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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roga Jun 30. 2022

곱슬거리다

내가 품은 파도에 대하여

(그림 출처: PNGTREE)


1.


나이가 들면서

외모에 대한 콤플렉스를 하나둘씩 포기하고,

좀 아쉬워도 그냥 나의 일부로 받아들였는데,


가장 마지막까지 해결 못하고 남은

나의 외모 콤플렉스 중 하나가

아빠에게서 물려받은

곱슬머리였다.


10대, 20대까지만 해도 가장 중요한 부분이었던

외모 콤플렉스를 극복하고

그냥 그게 나려니 받아들이게 되는 건,


무엇보다도

나 자신이

내 외모에 수십 년간 익숙해지는 데다가,


같은 이유로

나와 가까운 사람들이

그것에 대해 언급하는 걸 더 이상 듣지 않으니,

혹은 그 반복되는 언급에도 익숙해지니,

그 단점에 점점 무덤덤해지며,


20대 이후에 공적 관계로 만나게 된,

상식적인 사회성을 가진 생판 남들은

면전에서 남의 외모에 대해

이러쿵저러쿵하지 않는 데다가,


몇 년 전부터는

(그런 좋은 것도 결국 외모에 집착하게 하니까)

상대의 외모에 대해서는 칭찬마저도 안 하는,

좀 더 세련되고 편안한 매너의 세상으로

바뀌어가고 있기 때문에,

그게 내 인생에서 중요해지지 않기 때문인 것 같다.


(물론 아직도 나이 드신 분들은

빈말이든 진심이든

외모 이야기를 무엇보다 먼저 하시는데,

그들이 살아온 세월이 그러니 바뀌지 않을 거다.)


다른 한편으로

그 세상 또는

다수의 사회 구성원이 정한 기준에 따라

열등하다고 집단 판단된

외모의 단점(?)을

의술이나 화학적 처리 같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교정하면서

적극적으로

자신의 외모 콤플렉스를 극복하는 경우도 있다.


나에게 곱슬머리가

마지막까지 콤플렉스로 계속 남았던 건,

곱슬머리는 이 두 가지 모두,



(1) 더 이상 언급되지 않음

(2) 영구 교정으로


극복할 수 없는 “단점”이었기 때문인 것 같다.


머리카락은 자르면 자라고

자르면 또 자라기 때문에,

화학적 처리 같은

적극적 콤플렉스 극복 방법은

내가 아는 한

곱슬머리에 있어서 한시적으로 몇 개월만 유효하다.


매직” 스트레이트를 한 지 한 달이 지나면

“차분하고 단정해 보이는”

납작하던 뿌리 쪽에 슬슬 볼륨이 생기고,


3-4개월이 지나면

머리 묶었다 푼 것 같은 어색한 경계선이,

미용실 다녀온 후 지난 달 수만큼의 길이로

(즉 3달이 지났으면 3센티 정도,

5달이 지났으면 5센티 정도)

화학적 은총을 받지 못한,

새로 올라온 뿌리 쪽 머리에 생기며,

부스스해지는데,


비 오는 날,

여름에 습기 많은 날,

신경써서 열 내거나 운동해서 두피에 땀 좀 난 날

유난히 더 심하다.


그래서 “매직”

즉 “마법”이라 불리는

곱슬머리 교정용 화학적 시술

정기적으로 하며,

주류인 “단정한” 직모 속에

티나지 않게 잘 섞이기 위해

별도의 사회화 노력을 해야 하는

비주류 곱슬머리임

정기적으로 자각하며 살게 된다.


그렇게 시술받은 지 몇 달이 지나

머리 끝쪽 시술 구역과 뿌리 쪽 미시술 구역 사이

경계가 생긴 머리로

미용실에 가면


긴 한숨 또는 놀라움과 함께


“어휴, 곱슬이 심하시네요.”


라는 헤어 전문가의 평가를

근거 없는 죄책감과

묘한 열등감을 가지고 들어야 하고,


그래서 심한 곱슬 땜에 반드시 해야 하는

추가적인 클리닉에 들어가는 비용에 대한

설명을 들어야 하고,


추가적인 비용과 더불어

추가적인 시간을 지불하며,

긴 시간 동안 미용실 의자에 앉아 있어야 하고,


비슷한 얘기들이 적힌 여성지를 여러 권 읽어,

이제 내가 이런 거 한 권 쓸 수도 있겠다 싶었을 쯤

나만큼 지친 표정의 미용사들이

매직 “시술”을 팔 빠져라 하는 걸

보는 둥, 보지 않은 둥 가끔 힐끔거리며

애매한 스탠스로

지루하고 어색하게 앉아 있어야 한다.


더군다나 나는 낯선 이들과

이야기를 잘 주고받지도 못하는 성격이라,


그렇게 몇 달에 한 번씩 방문하여

3-4시간을 어색하고 공허한 마음과 표정으로

앉아 있어야 하는 미용실이

나에게는 가장 힘든 공간 중 하나이다.


2.


그러다 2020년 팬데믹이 닥쳤고,


다른 때보다 머리 뿌리로부터 더 먼 쪽에

경계가 생긴 

더욱더 부스스한 머리로,

한참만에 동네 1인 미용실에

매직 스트레이트를 하러 간 날,


내 악성 곱슬에 “마법을 부리며”

직모처럼 보이게 만드는 노동을

혼자서 힘겹게 몇 시간 동안 하던 미용사가


고단한 그 노동 때문이었는지,

아님 진심으로 그래도 될 것 같다고 생각했는지,


“그냥 곱슬 그대로 길어보는 건 어떠세요?”


라고 말했다.


나는 그 제안이


내 주변의 숱 없는 직모 지인들이

약간은 진심을 섞어서 하는


곱슬이면

웨이브 안 해도 자연스럽게 컬이 생겨서 좋겠다”


는 말과 비슷하게 느껴져서,


그런 예상 기출문제를 만날 때마다

내가 매뉴얼처럼 대답하는

숱 없는 직모들에게 조금은 위안을 주면서도(?)

여전히  진실과 진심도 담고 있는

그 답변을 꺼내,


“놔두면 컬이 생기긴 하는데

웨이브 한 것처럼 예쁘게 나오는 게 아니라,

제가 원하지 않은 이상한 곳에

이상한 모양으로 삐죽삐죽 지저분한 컬이 생겨요


라고

웃으며 대꾸했다.


하지만

여느 때 그 말을 할 때와 달리,

이때 내 머릿속에서는


미용실에서 생전 처음 들어본 그런 제안에,

마치 신대륙을 발견한 것 같은 놀라움으로


‘이 곱슬머리를 그대로 길어도 되는 거였어?’


라는

생각을 생전 처음 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팬데믹 첫 학기 이후

몇 학기 동안 계속

수업을 집에서 온라인으로 진행하게 됐는데,


그 1인 미용실에서

매직 스트레이트 한 지 몇 달이 지나

머리카락 중간이 좀 구불거리긴 하지만

그래도 그 “엇나간” 머리가

Zoom 화면에

크게 그리고 선명하게 잡히지 않길래


(그게 내가 갤러리로 설정한 내 컴퓨터에서만

그렇게 보이는 걸 나중에 알았다.

아마 학생들의 컴퓨터에선

그 어색한 구불거림이

더 선명하게 화면을 가득 채웠을 거다.)


그리고

마침 요새 부스스한 컬의

히피펌이 유행이라 그런지

생각보다 이상하지 않은 것 같길래,


일부러 그렇게 유행에 맞춰

부스스한 컬을 넣은 척,

그냥 그대로 방치하며 머리를 기르게 됐는데,


완전 곱슬인 아빠와 달리

그래도 반곱슬인 줄만 알았던 내가,

아빠만큼이나 “심한” 곱슬이라는 걸,


왜 그렇게 미용실에서

뿌리에 새로 올라온 곱슬머리를 보면서

미용사들이 한결같이

심한”이라는

심한 형용사를 붙였는지 그 이유를

비로소 알게 되었다.


매직 스트레이트를 정기적으로 하기 전,

그게 언제였는지 기억도 안 나는

아주 옛날에 커트나 중단발 곱슬일 땐,

이렇게 많이 컬이 생기지 않고,

그냥 좀 부스스하기만 했는데,


생전 처음 머리를 길게 길러보니,

머리가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더 곱슬거린다.


아님 나이가 먹으면 먹을수록

곱슬이 더 심해지는 건지도 모르겠다.


(2022년 6월)


이 사진을 찍을 땐

습도도 높고

전날 트리트먼트를 안 써서 그런지

유난히 더 곱슬거렸다.


아무튼 아직 히피펌이

그래도 유행하는 헤어스타일인 것 같아서,


그리고  

눈에 띄지 않는 평범하고 수더분한 외모의 내가

갑자기

좀 쎈 언니,

유행 좀 아는 언니가 된 것 같아

특별해진 느낌인 데다가,


그런 개성의 근원이

억지로 만든 게 아니고

내가 원래 가지고 있던 타고난 것이라는,

흡사

갑자기 자신의 초능력을 알게 된 슈퍼 히어로 같은

비밀스런 자부심 같은 게 생겼고,


이 머리 자연 곱슬이야

라고 밝힐 때마다,

깜짝 놀라는 상대방의 얼굴을 보면서,

내가 가지고 있는 게 뭔가 더 대단하다고 느껴져서,


그리고 그렇게 본의 아니게 눈에 띄게 된 머리를

사람들이 한 번 더 쳐다보더라도

마스크가 얼굴 반 이상을 막아

덜 부끄러워서,


아마 당분간은 이러고 다닐 것 같다.


아무튼 그렇게 나의 오래된 곱슬 콤플렉스

새로운 곱슬 부심이 되었다.


3.


예전에 러시아에 있을 때,

 핀란드 룸메이트가 이제  사랑에 빠져

나만 보면 맨날

아랍계 자기 남자 친구 이야기를 했었는데,

어느 날은 그의 곱슬머리 얘기를 했다.


그 곱슬머리 찬양에

괜히 좀 숟가락을 얹고 싶었는지

아님 찬물은 끼얹고 싶었는지

지금은 잘 기억 안 나는데,


암튼 내가 그때


“У меня тоже чуть-чуть кудрявые волосы.(나도 조금 곱슬머리야)”


라고 말했다.


당시에 한국에서

매직 스트레이트하고 온 지 얼마 안 된

약간 긴 커트머리던 나를 쓱 바라보던

그 직모 금발 핀란드 친구가

단호하게


Это не кудрявые волосы.

(이건 곱슬머리가 아니야)


라고 말하며,


내가 그 러시아어 단어 뜻을 잘못 알고 있다는 듯,

굳이 그 단어 뜻을 설명해줬었다.


당시엔 아직 곱슬머리가 콤플렉스던 시절이라,


그리고 내가 보기에도

kinky hair라고 불리는

아랍인이나 흑인의 곱슬은

내 곱슬과 차원이 다른 구불거림인 것 같아서,

난 그 말을 굳이 반박하지 않고,

그냥 다른 대화 주제로 넘어갔었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

거울 에서 곱슬거리는  머리카락을 보면서,

그 핀란드 친구를 직접 만나서

이 곱슬머리가 자연산이라고,

나 곱슬머리 맞다고 말하고 싶다는,

그러면서 그 친구의 깜짝 놀라는 표정을 보면

그 누구한테 “정체”를 밝혔을 때보다

더 짜릿하겠다는 생각을 가끔 한다.


그 친구는 우리의 대화는커녕,

전 남친의 그 헤어 스타일을

자기가 얼마나 좋아했는지도

기억 못 할지 모르는데 말이다.




그러고 보니,

그 핀란드 룸메이트를 비롯하여,

러시아 친구들,

다른 유럽 친구들도 거의 직모거나,

한국에서 흔히

머리끝이 살짝 감기는 걸 두고 말하는

“반곱슬”이었던 것 같다.


수십 년 묵은 나의 콤플렉스였다가

이제 갓 부심이 된

이 곱슬머리가 그럼 어디에서 왔을까 궁금해져서

구글을 검색해 보니,


대충 말해서

유럽 인구의 거의 반은 직모,

거의 반은 곱슬의 비율인데,


직모는 유럽 북쪽에

곱슬머리는 유럽 남쪽에 많이 분포되어 있단다.


그래서 유럽 북쪽에 위치한

핀란드, 러시아, 그밖의 슬라브 국가들 친구들 중에,

그들은 곱슬로 잘 안 치는 반곱슬은 꽤 있지만,

찐곱슬은 잘 못 봤나 보다.


19세기 말 자료에 나오는

아래 지도를 보면,

아시아, 아메리카 원주민은 직모,

아프리카와 유럽의 일부에는

각각 curly와 wavy라는 이름의

곱슬머리가 존재하는 것으로 나온다.



지도 출처: https://archive.org/details/popularsciencemo52newy/page/306/mode/2up?q=map


이 지도에서 유럽 중에서도

슬라브인들 사는 중동부 유럽

대체로 직모 지역으로 나온다.


이 연구가 얼마나 정확한 건지는

전공이 아니라 검증할 수 없지만,

러시아나 폴란드, 체코 같은

동슬라브, 서슬라브 지역에서

남자들 중에 곱슬머리를 본 기억이 별로 없다.


여자들의 곱슬거리는 머리는

후천적인 웨이브 파마일 가능성이 꽤 높은데,

여자들도 심하게 곱슬거리는 머리보다는

직모거나 끝이 약간 말려들어간 스타일이

더 많았다.


인터넷에서 러시아어로 "곱슬머리"를 검색하면,

원래 슬라브인은 직모라서,


러시아인곱슬머리라면

조상 중에 비슬라브인이 있었다는 뜻이라고

단정하는

뷰티 인플루언서가 쓴 느낌의

가벼운 블로그 글이 많이 발견된다.


학자들도 곱슬머리의 기원을

아프리카로 보고 있어

그리고

아프리카계 흑인들의 머리가 가장 곱슬거리니

그런 주장이 매우 논리적으로 보여서,


슬라브인의 곱슬머리에 대한

학술적 견해도

이런 블로그 글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


그리고 그러한 슬라브 지역에서 

"곱슬머리" 비주류성 

이것을 지칭하는 단어에서도 드러난다.


4.


서로 어휘가 비슷한 슬라브어에서

곱슬거리는”이라는 의미의

대표적인 형용사는


불가리아어 къдрав (커드라프)

마케도니아어 кадрав(카드라프)

러시아어 кудрявый(쿠드랴비)

체코어 kudrnatý(쿠드르나티)

슬로베니아어 kȯ́drav(코드라브)

폴란드어 kędzierzawy (켄지에자비)

우크라이나어 кучерявий(쿠체랴비)

벨라루스어 кучаравы(쿠차라비)

슬로바키아어 kučeravý(쿠체라비)

세르비아-크로아티아-보스니아-몬테네그로어 kovrčav(코브르차브)


등으로 어느 정도 비슷한 편이다.


아마 각각의 슬라브어로 분화된

9C 이전부터 슬라브어에 이 의미의 단어가 있었고,

그 밖의 다른 새로운 단어들이

각 언어별로 나중에 몇 개씩 추가됐나 보다.


보통 러시아어나 슬라브어 단어의 어원은

Vasmer(파스머) 어원 사전

그게 원래 어떤 뜻의 다른 슬라브 단어에서 나왔고,

라틴어, 고대 그리스어, 고트어, 산스크리어 등

어느 고대 유럽어와 연관되는지 덧붙여지는데,

 단어는 그런  없다.


즉,

슬라브어 내에서

“곱슬”이라는 의미의 형용사나 명사와 연관되는

다른 단어딱히 고,


그렇다고

슬라브어  인도유럽어에서도

형태나 발음이 비슷한

의미적으로 연관되는 단어

저명한 어원학자 파스머도 딱히  찾은 거다.


다른 현대 유럽어들과 비교해도

영어는 curly,

프랑스어 frisé (프리제), bouclé(부클레),

스페인어 rizo (리조),

독일어 kraus (크라우스) 등으로

형태와 발음이 서로 좀 많이 다르다.


아프리카에서 기원한 곱슬머리가

원래 유럽인의 것이 아니라서,

유럽인의 조상들에겐 그 단어가 딱히 없었고,


비교적 늦게 분화된 슬라브어들은 

개별 언어로 갈라지기 전에 썼던 형태를

아직 그대로 가지고 있어서

곱슬" 지시하는 단어들이 많이 비슷하지만,


다른 유럽어 상응어들은 대체로

형태적, 음성적으로 공통점이 적나 보다.


5.


하지만

슬라브어와 내가 아는 다른 유럽어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경향이 없는 건 아니다.


이 언어들에

“곱슬머리”만을 위한 형용사는 있는데,

직모”를 위한 형용사는 따로 없다는 거다.


대신 이들 언어에서는 

다른 사물들의 특징을 지시하는

넓은 의미의 형용사

“머리카락”이라는 단어 앞에 붙이면

직모라는 의미가 된다.


예를 들어,

슬라브어 중에서


러시아어 прямой(프랴모이)

벨라루스어 прамы(프라미)

우크라이나어 прямий(프랴미)는


“똑바른”, “곧은”(straight)이라는 의미의 형용사,


불가리아어, 마케도니아어, 세르비아-크로아티아-보스니아-몬테네그로어 прав(프라프, 프라브)


“올바른”(right)라는 의미의 형용사,  


세르비아-크로아티아-보스니아-몬테네그로어 ravan(라반),

슬로베니아어 raven(라벤),

체코어, 슬로바키아어 rovný(로브니)는


“평평한, 평등한, 고른(flat, equal, even)”이라는 의미의 형용사,


폴란드어 prosty는


“보통의, 단순한”(common, simple)라는 의미의 형용사로,


슬라브어에서 이러한 형용사가

머리카락을 지시하는 단어와 결합하면

"직모"를 의미하게 된다.




그러고 보면

한국어에서도

구불거리는 머리카락을 가리키는

곱슬”이라는 단어는 순우리말로 존재하지만,


구불거리지 않는 곧은 머리카락을 가리키는

순우리말은 딱히 없다.


곱슬머리는 소수라서 특별하니,

그래서 “머리나 털이 구불거리는”을 의미하는

좁은 의미의 단어가 필요했고,

그래서 형용사 "굽다", "곱다"에서 파생한 단어

"곱슬거리다", "곱슬하다"가 만들어졌지만,


누군가의 머리가 곱슬이라고 말하지 않는다면

쭉 뻗은 곧은 머리라는 의미니,

그것을 따로 언급할 필요가 없고,

그래서 평범한 다수인 직모를 따로 일컫는

좁은 의미의 단어는

오랫동안 일상생활 속 대화에서는

따로 필요 없었던 것 같다.


나중에 곱슬의 반대말이 필요하게 되었을 때

한자를 조합하여

"직모"라는 말을 뒤늦게 만들어낸 것 같다.


이 말이 언제 만들어진 건지는 모르겠지만,

어렸을 때 나는 이 말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당시의 나의 사전에서

"곱슬"의 반대말은

"곱슬 아니다"

또는

"생머리"였다.


사실

나와 우리 아빠, 그리고 동생들에게는

곱슬 또는 반곱슬이

날 것 그대로의 머리,

, “머리였는데 말이다.





그렇게 "곱슬"은

슬라브인들 사이에서도

한국인들 사이에서도 특별한데,


직모를 가리키는 표현의 반대말로만 본다면,


곱슬의 그 특별함은


"단순하지 않음",

"고르지 않음",

"곧지 않음"

그리고 심지어

"옳지 않음"이고,


조금만 머리카락이 길면,

"지저분하니 빨리 미용실 가라"고

잔소리를 했던

직모 우리 엄마나 이모,


그리고 오랫동안

"저주받은 곱슬"이라

내 머리카락을 묘사했던

내 자신이 했던 평가도

사실

이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6.


팬데믹을 계기로

"지저분한" 곱슬머리를 그냥 기르기 시작했을 ,


미용실에 

“굽은”머리를 “곧게” 펴서,

주류에 기준에 맞게

교정해야 하는 시간의 마지노선지나자


몇 개월 전

"매직 스트레이트" 은총을 받은 부분과,

세상의 빛을 본 후

전혀 그 "마법"의 은총을 받지 못한 부분이

경계를 이루며,

파일 속에 잘못 넣어놔서 구겨진 종이처럼,

구겨진 정장에 잡힌 잔주름처럼

그렇게 보기 흉하게 또렷하게 자리 잡았다.


그때

팬데믹이 마침 끝나서,

"사적인" 사회생활을 활발히 하게 되었거나,


개강이 되어서

"공적인" 만남을 활발히 하게 되었다면,


내 인생 최초의 야심찬

곱슬머리 방치 프로젝트

일찍 종료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방학인 데다가

팬데믹이 한참일 때라

공적, 사적 사회 생활 없이

몇 달 간 그냥 집에서만 시간을 보내다 보니,


곱슬머리 방치 프로젝트가

좀 더 진행될 수 있었고,


"마법"의 은총을 한 번도 받지 못한

머리카락  부분이   길어지면서,

곱슬 DNA 의 활동 공간이 넓어지자

그 “자연 구역” 안에서 

새로운 컬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 새 컬 중에

어떤 건 위쪽에,

어떤 건 아래쪽에

어떤 건 좀 더 두텁게,

어떤 건 좀 더 얇게

서로 다른 곡선을 만들어 냈고,


그래서 아까 그 사진 같이,

미용실에서 일부러 만든 것 같은

그런 스타일이 만들어졌다.




내 머리카락이 모두 직모를 지향할 때는

그중 몇 개가 구불거리는 게

삐죽삐죽 눈에 띄어서

그렇게 보기 흉하더니,


본래의 구불거림을 허하니,

이제는 더 많이 구불거림에도 불구하고,

각각 다르게 

다른 위치에서 구불거리는 

적어도 내 머리 위에서는 이상하지 않는

자연스러운 모습이 되었다.


심지어 그 덕에 평범한 나는 조금 더 특별해졌다.


이렇게 곱슬머리가 번창하는(?) 모습을 보면서,


성별, 학력, 학벌, 지역, 성적 지향, 민족, 국적, 인종, 빈부 등을 기준으로

사람들을

하나의 곧은 선 위에 세워두고 눈금을 매긴 후

나와 다른 것을 틀렸다고,

내 눈금 아래쪽은 열등하다고 주장하는,

온라인상의 그 성난 문장들이 생각났다.


우리 사회에서도

곱슬거리는 것은 틀렸다고,

그러니 곧게 펴고,

곱슬거림을 감추라고,

또는 잘라내서 버리라고 하지 말고,


다른 것은 틀린 것이 아니고,

당연한 거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고,

심지어 더 아름다운 것,

더 보기 좋은 것이 될 수 있음을 느꼈으면,


그 곧은 선 위에 적어 놓은 눈금들 위의 순위가

다른 선 위에 다른 기준에 따라 눈금을 그리면

달라질 수 있는,

별 의미 없는 하찮은 숫자라는 것을 깨달았으면,


그리고 곧은 선 위에 한 줄로 올라서지 않아도,

눈금 긋지 않아도,

그냥 자유로운 곱슬거림 속에 흩어져 있어도,

꼭 그렇게 순위 가지고

비교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걸

생각하면 좋겠다.


그래서 그 곱슬거림이

자리를 잡고 서로 조화를 이루게,

좀 기다려주었으면 좋겠다.


물론 그렇게 기다려서 길어진 내 곱슬머리가

항상 멋져 보이는 것도 아니고,

지저분해 보이는 날도 많지만,


그래도 꼭 머리가 곧기만 해야 되는 건 아니고,

그래서 구불거리는 머리를

꼭 교정하거나 잘라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서로 다른 것이

다르게 자랄 수 있게 해 두면,

그게  보기 좋을 수도 

그것으로 더 특별해질 수도 있다.


유럽 여러 도시를 여행해보면,

서로 다른 건축들을 많이 가진 도시가

보는 재미가 더 있고,

이방인들의 이주에 열려 있는 도시가 

더 다양한 먹거리를 맛보는 재미가 있고,

관광객에도 덜 배타적이어서

편안하고 또 가고 싶은 곳이 되는 것 같다.


사람도

뭔가 특별한 내면의 곱슬거림이 있는 사람이,

그리고 곱슬거림을 받아들일  있는 사람이

더 매력적인 것 같다.




이번 학기

가장 수강자가 많았던 어떤 수업의 종강 시간에

이 비슷한 이야기를 짧게 했다.


온라인 뉴스에

계속 20대의 반목과 갈등이

사회적 현상으로 묘사되니까

좀 걱정이 되어서,

우리 수업과 직접 관련도 없는

그런 이야기를 한 거다.


그런데

나는 "말하는 것"보다는

"쓰는 것"을 좀 더 잘하는 사람이라,


그리고 수업 시간엔 시간이 짧아서

제대로 다 이야기하지 못한 게

내 입장에는 나름 좀 아쉬워서,


짧고 가볍게 읽을 수 있는 글을 써야 하는

브런치에서

이렇게 또 촌스럽게

식탁  가득 디너를 차려두고

주저리주저리 곱슬거림에 대해 쓰고 있다.


아무튼

나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한

이 방치된 곱슬머리도 이제 많이 길어서

가을쯤에는

머리카락을 좀 더 짧게 자르거나

또는

다시 화학적 “마법"의 힘을 빌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때는 이유가


"지저분해서",

"단정치 못해서",

"남들과 달라서",

"똑바르지 않아서"

"옳지 않아서"라는

외적 시선에 따른 교정이 아니라,


그냥 좀

"지금과 달라지고 싶어서"라는

내적 요구에 따른 변화라서,


미용실에 가는 일이

나에게는 전혀 다른 의미가 될 것 같다.


곱슬머리는 wavy hair라고도 하니,

물결 머리이기도 한데,


내가 가지고 있는지 몰랐던

귀한

그 파도를,

그 물결을,

그 바다를,


그리고


내 안에 품고 있는

곱슬거림들,

물결들,

나다움들이

좀 곧지 않다고 해도,

좀 부족하다 해도,


남들이 직선으로 그어 놓은 그 눈금에서

좀 아래에,

좀 가장자리에,

좀 뒤쪽에 자리 잡고 있다고 해도,


그걸 나 그대로 받아들이며,

이제 좀 더 당당해지는 법을


그리고 남의 눈금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며,

이제 좀 더 너그러워지는 법을


이렇게 또 별 거 아닌 것 속에서 배워가나 보다.

매거진의 이전글 새롭지도 않은데 “뉴”스라고 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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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fli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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