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일본 여행, 씁쓸함과 달콤함 사이에서
처음 일본에 갔던 건 2008년 8월이었다.
한국 유학원에서 학생 비자를 진행하면서, 밴쿠버로 가는 비행기 티켓을 도쿄에서 경유하는, 다소 가격이 저렴했던 일본 항공을 발권해 준 것이 발단이었다. 나리타 항공을 나가서 시내를 돌아보든, 공항에서 대기하든지 도쿄를 경유해야만 하는 입장에 놓인 나는, 기왕이면 이 기회에 일본 여행을 한 번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하여 밴쿠버에서의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1년이라는 시간을 보낸 후, 일주일을 도쿄에서 지낸 후 한국으로 귀국하는 일정을 짰다.
그 당시 한창 떠오르던 페이스북 덕분에, 밴쿠버에서 학교 생활을 하면서 알게 된 일본 친구들과 꾸준히 연락을 유지해 올 수 있었고, 숙소는 혼자 따로 호텔을 잡되 각각 다른 수업에서 만난 일본 친구들이 각각 5일에 걸쳐 도쿄 시내, 요코하마 및 도시 근교를 구경시켜주기로 했다. 머무는 일주일 내내 관광을 받는 것도 좋았겠지만, 독립심이 강했던 나는 이틀 정도를 홀로 여행하는 일정으로 조율을 끝내 놓고 밴쿠버발 도쿄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본격적인 일본 여행은 일본 나리타 공항에서 ‘히로’가 픽업을 해주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히로는 섀기 펌에, 오렌지 색으로 밝게 탈색을 해서 그런지 90년대의 '압구정 오렌지족’ 같은 느낌의 친구였는데, 늘 생글생글 웃고 어두운 구석이 없는 친구였다. 집이 공항 근처라며 순수 픽업을 나와 준 고마운 이 친구와 함께 ‘에비수’에 들러 동명 브랜드의 맥주를 마시며 눈앞에서 직접 만들어주는 일본식 해물 파전 느낌의 오코나미야끼를 황홀하게 맛보는 것으로 도쿄에서의 여행이 시작되었다.
한편 유일한 여자 친구였던 ‘리에’와는 ‘시모키타자와’라는 이름 낯선 지역에 들러 당시 유행하던 스티커 사진을 찍으러 갔다. 일본 말로는 “프리쿠라”라고 한다며 웃는 모습이 예쁜 리에가 친절한 설명까지 곁들어주는 리에 양과는 또래 여자 친구들이 하듯 윈도쇼핑과 맛집 탐방의 연속이었다. 해물로 유명한 시장에 들러 구경 후, 밴쿠버에서 자주 먹었던 일본식 라멘집에 들어가 저렴하게 한 끼를 해결했다.
처음에 밴쿠버에 왔을 때 같은 홈스테이에서 살았던, 내 옆 방을 쓰던 ‘타케시’는 자신의 고향인 요코하마 관광을 시켜주었다. 일본 영화에서 본 것만 같은 선박장, 미나토미라이는 놀이 기구들이 펼쳐져 있어서 그런지 야경이 멋들어져 보이는 곳이었다. 그리고 하루는 날을 잡아 도쿄에서 한 시간 반 정도 신칸센을 타고 나가면 닿을 수 있는 ‘하코네’의 “남녀 혼천 불가” 야외 온천욕을 즐기기도 했다. 가는 도중 중간에 들른 수제 튀김집의 바삭함은 여전히 아직도 머릿속에 생생하다.
처음 가 본 일본은 내가 상상하던 것과 비슷했지만, 생각보다 키 큰 여자들이 많아서 의외의 충격을 받았더랬다. 아마도 밴쿠버에 나와 있었던, 내가 본 일본 여자들은 대부분 아담하고 키가 작은 편에 속했던 탓이리라. 사실 한국에서는 일본 사람을 만날 기회가 없어 잘 몰랐는데, 동아시아라는 지형적 위치 및 인종적이나 문화적으로 서양에 비해 나름 비슷해서인지 캐나다에서 지내면서 많은 일본 사람들, 특히 동아시아 쪽에서 온 사람들과 한층 더 빠르게 유대감을 형성할 수 있었다. 밴쿠버에서 지내면서 알게 된 대다수의 일본인들은 친절했고, 선을 넘기는 법이 없었다. 실제로 일본에서 만난 사람들 역시 늘 친절했으며, 거리거리마다 쓰레기 없이 잘 정돈된 모습을 보아 시민 의식이 출중해 보였다.
다만, 일본을 여행하며 거의 모든 식당에서 영어로 된 메뉴가 전혀 없는 것, 대부분의 간판이 일본어로 되어 있는 것, 그리고 기모노 등 자신의 문화를 자랑스럽게 여기는 일본 사람들을 보며 한국 사람으로서 일종의 자격지심(?) 같은 것이 끓어올랐다. 이는 처음 미국 캘리포니아에 로드트립을 갔을 때 한국 사람들이 일본 식당을 운영하는 것에 대해 의아했던 감정과 맞닿아 있었다. 그 식당의 주인 분은 당시 “한국 음식은 사람들에게 인기가 없어서,” 즉, “일본 음식을 팔아야 돈이 되기 때문에.”라는 지극히 자본주의적 사상으로 비즈니스를 이어가고 계셨다. 한 편으로 그분의 심정이 이해가 가면서도, 왠지 씁쓸한 안타까움과 허탈함을 느끼며 그 식당을 뒤로해야만 했던 여행의 기억 조각들이, “고추장”을 고추장이라 하지 못하고 “Spicy Pepper Paste”, "불고기"를 불고기라 부르지 않고 "Marinated Beef (양념된 소고기)"라고 쓸데없이 친절한 설명을 깃들인 메뉴로 가득한 밴쿠버의 한국 식당들과 겹쳐지다가, 비가 내리는 일본 도쿄타워 사이로 교차되며 처연히 스쳐 지나갔다.
‘만약 우리나라도 만약 일제의 침략이 없었다면, 일본이 우리나라를 식민지로 삼지 않았더라면, 우리도 우리 고유의 문화를 더 소중하게 여기고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졌다. 아마 이는 고등학교 때 국사 및 근현대사에서 공부한 일제강점기 및 일제 침략에 기인하는 것이었을 거라고 시간이 지난 지금에야 돌이켜보는 기억들이다. 그게 바로 벌써 딱 13년 전, 2008년 여름에 일어난 일이니까.
그렇게 어느덧 시간이 지나, 90년대 중후반부터 정체되어 있지 않고 꾸준히 발전해온 ‘한국 문화’는 현재 세계의 어디에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을 수준에 이르렀다. 국적 및 인종을 불문하고 사랑받는 K-팝, K-드라마, K-영화, K-뷰티, K-패션 등 K-문화의 르네상스를 보내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폭발적인 성장의 꽃을 피워내고 있다. 이런 한국 문화의 부흥을 경험하며 자란 “신세대(Generation-Z, Z세대)”에게는 나전 칠기, 공예품, 한복, 한옥 등 한국의 전통적인 문화가 더 이상 부끄러워하고, 숨길 것이 아닌, 자랑스러워해도 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자리 잡았다.
그런 점에서 현재 2000~2010년에 출생한 한국의 Z세대들은 앞서 태어난 밀레니얼 (1980~1999년 출생) 혹은 X세대 (1960~1979년 출생), 그리고 나아가 (베이비) 부머 세대 (1940~1959년 출생) 보다 훨씬 ‘한국적’인 것에 대해 가치를 부여하는 것 같아 한 편으로 안도감이 들면서 뿌듯하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요즘 한국의 “젊은이”들은 외국에서 인정해주는 게 아니라 자신만의 문화를 인정하고, 보호하며, 유지해갈 수 있는 미래의 문화적 원동력을 충분히 갖추고 있다고 본다.
우스갯소리로 ‘일본한테는 가위바위보도 지면 안 된다’라는 말이 있다. 웃자고 하는 얘기일 수도 있지만, 일본의 패션을 따라 하고, 일본의 드라마와 영화를 보고, 일본 텔레비전 예능을 카피하고, 일본의 과자를 가져와 한국 것인 양 팔고... 하던 시대에서 벗어나 우리는 진정 ‘한국적인 것’에 한 뼘 더 다가가고 있는 것 같은 희망적 현재 및 미래의 발전상이 보여, 한국 사람으로서 자랑스럽고, 열심히 자신의 자리에서 빛을 발하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감사한 마음이다. 나 역시 해외에서 조국에 빚지지 않는 멋진 한국인으로서 더욱 발돋움해야겠다는 나름의 사명감을 가지고 이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