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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국루터란아워 Mar 29. 2020

13. 쌍둥이와 교회의 독특한 만남

중고등부 교사를 맡았던 나누리 씨와 나어진 씨

20/02/23 동탄의 식당에서 만난 나어진 씨(왼쪽)와 나누리 씨(오른쪽). 이들은 교회에서 봉사하게 된 계기를 답하며 어렸을 때의 삶을 떠올렸다.




처음 교회를 접했던 그 시절


누리: 아마 유치원부터였나, 그때부터 교회를 다녔을 거예요. 어머니께서 교회가 사회성 발달에 도움이 된다고 해서 (보내셨어요).


어진: 외할머니께서 독실한 신자시고 그래서 할머니 영향으로 어머니께서는 학창 시절 교회에 가셨어요. 그러다 성인이 되어서는 교회에 안 다니셨는데, 쌍둥이 남자 두 명을 혼자 돌보기가 어렵고 학원 보내듯이 교회에 우리를 보낼 수 없으니까 우리를 교회에 보내기 위해 어머니도 교회에 가게 된 거죠. 저희는 어렸을 때, 교회에 가면 피자도 많이 주고 문화상품권도 많이 주고 그래서 교회에 갔어요.


누리: 성가대를 어렸을 때 했어요. 노래에 재능이 없어서 힘들었죠. (웃음) 제가 어렸을 때부터 교회를 계속 다녔던 이유는 ‘결핍’ 때문인 것 같아요. 결핍이 많았어요. 돈도 많이 없었고 친구도 많이 없었고. 그런데 교회에 나가면 그런 것들이 없잖아요.


고등학교 때, 노는 친구들을 많이 사귀어서 담배에도 손을 댔어요. 그때 담배 살 돈이 필요해서 어머니 지갑에 슬쩍하고 그랬죠. 그러다 아침에 이 친구(쌍둥이)한테 걸려서 죽도록 맞았어요. 그리고 학교에 가는데 너무 서러웠죠. 주변에는 잘 사는 친구도 많은데. 그 친구들은 그냥 있어도 돈을 얻는데 나는 이런 짓을 왜 해야 하나. 그러면서 그때부터 돈을 벌 방법을 찾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그래도 교회는 일상이었어요. 교회에서 친한 동생들도 생기고. 계속 교회에 다니다가 ‘주희’라는 한 동생이 중고등부 보조 교사로 교회에 계속 있어 달라고 부탁해서 여기에 있게 된 거예요. 보조교사로 봉사를 시작하다가 정교사를 해보고 싶어서 지금 봉사하고 있죠. 아이들이 예뻐서 계속하고 있어요.


어렸을 때 많이 힘들었어요. 어머니 바지를 물려 입을 정도였으니까. 외식 한 번 하는데도 눈치 보이고. 그 정도로 힘들었어요. 사람들 시선이 두려웠어요. 그런데 교회 나가면 먹을 것도 다 해주고 챙겨주잖아요. 평소 애들이랑 못 놀았었는데 교회에 가면 형이랑 누나들이 많이 챙겨주고 그래서 너무 교회가 즐거웠어요. 교회 자체가 편했죠. 그래서 지금 (제가 맡은) 애들한테도 맛있는 것들 많이 사주려 해요.


항상 아이들에게 그 이상을 해주고 싶어요. 중고등부 아이들이 교회를 편하게 느꼈으면 좋겠고. 그래서 우리 반 애들한테도 엄하게 그러진 않아요. 그래서 아이들이 저를 편하게 형이나 오빠로 부르죠.


어진: 저도 성가대로 처음 봉사를 시작했었고 무엇보다 그때는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했죠. 노래 잘한다는 소리도 변성기 전에는 들었고. 그러다 저는 중학교 2학년 때부터 교회 방송부에서 봉사했어요.


그때 음향 장비를 관리했었는데, 인수인계에서 배웠던 게 별로 없었어요. 멀티탭을 누르고 빨간색 불 들어오는 버튼을 누른 다음 레버를 올리는 정도? 당연히 문제가 너무 많이 생겼죠. 악기에서 잡음이 나도 아는 게 없으니까 방법이 없었죠. 어쩌다 얻어걸리는 식으로 문제를 해결했어요. 시간은 너무 오래 걸렸죠. 그래서 방송팀 하는 동안, 구글로 검색하면서 스스로 해결방법을 찾아갔어요. 그 뒤로 찬양팀에 나가고 토요모임도 나갔고 유치부 보조교사도 했고. 교회에 일손이 부족하면 좀 많이 다양하게 도와드렸어요.


나어진 씨가 교회 유년부에서 성극을 하며 봉사했던 모습



봉사하기로 선택했던 그때


누리: 중학교 때, 정말 열심히 기도하고 찬양했어요. 고등학교 와서 그런 결핍들이 다 채워졌는데, 그래도 교회에 친한 애들도 있고 일상이고 그래서 나갔죠. 청년부 들어오자마자 제 동년배들이 다 전멸했어요. 어디 이사 가고 그러니까. 그래도 친구들 권유로 교사 봉사를 시작했죠. 또, 중고등부 교사가 되니까 청년부에 안 나올 수도 없잖아요. 나름 책임감이 있어요. 그렇게 신실한 분위기로 교회에 가는 것은 아니지만 재밌어서 교회에 가요.


저는 대학을 안 갔어요. 고등학교 때 많이 놀았으니까. 그러니까 제가 새로운 사람을 만날 기회가 없어요. 맨날 일로 만나는 사람만 만나고. 그런데 교회는 사회의 그런 분위기랑 다르죠. 사회는 솔직히 외적인 부분을 많이 보잖아요. 또, 외적인 걸로 대접을 많이 다르게 하는데 교회 안에서는 적어도 그렇게 하려고 그러지는 않잖아요. 다들 착하고 똑 부러지고 사람을 잘 따라주고. 그런 교회의 맛이 있죠. ‘홀리(holy)’하죠.


무엇보다 교회 교사를 부탁하는 친구가 많았어요.


애들한테 제가 많이 편한 이미지거든요. 고등학교 때, 단 한 번도 토요모임에 빠지지 않았어요. 말씀 묵상도 하고 기도회도 나가고 그랬죠. 그러면서 아이들이랑 친해지면서 연락도 하고. 교사 봉사가 재밌을 것 같다는 생각이 그러다 들었어요. 많이 가르쳐주지는 못하겠지만 챙겨주고 싶다는 생각도 들고.


어진: 고등학교 1학년 여름방학을 기점으로 저는 신앙심이 열성적으로 성장했어요. 교회에 도움을 주고 싶었죠. 저도 결핍이 굉장히 많았었는데, 저는 제 결핍의 원인을 생각했던 것 같아요. ‘너무 힘들다.’, ‘외식을 자주 할 수 없다.’, ‘마음껏 나가놀 수 없다.’ 원인을 추적해보니 돈이 없다는 최종적인 결론이 난 거죠.


보통 아버지가 감당하는 경제력이 없고 엄마만 모든 것을 감당해야 해서 이런 일이 나타났구나. 돈이 없어서 엄마가 힘든 것이고 돈이 없어서 잘 못 노는 것이고 돈이 없어서 성격이 괴팍하게 되는구나. 그래도, 돈이 없어도 삶을 충만하게 하는 뭔가가 있지 않을까?


그때 딱, 월급 60만 원~70만 원이던 전도사님이 보인 거죠. 그때 당시 전도사님은 월급의 3배에 해당하는 일을 하시면서도 10배 행복하시던 분이었거든요. 그래서 응당 전도사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다 진로를 탐색하다 전도사는 목회자의 전 과정임을 알게 되면서 그때 당시에 저는 진로를 목회자로 정했죠.


그래서 교회 봉사를 적극적으로 했어요. 그때 저는 ‘끓는 프라이팬’ 같았죠. 아주 뜨겁다 보면 서툴고 그러잖아요. 그때 당시에는 직관적이고 강한 언어가 매력적으로 다가왔죠. 결핍이 많았던 상황에 고정된 답을 교회가 뭔가 제시하니까 매력적이었죠. 그리고 왔다는 이유만으로 잘해주는 집단이 없잖아요. 그런데 교회는 왔다는 이유만으로 잘해주고 그래서 교회 사람들이 좋았어요.


누리: 이 친구는 그때 저한테 잔소리를 엄청 많이 했어요. 제가 고등학교 때 놀러 다녀서 어머니도 뭐라 하시고 얘도 이렇게 잔소리 하고.


어진: 제가 서투르다 보니까 쌍둥이한테 제 기준이 많이 갔죠. ‘그렇게 살면 지옥에 간다.’ 이렇게 잔소리했죠. 그때 당시 답답하고 한심해 보였거든요.


누리: 그것도 그렇고 상당히 불편했어요. 교회를 불편하게 본 계기랄까?


어진: 이 친구가 말로도 못 이기고 몸으로도 못 이겼고. 내가 하던 잔소리에 못 이기니까 어쩔 수 없이 듣는 거지. 그러니까 속으로. (웃음)


누리: 그래서 고등학교 때, 집에 있는 시간이 줄어들었어요. 아침 7시 반에 일어나서 친구랑 아침 먹고 학교 가고. 학교 끝나면 PC방 갔다가 집에 늦게 들어와서 자고. 이 친구가 유해지면서 자연스럽게 해결되었어요. 타협을 보진 않았죠. 스스로 타협했지 서로 타협하지는 않았어요.


어진: 서로 성숙해졌다. (웃음) 부드러워진 계기는 고등학교 3학년 때였어요. 제가 기독교에 대해 아는 게 너무 없다 싶어서 마구잡이로 서적들을 찾았죠. 매일 야간 자율학습을 해서 학교 공부 복습이 끝내면 남는 시간에 기독교와 관련된 서적을 읽고 나름대로 정리하고 그랬죠. 그러다가 ‘세월호 사건’과 ‘신의 정당함’을 다룬 책을 읽게 되었어요. 기독교 전통이 서술했던 악과 세월호 사건을 비교한 책이었죠. ‘세월호 사건에도 불구하고 왜 신은 선하냐?’라는 주제의 책이었고 호교론적인 책이었어요. 그런데 문뜩, “이 내용을 세월호 참사를 겪은 피해자들에게 전달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금 내가 가진 가치관이 당장의 피해를 겪는 이들에게 일방적으로 전달하면 폭력이 될 수 있겠다고 느낀 거죠. 그때부터 조심스럽게 변한 것 같아요. 그러면서 누리한테도 잘 대해주고.



결핍변화


누리: 제가 그렇게 하나님을 믿는 편은 아니에요. 결핍을 제 힘으로 극복했다고 생각해서. 고등학교 때부터 일을 시작해서 생긴 성취감? 그런 게 있거든요. 봉사는 어떻게 보면 ‘건덕지’죠. 교회에 더 있을 수 있는. 교회에서 뭐라도 하면 사람들이랑 더 가까워질 수 있잖아요.


기도하면 원망을 많이 하죠. 그래도 하나님이 있다는 것은 확실히 믿어요. 이 친구가 변하는 걸 봐서. 이 친구(쌍둥이)가 중학교 때 폭력성이 짙었어요. 사소한 걸로 많이 싸웠죠. 그런데 고등학교 와서 좀 많이 변했어요.


어진: (멋쩍은 웃음) 제가 중학교 때, 얘를 많이 때렸긴 했어요. 17번이었나. 그래도 고등학교 때 욕도 끊었고 중학교 때부터 먹었던 술도 끊고. 되도록 모든 사람에게 친절하게 하려 했어요.


누리: 그래서 하나님이 있다고 생각해요. 근데 제 인생에 직접적으로 어떻게 하나님이 오시는지는 의문이 들죠.



내가 교회에 가는 이유


어진: 진지하게 자신의 삶을 생각할 수 있게 하고 몰두하게 하는 환경이 요즘 드물잖아요. 그리스도교 봉사는 자신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 같아요. 그래서 봉사가 더불어 살아가는 인간에게 여전히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리스도교는 허무, 고통, 무의미로부터 삶의 의미를 발견하고 사람을 따뜻하게 모으잖아요. 그래서 저는 그때에 대한 빚을 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누리: 뭐라도 있겠지 싶어서 교회에 가요. 그래도 뭔가 초월하는 게 있지 않을까. 내가 돌보는 애들한테 이런 모습이 나왔으면 하고. 변화되는 것을 지켜보고 싶어서 그렇죠.


[글/인터뷰] 김도헌 (연세대학교 신과대학 신학과 재학)


<끝까지 글을 읽으신 분들을 위한 편집자 주> 곰곰히 따져보신다면 본문 내용만으로도 미루어 짐작하실 수 있겠지만, 청년 교회 봉사자를 위로하는 식탁나눔에서 쌍둥이 친형제가 취하고 있는 V 제스처는 특정 사이비집단과 무관함을 확인하였으니 안심하셔도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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