기만 가기도 한다.
아무튼
그런 나의 현지 성당 미사 체험이 시작된 때가
2009년 천주교 신자가 되고 난 후,
처음 유럽 대륙에 갔던,
2012년 겨울 프라하에서였고,
2019-2020년 겨울 프라하에 갔을 때에도 역시나
그 오랜 시간을 품은 묵직하고 아름다운 성당들에서
특별한 미사를 보는 호사를 누렸다.
프라하의 어떤 성당들은 미사 시간에 맞춰 가면
현지 신자들 틈에 끼어서,
자연스럽게 그냥 입장할 수 있고,
관광명소인 어떤 성당들은 입구에서는
"Přišla jsem na mši (미사 보러 왔습니다)"
라고 말하며,
관광이 아니라
종교활동이 목적임을 명시적으로 선포하고 난 후
입장을 허용받을 수 있었다.
이번 포스트에서는
내가 미사 보러 갔던 프라하의 가톨릭 성당들과
그곳의 미사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흔히 "성 비투스 대성당"이라 부르는
성 비토, 벤체슬라오, 아달베르토 대성당(Katedrála svatého Víta, Václava a Vojtěcha, Cathedral of Saints Vitus, Wenceslaus and Adalbert)은 프라하 성 안에 위치하고 있다.
(지도 상 위치)
프라하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블타바 강변 서쪽 가장 꼭대기에 있는 그 성당이다.
영어에는 해당하는 이름이 없어
라틴어 그대로 ‘비투스’라 하지만,
한국 천주교에서는
이탈리아어식으로 ‘비토’라고 부르는데,
사실 비토 성인은
성당 이름에,
특히나 대성당 이름에
흔하게 붙은 그리스도교 성인은 아닌 것 같다.
비토 성인은
그리스도교 박해가 가장 심하던 3세기
이탈리아에서 신앙 때문에 박해를 받았고,
뜨거운 가마솥 속과 맹수 우리 안에서도 살아남은
기적의 주인공이었지만,
결국 순교하여 시성되었다.
중세시대 유럽,
특히 이탈리아와 독일,
그리고 서남부 슬라브 국가에서
중요한 순교자로 숭배되었다는데,
체코 프라하에는 10세기 바츨라프 왕이
비토 성인의 성유물,
즉 그의 손가락 뼈를 선물 받으면서,
그것을 보관할 새로 지은 대성당에
비토 성인의 이름을 붙였다.
참고로 비토 성인은 이탈리아에서 가까운
크로아티아 도시 리예카(Rijeka)의 수호성인이라
비토 성인의 이름을 딴 대성당이
리예카 구시가에도 있다.
단지 리예카 대성당은
그냥 눈에 잘 안 띄는 소박하고 아담한
초기 그리스도교식 로툰다다.
보통 가톨릭 유럽에서는
그 도시의 수호성인을 대성당 이름으로 삼던데,
현재 프라하의 수호성인은 비토라기보다는,
10세기 체코 왕으로 나중에 성인이 된 바츨라프 왕,
한국 천주교식 이름으로 벤체슬라오 성인이다.
그래서 비토 성당에도 공식 명칭에는
비토 이외에 벤체슬라오의 이름,
그리고 또 다른 체코 가톨릭 성인
아달베르토,
체코식으로는 보이테흐의 이름이 붙어 있다.
프라하의 성 비토 대성당은
후에 그 자신이 가톨릭 성인이 된
그 바츨라프 왕의 통치기인
10세기에 처음 세워졌지만,
지금의 모습으로 새로 지어진 건 14세기여서,
14세기 유행하던 교회 건축 양식에 따라
전형적인 고딕 대성당이 되었다.
한국 교회들이 가장 많이 따르는 양식이어서 그런지
높고 뾰족한 첨탑이며 스테인드 글라스며
전반적인 모습은 매우 익숙한데,
그 어마어마한 규모와 화려한 장식 때문에 그런지,
그래도 실물을 보면 그 모습에 강하게 압도된다.
여긴 대성당 남쪽.
그나마 여기가 성당 전체를 찍을 수 있는 각도인데,
워낙 커서 제대로 잘 안 잡힌다.
여기는 대성당 동쪽.
성사가 진행되는 제대가 있는 쪽이다.
동서로 긴 모양이라 동쪽 벽은 비교적 좁다.
여기는 서쪽.
여기에 대성당 출입구가 있다.
위 사진 왼쪽이 입구이고, 오른쪽이 출구다.
대성당 입장 자체는 무료이지만,
좀 더 안쪽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따로 티켓을 구매해야 한다.
아래 약도에서 녹색이 무료 관람 부분이다.
(대성당 출입 가능 시간)
((성 비토 성당 포함) 프라하 성 입장권)
성 비토 대성당을 짓기 시작한 건 14세기지만,
곧이어 등장한 체코식 종교 개혁파 후스파와의 갈등
그리고 재정적 문제 등으로
20세기 초가 되어서야
600년 만에 겨우 완성되고 봉헌되었다.
대성당 서쪽 면에 있는 조각들과
로제타(장미 모양 둥근 장식)는 20C 초 작품이다.
그래서 그런지 어딘지 모르게 좀 현대적이다.
스테인드 글라스도 잘 보면 매우 현대적이다.
이건 대성당 동쪽 성가대석 스테인드 글라스.
이건 약도 속 녹색으로 표시된
무료 관람 가능
대성당 서쪽 입구의 스테인드 글라스들이다.
이건 서쪽 문 위 로제타의 스테인드 글라스다.
(동영상 1: 대성당 서쪽 부분)
나는 여기까지만 봐도
충분히 그 규모와 아름다움에 압도된 데다가,
예전에 다른 유럽 대성당에 들어가 봤던
경험을 돌이켜 보면,
그 나라 왕이나 종교인과 관련된 게 많아서
봐도 잘 모르겠기도 하고,
오히려 그렇게 왕이니 귀족이니 주교니 하는
“세속”과 결합되니
마음이 차가워지길래,
(나는 군림하는 권력에 대한 거부감이 좀 있다)
굳이 성당 안쪽까지는 들어가지 않았다.
그래도 2012년, 2019-2020년
혼자서 또는 프라하에 방문한 “손님들”과 함께
거의 10번 가까이 간 듯한 비토 대성당인데,
대성당 안쪽에도 한 번은 들어가 봐야겠다 싶어서
2020년 겨울엔 시도해 봐야겠다 했는데,
미루고 미루다가 결국 관광객으론 못 했다.
그 대신 미사 보러는 들어가 봤다.
나는 대성당에 일요일 미사를 보러 갔는데
미사 시간은 다음과 같다.
(미사 시간)
일 8:30, 10:00
월-토 7:00
금 7:00, 18:00
일요일엔 관광객 개방 시간이 12시 이후부터라서
그나마 오전 10시 미사가 있지만,
보통은 아주 이른 시간에만 있다.
여기뿐 아니라
다른 프라하의 “관광지 성당”들도
미사 시간이 새벽이거나 밤인 경우가 많다.
다른 유럽 도시는 그 정도는 아니었는데,
현지 가톨릭 신자가 많지 않은 프라하 성당들은
종교보다는 관광의 장소가 되어 버린 것 같다.
(프라하 인구의 약 27%가 가톨릭 신자라는데
종교활동을 하는 인구는 그보다 더 적을 거다)
그래도 프라하엔 성당이 아직 많으니,
“관광지 성당”들의 미사가 시간이 안 맞으면
덜 관광지스러운 일반 성당에 가면 된다.
내가 성 비토 대성당에 간 일요일에는
아직 관광객 출입시간도 아닌데,
스페인어로 말하는 단체 관광객들이
성당 서쪽 출입구 앞에 20-30명 정도 모여 있었다.
입장 시간을 모르고 너무 일찍 왔거나
따로 투어를 신청한 단체인지 모르겠다.
그들을 지나 입구로 다가가자,
내가 성당 구경하러 온 관광객인 줄 알고
아직 못 들어간다고 중년의 직원분이 막았는데,
내가 미사 보러 왔다고
체코어로 말하니
좀 미심쩍은 표정을 짓더니 들여보내 줬다.
그렇게 들어간 성당은 딴 세상이었다.
왁자지껄한 스페인어가 들리던 성당 밖과도
다른 세상이거니와,
항상 관광객들로 발 디딜 틈이 없던
위 약도의 “녹색공간”이 텅 비어 있었고 고요했다.
항상 느껴지던 “속”의 느낌이 사라지고,
입구에서부터 “성”의 느낌이 가득했다.
제대 쪽 가까이에 가서 자리를 잡고,
“매일 미사”를 읽고 있었는데,
내 옆쪽에 인도인으로 보이는 가족이 앉았다.
(파키스탄, 스리랑카, 방글라데시일 수도 있겠다.)
내가 미사 보러 왔다고 했을 때
미심쩍은 표정을 짓던 입구의 아저씨 같은 표정이
내 마음에 지어졌다.
나 자신도 편견의 암묵적 피해자이면서
그렇게 내가 당한 것과 같은 편견으로
암묵적 가해를 하고 있던 거다.
그런데 미사 진행 중에 보니
나와 마찬가지로 그들도
프라하 이방인인 가톨릭 신자임이 분명했다.
그렇게 평범한 듯 평범하지 않게 시작한
“관광지 성당”인 성 비토 성당의 미사는
보통의 성당 미사와 마찬가지로 성스러웠는데,
그 울림이 큰 거대한 공간 때문에
더 엄숙하고 장엄하게 느껴졌다.
미사가 끝나고 나서
미사 참석자들을 바로 내보내지 않고,
대성당 안쪽을 둘러볼 수 있게
그리고 사진도 찍을 수 있게 내버려 둔다.
나는 나중에 입장권을 따로 구입해서
관광객으로 들어와서 둘러보려고
그냥 내 자리에 조금 앉아 있다가
천천히 그 공간을 느끼며 걸어 나오고 있었는데,
성가대가 중간에 서서 계속 노래를 부른다.
그날이 대성당 간 처음이자 마지막이었기 때문에
원래 그러는지 그날만 특별히 그러는지
알 수 없지만,
마음이 벅차오르는 정말 아름다운 노래였다.
(동영상 2: 대성당 성가대)
프라하 로레타(Loreta) 성당은
프라하 성 근처에 위치하고 있다.
(지도 상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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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w.google.com
"로레타(Loreta)"라는 이름은
성모승천 후
성가족이 살던 나사렛의 "성스러운 집"을
천사들이 옮겨놓았다는
산타 카사(Santa casa) 성당이 있는
이탈리아 도시 로레토(Loreto)에서 나왔다.
17세기 반(anti)-종교개혁,
즉 가톨릭 복고주의의 움직임 속에서
한 보헤미아 귀족에 의해
성모신심을 강조하는 로레타 성당이 건설되었고,
당시 유행하던 바로크 양식으로 지어졌다.
다른 바로크 양식 건축들을 생각해보면,
작은 초록 지붕들,
시계탑,
부조처럼 반입체적인 외벽의 사각틀,
컬러풀한 외벽이 바로크의 흔적이 아닌가 싶다.
아무튼 체코 프라하에서
매우 중요한 가톨릭 순례지 중 하나인 수도원이다.
나는 2012년 프라하에서 체코어 개인수업 중에
로레타 성당의 전설을 체코어로 읽었는데,
그거 읽고 흥미가 생겨서 한번 들어가 가봤었다.
그 전설에 따르면,
로레타 성당 근처에 살던 가난한 과부에게
27명의 아이가 있었는데,
역병이 돌아서 그중 큰 아이가 병에 걸리게 된다.
과부는 그 아이를 위해서 이 성당에서 기도하고
은전 한 닢을 기부하는데,
로레타의 가장 큰 종이 울리더니,
아이는 죽고 만다.
그 아이를 시작으로 한 명씩 차례로 죽게 되고,
그때마다 로레타 성당의 종이 하나씩 울렸다.
마지막으로 막내가 죽었을 때,
성당의 27번째 마지막 종이 울렸다.
아이를 모두 잃은 어머니도 결국 병이 나 죽었는데,
그때 27개의 종이 함께 울리며
천사들의 합창 같은 소리를 냈다고 한다.
로레타 성당은
프라하 성 정문에서 뻗어 나오는 큰길에서
좀 아래쪽에 자리 잡고 있어서
계단을 내려가야 하는데,
그 계단에 아기천사들의 석상들이 있다.
아마도 이스라엘 나사렛에서 이탈리아 로레토까지
"성스러운 집"을 운반했던
그 천사들을 형상화한 것이겠지만,
이 아기천사 석상들과
이 성당에서 매 시간마다 울리는
천상의 벨소리에 영감을 받아,
그런 슬라브인 특유의 비관적인 정서가 반영된
슬프지만 아름다운 이야기가 만들어진 것 같다.
이 성당은 원래 수도원 안에 지은 데다가
지금은 그 수도원이 박물관이 되어서
자유롭게 출입할 수 없다.
로레타 성당 박물관
개장 시간은 매일 10:00-17:00,
입장료는 2021년 현재 일반 180코루나(약 만원),
대학생 120코루나, 초중고등학생 90코루나.
(박물관)
나는 가톨릭 신자인 데다가
슬프지만 아름다운 로레타의 전설에
호감을 가지고 있어서 그런지,
이 성당 박물관도 꽤 흥미로웠다.
오래된 건축 자체가 만드는 공간도 근사하고,
전시물도 너무 많지 않고 설명도 길지 않고,
로레토와 천사가 된 아이들 이야기 이외에
다른 흥미로운 새로운 이야기도 있었기 때문이다.
이 박물관의 한 예배당은
빌제포르타(Wilgefortis) 성녀를 기리고 있었는데,
포르투갈 공주였던 그녀가,
원하지 않는 시칠리아 왕과의 결혼을
피하게 해달라고 기도를 했더니
결혼식날 수염이 나서 결혼식이 취소되고,
화가 난 아버지 왕에 의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후 순교자가 되었다 한다.
뭔가 슬프면서도 웃긴 이야기라서,
묘한 감정이 들었고,
혹시 내가 잘못 이해한 건 아닌가 싶어
한번 더 설명을 읽었었다.
그러고 나서 한참 동안 잊고 살고 있었는데,
2019-2020 겨울 다시 프라하에 가서
이 성당 옆을 지나는데
이 이야기가 생각났다.
왜 프라하 사람들은 굳이
그 멀리 포르투갈 공주를 기리는 예배당을
여기 만들었을까?
단지 수도자들의 동정을 격려하기 위해서였을까?
아님 그 특별한 이야기에 끌려서였을까?
이 박물관에서 가장 중요한 전시물은
예전에 수도원이었던 박물관 한가운데에 서 있는
이탈리아 로레토의 산타 카사 성당을
그대로 모방해서 만들었다는
로레타 성모 마리아 예배당(Loretánská kaple Panny Marie)이다.
이 예배당은 작지만,
아래 사진에 보이는 외벽의 부조와
예배당 내부의 장식이 매우 근사하다.
특이하게도 이 성당 한쪽 벽이 무너져 내려서,
투명 유리벽으로 막아뒀는데,
그것마저도 지진으로 손상된
로레토의 산타 카사를 모방하느라,
일부러 그렇게 무너뜨려 놓은 것이라고 한다.
2019년 겨울에는 로레타에 미사를 보러 갔다.
인터넷에서 검색해보니,
매주 일요일 저녁 7:00 미사가 있는데,
그중 매달 3번째 일요일 저녁 7:00 미사에서는
특별한 음악 연주가 있다고 쓰여 있었다.
내가 체코에 간 주가 12월 셋째 주이긴 했는데,
그 주 일요일이 일요일로는 4번째였고,
그래서 그런지
미사 중에 특별한 콘서트가 진행되진 않았다.
(일반 미사)
(예약 미사)
그렇게 2019년 겨울 프라하 도착한 후 첫 일요일
저녁 시간 맞춰서 로레타 성당에 갔더니,
박물관 문 앞에 어떤 건장한 남자분이 서 계셨다.
내가 마치 암호를 말하듯,
체코어로 "저 미사 보러 왔습니다" 말했더니,
웃으면서 들어가라는 손짓을 했다.
그런 비밀결사단 같은 의식(?)에
괜히 긴장해서 조심스럽게 성당 안에 들어갔는데,
성당은 매우 작았고,
신자들은 많지 않았고,
미사는 매우 경건했다.
그때는 프라하에 도착한 지 3일이 겨우 됐을 때라
그 아기 천사들과 관련된 전설 말고
다른 로레타의 기억이 아직 복원이 안 됐었는데,
미사 끝나고 예배당 뒤를 보니,
그 투명 벽면이 보였다.
그것과 함께 예전에 로레타 박물관 기억이
빠른 속도로 복원되었다.
미사가 매우 좋았던 데다가,
내 복원된 기억을 좀 더 끄집어내고 싶은 마음에
미사가 끝나고 로레타 바깥으로 나와서도
나는 그 앞에 머물러 있었는데,
나는 그래서 그렇다 치고,
미사 본 신자들이 다들 밖으로 나와
이제 바로크 수도원의 문도 잠겼는데도,
이상하게도 다른 사람들도 가지 않고,
영하 10도는 되었던 추운 날씨에 다들 서 있었다.
그게 그 매달 세 번째 주 일요일에 한다는
그 특별한 콘서트인지,
아니면 크리스마스 전 마지막 일요일에
로레타가 선물하는 특별한 콘서트였는지 모르지만,
박물관 정문 위 발코니에 사람들이 등장해서
크리스마스 음악 관현악 연주를 했고,
시계탑 위의 27개 종들은
그 관현악과 협연을 하다가,
독주를 하다가 하면서,
그렇게 여러 곡을 연주했다.
거의 30-40분은 한 것 같다.
그냥 그 옆에 지나며
언뜻 들을 때는 잘 모르겠더니,
크리스마스 전 추운 일요일 밤에 듣는
그 벨소리가 유독 청량하고 아름다워서,
왜 프라하 사람들이 그걸
천사들의 소리라고 상상했는지 이해가 갔다.
그 특별한 경험을 계속 기억하고 싶어서,
그리고 추워서 뭐라도 해야겠길래,
동영상도 찍었다.
(동영상 3: 로레타의 크리스마스)
(동영상 4: 로레타의 크리스마스)
이 미사가 너무 마음에 들어서,
1월, 2월 3번째 일요일에 또 가봐야겠지 했는데,
결국 그 3번째 일요일들에는
다른 처음 가는 성당에서 미사를 봤다.
성모승천 성당(Bazilika Nanebevzetí Panny Marie, Basilica of the Assumption)도
프라하 성 정문 바깥쪽에 있는데,
스트라호프(Strahov) 수도원 안에 위치하고 있다.
(지도 상 위치)
한국인 관광객들에게는
(1) 포도밭 위에서 볼 수 있는 프라하 전경
(2) 예쁜 수도원 도서관
(3) 맛있는 맥주와 폭립을 먹을 수 있는 식당
으로 유명한 그 수도원이다.
이 수도원으로 들어가는 공식적인(?) 출입구는
이렇게 생겼는데,
수도원 동쪽 포도밭 위,
그 전망 좋은 곳으로 가는 쪽문도 보통 열려 있다.
스트라호프 수도원(Strahov Monastery, Strahovský klášter)은
12세기에 처음 생겨서
중세 초기 스타일인 로마네스크 건축이었는데,
17세기 반-종교개혁기에
당시 유행하던 바로크 양식으로 재건축되면서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12세기 처음 성당이 생기기 전에는
도시 전체가 내려다보이는 이곳에
프라하 성의 망루가 있었고,
그래서 수도원은
“망을 보다”라는 strahovat [스트라호밧]와
비슷한 이름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수도원 홈페이지)
아래 그림이 스트라호프 수도원 약도인데,
와인색 화살표가 출입구이고,
1번이 성모승천 성당이다.
서쪽 수도원 정문으로 들어가면
다음과 같은 풍경이 펼쳐진다.
아래 사진 왼쪽의 성 로코 성당은
현재는 미술관이고,
멀리 보이는, 뒤에 초록 뾰족 지붕이 달린
좀 낮은 흰색 건물이 성모승천 성당이다.
스트라호프 수도원의
성모승천 성당은
매일 18:00 미사가 있고,
일요일엔 10:00 미사가 추가로 있다.
나는 일요일 10시 미사에 갔는데,
성당에 들어가서 자리에 앉자마자,
사람들이 촛불을 들고 밖으로 나갔다.
내가 너무 놀라서
입구에 서 있던 흰 옷 입은 수사님에게
오늘 미사 없냐고 물었더니,
좀 있다 할 거라고 했다.
나중에 집에 가서 찾아보니,
성탄 40일째에 초를 봉헌하는,
주님 봉헌 축일이었다.
출구에서 성당 앞까지 줄을 선 체코 신자들처럼
나도 초에 불을 붙이고 서서,
행사에 함께 참여했다.
그 행사가 끝나고 다들 다시 자리에 들어온 후
본격적인 미사를 시작해서
미사 시작이 좀 늦어지는 바람에
11시 35분에 미사가 끝났다.
미사가 좀 늦게 끝난 건 그 행사 때문만은 아니었다.
다른 성당보다 신부님 강론이 좀 길었다.
특별한 날이어서 그랬는지도 모른다.
성당 안에 사람들은 꽤 많았고,
미사는 매우 경건한 분위기였다.
특이한 건 유럽 성당에 가면 있는
그 성당 중간 양 옆의 계단 위에 올라가서
신자들이 독서를 하고,
신부님도 강론을 했다.
그 또한 원래 그 성당에서는 그렇게 하는지
아님 그날만 그랬는지는 알 수 없다.
아무튼 항상 올라가는 길이
열쇠로 채워져 있거나 막혀 있던
그 좁은 나선 나무 계단의 쓸모를
드디어 알게 되었다.
그냥 제대에서 독서를 하는 것과는
확실히 다른 특별한 느낌이었다.
말씀 선포에 더 효과적인 것도 같았다.
그런데 왜 다른 유럽 성당 미사 때는
이런 걸 한 번도 볼 수 없었던 걸까?
그런 모든 특별한 것들 때문에
전반적으로 매우 좋았던 미사였는데,
단 하나의 단점은 너무 추웠다는 거다.
수백 년 전에 지은 유럽 성당에
겨울에 난방이 안 되는 건 너무 당연하지만,
가끔은 그래도 중앙난방이 되거나
미사 때 난로를 켜주는 곳도 있다.
그런데 이 성당은 그런 곳이 아니어서,
기온이 영하 10도 정도였는데,
옷도 따뜻하게 입고, 장갑도 끼고 있었지만,
주님의 기도나 그 밖의 다른 계응을 할 때,
입김이 나오고,
발이 시렸다.
혹시 겨울에 이 성당에 미사를 보러 간다면
옷을 따뜻하게 입어야 할 것 같다.
원래 성당에서 내부 사진 잘 안 찍는데,
아마도 다른 사람들 틈에서
미사 끝나고 한컷 찍었는지 사진이 한 장 있다.
성당 외부는 소박한데,
내부는 바로크 성당답게
장식이 많고 번쩍번쩍 화려하다.
미사가 끝나자,
그 흰옷 입은 수사님이 입구에서
신자들 다 나가길 기다리고 있다가 문을 잠갔다.
미사 없을 때는
성당 내부를 일반에 공개하지 않는 것 같다.
성당에서 걸어 나온다고 했을 때
왼쪽에 있는 건물 (약도 3번)이
그 유명한 스트라호프 도서관이다.
중세시대 중요한 자료들을 소장하고 있으며,
천장과 벽 장식이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나는 도서관을 좋아하지만
그 공간에서 책 읽는 걸 좋아하는 거라,
그런 책을 읽을 수 없는 도서관에 굳이 가서
인테리어만 보는 게 의미가 있나 싶었다.
그래도 흔치 않은 중세 도서관이니
한 번은 가봐야지 했는데,
미루고 미루다가
막판에 시간이 없어서 결국 도서관에는 못 가봤다.
이날 미사 끝나고 갔으면 딱 좋았을 텐데,
미사 끝나니 곧 점심 휴식이 시작될 시간이었다.
개관시간
매일 9:00-17:00 (점심시간 12:00-13:00)
입장료 일반 150 코루나(약 7,500원),
할인 80코루나.
(스트라호프 도서관 홈페이지)
그렇게 스트라호프 도서관은 패스하고,
수도원 맥주와 폭립이 유명하길래,
미사 끝나고 점심을 먹으러 갔다.
수도원 안에 식당이 3-5개는 있는 것 같다.
맥주 브루어리(약도 15번),
전망 좋은 테라스 식당(약도 19, 9번),
호텔 (약도 16번) 바깥쪽에서도 하나 봤고,
약도 17, 19번도 식당으로 나온다.
그중에서 나는
성당에서 가장 가까운 브루어리를 갔다.
굴라시를 먹었던 것 같은데,
평판대로 맛있었다.
나중에 한국에서 오신 어른들도 모시고 가서
수프랑 폭립 같은 다른 음식도 먹었는데,
어른들도 맛있다고 하셨다.
한국인의 입맛에 맞는 대중적인 음식인 것 같다.
맥주도 달짝지근하게 맛있었다.
달아도 도수가 높은지,
조금 마셨는데 알딸딸해졌다.
사람들이 무척 많지만,
서비스 엄청 빠르고,
심지어 다 먹기도 전에 그릇을 가져가려고 한다.
가격은 변두리보다 20-30% 정도 비싼 편인데,
포도밭 위 전망 좋은 데 있는 식당(약도 9번)보다는
저렴한 것 같다.
아래 사진의 사람들 서 있는
오른쪽 낮은 건물이다.
내 후배는 여기에서
수도원 과일 맥주 만드는 과정도 보고 시음도 하는
수도원 브루어리 투어도 했다고 한다.
성당 뒤로는 수도원 건물이 붙어 있다.
수도원 입구로 들어가면 안뜰이 나온다.
수도원 안에 들어갈 순 없지만
여기까지는 관광객에게 개방되어 있다.
성당 뒷부분의
옹기조기 모여있는 크고 작은 지붕들 아래에는
기념품 판매하는 상점(약도 13번)도 있다.
그 안뜰 가운데는 사자 동상이 있고,
그 동쪽에는 체코 문학 박물관(památník národního písemnictví, Museum of Czech Literature)이 있다.
승리의 성모 성당(Church of Our Lady Victorious, Kostel Panny Marie Vítězné)은
프라하 성 아래쪽
말라 스트라나(Malá Strana) 지역에 위치하고 있고
프라하 아기 예수(Infant Jesus of Prague, Pražské Jezulátko)로 유명하다.
(지도 상 위치)
프라하 아기 예수는
왕관을 쓰고 왕의 망토를 걸친
48센티미터의 아기 예수 동상으로
원래 스페인에서 시작된 전통이라고 하는데,
체코에는 17세기에 처음 등장했고,
그렇게 자리 잡은 프라하의 아기 예수는
강한 파급력을 가지게 되면서
다른 가톨릭 지역으로 퍼져 나갔다.
이 아기 예수에게 기도하면
그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속설이 있어서,
체코 뿐 아니라
많은 다른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 국가의
가톨릭 신자들에 의해 숭배되고,
많은 가톨릭 순례자들이 이 성당을 찾는다.
그 인기를 증명하듯,
이 성당의 미사는 비교적 자주
그리고 비교적 다양한 언어로 진행된다.
일 10:00, 19:00(체코어),
12:00(영어), 18:00(이탈리아어)
월-토 9:00(체코어)
목 18:00 (영어)
토 18:00 (스페인어)
(홈페이지)
내가 이 성당에서 미사를 본 일요일은
내가 잘 모르는 무슨 축일이었는데,
이렇게 성당 바깥에 마구간 같은 걸 만들어 놓고,
말인지 당나귀인지
나는 정확하게 구별 못하는 동물들을 세워두었다.
승리의 성모 성당은 16세기에 처음 세워졌는데,
지금 성당은 17세기 초 루터교,
즉 프로테스탄트 교회로 지어졌다가,
반-종교개혁 분위기 속에서
다시 가톨릭 성당이 되었다.
그래서 그런지 성당의 외관 자체는
다른 가톨릭 성당들에 비해
별다른 특징이 없이 소박하고 장식도 적다.
건물 내부도 비슷한 느낌이다.
나는 일요일 7시 체코어 미사를 봤는데,
여기는 방문객들이 내는 기부금이 많아서 그런지,
성당에 돈이 많은 것 같다는 느낌이 좀 들었다.
우선 나무 의자 아랫부분이 따뜻하도록,
의자마다 따로 난방 장치가 되어 있었고,
봉헌금 내는 시간에 봉헌금을 따로 안 걷었다.
일요일 7시가 청년부 미사 시간인 건지,
아님 원래 그런지,
젊은 사람들이 많고, 미사 분위기도 밝고 젊다.
어쩜 이것도 고가의 음향 기기 덕분인지 모르겠지만
신부님의 발음이 명확해서
강론이 좀 더 이해하기 쉽고,
성가대의 가스펠과 첼로 연주가 매우 좋았다.
그리고 소박한 성당 한 구석엔 이렇게
화려한 장식 안에 아기 예수가 서 있다.
원래 성당에서 내부 사진 많이 안 찍는 편인데,
여기는 어딘지 모르게 관광지 같아서
별 망설임이나 거리낌 없이
관광객 모드로 아기 예수 사진을 찍었다.
이 성당은 미사가 없는 시간에도
일반인에게 내부를 공개한다.
성당 바깥쪽엔 아기 예수 형상을 파는
가게들도 있었다.
예수님이 가진 여러 모습이 있지만,
내가 신약을 읽으며,
또는 성당에서 강론을 들으며 느꼈던 모습은
이런 화려함이 아니어서 그런지,
이건 그냥 "인간적 속됨"에 투사되어 재탄생된,
매우 인간화된 "성스러운" 형상인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사실 프라하 아기 예수에
큰 감흥을 받지 못했다.
아님 여기에서 미사를 본 날,
내 마음이 닫혀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성 니콜라오 가톨릭 성당(Kostel svatého Mikuláše, St. Nicholas Church)은
말라 스트라나 지역,
프라하 아기 예수가 있는 승리의 성모 성당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자리 잡고 있다.
프라하 구시가에서 카렐 다리 건너고 나서
처음 나타나는, 그 트램 다니는 사거리에서
커다란 초록 지붕이 있는 바로 그 성당이다.
(지도 상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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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하엔 성 니콜라오 성당이 두 개가 있는데,
구시가에 있는 건 후스교 성당이고,
말라 스트라나에 있는 건 천주교 성당이다.
둘 다 바로크 양식에 둘 다 초록 지붕인데,
천주교 성당의 지붕이 좀 더 크고 둥글다.
이건 2012년 겨울
무슨 언어학 특강 수업 청강하러 갔을 때
그 사거리에 있던 건물에서 창문으로 보이던
성당 지붕 사진이다.
니콜라오 성인은
그리스도교가 공인되지 않은 3세기 말
지금의 터키 지역에서 태어나 박해받았다가
후에 콘스탄티누스 황제 칙령으로 자유를 얻었는데,
빈자와 죄인들을 위해 헌신한 것으로 유명하다.
가톨릭보다는
동방정교에서 주로 성인으로 숭배하고,
특히 러시아의 수호성인이라서,
러시아 곳곳에서 니콜라오 성인,
러시아어식으로
니콜라이 성인의 이콘을 만날 수 있다.
프라하의 성 니콜라오 가톨릭 성당은
13세기부터 고딕 성당이 서 있던 자리에,
18세기 초반 바로크 양식으로 다시 지어졌는데,
프라하에서 가장 크고 아름다운 바로크 건축으로 간주된다.
초록색 둥근 돔은
프라하 성당 건축 중에 가장 높다고 하는데,
성당 전망대에서
주변 미국, 유고, 서독 대사관이 보여서,
냉전 시대에는 체코 국가정보부가 여기에서
그들의 움직임을 감시하기도 했다고 한다.
성당 안의 바로크 오르간도 유명해서,
모차르트가 프라하를 방문했을 때
그 오르간을 연주했다고 하고,
지금도 매일 유료 콘서트를 연다.
그런 콘서트도 유료일 뿐 아니라,
성당 자체와 전망대도 유료로 개방한다.
대체로 9:00에 문을 열고,
시즌에 따라 16:00, 17:00, 18:00에 닫는다.
성당 입장료는 2021년 현재
일반 100 코루나(약 5천원), 할인 65코루나.
전망대에 오르려면 요금을 또 따로 내야 한다.
"성"보다는 "속"으로 많이 기운 듯 보이는
이 성당의 미사는
일요일 20:30
단 한 대다.
(홈페이지)
여러모로 이제는 성당보다 관광지인 것 같지만,
그래도 일주일에 한 대 미사가 있긴 하니까,
그 미사는 어떨까 궁금해서 한번 가 봤다.
성당 앞에 경비 같은 중년 남자분이 서 있었는데,
아마도 성당 입장 관광객이나 콘서트 관람객을
관리하는 분인 것 같다.
문 앞에서 미사 왔다고 체코어로 말했는데,
뭐 크게 내 말을 신경 쓰는 것 같지 않았다.
아마 미사 때는
아무 얘기 안 해도 그냥 들여보내나 보다.
미사 보는 사람들은 별로 없었다.
성당 홈페이지 콘서트 관람객들을 위한 안내에는
난방이 안 된다고 쓰여 있었는데,
특별히 따뜻하진 않아도
겨울밤인 것치곤 특별히 춥지도 않았다.
계속 불이 꺼진 상태이다가
미사 시작 5분 전에 실내조명이 켜졌다.
그제야 보게 된 성당 안은 어마어마하게 크고
바로크식 인테리어답게 금빛 장식이 많았다.
기둥 위에 나뭇잎이 장식된
커다란 코린트식 원주가 많이 있었다.
천장에는 아름다운 그림이 그려져 있고,
천장 한쪽 커다란 둥근 돔천장에도 동상이 있고,
화려한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대신 스테인드 글라스는 없었다.
(성당 인테리어 사진들)
공간이 거대하고 화려하지만,
아니 어쩌면 바로 그래서
나는 별 감동을 못 받았다.
미사 자체는 경건하고 좋았다.
미사 자체만 본다면 또 가고 싶은 성당이지만,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헌신한
니콜라오 성인의 이름을 건 성당 치고는
너무 혼자만 부유한 거 같아서
마음이 좀 씁쓸했다.
그 성당이 그 부를 사회에 환원할 거라
생각하더라도 그런 씁쓸함이 가시지는 않았다.
대체로
"미사 보러 왔습니다"
라고 말하며 들어가야 하는
프라하 “관광지” 성당들의 느낌이 비슷했다.
그 안에서 미사를 볼 때
보통 성당보다 장엄하고 경건한 그 공간은
성스러움이 가득했지만,
성당문을 나와 보면
그냥 돈이나 미학 같은 세속적 욕망을 품은
흔한 세속적 관광지가 된다.
"관광지 성당"과 거리가 먼,
성 루드밀라 성당(Kostel sv. Ludmily, Church of Saint Ludmila)은
프라하 동쪽 비노흐라디(Vinohrady) 지역
"평화 광장(Náměstí Míru)"에 위치하고 있다.
(지도 상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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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노흐라디(Vinohrady) 지역은
고가 주택이 많은 프라하 부자 동네이고,
평화 광장(Náměstí Míru)은
그중에서도 교통의 요지다.
그래서 이 동네와 평화광장 자체에
성당 말고도 뭔가 흥미로운 것들이 많이 있다.
여기가 평화 광장이라서
평화를 상징하는 비둘기를 든 소녀 동상이
성당 옆에 서 있기도 하다.
아무튼 이 동네와 평화 광장 이야기는
나중에 다른 포스트에서 하고,
성 루드밀라 성당으로 돌아와서,
루드밀라 성인은
바츨라프 왕의 할머니로,
체코의 옛 이름인 보헤미아에
처음 그리스도교 교회를 세우고,
메토디우스에게 직접 세례를 받아
그리스도교도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비그리스도교도에게 살해당했고,
사후에 그리스도교 성인으로 추대되었다.
슬라브어에서 '루드(lud)'는 '사람들',
'밀라(mila)'는 '사랑'이라는 의미인데,
그 이름처럼 백성들의 사랑을 받았다고 한다.
성 루드밀라 성당은 19세기 말
프라하가 커지면서
이제 새롭게 시로 편입된 비노흐라디 지역의
가톨릭 신자들을 수용하기 위해
신 고딕 양식으로 지어진 성당이다.
19세기 민족주의 전성기에 세워진 성당이라서
체코 토착 가톨릭 성인의 이름을 땄나 보다.
신 고딕 양식이라 높은 천장과 뾰족한 첨탑에
창문엔 스테인드 글라스가 있다.
이 성당의 건축가가
프라하 성의 성 비토 대성당 건축에도
참여했다고 하는데,
그래서 성 비토 대성당과 닮아 보이는 건지,
아니면 단순히 신 고딕 성당이라
고딕 성당과 닮은 건지는 잘 모르겠다.
미사 시간은
월-토 16:30
일 9:00, 11:00, 16:30.
매주 첫 일요일 9시 미사는 라틴어로 진행된단다.
(성당 홈페이지)
나는 12월 31일 미사를 보러 이 성당에 갔었다.
성당은 어둡고
특별한 날인 거 치고,
미사는 차분한 느낌이었다.
그리고 생각보다 미사에 참여하는 신자가 적었다.
체코인들은 크리스마스와 새해를
주로 가족들과 조용하게 보낸다고 하는데,
프라하 인구의 30%라는 가톨릭 신자도
집에서 새해와 크리스마스를 맞나 보다.
성모성심 성당 (Kostel Nejsvětějšího Srdce Páně, The Church of the Most Sacred Heart of Our Lord)도 비노흐라디 지역에 자리 잡고 있다.
좀 더 정확하게는 포데브라드의 이르지 광장(Jiřího z Poděbrad Square)으로,
광장과 똑같은 이름의 지하철 역에서 내리면 된다.
(지도 상 위치)
프라하 성모성심 성당은
류블랴나 곳곳에 그의 손길이 닿아 있는
슬로베니아의 가우디 플레츠닉(Jože Plečnik)이
20세기 초 아르누보 양식으로 지은 건축이다.
아르누보 양식 성당은 유럽에서도 처음 봤는데,
프라하에서 흔치 않은
중요한 20세기 성당이란다.
하긴 프라하엔 이미 성당이 많이 있고,
20C 초에는 세계대전,
20C 중후반은 종교를 부정하는 공산정권이었으니,
20C 이후에 새로 지은 성당이 거의 없을 것 같다.
프라하의 성당은 대체로 높고 뾰족한데,
성모성심 성당은 그렇지 않은 것만으로도
매우 현대적으로 느껴지는데,
일부러 균형이 맞지 않게 크게 만든 것 같은
지나치게 커다란 시계는
체코에서 가장 큰 시계란다.
원래 성당에 종이 6개 있었는데,
그중 가장 큰 5개는 2차 세계대전 중
나치 독일군이 녹여서 무기를 만드려고 떼어 갔고,
그중 2개는 공산정권 붕괴 후
다시 성당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그런 특별한 사연의 종이 울리는 걸 듣긴 했는데,
종소리 자체에 대한 특별한 기억은 없다.
미사 시간은
일요일 9:00, 11:00, 18:00, 20:00
월-토 8:00, 18:00.
(성당 홈페이지)
생각해보니
바로 여기가
내가 2012년 겨울 프라하에서 미사 보러 간
첫 현지 성당이었던 것 같다.
2012년에 가보고 좋아서
2020년에도 또 갔다.
두 번 다 일요일 11시 미사였는데,
2020년에는 미사 중에 세례식을 했고,
아기랑 같이 온 가족, 어르신들이 많았다.
아무튼 두 번 다
외부인이나 관광객은 나밖에 없고,
다른 신자들은 다 현지인 같았다.
처음 유럽 성당에서 미사 보면서 들떠서 그랬는지,
2012년엔
미사 전후에 성당 내부 사진도 좀 찍었다.
성당 정면에는 다른 장식 없이
황금으로 된 날개 달린 예수 동상이 가운데 있고,
그 밑에
바츨라프 왕, 루드밀라 공후를 포함하는
체코 출신 가톨릭 성인 6명이 매달려 있다.
20세기 성당 건축의 전형은 아니지만,
마땅히 20세기 성당 건축이라 할만한 게
한국이건 유럽이건 많지 않으니,
새로운 시도로, 개성 가득한 이 성당은
20세기 아르누보 성당 건축의 좋은 예인 것 같다.
눈의 성모 마리아 성당 (Kostel panny Marie Snezne, Church of Our Lady of the Snows)은
프라하 바츨라프 광장 옆에 자리 잡고 있다.
(지도 상 위치)
나는 2012년 바츨라프 광장 근처에서 우연히
현대 건물들 사이 숨겨진 공원을 발견하고,
그 공원 옆에서만 보이는 이 성당을 발견하고는
보물을 찾은 기분이었다.
그때는 내부 리모델링 작업 중이었는지
성당 출입구가 열려진 채,
어떤 검은 두꺼운 커튼이 쳐져 있었는데,
마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처럼 들어간 그 공간은
너무 아름다운 성당이었다.
마침 창문으로 빛이 들어와서
더 신비롭고 아름다워 보였던 것 같다.
눈의 성모 성당은 아직 미완성이다.
14세기 고딕 양식으로 짓기 시작했는데,
프라하의 많은 대형 성당처럼
후스교의 종교개혁으로 건설이 중단되었고,
17세기 반-종교개혁 시기에
르네상스와 바로크 양식이 가미되었지만,
그 후 아직까지도 건축이 완성되지는 못했단다.
내부의 높은 천정과 볼트 장식이 고딕 양식,
화려한 제대 장식이 바로크 양식인 것 같다.
이 성당의 천정 높이는
프라하에서 가장 높다고 한다.
2012년엔 그렇게 공사 중인 성당을 잠깐 구경했고,
2020년엔 미사를 보러 갔다.
아직 완성되지 않아 관광지가 아닌 성당은
주로 미사 공간으로 활용되는지,
미사가 다른 프라하 성당보다 많다.
미사 시간
일 9:00, 10:15, 11:30, 18:00
월-금 7:00, 8:00, 18:00
토 8:00, 18:00
나는 일요일 저녁 6시 미사에 갔다.
성당은 크지만,
신자석은 최대 5명 정도 앉을 수 있는 벤치가
양쪽으로 10개씩 정도밖에 없는데,
그 벤치가 꽉꽉 찬 건 아니지만,
그래도 꽤 찼다.
제대는 화려하지만,
신자석의 벽은 장식이 많지 않다.
아마도 아직 다 완성되지 않아서 그런 것 같은데,
장식이 너무 과하지 않아서
나는 오히려 그게 좋았다.
미사는 경건하고 성스러웠고,
성당 앞 서점, 미술관과 벤치가 만들어내는 공간도
아늑하고 또 생기가 있어서,
관광지에 자리 잡고 있지만,
현지인들의 성당이라는 느낌이었다.
(성당 홈페이지)
이 이름을 가진 성당이 프라하에 두 개 더 있는데,
내가 갔던
성 키릴, 메토디우스 성당(Kostel sv. Cyrila a Metodeje)은
프라하 동부 카를린(Karlín) 지역에 자리 잡고 있다.
(지도 상 위치)
비트코프(Vítkov) 언덕에서 보면
그 북쪽에 성당이 보인다.
이 성당은 내가 2020년 겨울 후반기에 머물던
동네의 성당이라서 가봤다.
키릴과 메토디우스는
슬라브인에게 그리스도교를 포교하기 위해
9세기 슬라브어를 위한 글자를 만들어,
당시 '모라비아'이던 체코 왕에게 선물했던
그리스 출신 성직자, 학자인 형제다.
(불가리아에선 불가리아 출신이라 주장한다)
이렇게 체코와 슬라브족과 밀접하게 연관된
성인의 이름을 가진 성당은
예상대로 19세기 말 민족주의 시대에 만들어졌고,
두 그리스 형제가 모라비아에 도착한 863년에서
정확하게 천년이 지난 1863년 축성되었다.
성당 내부의 천장을 둥글게 만든
중세 초기의 신 로마네스크 양식 건축이다.
이 또한
초기 그리스도교와 연결하려는 시도인 것 같다.
보통 낮에 성당 문이 열려 있어서,
자유롭게 들어가서 구경할 수 있다.
그런 열린 교회의 느낌이 좋아서,
그리고 슬라브어 연구자인 나에게,
키릴, 메토디우스가 의미 있는 인물들이라서,
이 성당의 미사도 가 봤었다.
미사 시간
일 09:30, 18:30
월, 수, 금, 토 12:00
(성당 홈페이지)
나는 프라하 체류 마지막 일요일
6시 30분 미사에 갔는데,
성당이 큰 데 비해서는
신자들이 많지 않았다.
그래서 그런지 좀 추웠다.
미사 분위기는 좋았지만,
특별히 기억에 남는 느낌은 없었다.
이제 곧 한국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프라하 현지 성당 투어도 이게 마지막이라는
아쉬움이 가장 컸다.
파두아의 안토니오 성당(Church of St. Anthony of Padua, Kostel sv. Antonína Paduánského)은 프라하 북쪽 홀레쇼비체(Holešovice) 지역에
위치하고 있다.
여기는 내가 2020년 프라하 체류 초반에 머물던
동네의 성당이다.
(지도 상 위치)
파두아의 안토니오 성인은
12세기 포르투갈 출신으로
설교, 지식, 빈자와 병자에 대한 헌신으로 유명하다.
2012년에 처음 갔을 때는
이렇게 생긴 성당은 다 오래된 건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신 고딕 양식으로
20세기 초반에 건축한 성당이었다.
2020년에 갔을 땐 이미 그 사실을 알기도 했지만,
그 8년 동안 여러 유럽 도시들을 방문하고서,
이제 유럽 건축물을 보고
대강 건축 양식을 구별할 줄 알게 되었기 때문에,
비교적 최근에 건설된 건물인 걸
단번에 느낄 수 있었다.
미국의 체코 교포들이 돈을 모아
체코슬로바키아 초대 대통령
마사릭(Masaryk)에게 선물한,
미국 '자유의 종' 모사품이 있다고 하는데,
그 종은 못 봤지만,
이 성당의 종소리가 꽤 크긴 하다.
이 성당은 동네 성당이지만,
평소에는 문이 대체로 잠겨 있고,
미사 때만 여는 것 같다.
미사 시간
월-토 18:00
일 10:00, 18:00
(성당 홈페이지)
나는 일요일 10시 미사에 갔는데,
동네 성당 같은 분위기이고,
신자들끼리 서로 잘 알고 지내는 것 같아 보여서
이방인인 나는 좀 어색했다.
이 성 니콜라오 성당(Church of Saint Nicholas, Kostel svatého Mikuláše)은
말라 스트라나에 있는 둥근 지붕 성당과 달리
가톨릭 성당이 아니고,
체코 토착 프로테스탄트, 후스교 성당이다.
얀 후스(Jan Hus)는 15세기에
종교개혁을 주장했다가 이단으로 몰려 화행당했고
그런 그를 추종하는
체코식 프로테스탄트가 후스교도이다.
체코에서 얀 후스는 단순히 종교개혁가가 아니라
민족적 위인인데,
그는 독일인 루터보다 100년 앞서
종교개혁을 주장한 선구적인 인물인데다가,
라틴어 대신 체코어를 사용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체코어 표준화에 막대한 영향을 주기도 했다.
그래서 프라하 구시가 광장 중앙에
얀 후스 동상이 있고,
성 니콜라오 후스교 성당은
얀 후스 동상 뒤쪽에 위치하고 있다.
(지도 상 위치)
원래 정교 성당이 있던 자리에
18세기에 후스교 성당이 건설되면서,
당시 유행하던 바로크 양식으로 지어졌다.
성 니콜라오 후스교 성당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체코 파르티잔들의 은신처였단다.
지금은 콘서트홀로 주로 사용된다는데,
그래도 미사를 한다.
나는 지나가다 봤더니 마침 미사 시작할 시간이길래
후스교 미사는 어떤가 싶어서
한번 들어가 봤다.
예전에 미국에서 들어가 봤던
성공회 예배도 그랬는데,
가톨릭 미사와 비슷하게 진행되는 느낌이었다.
초기 프로테스탄트 교회에서는
아직 가톨릭 전례의 특징을
많이 버리지 못한 것 같다.
(홈페이지)
그 밖에 가보고 싶어서 시간 체크해두었는데,
못 갔던 성당 중 하나가
틴 성모 성당(Church of Mother of God before Týn (in Czech Kostel Matky Boží před Týnem)이다.
프라하 구시가 동쪽에 있는 그 고딕 성당이다.
(지도 상 위치)
보통은 관광지로 방문하는 곳이지만,
미사도 한다.
하지만 “관광지 성당”이어서 그런지
미사 시간은 너무 이르거나 너무 늦다.
미사 시간
토 8:00,
일 9:30, 21:00.
다른 요일은 계절에 따라 변동됨
(홈페이지)
미사에 가고 싶었던 또 다른 성당인
성 헨리코, 쿠네군다 성당 (Church of St Henry and St Kunhuta, Kostel sv. Jindřicha a sv. Kunhuty)은
무하 박물관 근처에 자리 잡고 있다.
(지도 상 위치)
미사 시간
화, 목 16:00(체코어)
수, 금 18:00(슬로바키아어)
일 8:30(체코어), 9:30(헝가리어), 11:00(슬로바키아어)
(홈페이지)
www.praha.fara.sk
프라하 노베 므녜스토에 자리 잡은
또 다른 눈에 띄는 성당
성 이냐시오 성당(St. Ignatius Church, Kostel svatého Ignáce) 은
카렐 광장(Karlově náměstí)에 위치하고 있다.
(지도 상 위치)
미사 시간
월-토 7:30, 17:30
일 7:00, 9:00, 11:00 (라틴어), 17:30
(홈페이지)
물론 프라하에는 이런 성당들 말고
아직도 수 많은 성당이 있다.
"유럽의 심장(Srdce evropy, the heart of Europe)",
"황금 도시(zlatá Praha, the golden city)",
"도시들의 어머니(matka měst, the mother of all cities)"
등 여러 별칭으로 불리는 프라하가 가진
또 하나의 별칭이
"100개의 첨탑의 도시(stověžatá Praha, the city of a hundred spires)"다.
그 별칭에 걸맞게 프라하엔 정말 첨탑이 많고,
그 첨탑 중 상당수는 성당의 첨탑이다.
대성당이 중세 중후반 고딕 양식일 뿐 아니라,
그 밖에 중세랑 별로 관련 없는 성당들도
고딕 양식을 흉내낸 경우가 많고,
고딕 양식 아닌 다들 성당들도 천장이 높고,
첨탑 한 두 개씩을 품고 있다.
그렇게 위로 우뚝 솟았을 뿐 아니라
대체로 그 넓이도 넓다.
그만큼 유럽 그리스도교 극성기부터
이 도시엔 사람들이 많았다는 얘기일텐데,
그런 성당들의 숫자와 크기에 비해,
이제 프라하 성당을
그 본연의 종교적 목적으로 사용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은 것 같다.
그래도 그래서 좋은 점은
성당에 가서까지 자리 잡기 경쟁을 하거나,
미사 중간에 울리는 전화 소리에 방해받지 않고,
뭔가 인간적임에서 벗어나,
좀 더 성스러움에 집중할 수 있다는 거다.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에서
나를 아는 유일한 존재와
영적으로 대화를 하면서 말이다.
그래서 가끔은
‘내가 이 미사를 보러 프라하까지 왔나보다’
싶은 생각이 드는 벅찬 순간들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