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예쁘다" 이상이 없어서 좀 허전한 체코 관광명소
2012년 1-2월 프라하에 5-6주 머물 때,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박사학위하던 후배가,
나 프라하에 있는 동안 놀러 왔었다.
러시아 장기체류가 처음이 아니었지만,
처음 장기체류하던 교환학생 때
유럽 여행은 하지 않았던 듯한 후배는
이왕이면 내가 프라하 있는 동안 오겠다며,
2012년 겨울에 처음 와 본 체코를 거쳐
역시나 처음 가 볼 독일까지
짧지만 알찬 첫 유럽 여행 루트를 잡아왔다.
나도 그 후배의 “유럽 여행 루트”에 편승해서,
프라하를 비롯한 두 도시를 함께 다녔는데,
그중 하나가 독일 드레스덴이었고,
또 다른 하나가 체스키크룸로프였다.
그 후배가 체스키크룸로프를 선택한 이유는
“다들 그렇게 예쁘다고 해서”였고,
그 후배 말고 다른 사람들도
“거기가 그렇게 예쁘다던데 한 번 가보라”
고 많이들 추천해서
나도 어떤 곳인지 궁금하던 참이었다.
후배랑 내가 간 날은 마침 눈이 많이 와서
엄밀히 말해서 체스키크룸로프 자체보다는
포실포실 내린 뽀얗고 “예쁜 눈”을 더 많이 봤지만,
흰 눈에 덮여 있어 다는 안 보여도,
아담한 크기의 마을 전체 풍경이 조화롭고,
확실히 예쁘긴 예뻤다.
그리고 2019-2020년 겨울 9-10주간
다시 프라하에 가게 되었을 때,
나 체코 있는 동안 유럽 한 번 처음 구경해 보라고
이번에는 내가 먼저 제안해서,
나의 프라하 체류 후반부에
엄마랑 이모가 한국에서 오셨다.
그리고 그때 프라하 이외에 함께 간 체코 도시도
체스키크룸로프였는데,
이번에도 이유는 “예뻐서”였다.
2012년과 2020년
프라하 말고 총 10여 개의 체코 도시를 방문해 본
내가 “초심자” 입장에서 생각해 봤을 때,
유럽에 첫 방문하는 어른들에게
프라하 말고 또 “보여드릴” 체코 도시로
이만한 데가 없을 것 같았다.
그리고 예상대로 “유럽 초보” 엄마와 이모 모두
체스키크룸로프를 매우 좋아하셨다.
물론 이름이 너무 길어서,
"체스키크룸로프" 대신에
“그 체코 도시”, "체코 거기"라고 부르긴 했지만.
두 번의 여행을 함께 한
상이한 세대의 동행자들의 반응을 봤을 때,
체스키크룸로프의 비주얼은
보통의 한국인이 그리는
유럽 시골 마을의 이상형인 것 같다.
하지만 그런 시각적 아름다움뿐 아니라,
고딕, 르네상스, 바로크 건축의 조화라는
역사적, 건축적 가치도 있어서,
구시가 전체가 1992년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체코 지명에
“체스케”, “체스카”, “체스키”가 붙어 있으면,
우선은
보헤미아 지역 (체코어로는 Čechy(체히)),
즉 체코 서쪽에 위치하고 있다는 의미고,
또 거기에 덧붙여
체코 동쪽 모라비아 지역(체코어로는 Morava)에도
“모랍스키”붙은 같은 지명이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렇지 않으면 굳이 이름 앞에 형용사를 덧붙여,
길고 복잡하게 만들 이유가 없으니까.
(보헤미아와 모라비아에 대해서는)
“크룸로프”에서
접미사 -ov(오프)는
영어, 독일어의 소유격 -s에 해당하는
슬라브어 생격 표지인데,
지명이나 인명 뒤에도 붙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고르바쵸프”, “흐루쇼프”, “파블로프”같은
러시아인의 성에도 붙고,
"하리코우", "크라쿠프", “체스키크룸로프”처럼
발음은 조금 달라질 수 있지만
여러 슬라브 국가의 지명에도 붙는다.
그렇다면 어근 Kruml-는 어디에서 왔을까?
독일어 Krumme Aue(굽은 초원)에서 나왔다는데,
아래 체스키크룸로프의 조감 사진에서
보다 확실히 드러나는
초록 평야를
크게 굽이쳐 흐르는 블타바(Vltava) 강을 보면,
“굽은 초원”이라는 어원이 쉽게 납득이 간다.
(체스키크룸로프 유경험자를 위해 참고로 말하자면,
사진 오른쪽 아래가 버스터미널이고,
오른쪽 위 말발굽 모양 섬이 구시가다.)
어원이 된 독일어에서는
현재 체스키크룸로프를
“크루마우(Krumau)”나
“보헤미아 크루마우(Böhmisch Krumau)”라고
부른다.
체코 동쪽 모라비아 지역에 있는
모랍스키크룸로프(Moravský Krumlov)는
독일이나 오스트리아와 연관성이 적기 때문에,
그리고 체스키크룸로프가
워낙 체코 대표 관광지라서,
“크루마우”라고만 불러도
보통은 “보헤미아의 크루마우”로 알아듣는 거다.
내 지인 중에는 “체스키크룸로프”가 기니까
그냥 “체스키”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는데,
그리고 인터넷에 올라온 글들 보면
다른 한국인들도 많이 그렇게 부르는 것 같은데,
그건 “보헤미아의”, “체코의”란 의미여서
체코인에겐 아무 의미도 없는 지명이 된다.
그래서 체코인들은 굳이 줄인다면,
“보헤미아 지역”이라는 의미의 “체스키” 떼고,
보다 본질적인 특징을 표현한 부분을 선택하여
그냥 “크룸로프”라고만 부른다.
낮은 산이 있고, 평야가 있고, 굽이굽이 강이 있는,
그야말로 배산임수 지역으로,
워낙 살기 좋은 곳이어서,
체스키크룸로프에 인간이 거주한 건
구석기시대부터라고 한다.
그 살기 좋은 마을이 역사에 처음 기록된 건
13C 중반 사료에서
Chrumbenowe라는 이름으로였다고 하는데,
독일어 Krumme Aue(굽은 초원)을
체코어식으로 바꾼 것이다.
즉 명칭의 어원은 독일어지만,
본격적 역사는 체코 마을로 시작했다.
이름이 알려지기 전 10C부터
체코 프르셰미슬 왕조(Přemyslovci)의
지배를 받았고,
문헌에 첫 언급된 13C 중반엔
체코 귀족가문 비트콥치(Vítkovci)가
이곳에 성을 세우면서,
체코 귀족의 영지로 본격적 역사가 시작된 거다.
전설에 따르면,
체코 비트콥치 가문은
이탈리아 우르시니(Ursini) 가문에서 기원한단다.
6C 서고트족에 쫓겨 달아나던
로마 우르시니 가문의 귀족 비텍(Vítek)이
동쪽으로 이동하다 이곳에 자리 잡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건 전설일 뿐, 실제로
비트콥치 가문은 체코 프르셰미슬 왕조에서 나왔다.
아무튼 비트콥치 가문 이후에는
로젠버그 가문(Rožmberk, Rosenberg)까지
체코 귀족 가문의 소유지로,
먼저 귀족의 성 근처에 마을이 생기고,
강 건너에도 지금의 구시가가 형성되면서
마을이 발전했다.
특히 14-16C 로젠버그 가문 시기에
체스키크룸로프가 크게 발전했고,
현재 구시가의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어내는
고딕 양식, 르네상스 양식 건축들이 이때 생겼다.
그렇게 수백 년 간 발전한 마을을
체코 왕이 17C 초 신성로마제국 황제
루돌프 2세(Rudolf II)에게 팔면서,
황제는 그의 아들을 잠시
체스키크룸로프 성에서 살게 하기도 했다.
참고로 보헤미아 왕국의 지배자이기도 했던
합스부르크 왕가 출신 황제 루돌프 2세는
플젠으로 잠시 수도를 옮기기도 했어서,
체코 보헤미아 지역과 나름 또 인연이 있다.
이후 30년 전쟁으로 재정이 악화된 황제가
오스트리아 귀족에게 체스키크룸로프를 팔면서
약 200년간 마을은
오스트리아계, 독일계 귀족들의 영지였고,
바로크 양식의 건축들이 이때 덧붙여졌다.
그 이후 합스부르크-헝가리 제국의
1918년 1차 세계대전 패전으로
새롭게 건국된
체코슬로바키아 공화국의 일부분이 되었지만,
당시 주민들 중 독일인이 체코인보다 많았고,
주민 상당수가 독일의 일부가 되고 싶어 했다.
이에 1938년 독일 나치는 이곳을,
독일인이 많이 거주하는 체코슬로바키아 지역인
주데텐란트(Sudetenland)에 포함시키기도 했다.
결국 나치독일이 2차 세계대전에 패전한 후,
이 지역에 거주하던 독일인들도 다 쫓겨났고,
1989년까지는 공산 체코슬로바키아,
1993년 체코와 슬로바키아가 분리된 이후에는
체코의 일부가 되었다.
수백 년간 차곡차곡 덧붙여진
다양한 양식의 아름다운 건축이
다행히 2번의 세계대전을 무사히 버텨서
체스키크룸로프의 구시가와 성 주변지역은
1992년 유네스코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고,
그 이후 본격적으로 관광지로 개발되어 현재까지
체코의 중요한 관광지로 이름을 떨치고 있다.
체스키크룸로프는 체코 남부에 위치하고 있다.
아래 지도에서도 보이듯이,
체코 수도인 프라하보다
오스트리아나 독일에 더 가까운 위치다.
프라하에서 체스키크룸로프까지 기차로는
2-3시간 걸리고,
2023년 1월 현재 편도 15유로 정도이다.
Cesta tam | České dráhy (cd.cz)
체스키크룸로프 기차역은
주요 관광지에서 좀 멀어서
기차역에서 내려 20분 정도 걸어야 한다.
반면 시외버스터미널은 구시가 바로 옆이다.
[다음 섹션 지도 오른쪽 회색 네모]
시외버스로도 편도 2-3시간 걸리고,
요금은 2023년 현재 8유로 내외다.
보통 체코에서 이용하게 되는 버스 회사는
독일회사 Flixbus와 체코 회사 RegioJet인데,
RegioJet이 더 저렴하고 더 빠르다.
Prague to Český Krumlov | FlixBus
RegioJet | Train & bus tickets
프라하에서 체스키크룸로프 가는 버스는
보통 프라하 서쪽 Anděl 지역의
Na Knížecí라는 길에 있는 버스터미널에서 탄다.
지하철 B호선 Anděl 역에서 1블록 정도만
남쪽으로 걸어가면 보인다.
난 두 번 다 RegioJet 버스를 타고 갔는데,
2012년엔 Student Agency라는 이름이었다.
이 버스 회사는 요금도 저렴한데
항공사와 유사한 차내 서비스를 해서,
커피 같은 음료나 가벼운 스낵도 제공하고,
종이신문도 원하면 무상 제공한다.
2012년 겨울에는
버스 위에 달린 TV에서 헐리웃 영화가 나왔는데,
2020년 겨울에 갔을 때는
항공사 좌석에서 보던 그 엔터테인먼트 기기가
좌석마다 달려 있었다.
즉, 이제 영화는 각자 보고, 게임도 할 수 있다.
그렇게 2시간 정도 달려서
체스케부데요비체에 잠깐 섰다가,
창밖으로 체코 보헤미아 풍경을 감상하면서
30-40분 정도 더 가면
체스키크룸로프에 도착한다.
체스키크룸로프는 작은 마을이라
시외버스터미널이 크지 않다.
사람도 많지 않았다.
밖에는 긴 벤치가 있는데,
이렇게 눈이 많이 내리지 않은 보통 날씨엔
여기에서 버스를 타고, 내리고, 또 기다린다.
체스키크룸로프의 주요 관광지는 크게 2개다.
(1) 지도 7번 성(castle)과 그 주변 라트란 지역,
(2) 지도 6, 9번 구시가(Old Town)
그래서 우선 지도 오른쪽에 있는
버스터미널에서 서쪽으로 좀 걸어가야 한다.
위 use-it 지도에 내가 따로 덧붙인
파란색 소제목 번호를 따라가며
이제 체스키크룸로프를 본격적으로 둘러보겠다.
(현지인이 만든 USE-IT지도 정보는 여기 참고)
USE-ITmap_CB-CK_2017.indd (juzit.cz)
버스터미널에서 구시가 쪽으로 걸어가다 보면,
눈앞에 멋진 풍경이 펼쳐지는데,
여기가 중요한 포토존이다.
(동영상 1: 체스키크룸로프 마을 입구)
체스키크룸로프를 굽이쳐 흐르는 강은
프라하도, 체스케부데요비체도 흐르며
체코를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블타바(Vltava) 강으로
위 사진의 풍경에서 강 오른쪽은 성,
강 왼쪽은 구시가다.
그 포토존 옆 골목은 그냥 보통의 유럽 주택가 같다.
2012년엔 눈이 포실포실 쌓여서
그래도 특별한 풍경이었다.
유네스코문화유산 표지가 나오면,
본격적인 관광지가 시작된다.
Kovárna(코바르나)라는 단어를 보니,
아마 아래 펜션은 원래 '대장간'이었나 보다.
그 예쁜 길의 건물들은 대체로 펜션이다.
그 길을 그렇게 걷다 보면 돌다리에 다다른다.
다리 왼쪽에 보이는 호텔 이름에서
Růže(루줴)는 ‘장미'라는 의미다.
체스키크룸로프를 소유했던
체코 귀족 로젠버그(Rosenberg) 문장의 장미랑
똑같은 다섯 꽃잎 장미가 붙어있는 걸 보면,
거기서 딴 이름인 것 같다.
꽤 높은 다리라서 여기서 보는 전망도 좋다.
여기는 다리 북쪽.
진홍색 호텔 이름 mlýn(믈린)으로 보아하니,
여긴 예전에 '물레방앗간'이었나 보다.
이렇게 상호에서
건물의 옛 용도가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여기는 다리 동쪽.
사진의 연회색 건물은 상호가 Barbakan이고,
"바깥 성벽"이라는 의미다.
아마 예전엔 여기에도 성벽이 있었나 보다.
여기는 다리 남쪽.
강 건너는 공원인데, 겨울이라 좀 황량하다.
그리고 다리 서쪽으로 계속 걸어가면
구시가가 나온다.
체스키크룸로프의 구시가(Old Town)는
"안쪽 시가(Inner Town)"라는 의미의
Vnitřní město(브니트르슈니 므녜스토)라 불린다.
빈의 구시가도 Innere Stadt라고 부르던데,
오스트리아, 독일의 영향을 받았던 흔적인 것 같다.
체스키크룸로프 성과 마찬가지로
구시가도 13C에 처음 언급되었다.
구시가 동쪽 입구의 길은
“호르니 길(ul. Horní)"인데,
"윗길"이라는 의미고,
여기가 나머지 구시가에 비해 좀 위치가 높긴 하다.
이 “윗길” 북쪽엔
지역 박물관(Regionální muzeum)이 있고,
남쪽엔
시립 도서관(Městská knihovna)과
미술관이 있다.
16C 후기 고딕, 르네상스 양식으로 건축된,
예전 가톨릭 사제관, 예수회 학교로,
크고 높고 고풍스러운,
그래서 눈에 뜨는 건물이다.
그 길 끝에 있는 성 비토 성당(Kostel svatého Víta, Church of Saint Vitus)은
체스키크룸로프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이자,
가장 중요한 종교 건축이다.
1309년 이 구시가가 큰 틀을 갖추었을 때
처음 생겼기 때문에 건축된 지 700년이 넘었고,
현재는 1407–1439년 후기 고딕양식으로
리모델링한 후의 모습이라,
지붕이 높고, 스테인드글라스가 있고,
높은 첨탑이 있는,
외관도 내부도 우리에게 익숙한,
유럽 성당의 모습이다.
강가에서 보면 이런 모습이다.
지대도 높고 건물도 높아서
체스키크룸로프 어디에 가든 보인다.
2012년에 갔을 때 낮에 들어가 보고,
저녁 미사 시간에 한 번 더 들어가 봤는데,
미사 있을 때, 그리고 미사 없을 때 둘 다 좋았다.
같이 간 후배는 가톨릭 신자가 아니라서,
마냥 기다리게 할 수 없어,
저녁 미사 끝까지 못하고 중간에 나왔었다.
성 비토 성당은 "윗길" 끝 계단 위에 있어서,
성당 앞에서도 또 예쁜 구시가가 내려다 보인다.
성당 바로 옆에는
스보르노스티 광장(náměstí Svornosti)이 있다.
파리 콩코드 광장처럼
"일치, 결합"이라는 의미다.
광장은 크지 않지만,
중세시대 건축된 고딕, 르네상스 양식 고건축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광장 남쪽의 마리아 기둥(mariánský sloup),
즉, 전염병이 끝난 것에 대한 감사와
전염병으로부터 지켜달라는 기원을 담은
역병기둥은
이 광장의 가장 최신 건축으로
18C 초 바로크 양식으로 건축되었다.
다른 유럽 광장의 바로크 역병 기둥과 마찬가지로
매우 장식이 섬세하고 꾸밈이 많다.
기둥 가장 꼭대기에는 성모 마리아가 서 있고,
아래에는 8명의 천주교 성인들이 둘러서 있다.
광장의 건물은 대부분
1층의 열린 기둥, 즉 로지아와
평면적인 파사드와 연결된 평면적 지붕을 가진
르네상스 양식 건축인데,
그중에는 상해반점이라는 중국집도 있어서
참 안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2012년엔 이런 공중전화박스도 있었나 보다.
2020년 겨울엔 없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이것도 역시나 참 안 어울린다.
광장 북쪽의 흰색 건물은 시청(Radnice)인데,
이 광장에서 가장 오래되고,
두 옛 건물이 이어져 크기가 가장 큰 건축이다.
파사드와 2겹짜리 지붕은 르네상스 양식이지만
그 아래 건물 본체는 14C 고딕건축이란다.
(동영상 2: 체스키크룸로프 구시가 중앙광장)
중앙 광장 안보다
광장 바깥 건물이
좀 더 화려하고 예쁘고 다양하다.
여기는 광장 남쪽으로 내려오면 보이는
카욥스카 길(ul. Kájovská).
체코어에서 특별한 의미는 없고,
그냥 누군가의 이름에서 나온 것 같다.
카욥스카 길과 그다음 쉬로카 길 사이에는
삼거리 작은 공터가 있고,
전면 벽에 스그라피토 그림이 있는
크르친 저택(Krčínův Dům)이 보인다.
크르친은 유명한 연못 건축가로,
한때 체스키크룸로프에 살았고,
매우 부유했는데,
이 집도 그의 소유였던 것 같다.
벽면의 그림은 16C경 그려졌는데,
정문 위 다섯 꽃잎 장미는
로젠버그 가문과 관련된 것으로 보이고,
오른쪽 불난 건물을 끄고 있는 기사는
무슨 성인이라고 한다.
현재는 호텔 건물이다.
그 서쪽으로 쉬로카 길(ul. Široká)이 이어지는데,
"넓은 길"이라는 의미다.
실제로 체스키크룸로프 구시가에서
가장 넓은 길인 것 같다.
카욥스카, 쉬로카 길 반대쪽,
구시기 광장에서 나와서 북쪽,
즉 성 쪽으로 난 길은
라드니츠니 길(ul. Radniční)이다.
"시청 길"이라는 의미인데,
시청 뒤쪽으로 이어지는 길고 좁은,
아기자기한 예쁜 것을 파는 가게들이 많다.
북쪽의 성으로 가는 다리 전에 보이는
라드니츠니 길 서쪽 골목은
들로우하 길(ul. Dlouhá)로
"긴 길"이라는 뜻이다.
이 길이 특별히 긴 건 모르겠다.
"긴 길" 서쪽 끝에는
이탈리아 궁정(Vlašský dvůr) 건물이 있다.
16C 고딕, 르네상스 양식으로 건축되었고,
내부에 있는 이탈리아식 르네상스 로지아 때문에
"이탈리아"가 붙게 되었다고 한다.
벽면에는
로젠버그 가문의 트럼펫 연주자가 그려져 있다.
현재는 펜션과 레스토랑, 카페로 쓰인다.
그 "긴 길" 서쪽 끝은
소우케니츠카 길(Ul. Soukenická)과 만난다.
아래 사진 뒤쪽 높은 흰 건물이 "이탈리아 궁정",
더 멀리 보이는 건물이 "성"이다.
"긴 길" 동쪽으로는
마스나 길(ul. Masná)이 있는데,
체코어로 maso가 "고기"라서
이 길에 예전에 푸줏간이 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
그 길 중간에 3D 박물관이 있는데,
체스키크룸로프와 참 잘 안 어울리는 표지다.
여긴 마스나 길 남쪽에 있는 좁은 골목이다.
그 길 동쪽 끝에서 꺾어서 올라가면
성 비토 성당이 있는 "윗길"이 나오고,
꺾어져 내려가면 블타바 강과 성이 보인다.
하지만 여기에서는 성까지 가는 길이 없어서
성으로 갈려면
"시청 길" 쪽으로 돌아가야 한다.
체스키크룸로프 성이 있는 동네는
라트란(Latrán)이라고 불린다.
전설에 따르면,
체코 귀족 비트콥치(Vítkovci)가
처음 이곳에 거주할 때
도적들을 물리쳤는데,
도적들이 은신하던 구멍 latrína에서
Latrán이라는 지명이 유래되었단다.
실제로는
‘측면'을 의미하는 라틴어 latus에서 나왔는데,
단순히 여기가 성 근처 지역이기 때문이다.
구시가에서 라트란과 성에 가기 위해서는
라제브니츠키 다리(Lazebnický most)를 건너야 한다.
다리 동쪽 위에는 요한 네포묵 성인의 동상이 있다.
요한 네포묵 성인은 체코 사제였는데,
왕비의 고해성사 내용을 끝까지 비밀로 지키다가
블타바 강에 내던져져 순교했다.
그래서 그는 "홍수"의 수호성인이 되었고,
강가, 특히 체코 강가에 동상이 많이 서 있다.
다리 반대편엔 십자가상이 있다.
여기는 다리 동북쪽 풍경.
초록 지붕은
성 유도코 성당(Kostel svatého Jošta)이다.
유도코 성인은 7C 브리타뉴 출신 귀족으로
부와 지위를 버리고 사제로 평생을 살았다.
영어로는 Judoc, 체코어로는 Jošt(요슈트),
한국 가톨릭에서는 "유도코"라고 한다.
성당은 16C 고딕, 바로크 건축인데,
강변과 라트란 어디에서나 보이는
초록 지붕의 첨탑이 바로크 양식이다.
이건 다리 동쪽 풍경.
다리 서쪽 풍경.
다리 서북쪽에 보이는 게 성이다.
그 다리 북쪽으로 올라가면
라트란 길(Ul. Latrán)이 나오는데,
고딕 양식, 르네상스 양식의
고풍스러운 예쁜 건물들이 줄지어 서 있다.
그중에서도 유독 눈에 띄는
기하학적 흑백 체크무늬(?) 건물은
장식적인 평면 지붕이 르네상스 양식의 전형인데,
건물벽에 그려진 붉은말을 탄 기사는
로젠버그 가문의 기사란다.
이 역시 지붕에 그려진
꽃잎 5개짜리 장미로 알 수 있다.
벽면에 그림을 그리는 게 르네상스 양식 특징인지,
체스키크룸로프의 벽면 그림들은
대체로 16C에 르네상스 건축에 그려졌고,
당시는 로젠버그 가문 지배기라
벽화는 많은 경우 로젠버그와 연관되는 것 같다.
그리고 500년이나 된 그 벽면 그림들은
비교적 최근 복원된 것이다.
이런 역사적 건물 말고,
그런 오래된 건물 안에 들어선
예쁜 카페, 레스토랑, 상점도 많은데,
사진 보며 검색해서 확인해 보니,
2012년에 있던 것이 지금 사라진 경우도 있었다.
예를 들어 아래 "두 과부"라는
특이한 제목과 간판의 카페가 지금 보니 없다.
하지만 대부분은 아직도 그대로다.
사진 속 검은색 두더지는 크르테크(Krtek)로
체코 국민 애니메이션 주인공이다.
라트란에서 가장 중요한 건물은 성이고,
성까지 가는 방법은 최소 2가지가 있다.
라트란 길 중간에,
아래 사진에서 보이는,
환전소와 크레페 집 사이에 있는 계단을 이용한다.
성에 오르는 지름길이고,
3-5분 정도밖에 안 걸렸던 것 같다.
계단을 오르다 뒤를 돌아보면,
성 유도코 성당의 초록 바로크 첨탑이 보인다.
계단 오르는 길 정면 풍경은 이렇다.
아래 보이는 문을 지나 계단을 몇 개 더 오르면
성에 다다른다.
문 위에는 익숙한 로젠버그의 장미가 붙어있다.
두 번째 방법은
라트란 길을 따라 그냥 쭉 올라가는 거다.
이 방법을 선택하면 좀 돌아가는 거긴 하지만,
볼거리가 좀 더 다양해진다.
이건 라트란 길 중간에서 남쪽을 바라본 모습.
이건 북쪽을 바라본 모습이다.
그렇게 예쁜 고건물 사이를 걷다가
두꺼운 아치 돌문이 보이면 이제 성에 다 온 것이다.
문 위의 그림은 역시나 로젠버그 가문의 문장이다.
그 돌문 지나 왼쪽에 보이는
빨간 문(Červená brána, Red gate)부터
성이 시작된다.
체스키크룸로프 성(Zámek Český Krumlov)은
체스키크룸로프에서 가장 오래된 건축으로,
체스키크룸로프 역사의 시작점이다.
면적이 약 70,000평방미터,
건물이 총 40개에,
공원까지 갖춘
중부유럽에서 가장 큰 축에 속하는 성이다.
체스키크룸로프 성에 들어가면
성 입구에서 위 성으로 걸어 올라가
블타바 강 위 다리에 이르게 된다.
성에 다음과 같은 약도가 붙어 있는데,
보통 이 약도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이동한다.
성의 입장은 무료이고,
성 안의 탑 전망대나 극장은 입장이 유료다.
성 안쪽에서 빨간 문 [약도 1] 쪽을 보면
이런 모습이다.
문 남쪽의 올록볼록 스그라피토 벽 건물은
약국(Lékárna, New Pharmacy),
[약도 2]
문 북쪽의 빨간 지붕 살구색 건물은
소금 창고(Solnice, Salthouse)였다고 한다.
[약도 3]
아래 사진에서 붉은색 네모가 그려진 문을 넘어
해자(moat)를 지나면,
그 뒤에 보이는 붉은 지붕 건물부터는
성 투어의 본론으로 넘어간다.
해자 앞 양쪽 문 위에는 문장을 든 사자가 있는데
체코의 전신 보헤미아와 합스부르크 모두
사자를 상징으로 한다.
이 성의 해자(moat)는 독특하다.
보통은 물로 채워지기 마련인데,
여기는 곰을 풀어두어,
일명 곰 해자(Medvědí příkop, Bear moat)다.
이 성을 세운 체코 비트콥치 가문이
이탈리아 우르시니(Ursini) 가문에서
왔다는 속설을 따른 거다.
라틴어 ursus가 '곰'이라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곰 해자 위에
도개교(drawbridge)가 있었는데,
18C 후반 지금과 같은 돌다리로 바뀌었단다.
해자에는 지금도 곰이 있고,
관광객들은 난간에 붙어 열심히 곰을 찾는다.
곰 해자 뒤 아치 돌문을 통과하면 안뜰이 나타난다.
안뜰 동남쪽에는 구시가에서부터 계속 보였던
성탑(Zámecká věž, Castle tower)이 있다.
[약도 5]
체스키크룸로프에서 가장 오래된 건축 중 하나인
이 탑은 총 7층인데,
아래 0층, 1층은 13C 전반,
2층은 14C에
보다 심플한 고딕양식으로,
장식이 화려한 그 윗부분은
15-16C에 르네상스 양식으로 건축되었다.
밖에서 우리 눈에 보이는 건 르네상스 부분이다.
종탑 전망대에 올라가서
도시 전망을 감상할 수 있다.
입장료는
2023년 1월 현재 일반 180코루나(약 만원).
개장 시간은 시즌에 따라 다르다.
Admission - Český Krumlov (zamek-ceskykrumlov.cz)
Opening hours - Český Krumlov (zamek-ceskykrumlov.cz)
성탑을 둘러싸고 있는
작은 성(Hrádek, Little Castle)도
체스키크룸로프에서 가장 오래된 건축이다.
그 벽의 그림은 16C에 그린 것이라고 한다.
그 북쪽의 좀 더 투박하지만 강건해 보이는 건물은
성주 저택(New Burgrave's house, Nové purkrabství)
[약도 4]으로 16C에 건축되었다.
위 성[약도 8]은 14C 로젠버그 가문 때 세워졌다.
강가에 보이는 가장 높은 석조건물이 그것이다.
매우 높고 길고 어두운,
전형적인 중세 유럽의 성이고,
체스키크룸로프 성 투어의 하이라이트다.
어두운 통로 중간에 전망대가 나온다.
아마도 원래는 적의 동향을 살피는
군사적 목적의 망루였겠지만,
현재는 관광객의 포토스폿이 되었다.
줄 서서 기다려야 기념사진을 찍을 수 있다.
하지만 조그만 더 걸어가면
다리 위 좀 더 열린 공간에서 또 포토스폿이 나오니,
여기 줄이 너무 길면 패스해도 될 것 같다.
그 전망대를 지나면,
아기자기한 벽화가 그려진
예쁜 안뜰이 선물처럼 나타난다.
이 안뜰의 벽화는
16C 르네상스 시대의 유행에 따라
그리스, 이탈리아 신화를 모티브로 한 것이다.
그다음에도 또 비슷한 안뜰이 나오는데,
여기도 16C 후반에 그린 벽화로 장식되어 있다.
이 안뜰의 그림은
믿음, 사랑, 지혜, 정의 등
여러 개념들의 알레고리라고 한다.
두 번째 르네상스 장식 벽을 나서면,
위 사진 아래에 살짝 보이는
망토 다리에 도달한다.
망토 다리(Plášťový most, Cloak Bridge)는
[약도 9]
17-18C 건설된 바로크 양식 건축으로,
성 안의 다른 건축보다 늦게 세워졌다.
그전에 이곳엔 도개교가 있었다는데,
워낙 높이가 높은 곳에 위치해서
여기 도개교가 있었다면,
어떤 적도 침입할 엄두를 못 냈을 것 같다.
현재 다리는 밑부분을
두꺼운 돌벽이 받치고 있어 튼튼하고
미학적으로도 아름답다.
이 다리에도 요한 네포묵의 동상이 서 있다.
요한 네포묵 서쪽엔 펠릭스 성인이 서 있는데,
그는 자루를 들고 다니면서
가난한 사람을 도왔다고 한다.
펠릭스 성인 뒤쪽으로 보이는 하늘색 건물이
바로크 성 극장(Zámecké barokní divadlo) [약도 10]이다.
즉 성은 아직 좀 더 남았는데,
보통 관광객의 성 투어는 여기서 끝난다.
이 다리에서는 구시가가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2016년 에곤 실레 영화에서도 체스키크룸로프,
영화에서는 크루마우라고 칭한
마을 전경이 언뜻 나왔는데,
아마도 여기서 찍은 것 같다.
에곤 쉴레: 욕망이 그린 그림 | 다음영화 (daum.net)
2020년 겨울에는
그 망토 다리에서
다시 오던 길을 되돌아
라트란 동네를 구경하고 구시가로 내려갔고,
2012년 겨울에는
가던 길을 계속 걸어서
구시가 남쪽 동네로 내려갔었다.
바로크 성 극장 옆에
아래 사진 같이 생긴 벽이 있고,
그 벽 옆으로 길이 나 있어서 그걸 따라 걸었다.
여기에서도 멋진 전망이 보인다.
그렇게 구경하며, 사진 찍으며, 이야기하며,
미끄러운 눈길을 조심스럽게 걸어 내려오면
강가에 다다른다.
여기는 그 강가에서 보이는
강 건너 북쪽 구시가.
여기는 구시가 남쪽 마을이다.
2012년엔 여기서 그냥 구시가로 건너갔는데,
2020년엔 반대로 구시가에서 여기로 건너왔다.
에드바르드 베네쉬 다리(most Dr. Edvarda Beneše)를 건너면 된다.
에드바르드 베네쉬는
체코슬로바키아 2대 대통령으로
그의 임기가 2차 세계대전 때였기 때문에
체코인들은 나치에 맞서 싸운 지도자로 기억하는 것 같다.
이 다리 남쪽엔 또 요한 네포묵 동상이 서 있다.
구시가 밖은 어떻게 생겼나 궁금해서
좀 걸어봤는데,
중심에서 멀어지니 좀 더 수수하지만,
그래도 예쁜 건물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시골 마을 분위기였다.
그런데 그 건물은 대부분 펜션이었다.
2012년엔 에곤 실레 박물관(The Egon Schiele Art Centrum)에도 갔었다.
19C 오스트리아 표현주의 화가 에곤 실레는
엄마가 체스키크룸로프 출신에,
외할아버지는 체코인,
외할머니는 체스키크룸로프 출신 오스트리아인이었다.
즉, 에곤 실레 외가가 체스키크룸로프였고,
체스키크룸로프에서,
그리고 체스키크룸로프 자체를 그리기도 했었다.
그래서 에곤 실레 영화에도 잠깐 나왔었다.
2023년 현재
입장료 일반 200코루나(약 12,000원).
개관시간 화-일 10:00-18:00.
구시가 "넓은 길"에 위치하고 있다.
(지도상 위치)
에곤 실레 박물관은 나쁘진 않았지만,
아주 많이 좋지도 않았다.
생각보다 에곤 실레 그림이 적었고,
체스키크룸로프를 그린 그림도 많지 않았다.
여기서 그림을 많이 그리지 않았거나,
아마 그 그림들이 이 박물관 소유가 아닌가 보다.
아무튼 에곤 실레가 체스키크룸로프와
어떤 관계가 있는가는 새롭게 알게 되었고,
예쁘기만 해서 좀 단조로운 체스키크룸로프 여행에
뭔가 작은 변화를 주는 중요한 이벤트였다.
난 당일치기 여행에서는
아침 일찍 가서 저녁까지 있다 온다.
체스키크룸로프를 첫 여행했던 2012년에도
야경까지 보고 오려고,
프라하 돌아오는 버스를
가장 늦은 걸로 예매했었다.
그런데 체스키크룸로프는
해가 지기 시작하니,
상점이나 카페나 다 일찍 문을 닫았다.
유럽은 가게가 원래 좀 일찍 문을 닫지만,
좀 더 늦게 자본주의를 안 나라들,
폴란드, 체코, 크로아티아, 불가리아 등에서는
좀 더 늦게까지 가게 문을 여는 편이다.
그래서 프라하는 상점이 늦게까지 문을 열고,
휴일에도 시내 쪽은 문을 안 닫는데,
같은 체코여도,
여기는 시골 마을이라서,
그리고 그야말로 관광 특화 마을인데,
겨울 관광비수기라서 그런 것 같다.
그래서 다른 계절엔 어떤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겨울에는
5시쯤 해가 지기 시작하면
조용하고 깜깜하고 볼 게 없고 할 것도 없었다.
가장 늦은 버스를 예약하자고 내가 주장한 거라서
갑자기 도시가 어둡고 황량해지자
후배한테도 미안했다.
특별히 달리 갈 데도 없어서,
그냥 버스터미널에 좀 일찍 가서 앉아서는
오늘 한 여행에 대해
그리고 그다음에 할 여행에 대해,
그리고
그 밖에 다른 것에 대해 이야기를 했던 것 같다.
그런 식으로 실패한 "야경 프로젝트"의 공백을
과거와 미래로 채웠는데,
생각보다 그게 또 나쁘지 않았다.
2020년 겨울
어른들과 두 번째로 체스키크룸로프에 갈 때는
이런 시행착오는 없었다.
좀 더 일찍 돌아오는 버스티켓을 예매해서
해가 지기 전에 버스에 올랐고,
마치 잘 훈련된 가이드처럼
구시가와 성 이곳저곳을 능숙하게 안내하면서,
'조금 있으면 멋진 풍경이 나온다'며
포토스폿도 예고했다.
첫 번째 크룸로프는 눈에 덮여있었는데,
두 번째 크룸로프는 눈이 안 덮인 모습이어서,
그렇게 보니 좀 새롭기도 했다.
하지만 구면이라서
그 멋진 모습이 이젠 놀랍지 않고,
달리 새롭게 알게 사실도 없고,
그냥 겉모습만 구경하고 사진만 찍으니,
그 아름다움이 좀 공허하게 느껴졌다.
마치 중세 유럽 마을 테마파크에 온 것 같았다.
2012년, 2020년 모두
관람객 중에 아시아인이 많았는데,
아시아인이 많은 유럽 관광지의 특징인 것 같다.
어릴 적 동화책 삽화에서 보던,
아님 유럽 풍경화에서 보던
고전적인 예쁜 건물들이 깔끔하게 복원되어,
다른 문화의 이방인에게는 매우 매력적인 모습이고,
눈으로 보고 사진 찍기엔 예쁜데,
실제로는 사람의 온기가 없는 전시물 같은 느낌.
체스키크룸로프는 작은 마을이어서
두 번을 가도
안 가본 새로운 데는 거의 가보지 못하고
지난번에 가본 데만 또 가게 되고,
전에 안 가봤던 구시가 남쪽 마을도
펜션 같은 상업 시설들이 있어서,
거기도 “손님을 위한” 관광지의 연속이었다.
체코는 한국보다
그리고 다른 대부분 유럽 국가보다도 물가가 싼 데,
수도인 프라하를 벗어나면 물가가 더 저렴하다.
근데 체스키크룸로프 물가는 프라하 수준이었다.
즉 체코에서는 가장 높은 수준이다.
우리가 점심식사를 한 식당에서는
카드로 결제가 안 된다고 해서
현금으로 지불하기도 했다.
프라하는 그보다 저렴한 금액도 카드로 되는데,
시골이어서 그런 건지,
아님 탈세하려 그런 건지 모르지만,
뭔가 관광지 텃세 같기도 하고 좀 언짢았다.
그래도 같이 간 엄마랑 이모는
이 이국적인 예쁜 유럽 마을에 매우 만족했고,
어차피 그걸 노리고 두 번째 간 것이니,
여행 자체의 목적은 완벽하게 달성했다.
그렇게 “성공적인” 여행이었지만
그래도 뭔가 아쉬운 마음으로,
예쁜 건물과 상점의 수공예품을 구경하다가
이모가 기념으로 뭔가를 사고 싶다고 했고,
내가 상점 주인에게 체코어로 몇 마디를 했더니,
그분이 나의 어설픈 체코어를 너무 반가워한다.
물론 작은 나라 사람들은
외국인이 자기 나라 말하는 걸 좋아한다.
그런데 체코인들은 좀 더 좋아하는 것 같다.
체코어는 구어와 문어가 뚜렷하게 구별되는데,
보통의 체코인들과 달리
내가 문어체로 말하는 게 신기한 건지,
이제 막 말을 배운 아이를 보는 표정으로
참을성 있게 들어주고,
내 체코어를 다 이해했다는 표시로,
영어로 전환하지 않고
웬만하면 체코어로 대답해 준다.
그런데 그 가게 주인은 그 이상이었다.
내가 체코어 한다고
3퍼센트인가 5퍼센트를 할인해 줬다.
솔직히 내가 이날 체코어를 잘하지도 않았다.
어차피 중고급 수준인데다가,
오히려 유난히 이날은 말하면서
'아, 또 틀렸네.'를 많이 했었다.
그 "체코어 우대 할인"에 내가 당황해하며,
또 고마워하니,
그 정도는 체스키크룸로프에서
커피, 케이크 사 먹을 금액도 안 된다며
오히려 할인이 너무 작다고 한다.
아마 그분은
체스키크룸로프에서 외국인은 많이 봤지만,
체코어 하는 외국인은 처음 봤는지도 모른다.
근데 체코에서 계속 체코어를 하고 다녔던 나도
체코어 때문에 할인해주는 체코인은 처음이었다.
관광객을 그냥 돈주머니로만 생각하는 것 같은
"중세 유럽 마을 테마파크"에서
그런 온기를, 그런 인간미를 만나서
사실 더 놀라웠다.
그렇게 두 번째 간 체스키크룸로프에서도
꽤 특별한 추억을 얻어왔다.
아마 3번은 가지 않을 것 같으니,
그래도 꽤 괜찮은 기억으로 마무리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