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그리스도교 봉사자를 만나다 ④
대학교 찬양 밴드에 처음 들어갔을 때? 2018년 1학기부터 들어갔어. 나만 신입으로 들어가는 느낌이었지. 사실상 처음으로 (그 사람들과) 합을 맞추는 상황이었고… 이미 이 사람들은 자기들끼리 해서 합이 되게 잘 맞아 있었어.
근데 나는 이 사람들 스타일을 잘 모르잖아, 그래서 안 맞는 부분을 맞추고 합을 만들어 가는 게 되게 좋았어. 치고 빠지는 게 됐지. (연주에서) 어떤 악기가 나올 때, 다른 악기가 빠지고 그런 거. 왜냐면 거기는 6개 악기가 다 있는 풀 밴드란 말이야. 나는 풀 밴드를 한 번도 한 적이 없었지. 이렇게 합을 맞추면서 다른 악기와 노래를 만들어 간다는 게 되게 좋았어. 같이 퍼즐 조각을 맞추는 느낌?
교회에 가는 게 당연한 거라 스스로 왜 가는지 의문을 가지지 않았다. 내가 믿고 있는 것이 맞는 일이라 생각한다. 반주를 처음 시작한 것은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였다. 교회가 경기도 이천에 있었을 때, 부모님이 (사역)하는 곳에서 반주를 시작했다. 처음 맡았던 것은 유초등부 반주였고, 대예배 반주를 그 다음에 했다. 메인(건반 반주)을 맡았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반주를 쉬어본 것은 지금이 처음이다. 10년 혹은 11년 이상 된 것 같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손을 다쳐서 한 달 정도 쉰 것 빼고 내 자의로 반주를 내려놓은 적이 없다. 아파서 못 쳤던 거지. 유초등부에서 반주하셨던 분이 직장을 옮기며 교회를 나간 일이 있었다. 그래서 그때부터 반주를 맡았다.
피아노를 제대로 배운 건 7살 때부터다. 피아노는 내 정체성 중에 하나라고도 생각한다. 피아노를 치는 것은 나를 설명할 수 있는 큰 부분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살면서 피아노랑 멀어져서 살았던 적이 없다. 피아노 자체를 계속 좋아했던 것도 있고. 그리고 우리 아빠가 나를 피아노 학원에 처음 보냈을 때, 반주시키려고 학원에 보낸 것도 있다. 그래서 난 내가 좋아서 학원에 간 건 줄 알았는데, 아빠가 큰 그림을 그렸다는 느낌? (웃음)
지금은 그런 생각을 많이 하지는 않지만, 맨 처음에는 내가 틀리지 않고 맞춰야 한다는 부담이 컸다. 반주하면서 다른 걸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초등학교 때 시작했으니까. 그때는 내가 예배 시간에 뭘 해야 하는지 전혀 생각을 못 했다. 과정들이 편한 것은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반주자는 틀렸을 때 너무 많은 소리를 듣기 때문이었다. 나는 반주에서 틀렸을 때, 초반에는 엄청 울었다. 예배 끝나고 사람들을 피했다. 집으로 가기도 하고. 우리 엄마도 목회자 자녀이고 반주를 오래 맡아서, 엄마한테도 얘기하며 마음을 추스렸다. 어쨌거나 반주자가 반주기는 아니니까. 정말 친한 사람이라도 내가 (반주에서) 틀린 것을 알았다는 것은 큰 부담이다.
근데 중학생쯤 되고 나서, 나도 그게 싫었다. 아무것도 못 하고 피아노만 쳐야 하니까. 그런데 또 하다 보면 피아노 치면서 눈 감고 기도할 수 있다. 된다. 대신, 기도에 의식을 쏟는 것과 피아노 치는데 의식을 다 쏟는 것은 갈림길이다. 그래서 내가 기도에 신경을 쓰면 피아노는 의도하지 않게 저절로 손이 간다. 물론, 둘 중 하나에 똑같이 집중할 수는 없다. 그래서 지금은 채움을 받을 수 있는 다른 장소를 찾는다.
그리고 나는 항상 메인 건반만 했다. 메인 건반을 너무 많이 맡았다. 밴드 같은 경우는 메인 반주가 빠지면 안 된다. 그래서 연습에 무조건 참석해야 했다. 다른 악기는 없으면 없는 대로 진행을 할 수 있다. 드럼은 뭐 없으면 아쉽기는 하지만 할 수는 있다. 기타도 채워주는 느낌이다. 부가적인 느낌. 그리고 찬양 팀의 목소리 하나 없어도 연습에는 큰 지장이 없다. 그런데 메인은 그러면 진짜 안 된다. 그래서 나는 꼭 가야 했다. 그리고 나와 다른 정도의 책임감을 가진 사람들에게 정말 화가 났다. 나는 무조건 가야 한다는 생각이 있으니까. 내가 없으면 안 되니까 나는 어떻게든 부담을 갖고 연습을 하는데, 찬양 팀은 연습을 아무렇지 않게 여기는 상황도 있었다.
그리고 대학교 오고 나서, 시험 있는 주에 몇 번 안 간 적이 있었다. 대타를 구하려고 연락하는 것조차 너무 피곤했다. 그 당시에 내가 맡고 있었던 봉사는 중고등부 찬양팀, 대예배 찬양팀, 이런 식으로 여러 개를 맡고 있었다. 그러면 그 담당 인도자랑 교역자에게 연락하고, 부탁할 사람에게 연락하고… 이게 한두 개가 아니었다. 부탁하는 것도 일이다. 내가 저번에 이걸 친구에게 하소연 했는데, 친구는 단톡방을 파서 (다른 사람들이 이 어려움을 알도록) 너 혼자 말하고 모두가 보기 전에 나와버리라고 말했다. (웃음)
피아노 연습 모임을 간 적이 있었다. 소규모 수업으로 10명 정도 인원이 있었다. 그 사람들 모두가 반주자라는 공통점을 나누는 것이 너무 좋았다. 인도자의 선곡부터 인도자가 리듬이 정말 다른 두 곡을 붙여달라는 경우까지 많은 얘기를 했다. 무엇보다 인도자가 음악적 지식이 부족할 때를 많이 언급했다.
일단 인도자가 부탁할 때, 미리 콘티를 반주자에게 알려주기. 만약 어느 앨범의 특정 분위기를 반주자에게 요구한다면, 반주자가 충분히 숙지할 수 있는 시간 주기. 그리고 인도자가 음악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른다면 요구하지 말고 먼저 물어보기. "이렇게 해도 될까"하고. 그리고 이 찬양팀에서 가능한 것과 가능하지 않은 것을 구분하기.
찬양팀의 현재 상황과 실력에 맞춘 선곡이 찬양 인도자에게 필요한 것 같아. 지금 찬양팀 리더에게 이 얘기를 해주고 싶어. 계속 완성도가 전혀 없는 찬양을 드리는 거잖아. 물론, 완전히 숙달해서만 예배를 드릴 수 있는 것은 아니지. 그렇지만 최소한의 배려가 인도자에게 필요해요. 결론적으로 콘티는 인도자 권한이니까, 근데 그 권한을 얼마나 정당하고 적합하게 사용하느냐가 중요한 것 같아.
그리고 장비에 대한 최소한의 관리? 피아노를 정기적으로 조율하던가 노후화된 장비를 바꾸던가. 교회가 찬양을 독자적인 영역으로 보는 것 같다. 교회가 찬양에 대해서 몰라서 그러는 것 같다. 그래서 교역자가 찬양에 대해서 얼마나 아느냐에 따라 재정을 쓸 때 관리가 천차만별이 되는 것 같다. (인도자가 찬양을) 모르는데 그 분야를 어떻게 관리하나.
내가 두 달 정도 대예배 성가대 반주를 맡은 적이 있다. 반주자가 공석이어서 갑자기 맡았던 걸로 기억한다. 나는 실용음악을 배운 사례여서 클래식 음악은 연습을 엄청나게 해야 했다. 그리고 성가대 반주는 부담감이 엄청났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시간을 들이고 노력을 하는데 반주비를 못 받으면 너무 억울하다고 생각했다. 물론 찬양팀을 하면서 보상을 바라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솔직히 최소한의 사례는 줬으면 한다. 어쨌거나 교회가 전문성을 요구한 것이니까. 그 전문성에 대해 약간의 인정이라도 교회가 해줬으면 한다.
나도 그러지 않으려고 노력하는데, 연주인가 반주인가를 구분하는 건 어려운 문제인 것 같다. 나도 모임에서 배운 건데, ‘반주에서 자신을 들려주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피아노 안 치는 사람들은 구분하기 힘들다. 그렇지만 반주자가 피아노를 통해 가사를 만들어 가기 때문에 중요하다. 예를 들어, 반주자는 반주하며 나의 소리가 들어올 때와 다른 악기가 들어올 때를 구분해줘야 한다. 그래서 다른 악기가 들어올 때를 만들어 주지 않고 혼자 다 채우는 경우와, 분위기에 맞는 코드 이상으로 꾸미는 경우를 경계해야 한다.
그냥 난 내가 할 수 있는 걸로 자리를 지키는 것 같다. 자리가 곧 나는 아니지만 나에게 주어진 느낌이 큰 것 같다. 자리를 지킨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맞으니까. 그리고 우리가 생각하지 못했던 예배 회중들의 반응이 인상 깊을 때도 있다. 뭐랄까, 감당하기엔 부담스럽고 힘들지만 안 하기에는 서운한 느낌? 내려놓기엔 서럽다. 아무래도 오래 했으니까 아쉽고, 당연한 것들을 포기하는 느낌도 든다.
[글/인터뷰] 김도헌 (연세대학교 신과대학 신학과 재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